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일은 다음주 월요일.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신의 아들 제외) 가야된다는 군대에 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물론 죽는 것도 싫다. 난생 처음 겪는 이 딜레마를 누가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수십번 되내어봤자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D(삐--) 사이트에 이 고민을 올려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님 군대입갤 축하요"같은 리플 뿐이었다. 더러운 미필들. 정녕 난 국가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나. 슬프다. 이 대한민국 청년이 20대의 청춘을 남자들만의 세계에서 낭비해야 한다는 것을. 내 죠니가 울부짖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의 권력이 강하고 나의 청춘을 가로막은 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인간한테는 한번쯤은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렇다고 믿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한테는 일어났다.
군입대일 2일 전이었다.
"이게 뭐야?"
D(삐--)사이트에서 알게 된 지인 이름으로 된 소포였다. 소포는 영장 배달 이후로 꼴도 보기 싫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로 찼다. 아니, 차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소포가 뭔가 이 상황을 해결해줄 것 같기도 했기에, 차마 내동댕이 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이런 의미불명한 소포의 내용물에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불행하다. 내 신세가 언제 이렇게 전락했을까.
"...어?"
편지 하나와 의미불명의 약 하나. 이 약을 먹으면 매트릭스 내부에서 탈출해 기계들과 싸워야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은 해봤지만. 역시 그건 무리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나한테 주어진 그릇은 너무 작다.
그리고 또 나온 것은 비밀번호로 잠구어진 플라스틱 상자. 이건 필요없다. 비밀번호를 적어놨으면 모를까. 어쩌면 편지에 적혀있을지도 모르지만.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국방의 의무 축하해. 드디어 멋진 남자 되는 거야. 정신좀 차리겠구나.
은(는) 훼이크고, 군대입갤을 피할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있지.
이 약을 먹는 거야. 이 약을 먹으면 면제사유가 생겨서 넌 군대를 가지 않아도 돼. 어때 좋지?
솔직히 말하면, 이건 나한테 딱 하나 남은 거라서 너한테 주긴 아깝지만,
만약 네가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이 약을 변기에 넣고 내려버려도 괜찮아.
정말 의미 불명한 편지였다. 하지만 나한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본능이 이 약을 먹으면 "인간을 포기하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본능은 길을 가다가 500원짜리를 발견하는 정도의 본능, 다시말해 500원짜리 본능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쓸만한 본능이기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어쩔 수 없다. 먹지 말자.
아냐, 먹어야 해. 넌 이미 디(삐--)사이트에 가게 된 것부터 글러먹었어. 인간을 포기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약 12초간의 심사숙고 끝에 나는 결정했다.
그래, 먹자. 먹고 죽자.
약봉지를 뜯어 가루를 입 속에 억지로 집어넣고,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서 물을 마셨다. 달콤한 맛이 났다. 하지만 이게 무슨 면제사유란 말인가? 미각이라도 날려보내면 면제사유가 되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 시야가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내 팔이 조금씩 누런 빛을 잃어가고, 팔에 난 남자의 털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내 다리의 털도 사라지고, 몸 전체가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난 이 미친 편지,약, 그리고 비밀번호가 적힌 상자가 무엇을 뜻하는 지 알게 되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나의 존슨 또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제 나라는 청년은 없었다. 그곳에는 8살짜리 꼬마애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옷을 걸치고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군대는 안 가니까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아주 약간 들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