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했다. 하마터면 머리가 꿰뚫릴 뻔 했다. 자그마한 전극에 걸려 넘어져버렸지만, 다행히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정말. 끙차, 하고 일어나 옷을 탁탁 털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어서 옷에 뿌옇게 묻어버렸다. 옷 정도야 아무래도 좋지만 이렇게 계속 넘어지다간 금세 탈진해버릴 텐데. 이미 이런저런 장애물을 피해 빙빙 돌아오느라 충분히 힘든 상태였다. 덩치가 커서 피해가기 힘든 트랜지스터부터 시작해서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납땜한 흔적까지, 나아가기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목적지는 아니려나. 여기도 없구나. 허탈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갑자기 튀어버린 전기 스파크가 문제였다. 아마 내가 들고 있던 전자기기와 반응한 모양인데, 이럴 줄 알았다면 아날로그 제품들로 챙겨올 걸 그랬다. 지금 와서 후회해도 별 수 없는 일이지만……. 하필이면 스파크가 HDD 부분에 적중할 건 뭐람. 덕분에 배드 섹터가 생겨버렸는데, 이 부분이 또 지리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던 곳이었나 보다. 와, 정말 일이 안 풀리려니 이렇게 안 풀릴 수도 있구나, 하고 탄식하던 것도 잠깐. 어떻게든 기억에 의지해 길을 더듬더듬 찾아 나선지 3,40분 즈음 되었을까. 결국 내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통감하고 말았다. 이 길은 분명히 아까 왔던 길이었는데. 아까 보았던 것과 같은 색의 트랜지스터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에휴.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헤매지 않기 위해 그 트랜지스터를 부숴버렸다. 사실 부술 생각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냥 스트레스도 해소할 겸 슬쩍 걷어찬 것뿐이었는데, 퍽 하고 터져버렸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이렇게 표시를 해 놓았는데도 다음번에 이곳에 도착한다면, 정말로 어떻게 나아갈 건지 좀 앉아 쉬면서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꾸준히 걸어갔다. 되도록이면 아까 걸었던 길은 다시 걷지 않도록, 기억나는 길은 가능한 한 피해서 걸었다. 효과가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꽤나 낯선 골목으로 접어들었는데, 그것이 내 착각이었단 사실은 금방 드러났다.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아까 트랜지스터를 부순 장소의 바로 옆 골목에 불과했다. 또 빙글빙글 돈 것이다. 방향감각에 문제가 있나……. 컴퓨터 안이 이렇게 복잡할 줄이야.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던 시절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길을 모를 뿐만 아니라 어두컴컴해서 그나마 잘 보이지도 않았다. 어스름하게 보이는 시야에 의지해 모르는 길을 나아가기엔 컴퓨터 안은 너무 위험했다. 이러다가 불량배라도 만나는 건 아닐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머피의 법칙이란 게 있다. 안 좋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뭐 그런 법칙이었던가. 아마도 맞을 것이다. 우산을 안 챙겨오는 날에는 꼭 비가 온다던지, 잠깐 화장실에 들렀는데 그 사이에 버스가 휙 지나가버린다던지, 길을 잃으면 꼭 불량배와 조우한다던지. 아니나 다를까, 골목 구석에서 이흐히히히히, 하고 기분 나쁘게 웃으며 그다지 멀쩡해 보이지 않는 세 사람이 등장했다. 쯧, 하고 주위에서 핀을 꺾어들었다. 쉽사리 부러지지 않아 순간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꺾어 무기로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워어어어, 하고 달려드는 녀석들의 선봉의 머리를 후려치고, 그 다음은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마지막 녀석은 녀석의 등 뒤로 돌아가 몸에다 핀을 박아 넣는 것으로 처리했다. 부스럭, 하고 뒤쪽에서 소리가 나서 돌아봤더니, 내가 한 대찍 후려쳐 넘긴 두 녀석이 다시 일어나 날 노려보고 있었다. 치잇, 인상을 쓰며 적의 몸에서 핀을 빼들려고 힘을 썼는데. “어?” 안 빠진다. 끙, 끙 하고 아무리 힘을 써 봐도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겔겔겔, 하고 내가 핀을 박아넣은 녀석이 웃었다. 알고 보니 녀석이 두 손으로 내 핀을 꽉 잡고 빼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런 변태같은 자식…! 재빨리 뒤로 뛰어 물러났다. 하지만 퉁, 하고 등 뒤에 예상치 못한 감촉이 느껴졌다. 분명 여기 충분한 공간이 있는 걸 보고 뒤로 뛰었는데. 식은땀을 흘리며 뒤돌아보니, 내가 상대한 녀석들보다 덩치가 2배는 큰 적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워.” 쾅! 녀석이 깍지 낀 손으로 내 머리를 후드려쳤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고작이었다. 주륵, 하고 머리로부터 피가 흘러나왔다. 한 줄기가 아니었다. 마치 물이 든 풍선이 터졌을 때처럼 줄줄 새나왔다. 이럼 안 되는데……. “쿠륵!” 한번 더, 쾅! 이번엔 정통으로 맞았다. 수직으로 나를 내려친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땅에, 아니, 메인보드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땅에 거의 박혀버렸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곳에서 탈출을 해서, 탈출을…해서…. - “아, 다행이다. 바이러스 잡았네.” 소년은 기쁜 듯 모니터의 화면을 지켜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