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진홍(眞紅)의 함대(艦隊)
천축국(賤畜國).
고색창연한 주석궁의 연회석에서 '수령(首領)'은 새로 입수한 서방산 포도주에 취해 있었다.
그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리영달 해군 사령관이 수령에게 보고했다.
"경애하는 우리 민족의 태양 수령동지. 드디어 저희 해군이 'ㅂ(비읍)'계획의 첫 단추를 꿰었습니다."
수령의 시선이 리영달을 향했다.
"그것이 서해에 들어온 건가."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보고 싶군."
수령은 포도주 잔을 놓고 영달을 자신의 집무실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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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국 남쪽에 위치한 K국.
한 소규모 신문사가 운영하고 있는 작은 사무실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천축국 전문 추적기자인 '제이'가 편집장석에 흥분하듯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야, 제이 군. 난잡스럽게."
"특종입니다. 편집장님!"
"어느정도의 특종이지?"
제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 K국의 운명이 걸릴 정도의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제이가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은?"
사진은 상당히 거대한. 전장(全長) 200미터는 여유있게 넘을만한 사이즈의 전투함이었다.
"북방의 군사대국인 R국에서 운용하는 비노그라도프급(級) 중대지공격함(中對地攻擊艦)입니다. 여러 척을 운용중이었지만 그 중 한척이 원자로 문제로 일찍 퇴역해서 고철로 팔렸죠."
그런 다음 제이는 그림 한장을 보여주었다. 도크에 정박해 있는 비노그라도프급의 스케치였다.
"이것도 그 군함이군...썩 좋은 그림솜씨는 아니지만."
"이 그림은 얼마전 천축국을 탈출해 귀순한 한 서해기지 해군 병사가 그려서 전달한 것입니다."
"뭐라고!"
편집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 맺혔다.
"그, 그래도 고철이잖아."
제이가 고개를 저으며 두 사진과 그림을 대조해 보였다.
"비노그라도프급은 원자로로 가동하기 때문에 연돌이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그림에서는 연돌이 보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설마...!"
원자로가 무용지물이 되어 처분된 비노그라도프에 다른 엔진을 달아 사용하려 하는 것인가. 편집장의 불길한 추측은 맞아 떨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당장 굶어죽는 이가 넘쳐나는 천축국 놈들이 어째서 이런 거물을 데려온거지?"
"편집장님. 서해에는 그것이 있습니다."
"그것이라니?"
제이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애써 말하듯 눈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북방한계선(해상에서 천축국과 K국을 가르는 분계선) 바로 남단에 위치한 서해 5도. 나아가서는 수도 공격까지 노리는 것이겠지요."
편집장은 소름으로 몸서리를 쳤다.
"제이!"
"네. 편집장님."
편집장이 외쳤다.
"당장 이거 조간 특종으로 1면에 올려야겠어! 이건 우리 조국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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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240미터. 총 배수량 2만 9천톤. 함포와 공격 미사일로 무장한 절정 화력의 아름다운 거함...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
연회로부터 석 달 뒤. 서해 기지를 시찰하던 수령은 도크에서 'ㅂ'계획의 핵심인 비노그라도프의 거체를 감상하며 황홀경에 젖어 있었다. 그 거함의 함미에는 더이상 R국의 깃발이 달려있지 않았다. 천축국의 상징인 더러운 짐승의 대가리가 나부낄 따름이었다.
"당장 운용 가능한 무기는 몇가지나 있지?"
서해기지 사령관이 답했다.
"주포, 부포는 물론이거니와, 대함 미사일, 대지 미사일 등이 운용 가능합니다. 나아가 한달 내로 핵 순항미사일 '적룡(赤龍)'도 장착할 예정입니다."
수령은 몹시나 흡족해 했다.
"적룡만 달수 있다면...'약속의 그날'이 빨리지겠군.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수령의 광희(狂喜)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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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1면 기사에 실린 비노그라도프에 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당장 서해기지를 폭격해 비노그라도프를 격침시키자는 여론부터, 천축국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여론까지...
언제나 그래왔지만, K국에서는 반 천축국과 친 천축국 여론이 맞서다가 묻혀버린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좋은게 좋은거라지만, 이래선 언제나 친 천축국 여론의 승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두달 뒤의 일이었다. 비노그라도프에 관해서는 모두가 까맣게 잊고 있을 무렵,
"미확인 비행체 1기가 남진중! 순항 미사일입니다!"
서해의 B섬 북방 해상에서 순찰임무를 띄던 K국의 구축함이 미사일을 감지했다. 미사일의 항로를 추적하던 함교에서 순간,
쿠우우우우우우웅.
들어본적이 없는 낮은 굉음과 빛, 그리고 충격파에 모두가 넘어졌다. 정신을 차려 남쪽을 보았을땐, 드높은 버섯구름이 B섬을 감싼 뒤였다.
"핵공격인가....!"
충격파로 대파된 구축함 갑판에서 생존자 구조작업을 펼치던 한 의무병의 시선이 북쪽 해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본 광경은 살아있을 때까지 망막에 각인되어 절대 잊지 못할 그런 것이었다.
천축국 깃발을 내건 어뢰정과 고속정이 양 날개로, 가운데에 항적(航跡)만으로 쓰나미를 일으킬듯한 거함이 멀리서 다가온다.
이것이 천축국 결전병기중의 하나, 핵병기 탑재 중대지공격함 비노그라도프였다.
온다.
진홍의 함대가, 죽음의 체취를 풍기며 남벌(南伐)을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