생물은 진화한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환경에 적응한 종만이 자연선택될 따름이다. 문화와 문명, 그리고 생명존중의 사상등의 이유로 도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사람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야생의 경우에는 다르다.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해서고, 살아남지 못하면, 죽는다. 살아남은 종은 살아남은 종끼리 교배를 하게 되고, 결국 환경에 적응한 종이 정착하게 된다. 그 환경 내에서는 살아남은 그 종이 우수하다고 평가되며, 나머지는 부적응 내지는 도태되고 만다. 즉, 한번의 획기적인 우수성은 그를 제외한 나머지를 도태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획기적인 우수성이, 다수를 도태시키려 한다면? 그 것은 또한 다수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다수의 생존 역시도,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야생의 우수종은 오히려 우수하다는 이유로 도태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을 살고 있다. 야생이었으면 죽어 마땅했을 터인 별종들이 간신히 생명을 허락받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또한 야생과 같은 생존 경쟁도 이루어지고 있다. 며칠째 집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장을 봐둔 음식도 떨어져가고, 직장을 잃은지도 두달이 되어간다. 뮤턴트들의 구직 활동에 제약이 걸려버린 것이고, 또한 뮤턴트들에 대한 연금도 지급 중지될 의기에 처했다. 공화당의 대표적인 반뮤턴트 세력인 아렐 코피스턴의 뮤턴트를 장애자로 취급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득세를 하게 되고, 그들의 특이점에 의해 사회생활을 못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뮤턴트들을 굶겨죽일 작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뮤턴트는 소수고, 그들은 다수다. 어떤 뮤턴트들은 우수한 인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두사람, 세사람 어쩌면 열사람분의 일을 하는 인간 중기계인 뮤턴트도 있다. 그에 반해서, 단한번도 눈을 뜰 수도 없고, 타인을 만질 수도 없으며, 또한 흉측한 괴물로 변해버린 뮤턴트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잣대를 들이대며 상대에게 따지기 마련이다. 뮤턴트들의 취업을 보장하는 노동법에 대한 반대 집회가 일어난지 일주일이다. 나 역시 노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전부터 출근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큰 회사도 아니었다. 뮤턴트가 몇명 있는 회사도 아니었고, 뮤턴트들이 딱히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마지막으로 회사에 다니는 뮤턴트가 사라지자. 어제까지 회사 동료였던 사람들이 시가 행진을 하고 나섰다. NO MUTANT, SAVE THE JOB, FOR OUR CHILDREN 이딴 구호를 내걸고 말이다. 지난 며칠간은 악몽이었다. 폭도로 변한 시위꾼들이 뮤턴트들을 공격하는가 하면, 뮤턴트들 역시 차별금지 시위 중이었고, 둘의 충돌은 거친 몸싸움, 그리고 끔찍한 사고로까지 이어져버렸다. 그나마 나같은 외향적인 차이가 없는 뮤턴트들은 굳이 티를 내지 않으면 사람들 사이에 살아갈 수 있었으나, 겉모습으로 뮤턴트가 발현된 이들은 싸우는 투사가 되거나, 가엾은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이 오직 그 둘 뿐이었다. 우리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나처럼 사람들과 같은 뮤턴트들은 사람들 사이에 살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 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연금을 받기 위해 정부에 등록된 뮤턴트였고, 그 리스트가 살생부가 될 날이 올거란 사실을 예감하고 있었다. 나치와 다를 것이 없는 게 아니냐는 텔레비전 토론회의 질문에 반뮤턴트 운동중인 아렐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와 더 이상 같은 종이 아닙니다. 나치는 국가의 보안을 위해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나치와는 달리 저희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뮤턴트를 저희와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들도 물론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와 감시가 필요한 대상입니다. 우리와 같은 선량한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또한 우리와 같은 선량한 사람 역시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자 패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그렇다면, 뮤턴트와 정상인은 서로 분리되어 살아야한다는 것입니까?" "그 무엇도 우리 미국을 갈라 놓을 순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제 말이 분리주의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현정부가 우리의 돈으로 그들의 배를 채워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결국 우린 비정상인이고, 우리가 세금 도둑이라는 건가? 그럼 일자리를 뺏지나 말던가? 길거리의 슬로건들이 너무나도 역겨울 따름이었다. 우린 당신들의 아이를 잡아먹거나 하지 않는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홧김에 텔레비전에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그래봐야 리모컨이 망가질 따름이지만, 확실히 나의 힘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재빠른 손동작으로 던진 리모컨은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구형 진공관 텔레비전이 아니었다면 텔레비전도 멀쩡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쳇... 전자제품 점을 다녀와야겠네." 한심한 노릇이었다. 돈이라고는 꼴랑 20 달러 남았고, 이 걸로 식료품이나 살까 생각했지만 당장 리모컨을 사고 나면 없어질 돈이었다. 연금이 나올 날짜가 다가오고 있긴 했지만 연금으로 받으러 나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요즘은 뮤턴트 습격이 하루에 한번씩 나오는 뉴스이기도 했다. 그나마 나는... 그런 일을 목격할 뿐, 당하는 입장이 아니란 것에 다행을 느껴야했다. 다행이라고? 어떻게 보면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을 동료의 습격이 내게 오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그저 그 자리를 어색하지 않은 표정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치욕스럽기 짝이 없다. 난 다수의 횡포 아래에 떳떳한 남자도 되지 못하고 있었다. 모자를 챙겨쓰고 두툼한 점퍼를 입고 거리를 나섰다. 공격적인 어투의 팻말을 든 시민운동가들이 시가 행진을 나섰고, 그 사이사이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예쁜 금발의 소녀들도 보였다. 그저 시민운동이라는 말에 홀딱 넘어가서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목청을 높이는 아이들이었다. 세상이 이렇게나 돌아가고 있었다. 전자제품 점에 들어서자.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하고 있던 뮤턴트 친구들이 모두 해고 당하고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인력이 달리는지 영업 사원들이 충분히 붙어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난 리모컨이 필요했지만, 누구도 내게 리모컨이 어디에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인력을 자르는 것은 순식간이었으나 인력을 보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저급의 서비스업이나 위험한 일, 더러운 일, 힘든 일은 뮤턴트들의 일이었다. 그 것만으로도 차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그 일조차도 내 놓으라고 한다. 리모컨을 찾으려고 전자제품 상점을 빙글빙글 돌았다. 원체 규모가 큰 가게가 되다 보니 리모컨이 있는 코너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텔레비전 근처에 있겠거니 싶었는데 소형 가전은 또 따로 있단다. 결국 통합 리모컨이 있는 코너에 도착했다. 리모컨이 하나에 19달러 55 센트... 이걸 사면 먹는 걸 포기해야했다. 아직 연금이 나오려면 삼일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게다가 연금을 받으러 가면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는 미국인이었다. 이 나라를 위해 일했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나의 빠른 손놀림은 일을 잘 배운다고 소문이 나게 해주었고, 회사의 매출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난 이 나라의 일꾼이고, 이 나를 위해 살아왔고, 또한 내 필요를 억누르며 근검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하고, 남한테 두들겨 맞을 것을 염려해야한다. 어떻게... 어째서? 세상이 공평하다면 이래서는 안된다. 난 누구의 것을 빼앗은 적도 없고, 내가 일한 그 이상을 요구한 적도 없다. 사치를 누리고자 한 것도 아니고, 그 이상의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난 그저... 난 그저...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데.... 주머니엔 꼴랑 지폐 두장이 들어있고, 내 앞에는 그 걸 강탈해 가려는 듯한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릿속에서부터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저질러 버렸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판매대에 걸려있는 리모컨을 붙잡아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이것 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품속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것이 고가의 전자제품들이었다. 컴퓨터나 텔레비전같은 경우에는 영업사원들이 붙어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가 많은 게임기 매장은 직원들이 굳이 오지 않았다. 그 곳에서 가장 비싼 게임기를 점찍었다. 그리고 그 것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플레이스테이션 4, 2000 달러짜리 고가의 게임기였고, 현재 어린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걸 팔아먹는다면, 한달? 아니 두달간은 여유있게 살 수 있을 것같았다. 내 한달 월급과 맞는 게임기라니. 뮤턴트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걸 누리고 살아가겠지? 나로서는 꿈도 못 꿀일이다. 그 게임기에 손을 대는 순간이었다. 그야 말로 갑자기였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도 없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고, 지금까지 내가 서 있던 전자제품 매장이 아닌 어둠 속에 나 혼자 남겨진 것같은 모습이 되었다. 주위가 어두운 만큼 나 자신은 밝아져 보였고, 그 것은 나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반영해주었다. 아아... 나는 도둑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뒤에 휠체어를 탄 남자가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몸이 불편한 병자와 같았으나 눈빛은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한오라기 없는 대머리는 그를 나이들어 보이게 하였으나 짙은 눈썹은 그가 얼마나 카리스마 있는 남성인지 보여주는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 이 어둠 속에 남겨진 오직 두사람, 나와 그 휠체어를 탄 남자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의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 내가 게임기에서 손을 놓자 주위는 다시 밝아졌고, 전자 상가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졌다. 다시금 현실 감각을 되찾은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일인지 궁금했다. 그 대머리에 휠체어를 탄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 곳에 있을 뿐이었는데도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도대체... 도대체 이게 어찌된 것인가? 난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뉘시오?" 그러자 휠체어를 탄 남자는 내게 다가오더니 진열대의 한 게임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엑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