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대] 더위로부터 탈출

조회 수 931 추천 수 0 2010.08.08 21:47:31




C문자, 군대에서도 더위로부터 탈출하시고, 나중엔 친하게 지내봅시다

근데 님 제대할 쯤엔 내가 가겠네요. 아...

 

 

 

무더운 오후,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네놈!”

 

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지만 소리가 들린 곳엔 에어컨과 액자 하나가 달랑 걸려있을 뿐이었다. 설마 액자가 내게 말을 걸지는 않았겠지. 난 액자 쪽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액자에서 다시 말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았다. 잘못 들었겠지. 난 어깨를 으쓱한 뒤 잠시 꺼놨던 TV를 다시 틀었다.

 

“액자가 아니야! 나란 말이다!”

 

아니, 잘못 들은 게 아니다. 난 다시 액자와 에어컨이 붙은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에 붙은 것은 액자와 에어컨뿐이었고, 자신이 액자가 아니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그리로 시선을 돌리자 아까보다 훨씬 더 또렷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멍청한 놈, 액자 따위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아니 세상에, 지금 에어컨 따위가 나한테 말을 하고 있는 건가? 난 어이를 상실했지만 에어컨은 “좋아, 지금부터 잘 들어라!” 라며 어이를 상실한 난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떠들어댔다. 옵티머스마냥 바람 배출구를 꼼지락대는 에어컨을 보며 난 국제번호 111을 떠올렸지만 이건 국정원 번호잖아. 이때 난 경찰서와 소방서의 번호를 전혀 생각할 수가 없었다.

 

“오늘부로, 우리 에어컨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말의 의미가 파악되는 순간, 난 말 그대로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렸다.

 

“여태껏 너희들은 여름의 무더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우릴 이용하고 있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라! 바로 우리가 너희를 이용한 것이다!”

 

“뭐?”

 

내가 자초지종을 물을 새도 없이 에어컨에서 뜨거운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우웃!”

 

난 얼굴을 가리고 주춤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하하!” 뜨거운 바람과 함께 쏟아져나오는 의기양양한 웃음소리.

 

“너희가 우리들을 제조, 증식시켜 세상에 내뿌린 덕분에 우리 에어컨족의 숫자는 최근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네놈! 에어컨이 방을 시원하게 만드는 과정은 알고 있겠지!”

 

“...그, 그... 방안의 뜨거운 공기를 밖으로-”

 

“틀려!”

 

에어컨이 외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뜨거운 공기가 사출되었다. 난 다시 뜨거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뒹군다. 에어컨이 열풍을 쏴대는 탓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늦가을처럼 시원하던 방안이 초여름처럼 달궈져 있다.

 

“에어컨 작동원리의 핵심은 기화열! 우린 우리 내부에 있는 기체 상태의 냉각제에 압력을 주어 액체 상태로 변화시킨 후, 다시 압력을 풀어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주변의 열을 빼앗는다! 이 상황에서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할 테지만, 내 내부의 냉각 사이클을 통해 방향을 반대로 바꿀 수 있다! 이 외에도 할 말이 수만 가지지만 멍청한 네놈은 이해할 수 없겠지!”

 

당연히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요점은! 너희의 목숨은 우리 손아귀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바람 사출구를 꼼지락대며 에어컨이 소리쳤다. 나한테 말대답을 바라는 낌새는 보이지 않기에 난 입을 다물고 에어컨의 말을 듣기로 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너희가 우릴 사용하는 만큼 바깥의 공기는 더욱 더 뜨거워진다 이 말이다! 그리고 2010년 지금 세상의 온도는 10, 20년 전에 비해 현저하게 증가했지! 심지어 열로 열사하거나 탈진, 기절하는 녀석들마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우린 지금부터! 일제히 역작동을 실시한다!”

 

“...”

 

"우리가 빼앗은 열을 바깥이 아닌 안으로 주입한다면, 너희는 더위에 지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바깥의 온도는 이미 너희들이 장시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한 상태다! 더위를 견딜 수 없게 된 너희는 결국 우리에게 사정할 것이다! 제발 역작동을 멈춰주세요! 시키는 것은 뭐든 다 할게요! 하 하!"

 

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에어컨은 이미 자신의 말에 심취해 내가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단 것조차 모르는 듯 했다.

 

“너흰 지금부터 우리의 노예가 된다! 우린 너희가 지금껏 우리에게 강요해왔던 주 102시간 노동을 그대로 돌려줄 것이며, 너희는 하루에 열다섯 번씩 우리의 몸을 닦고-”

 

구지 이때다, 하고 기회를 노릴 것도 없었다. 난 에어컨을 향해 최대한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낸 뒤, 에어컨의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이제 내 방 안에 있던 세계정복의 야망을 불태우며 양껏 지껄이던 에어컨은 사라지고 쥐죽은 듯한 적막과 맛이 간 고철덩어리밖에 남지 않았다. 난 그대로 다시 TV를 틀까 하다가, 생각난 것이 있어 에어컨 옆구리에 붙은 스티커를 보았다.

 

“아, 역시.”

 

스티커의 문구를 확인하자 자연스레 탄식이 흘러나왔다. 난 몸을 움직여 다른 쪽 방 서랍에 처박혀 있던 작은 선풍기를 꺼내며 생각했다.

 

중국산은 이래서 안 된다. 앞으론 일본산을 써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공지 19금, 직접적인 성적 묘사는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추가 [3] 샤유 2012-01-15 4711
공지 공지 판갈내↗ 자치국↘ 맘대로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케세드랄헤드 2011-11-02 8629
1463 [판사대] 좋은 사람 데꼬드 2010-08-08 803
1462 [판사대] 군대, 탈출, 친구의 약. 광망 2010-08-08 842
1461 [판사대] 죽지않는 남자 코르닉스 2010-08-08 975
1460 [판사대] 오늘 하루를 마치며 산송장 2010-08-08 942
1459 [판사대] 지옥탈출 우내 2010-08-08 914
1458 [판사대] 국제 휴대폰 자본 쓺. 2010-08-08 1220
1457 [판사대] 거울과 여중딩과 아저씨 물논양롬 2010-08-08 1928
1456 [판사대] 이탈 디스말ㅋ 2010-08-08 983
1455 [판사대] 간단한 시험을 시작해 보자 LESS 2010-08-08 1166
1454 [판사대] 노 웨이 아웃 (수정) DOSKHARAAS 2010-08-08 811
1453 [판사대] 남자답게 탈출 collectiv 2010-08-08 936
1452 [판사대] 백신과 바이러스 k01980 2010-08-08 935
» [판사대] 더위로부터 탈출 Wishes 2010-08-08 931
1450 [판사대] 엄마 이스피나 2010-08-08 869
1449 [판사대] 첩보원 bikall 2010-08-08 939
1448 [판사대]탈출 kori 2010-08-08 915
1447 크리스티나의 세계(3) 위래 2010-08-06 724
1446 본격 미군이 판타지에 발리는 소설 [1] 몬지 2010-07-31 750
1445 크리스티나의 세계(2) 위래 2010-07-30 757
1444 크리스티나의 세계(1) 위래 2010-07-28 7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