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 동물들이 포근한 낮잠에 든 정오 무렵, 서울대공원 동물원. 여자는 유인원 관을 걷는다. 걷다가 오랑우탄 우리에 멈춘다. 그리고 그 앞 벤치에 앉는다. 그녀는 카메라로 오랑우탄을 찍는다. 찰칵. 그리고 생각에 잠긴다. 노란 햇살이 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온다. 어두운 건물 안을 비춘다. 그녀는 갈색 머리를 옆으로 쓸어내리며 다시 오랑우탄들을 향해 한 컷을 찍는다. 찰칵. 어린 아이들이 뛰어온다. 원숭이처럼 깔깔 웃으며 소녀가 즐거워 한다. 오랑우탄들을 만지고 싶은지 이리저리 유리창을 손으로 툭툭 두드린다. 찰칵. 여인은 그 풍경을 필름에 담는다.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오랑우탄들을 지나쳐 건물 밖을 나간다. 그녀는 다시 혼자다. 한 없이 조용하다. 이제 오랑우탄들은 서로 기대 털을 헤집는다. 그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찰칵. 또 한 번을 찍었다. 찰칵. 또 다시 찍고.

 

찰칵.

 

오랑우탄 한 마리가 창 가까이로 다가온다. 호기심 많은 녀석인지 창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카메라를 벤치에 놓고 그녀는 일어선다. 그리고 그녀 역시 창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앉아서 손을 녀석에게로 갖다댄다. 비록 창이 사이에 있지만 손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일까. 녀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다. 창 너머가 보이는 것일까? 그렇게 한참을 보낸다. 어느 순간 불어 온 바람이 적막을 깨뜨린다. 구두를 신은 사람이 그녀 뒤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일어서 다시 벤치에 앉는다. 녀석은 그 자리에 계속 있다. 여자는 카메라를 들어 다시 한 컷을 찍는다.

 

찰칵.

 

그리고 다시 가만히 우리 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여자는 이곳을 좋아하던 한 남자를 떠올린다. 그녀의 연인, 아니 그 이상으로 남자는 그녀와 더 가까웠다. 남자는 슬픈 사람이었다. 사랑에 대해 너무나도 얼어있었던 그였다. 남자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쏟아 붓지 못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항상 가깝지만 멀게 느껴진다 외쳤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난 참 나쁜 녀석이지? 그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랑우탄 두 마리가 서로 싸운다. 소리는 안까지 들리지 않지만 얼마나 격앙되어 있는지 짐작된다. 여자는 다시 카메라를 든다.

 

찰칵.


 

남자는 이 곳을 찾을 때마다 말하고는 했다. 유인원들은, 그 단어의 뜻답게 사람과 참 많이 닮아 있다고. 사람 대신 사회에 있어도 될 것 같다고. 여자는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사회에 유인원이 어떻게 살아가냐고. 남자는 쓸쓸한 미소로 답하며 오랑우탄들을 바라봤다. 제각각 먹이를 든채로 먹기에만 바빴다. 인간도 결국은 저 동물들을 뿌리로 둔 존재들이잖아. 남자는 카메라를 눈에 갖다댔다. 찰칵. 남자는 말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우리가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구경당하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끼리도 그렇겠지. 여자는 그때 코웃음을 쳤을 뿐이다.


 

찰칵. 


 

그리고 남자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백방으로 찾아봐도 헛수고였다. 가족들 조차 그의 행방을 몰랐다. 마지 세상에서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 처럼, 그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찾다 찾다 여자는 지쳤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잊었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그와 처음 만났던 역사에 한참을 기다리고, 그와 자주 갔던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그와 즐겁게 대화를 나눴던 커피샵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그리고 주말에는 항상 이 곳 동물원을 찾았다. 그래, 잊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와의 기억은 이미 몸에 배어버린지 오래였다.

 

난 아직도 이곳에 있는데. 이 곳을 찾는데. 넌 대체 어디로 간거야. 

 

이미 오랑우탄들은 낮잠에 들었다. 누가 보건 말건 녀석들은 자신의 생활에 충실할 뿐이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여자는 시계를 본다. 오후 한 시 반. 이 유인원 관에서 약 두시간 정도를 있었다. 오늘도 아닌걸까. 여자는 안주머니에서 아주 소중하게 고이 접은 편지장를 꺼낸다. 3년 전, 이 장소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그저 아무 벤치에 앉았을 뿐인데 그 옆에 이 편지, 메마른 펜으로 억지로 써내려 간 듯한 필체의 편지가 놓여져 있었다. 봉투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녀는 왠지 그 편지가 자신에게 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처럼 그녀는 편지를 다시 펼쳐 본다.

 

자기, 잘 지내고 있어? 난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게 없네. 자기가 날 찾아 헤메는걸 알면서도 난 가지 못했어. 도저히.. 어딘가 감금되었다거나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 있는 건 아니야. 내 자유대로 오고 갈 수 있을 테지만. 난 해야 할 일이 많거든. 그리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어. 하지만 이 동물원, 주말마다 찾아와서 보고 있어. 너에게 다가갈 수는 없지만 가끔 먼치에서 바라보기도 하지. 다가가고 싶지만 다시 그 마음을 접어. 하하. 외롭네. 아무튼 난 어디서 죽거나 한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여자는 그날 내내 울었다.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지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랫동안 울었다.

 

왜 그러는 건데. 날 사랑한다면 달려와서 끌어 안아줘야 하는 거 아냐.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리가 없잖아. 왜 나타나지 않는 건데. 보고 있다면서.. 주말마다 찾아온다고? 너가 날 피한다면 내가 널 찾아낼거야. 피하지 마, 제발.

 

편지를 접으며 여자는 붉어지는 눈시울을 닦아낸다. 그 이후로 그녀는 매 주말마다 빠짐없이 이곳을 찾는다. 개장에 맞춰 들어와 폐장 시간 동안 기다린 적도 수십번.. 하지만 지금도 그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 그를 기다린다. 너무나도 지쳐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우리 안쪽의 오랑우탄 두 마리가 서로 구애를 한다. 동물들은 사랑을 어떻게 할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을까? 사랑은 뭘까? 여자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저 좋았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가 좋았었다. 신비로운 느낌, 이 세상에 있지 않은 사람 같은 느낌. 그래서 처음 봤을 때고 그녀가 먼저 다가갔었다. 외모가 잘 생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재산이 많은 건 더 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끌렸고 사랑에 빠졌다.


 

그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다. 주위 사물을 관찰하는데 특별히 관심을 쏟는 성격이었다. 타인들은 잘 보지 못하는 작은 것 조차도 쉽게 발견하고.. 마치 우주 속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 마냥 이 사회와는 멀었다. 문학에서 말하는 관찰자 시점처럼 그는 동떨어져서 이 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가 자신을 바라 봐 주지 않아도, 그저 그녀는 그런 그를 사랑했고 또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렇게 애쓴 결과가 바로 이거다.

 

세상은 냉정해. 
 

찰칵. 
 

또 다시 카메라를 찍는다. 앞에 있던 그 녀석이 벌린 입을 창에 갖다 댄다. 그 모습이 재밌어 찍었다. 녀석이 입을 갖다댄 창문에 하얗게 김이 서린다. 그러더니 그 조그마한 곳에서 시작된 김이 창 전체로 퍼진다. 천천히.. 시간이 정지한 듯 고요한 이 공간 속, 그녀만이 홀로 이 광경에 놀라 카메라를 떨어뜨린다. 충격으로 깨진 렌즈 조각이 바닥에 퍼진다. 김 사이로 마치 누가 손가락으로 적듯이 창에 투명한 글씨가 나타난다.

 

- 이제서야 용기를 냈어. 미안해.

 

이제는 여자마저도 이 공간에 귀속된 듯 굳어 움직이지 못한다. 그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만이 그녀가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김이 다시 서려 글씨를 지운다. 같은 자리에 다시 글씨가 써내려져 간다.

 

-  당신 짐작이 맞아. 나는 이곳을 좋아했으니까. 당신이 매 주 이곳을 찾는 것을 알고 있었어. 알면서도 바라보면서도 안아 줄 수 없었어. 그래서 슬펐고.

 

글씨가 사라진다. 여자는 글을 쓰는 주체가 그임을 짐작한다.

 

-전에 여기서 했던, 누군가가 우리를 감시하고 구경한다는 그 말 기억나지? 그때 난 기시감을 느꼈었어. 그런 존재가 분명 있을 거란 거. 그게 어쩌다 내가 되어 버린거지.

 

글씨가 사라진다. 여자는 소리쳤다. 대체 무슨 소리야. 넌 대체 뭐가 되어버린건데.

 

- 투명인간은 결코 아니야. 어쩌면 귀신에 더 가까운 존재일까. 정확히 말하면 난 관찰자, 이 세상, 이 공간 속에 분명 있고 이 세상을 볼 수도 있지만 이 세상의 다른 존재들은 나를 볼 수 없는,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그런 놈이 되었어.. 

 

여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 생각했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자신은 꿈에서 깨어 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떴다.

 

-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난 이래서라도 너에게 내 말을 전하고 싶었어.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그나마 내 힘의 한계를 넘어서야 가능한 것 같아. 편지를 쓰고나서 오랫동안 이 세상을 보지 못했지. 오로지 한 공간 속에 갖혀 세상과 단절되는 죄를 받은 거야. 그나마 작년부터나마 다시 보게 됐지만.

 

꿈이 아니었던 걸까. 보이지 않는 그를 향해 그녀는 말했다.

 

널 찾아 헤맸었어. 보고 싶어서.. 사랑해서.. 그런데 사실은 내 옆에 있었던 거야?

 

그녀는 허탈해서 웃었다.

 

- 당신은 기억 못 할 거야. 하지만 난 당신 곁에 항상 있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 글씨가 끊어졌다. 김이 다시 서리고 조금 있다 다시 글씨가 써내려져갔다.

 

- 미안해, 타인에게 이 진실을 알려주는 것. 그것은 금기야. 아마도, 오늘 이 대화가 끝나면 나는 영원히 이 세상을 보지 못할지도 모르지. 큰 비밀을 말해버린 것에 대한 대가로. 하지만 그래도 알리고 싶었어. 난 이렇게 널을 보고 있다고. 모순이지? 알리지 않으면 참을 수 없고 알리게 되면 볼 수 없는..

 

영원히 보지 못한다고? 자기가 날 볼 수 없게 되는거야? 나 또한 네가 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없게 되고? 왜 그랬어. 왜 그러면서까지 알려야 했던거야.

 

- 언젠가 내가 했던 말 생각나? 난 너무 외로운 사람이라, 그 외로움의 어둠 때문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거. 난 항상 그렇게 생각했었어. 머리가 크고 이성에 대해 생각했을 때부터 계속.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한거야.

 

여자는 흐느꼈다.

 

난 널 보면서 행복했는데. 더 없이 행복했는데. 왜 너 혼자 그렇게 움츠러 든거야.

 

- 하하. 그런데 있지, 이렇게 혼자가 되고 난 지금, 예전을 돌이켜 보면 내가 잘 못 생각해왔던 것 같아. 내가 없어진 이후 슬퍼하는 널 보고 깨달았어. 네 말대로, 나의 존재가 너에게 그렇게 소중한 걸 너와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용케도 알았네. 왜 몰랐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여자는 눈물을 닦아낸다.

 

- 하하, 난 둔한 놈이었으니까. 그래, 안타깝게도 난 내가 해왔던 많은 생각 때문에 스스로 혼자가 되어갔던 것 같아. 정말... 너처럼 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는데도 난... 그래서 후회해. 이렇게 되기 전에 너를 더욱 사랑했더라면, 너의 사랑을 깨달았다면 난 너랑 행복할 수 있었을까.


 

바보. 여자는 웃었다. 왜 그러지 못했어. 이 바보야.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고 글씨가 다시 써내려져간다.

 

- 널 사랑해. 하지만 늦었지. 그러니 부디 날 잊어. 나보다 좋은 사람 세상에 많잖아? 항상 무심하고 자기의 생각에 빠져 살았던 남자보다 멋진 남자는 많아. 널 더 행복하게 해 줄.

 

여자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 나를 걱정했던 거라면 안심해도 좋아. 난 위험한 일도 걱정할 만한 일도 없으테니까. 그저 다시는 이 곳을 보지 못하게 될 뿐.

 

여자는 크게 소리친다.

 

그게 다야? 여태껏 내가 널 기다린 이유가 뭔데! 내가 왜 널 못 잊었는데! 사랑이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거라고 생각해! 차라리 기다려달라 말해줘, 차라리. 네가 날 보지 못해도 말이야.

 

- 그러지마.. 날 생각하며 떠나지 못하는 널 보면 내가 슬퍼져.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너 역시도 나를 찾다 예전의 나처럼 홀로 움츠려들게 될까봐 두려웠어. 그래서... 이렇게나마 말을 전하는거야.

 

여자는 다리가 풀린 채로 바닥에 앉아버린다. 그리고 오열한다. 

 

- 기다려 달라 말하고 싶어. 하지만 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난 이기적인 놈이 될 수 없어. 너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행복해진다면 난 그걸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젠장, 아직은 아닌데. 점점 세상이 희미해져가.

 

여자는 깜짝 놀란다.

 

-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직은 안 되는데... 아직 할 말이 ㅁㅏㄴ..

 

김이 점차 사라져간다. 글씨도 함께.. 여인은 울부짖으며 창에 기댄다. 떠나지마.. 제말 더 얘기해줘..

 

- ㅇㅏㄴ ㄴㅕㅇ,  ㄴ ㅏ ㅣ ㅅ ㅗ ㅈ ㅜ ㅇㅎ..

 

마치 눈을 가리고 쓰는 것 마냥 흐트러진 필체의 글씨가 희미하게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여인은 옅게 글씨 자국만 남은 창에 얼굴을 기댄다. 그리고 글씨가 있던 곳에 손을 갖다댄다.

 

가지마 제발.

 

눈물이 그녀의 갸름한 턱선을 타고 흘러 떨어진다. 그가 말했다. 더 이상 만날 수도 없다고. 힘겨운 손짓으로 그녀는 떨어진 카메라를 들어올린다. 렌즈가 깨진 그 카메라로는 무엇도 제대로 찍기 힘들텐데 그녀는 남자의 마지막 손길이 스친 곳을 렌즈에 담는다.

 

안돼.

 

셔터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에 그녀는 멈춘다. 잠시 어떠한 생각에 잠긴 그녀는 렌즈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녀는 셔터를 누른다.

 

찰칵.

 

그리고 그 자리에 아무도 없게 되었다. 렌즈 깨진 한 대의 카메라만이 있을 뿐.

 
 
 

- 2010.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