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은 가쁘고 머리 속은 새하얳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는 앞발을 내딛고 뒷 발을 내쳤다. 한 숨도 멈추지 않았다. 정신 없이 풍경이 스쳤다. 그러다 가끔 입가에서 탁한 피 한 방울이 떨어져 순 식간에 시야 구석으로 사라졌다. 내 피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면 분명 내 피도 저 땅에 흩뿌려지리라. 우리의 상관이었던 블레어는 자를 대고 자른 듯한 사냥개였다. 언제나 가슴을 탁 펴고 꼿꼿히 등을 세우고 형형한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종은 항상 잔혹함이 침착함을 앞선다고 알려져 왔다.] 바짝 엎드린 우리의 등을 검사하는 것처럼, 그는 느릿느릿 걸었다. [사람들은 우리 종의 날카로운 이빨과 재빠른 네 다리를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일 습성을 지녔다곤 영원히 믿진 않았다.] 땅에 머리를 박고 있었음에도 나는 늘 그의 시선이 잠시 내게 떨어져 멎는 것을 알았다. 그 대목을 경고하듯 이를 때마다 그는 내 앞에서 발을 멈추었던 것이다. 그가 보기에 나는 그런 놈이었다. 이윽고 그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돌아서서 나머지를 향해 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에게 가치 있기 위해선 더욱 조심해야 한다. 흥분한 본능을 누르고 사냥감 앞에선 그것을 겁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부르기 위해 짖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사냥감을 궁지에 모는 것이다. 사냥감을 죽이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푸른 들과 하얀 하늘만 계속되던 눈 앞에 작은 갈색 빛깔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의 오두막이다. 블레어의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나는 버려지고 싶지 않았다. 쓸모 없어진 다른 개들처럼 죽임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유달리 긴 추격이었다. 그 끝에 토끼는 바위절벽에 몰렸다. 나는 온몸의 피가 여름 날 검은 돌처럼 뜨겁게 달구어진 상태였다.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고 그 통통한 살 속으로 이빨을 박아넣었다. 뜨듯한 피가 입가의 털을 적시며 뚝 떨어졌을 때야 정신이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후엔 자수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뇌를 지배했다. 사람들은 나를 어릴때 부터 어여삐 여기며 길러줬다. 나만큼 토끼를 잘 쫓는 녀석도 없다며 항상 칭찬해주 었다. 먼저 가서 잘못을 뉘우친다는 걸 보여주면 나를 다시 받아주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들에 토끼를 버리고 엉금엉금 기어 울타리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다들 나를 뒤따라 바위절벽까지 왔으리라. 그리고 거기에 흩뿌려진 피를 봤을 것도 분명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울타리 밑에 붙었다. 상황이 좋으면 얼른 나서야지. 그렇지만 일은 내가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았다. 말소리는 내가 들릴만한 거리에 자리 를 잡자마자 금새 멈추었다. 나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바짝 울타리에 다가갔다. 그리고, 탕! 커다란 파열음이 솟구쳤다. 연기가 날카롭게 하늘로 피어올랐다. 화들짝 놀라 울타리 에서 떨어졌다. 귀가 뚫렸는지, 그 가까이에서도 똑똑히 들리지 않던 사람들 소리가 이 멀리에서도 선명히 들려왔다. "요즘 시름시름하다 싶더니. 그래도 좀 더 굴려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차피 늙을대로 늙은 놈이었어." "개도 노망이 드나?" "모르지. 하지만 그 놈이 이렇게까지 무리를 벗어나 사냥감을 쫓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잖나. 갈 때가 된 게지." 불안함이 꼬리 끝에서 가슴으로 타고 올랐다. 나는 일부러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았다. 그리고 떨리는 발로 울타리 입구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바닥에 쓰러진 것은 다름 아닌 블레어였다. 그렇게나 충성스럽고 당당하던 블레어 말이다. 그러고보니 오늘 블레어도 우리 무리를 따라왔다. 핏자국을 봤을 때, 내가 사라진 걸 알았을 때, 분명 블레어는 나를 뒤쫓았을 것이다. 한 귀퉁이만 보이는 기다란 총구에선 아직도 연기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총을 바로 세우며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안 돌아온 놈이 하나 있지?" 나는 부리나케 몸을 돌렸다. 달렸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도망쳐야 한다. 탈출해야 한다. 멍청한 머리가 이상한 말을 내 귓가에 쉴 새 없이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