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김재건과 톱질하는 살인마
살인이다. 그것도 연쇄살인사건이다. 기자와 경찰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고 그 덕분에 현장의 상황은 실시간으로 알려졌다. 어느 기자도 이를 연쇄살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연쇄살인이라는 말도 유행어처럼 쓰이는 시대에, 단 두 건의 살인이 바로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 판정을 받게 된 것은 범행의 공통점 때문이었다. 우선 피해자는 젊은 독신 남성이었다. 남성을 골라서 살인하고 다니는 살인마는 잭 더 리퍼 이래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한순간에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까닭이 여기 있었다. 시신은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머리는 집 바깥 쓰레기장에 비닐봉지로 싸여 버려져 있었다. 모방 범일 가능성은 없었다. 첫 번째 사건이 보도되던 중에 두 번째 시신이 발견되었으니까.
재건은 근방 주민의 틈새를 비집고 그 너머에 있는 기자들의 벽을 뚫고 최종적으로 경찰이 몸을 쌓아 만든 폴리스라인을 넘어섰다. 젊은 순경은 당연히 재건을 저지하려 했지만 재건은 태연히 '아, 나야. 괜찮아.'하고 말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키가 크고 검은 양복을 입은 데다 형사들에게 자연스레 말을 거는 재건을 폴리스라인을 지키는 경찰들은 으레 어딘가의 '높은 분'이라고 지레짐작하고 말았다. 하지만 재건은 경찰도 관계자도 아니었다.
두 번째 사건 현장은 주택가의 반지하였다. 감식반이 천을 걷어놓은 터라 재건은 시신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나무 밑동처럼 드러난 시신의 목이 두말 않고 사태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닦여 있었지만 바닥은 피투성이였다. 누런 장판은 피의 검붉은 색과 묘한 보색이 되어 현장은 더욱 처참하게 보였다. 그 옆에 머리로 보이는 검은 비닐봉지가 있었다. 재건이 슬쩍 들여다보려는데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너 이 자식,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걸걸하고 우렁찬, 장난기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살벌한 목소리였다. 재건은 뒤를 돌아보았다. 도병오 형사였다. 키가 땅딸막한 자였다. 통뼈 위에 근육이 잘 다져져 더욱 짧아 보이는 게 호리호리한 재건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역시 이 지역은 형사님이 맡으시는군요. 반가워요."
재건은 손을 내밀었지만 형사는 발을 내밀었다. 이크, 하며 재건은 한 발짝 물러난다.
"반갑고 자시고 당장 나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 거야?"
"아이, 참.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
"우리 사이? 우리 사이가 어떤데? 오 형사! 이 자식 좀 끌어내."
도병오 형사는 옆에 있던 부하 형사에게 말했다. 재건은 30대쯤 되어 보이는 형사에게 팔뚝을 붙잡혔다.
"젊은 남자의 머리를 잘라서 내다 버렸다. 뭔가 목적이 있는 살인이라고 확정 지어도 무방할 것 같군요.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사건의…… 어, 어……."
핵심을 찌르는 사건 분석으로 주목을 받고 신뢰를 얻으려는 재건의 계획은 무참히도 끌려나가고 말았다. 부하 형사는 재건을 폴리스라인 바깥으로 내보내고 자리를 지키는 경찰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뭡니까, 저 사람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서 오지호 형사는 물었다.
"그냥 아는 놈이야."
"사건에 참견하려는 것 같던데요."
"그래서 문제야. 지가 무슨 탐정이라는데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꽤나 골 아프지."
"아, 전에 그 사람이군요."
"그래. 그놈."
"원래 알던 사람이었나요?"
"그 녀석이 고등학생일 때 알게 됐는데, 그보다 그런 걸 왜 자꾸 묻는 거야? 감식반, 시체는 언제 옮길 거야? 계속 카메라 기웃거리게 저거 방치할 거야?"
도 형사는 지나가는 과학 수사 대원에게 물었다. 대답을 채 듣기도 전에 다가오는 다른 부하 형사에게 말했다.
"집주인이랑은 연락됐어?"
"예. 집주인은 지금 지방 고향 집에 내려가 있답니다."
"그럼 부를 필욘 없겠군. 거기! 차 빠질 거야! 사람들 좀 정리해!"
도 형사는 들것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바깥에 대고 외쳤다. 좁은 골목길에 기자며 주민이 잔뜩 몰려 있어서 정리가 필요했다. 병오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앰뷸런스가 나갈 길을 텄다.
"이렇게 기자가 몰리는데 언론 브리핑을 해야 할까요? 이거 무지 시끄러워질 것 같은데요. 마침 요새 정치인들 검찰에 들락거리는 것도 있고 하니까요."
"살인사건이 한두 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사건에만 무슨 경천동지할 일이라도 일어났다는 듯이 요란 떠는 게 언론들 하는 일이니까."
"마이크는 팀장님이 잡으시는 거죠?"
"내가 왜? 더 높은 분이 해 주시겠지."
"팀장님이 담당이시잖아요."
"알 게 뭐야."
곧, 들것이 들어와 시신을 수습했다. 기자들은 처음 경찰이 출동했을 때보다 몇 겹은 더 쌓여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발이 빠를 수 있는지 도 형사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녀석이 아닌데."
도 형사는 앰뷸런스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아까 그 사람 말인가요?"
"그래. 어떻게든 지가 찾는 게 있으면 물불을 안 가리는 놈이거든. 덕분에 그놈이랑 엮인 사건은 조용히 끝난 적이 없었어."
"탐정이라니, 지금 우리나라에서 탐정은 수사 못 하지 않나요?"
"그렇지. 소설이나 흉내 내는 거겠지."
한국에서는 탐정이라는 직함을 달고 영업하는 것부터가 불법이다. 하지만 재건은 공공연히 탐정을 자처하고 다닌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호를 내건 것도 아니고 혼자 떠들고 다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시신 상태는 부검 뒤에 나오겠죠?"
"그렇지."
도병오 형사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했다.
"역시 톱으로 잘랐던데요. 단면이 말끔한 걸 봐서는 살해 후 자른 거라 봐야겠습니다. 역시 머리를 자르는 것 자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도 형사는 말하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등에 '과학수사'라는 자수가 박힌 조끼를 입었지만 키가 다른 요원에 비해 월등히 큰, 김재건이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들어왔는지 도 형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다시 역정을 냈다.
"너 뭐 하는 거야!"
곰곰이 생각하던 재건은 깜짝 놀랐지만 그보다도 더 과장하여 놀라는 척했다.
"까, 깜짝이야. 전 일일 과학수사대 체험단으로서……."
역시나 이번에도 재건은 말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당, 장, 나, 가아!"
구경하던 사람들까지도 놀랄 정도로 우렁차고 서릿발 같은 소리였다. 재건은 제 발로 허겁지겁 뛰쳐 도망가고 말았다.
문밖에서 재건은 외쳤다.
"언젠간 날 필요로 하게 될 걸요?"
그리고 재건은 쭈뼛거리며 다시 들어와서는 옷이 담긴 가방을 찾아들고 달려나가 버렸다. 갑작스런 고함과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경찰복을 입은 사람에 영문을 알지 못하는 구경꾼들은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대체 저자는……."
오지호 형사는 말했다.
"대충 알겠지? 저런 놈이야."
"대충 알겠네요. 악연인가요?"
"악연이라……."
도 형사는 말했다.
"악연이지. 저런 녀석 따위는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었는데. 절대로."
오 형사는 무슨 사연인지 묻고 싶었지만 도 형사의 표정이 허락해주는 것 같지 않았다.
재건은 현장에서 도망쳐 인적 뜸한 골목길에서 원래의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사건 현장을 자세히 살필 수 없었던 점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재건은 탐정을 자처하고 있지만 민간인일 뿐이며 이런 살인사건에 개입할 권한은 없었다. 그래도 현장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일이었다.
재건은 이 사건이 연쇄살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살인의 목적을 감춘다든가 모방 범죄라든가 하는 지극히 소설적인 가정을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재건은 그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일이다. 재건은 분명히 확인했었다. 피해자의 목은 톱으로 잘려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몹시 힘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범인은 목적을 알 수 없는 그보다 더욱 불편한 짓을 했다.
시신은 목뼈의 관절 부분이 아닌 마디 중간 부분이 잘려나가 있었다. 사람 뼈라는 것이 오이 자르듯 잘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목뼈를 자르는 데 애를 썼다는 것, 재건은 거기에 범인의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사건이 일어난다면 아마도 이 동네에서 일어나겠지? 내가 모르는 목적이 범인에게 있는 게 아니라면 말야."
재건은 중얼거리면서 현장에서 멀어져 갔다. 범인은 분명히 피투성이가 됐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경찰이 책임지고 수사해줄 것이다. 탐문이나 쓰레기장, 하수도 수색 같은 일은 아무래도 경찰에 맡기는 게 낫다. 목 자르는 살인마는 전 국민의 프로파일링을 받게 될 것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오밤중에 슬그머니 일어난다는 불안에 떠는 전화 따위가 112에 쇄도할 것이다. 부랴부랴 골목길에는 CCTV가 설치될 테고 대통령은 이 기회에 관할 경찰서라도 방문해서 투철한 애민심을 증명해 보일 것이다. 전국구 스타가 된 살인마가 붙잡히지 않은 적은 없었다. 재건은 범인은 언제든 간에 붙잡힐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그 후가 될지도 몰랐다.
골목 바깥에 주차해둔 차에 오르던 차, 휴대폰이 울렸다. 도병오 형사였다. 재건은 운전석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역시 제 조언이 필요하셨군요!"
도 형사는 좀 전과 다를 바 없는 살벌한 말투로 말했다.
-웃기지 마. 수사 방해로 처넣기 전에 그거 빨리 가져와.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재건은 품속에서 펜 하나를 꺼냈다. 눈높이까지 들어 금빛 몸체에 얼굴을 비춰본다. 도병오 형사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것을 슬쩍 해온 것이다. 재건은 도 형사가 그것을 매우 아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치사한 짓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펜 네가 가져간 거 알고 있으니까 좋은 말 할 때 가져와라.
"펜이요? 아까 바닥에서 금색 펜 하날 줍긴 했는데 이게 형사님 건가요?"
이렇게 발뺌하면 누구도 어쩔 수 없다. 도 형사는 분을 짓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유치장 견학하고 싶어?
하지만 재건은 태연할 뿐이다.
"네? 이게 형사님 거라면 돌려 드려야죠. 그런데 지금은 이미 거길 빠져나왔는데 나중에 찾아뵐게요. 지금 바쁘시죠? 나중에 서에서 단둘이 보면서 이런저런 사건이라든가 이야기도 하면서요."
-너…….
어쩔 수 없이 그는 재건의 제안을 수긍했다.
-좋을 대로 해.
재건은 그 펜의 사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행적만은 알고 있었다. 도병오 형사와 친했던 동료가 쓰던 펜이었다. 그 동료가 죽고 펜은 도 형사에게로 갔다. 남의 약점이나 잡는 것은 재건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악당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언젠가 죽기 전에 도 형사에게 사과하기로 재건은 다짐했다.
전화를 끊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나 가볼 곳이 있었다. 첫 번째 피해자가 발견된 현장이었다. 재건은 TV보다도 발 빠른 인터넷 속보를 보자마자 현장으로 달려나왔다. 알려진 바로는 첫 번째 시신은 이미 며칠이 지난 듯 부패가 진척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구대 순경이 미처 기자를 막지 못해 알려진 정보였다. 도 형사는 언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천박한 관음증만을 충족시키기를 바라는 제삼자들이나 거기에 빌붙는 언론들을 그는 싫어했다.
역시 현장 견학은 불가능했다. 좀 전의 현장에서 그렇게 휘젓고 다닐 수 있던 것은 사실 도 형사와의 면식 덕분이었다. 첫 번째 현장은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다가구 주택이었다. 2층 창문으로 경찰이 드나드는 것이 보였다. 사건은 2층 방에서 일어난 듯했다.
재건은 대문을 지키는 사복형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정말로 머리가 잘렸나요? 시신은 수습했어요?”
형사는 귀찮음을 얼굴에서 가리지 못한 채 말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현장에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형사는 안을 들여다보려는 재건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재건의 의도는 현장에 침입하려는 게 아니었다.
“제가 저 뒷집에 살거든요. 바로 담벼락 맞댄 집이요. 바로 이웃집에서 사람이 죽었다는데 신경 안 쓰일 수가 있나요. 문 하나 잘못 넘었으면 우리 집이었을 거 아녜요.”
“이 근방은 경계를 강화해서 괜찮을 겁니다. 그러니까 안심하시고 돌아가 주십시오.”
“모든 집을 감시하고 있진 않을 거 아녜요. 뭐 밝혀진 건 없나요? 침투 경로라든가요. 창문으로 들어온 거예요? 창문은 잠겨 있었어요?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지켜도 소용없는 거 아니에요.”
“창문은 다 안쪽에서 잠겨 있었는데요,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는 걸로 봐선 현관문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두 번째 현장과도 마찬가지였다. 재건이 직접 살펴본 바로는 유일한 출입구인 현관문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아! 그럼 아는 사람이 범인이겠네요.”
“그건 모르는 일이죠. 경찰이 반드시 범인을 잡을 테니 문단속 꼼꼼히 하시고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안심하시고 들어가 계십시오.”
재건은 고맙다고 말하며 물러났다.
재건은 다른 골목으로 돌아가 그 집의 다른 면을 살폈다. 집과 집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어느 경로로든 침입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경찰의 조사는 확실했을까? 지금은 그저 그 형사의 진술을 믿을 수밖에 없다.
두 사건 현장은 차로 5분 거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재건은 한동안 이 동네에 머물기로 했다. 현장 근처를 순찰하며 찜질방이 있나 찾아보았다. 찜질방은 저렴하게 하루 이틀 밤을 지낼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시설이었다. 떠돌다가 잠시 묵어가는 용도로 쓰는 사람을 위해 이불 정도는 제공해 준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재건이었다.
다음날 재건은 중랑경찰서를 찾았다. 경비실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도병오 형사를 찾아왔던 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신원 확인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젊은 형사가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오지호 형사라고 밝히고는 휴게실로 안내했다. 면회인이 대기하거나 직원들이 잠시 커피를 마시는 곳이었다. 구깃구깃한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입을 천정을 향해 벌리고는 코를 골고 있었다. 커피 얼룩 냄새를 풍기는 자판기가 하나 있었고 오지호 형사는 커피를 권했다. 재건은 사양하고는 먼저 의자에 앉았다.
"도 형사님이 저더러 대신 나가보라고 하셔서요."
"그럴 수가. 그럼 난 바람맞은 거군요."
"물어보는 것에는 적당히 답해주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제게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펜도 제게 주시고요."
오 형사는 말했다. 재건은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었다.
"그런 게 아닐까요? 이 펜은 말하자면 도 형사님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 할까. 그렇게 생각했는데 도중에 오지호 형사님이 끼어들었네요. 그렇다면 오 형사님은 사랑의 메신저?"
"저, 제가 시간을 많이 못 내드려서요."
지호는 손에 들린 펜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는 자판기에서 커피 하나를 뽑아서는 재건의 앞에 섰다. 눈앞에서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자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재건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장에서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있지만 자세도 그렇고 덥수룩한 머리도 그렇고 반쯤 풀린 눈도 그렇고 영 어설프기만 하다. 뭐라고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려운 자였다. 지호는 그에게서 마치 큐비즘 작품을 보는 듯한 어떤 벽을 느꼈다. 읽히기를 거부하려는 의도적인 벽일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헤실 대는 저 얼굴도.
"사인은 어떻게 되죠?"
재건은 잠시 지호를 올려다보다가 질문에 들어갔다. 지호는 종이컵을 입에 대고는 말했다.
"기도 압박으로 인한 질식사. 직접 손으로 조른 걸로 보이고요, 흉부에 멍이 있었는데 올라타 무릎으로 깔아 누르느라 생긴 것 같아요."
"둘 다요?"
"멍은 두 번째 사체에만 있었고요."
"두 번째의 손톱에서 DNA 채취는 됐겠군요."
재건은 말했다. 무릎으로 가슴을 눌렀다면 피해자가 반항을 하고 있었다는 뜻. 그렇다면 팔이며 손등을 할퀴고 쥐어뜯었음이 분명했다. 중간을 뛰어넘은 질문에 지호는 잠시 당황했다.
"네. 아직 용의자랄 만한 놈도 없으니까 아직은 쓸모없지만요."
“첫 번째 시신에는 특이사항이랄 게 없었나요?”
“네. 잠자다가 당했는지 저항의 흔적도 없었어요.”
재건은 오호 하고 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인상적인 사실인가 하고 지호는 생각했다.
"지문이라든가 다른 흔적은 없는 모양이고, 목격정보는 없나요?"
"없어요. 톱을 들고 피투성이가 돼서 어슬렁거렸을 건데 그럴듯한 제보는 아직 없어요. 밤중에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신고야 많은데 전부 애먼 사람들이었고."
"그렇구나. 아, 사망 추정 시각은 정확히 어떻게 되죠? 새벽이었나요?”
"첫 번째는 3일 정도 지난 듯하지만 정확한 시각은 불명이에요. 두 번째는 오늘 새벽 두 시 전후였고요.”
"피해자 간 공통점은 알아낸 게 있나요?"
오 형사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게이였어요. 두 사람 다."
"게이요? 오호. 둘이 면식은 있었대요?"
"아니요.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아요. 지금으로서는.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알지도 모르겠지만요."
재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레 그들과 접촉한 게이들에게 의혹을 보낼 수 있었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말을 끝으로 오 형사는 질의응답을 끝냈다.
"여기까지예요. 우리가 알아낸 것도 이게 다고 이 이상은 있다 해도 공개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우우, 이 정도는 근데 언론에서도 다 알 법한 거잖아요."
"그래도 경찰이 민간인에게 정보를 흘리는 일은 없어요. 팀장님이 지시하셨는데 순전히 펜 때문에 그런 것 같진 않고, 팀장님과 무슨 관계죠?"
오 형사는 재건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이따금 수사 현장에 나타나 알 수 없는 추리를 남기고 사라진다는, 형사들 사이에서 제법 알려진 자였다. 간접적으로 어떤 사건을 통해 접하기는 했지만 직접 재건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원해서 도 형사 대신 재건을 만나려 한 것이다. 도 형사는 잘 됐다는 듯이 허락했고 그는 이렇게 재건을 보러 나왔다.
"끈끈하고 미끌미끌한 관계랄까요?"
재건은 장난기를 거두지 않고 말했다. 오 형사가 불만스럽게 쳐다보자 재건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도 형사님과의 사적인 관계는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요? 중요한 건 내 능력이죠. 그 때문에 이렇게 붙어 있는 거니까요."
재건의 능력. 그것은 재건의 기묘한 추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오지호 형사님이 직접 날 상대해 주시고 또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셨으니까 간단하게나마 설명해 줄게요. 가능한 한 압축하고 요약하면서도 쉽게 전달할만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재건은 잠시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말했다.
"형사님. 형사님은 세계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세계라뇨?"
"우리가 머릿속에 인지한 세계랑 그 자체의 세계가 같을 수 있다고 보시나요? 우리의 인지를 세계와 습관적으로 동치 시키려는 우리의 일상적인 사고는 어찌 보면 꽤나 위태로운 일이 아닐까요?"
지호는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그러나 재건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만일 한 세계가 한 개체의 생애 내에서 반증 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생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제아무리 그것이 틀렸다고 주장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를테면 귀신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지금이야 그 사람들은 존엄하신 실증주의자들의 비웃음을 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신적 믿음이 지배적인 전통 사회로 돌아가 봅시다. 모든 개체가 귀신을 믿는데 과연 귀신의 실존 여부가 중요할까요? 귀신은 이미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서 작용하는데요."
오 형사는 간신히 이야기를 따라잡아 가 물었다.
“귀신이 사람 사이에 스며들었다는 게 무슨 말이죠? 귀신이 거기엔 있다는 말인가요?”
“어…… 이야기를 명료하게 해서 없다고 가정하고 들어가자고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실존하지 않은 귀신을, 실존한다고 믿고 살아간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오 형사님의 의문은 이게 되는 거죠. 없는 귀신이 어떻게 있다는 것처럼 작용하냐.”
지호는 신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이 사람에게 무슨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귀신을 목격한 사람에 대한 작용은 그 사람에게로 그치고 말아요. 대부분 사람은 귀신을 안 보더라도 귀신을 믿어요. 저 고개를 넘으면 귀신이 잡아간다더라. 저 돌무더기에 기도하지 않으면 귀신이 해코지한다더라 하고요. 결국 귀신이라는 것은 두 층위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실질적인 귀신, 머리 헝클고 눈깔 뒤집는 귀신이고 다른 하나는 귀신에 대한 믿음 자체인 거죠. 그리고 그 믿음이 실질적인 인간관계에 어떤 작용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죠. 그렇다면 전자의 귀신을 제쳐두고라도 후자의 귀신, 귀신 현상만 일컬어 귀신이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귀신은 존재한다’라는 명제 역시 성립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논리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일는지도 모르지만,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니까, 귀신을 믿는다는 데 이견이 없으니까 귀신이 있든 말든 상관없다는 얘긴가요?”
“음……. 그 말엔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일단은 그래요. 맘에 들지 않는 정의를 굳이 내리자면, 귀신은 사회 현상 내지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없는 걸 계속 있다고 믿는다면 문제 아닌가요? 귀신 현상인가 뭔가 하는 것도 사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고 밝혀지곤 하잖아요.”
“설사 외부 충격이나 내부 변혁으로 인식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하더라도 그건 결국 정치적 대립으로 환원되고 말아요. 과학과 이성은 해석에 대한 비대칭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뿐이지 개별자들의 믿음에 관여할 권한은 없어요. 오히려 과학적 세계관을 강요하는 건 과학과는 관계가 없는 문화나 분위기, 즉 개체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구체적이고도 추상적인 외적인 명령 체계죠. 그것들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인간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지금 우리의 세계관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거예요. 그건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외부 사실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이제 말을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재건은 계속 말했다.
“그건 결국 취향 문제일 뿐이에요. 누구든 그럴 필요가 있다면 언제든지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것을 자기 믿음으로 삼을 수 있어요.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동시에 종교를 갖고 있어요. 당장 신문 사설만 봐도 먹물 좀 빨았다는 작자들이 뱉어내는 판타지 소설을 볼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과연 멍청할 뿐인가요? 지금 형사님만 해도 스스로 비논리적인 것을 인지하는 믿음을 갖고 있을 걸요? 예를 들면 징크스라든가, 계단을 내려갈 때 마지막 계단은 오른발로 디딘다든지요.”
지호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마지막 계단의 법칙. 그가 고등학교 때부터 아무 이유 없이 지켜온 습관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마지막 계단은 오른발로 밟는다. 재건은 계단을 내려오던 지호가 발걸음이 꼬이는데도 굳이 오른발을 마지막으로 내딛는 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지호는 그 법칙을 버리지 않았다. 계단 한두 칸 정도야 뛰어넘는 게 힘든 일은 아니잖아. 이따금 여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볼 때마다 지호는 그런 변명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런 건 분명히 스스로 비합리적인 믿음이란 걸 판단할 수 있는 문제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 믿음을 버리지 않아요. 아주 미약한, 그 믿음을 지탱할 눈꼽만큼의 단서만 있다면 누구든 그걸 확대해서 자기 진리로 삼을 수 있어요. 그 믿음이 바로 세계예요. 세상에는 지금 60억의 세계가 있어요. 생각이 완벽히 같은 사람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재건의 장광설은 점심시간이 다 가도록 이어졌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재건의 뒤이은 주장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어때?"
자리로 돌아온 지호에게 병오가 물었다.
"글쎄요……."
오 형사는 책상에 앉아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말하는 게 앞뒤는 맞으면서도 그게……. 성격도 좀, 유별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그냥 알 수 없다고 할까요?"
"이상한 놈이지?"
"네. 좀, 기묘하다고 할까요."
지호는 말했다.
“놈이 뭐라고 말했든 신경 쓰지 마. 우린 우리 할 일 하면 돼.”
“그렇겠죠. 그런 사람 말을 법정 증거로 쓸 수 없을 테고요.”
지호는 병오에게 펜을 건넸다. 병오는 책상 위의 평범한 펜을 건네받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지호는 그 펜에 얽힌 사연, 김재건과는 무슨 사연으로 얽혔는지 묻고 싶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팀장님. 사이버팀에서 추적 결과 나왔습니다.”
한 형사가 파일을 가져왔다. 경찰은 피해자 둘이 게이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인터넷 게이 동호회 등 피해자의 신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한 커뮤니티에서 두 피해자와 접점이 있는 인물을 추리고 접속 위치를 조사해보니 바로 당첨이었다. 용의자의 이름은 성두진. 22세였고 역시 그 근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병오는 곧바로 형사들을 파견했다. 수사의 활로가 풀린 것 같자 형사들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피해자 손톱으로부터 검출된 DNA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밀착 감시한다는 것이 작전이었다. 하지만 병오는 서둘러 체포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시신을 본 수사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앞선 두 사람처럼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그것은 목에 난 손자국으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너무 분명히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게 탈이었다. 그 시신은 목 대신 발목이 잘려 있던 것이었다.
세 번째 피해자는 게이가 아니었다. 그 근방에서 자취하는 학생이었고 언제나 친구들을 데리고 와 밤새도록 시끄럽게 술판을 벌이는 통에 근방 평판이 좋지 않은 자였다. 최초 발견자는 그의 친구였는데 발견 당시 사후 이틀 정도 지난 상태였다. 미행을 시작하기 전 이미 살해당했다고 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용의자는 범행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이, 도 형사가 곤란하여진 것도 사실 이 때문이었다. 두진의 팔뚝에는 손톱자국이 있었고 도 형사는 그것이 더 볼 필요도 없는 범행의 증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두진이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한 발언으로 그 증거는 무너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전 주변 사람들한테 커밍아웃도 안 했다고요. 그런데 이렇게 경찰서에서 추궁받으니까…… 그래요. 난 게이예요. 이번에 당하신 연수 씨는 제 파트너였고요. 팔뚝 상처요? 당연히 연수 씨 자국이죠. 이제 됐어요? 그렇게 남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게 경찰이 하는 일인가요? 또 전 용호 씨와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어요. 게이라고 문란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다 노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용의자가 게이라는 점이 오히려 그를 변호해 준 셈이었다. 손톱자국을 두고 저항의 흔적이냐 성관계 도중의 자연스런 흔적이냐를 두고 기사 댓글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세 번째 사건이 두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도 논란거리였다. 연쇄 살인범이라면 어째서 지금까지와는 상관없는 사람을 살해하고 자르는 부위가 달라졌는가. 아니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굳이 규칙을 지킬 필요가 있는가.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소수자 탄압이라느니 하고 주장하고 나섰다. 증거 없이 단지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체포했다는 것이었다. 한 시사 추적 프로그램에서는 남자 간 성관계 시 팔뚝을 할퀼 수 있는지 약식 실험을 해 보이기도 했고 이 역시 기사로 다뤄져 요란을 떨었다. 한 방송국에는 두 번째 피해자에게 성관계 시 상대방을 할퀴는 버릇이 있다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해당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공식적으로 용의자의 무고를 주장하고 나섰고 몇몇 신문 사설은 관례처럼 초동수사 불안을 지탄해댔다. 물론 인터넷 댓글 상에는 용의자가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범행을 확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용의자에게는 알리바이도 애매하게 존재했다. 두 번째 살인이 일어났으리라 추정되는 7월 8일 새벽 한 시에서 세 시경, 두진은 현장에서 차로 3, 40분 거리 술집에서 혼자 술을 먹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때가 세 시. 범행이 불가능한 시각은 아니었지만 어정쩡하다. 그는 그것을 알리바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사망 추정 시각은 언제까지나 추정일 뿐이었다.
결국 자백 없이는 용의자의 범행을 확정 지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일단 구속수사 시일만 버티다가 검찰에 송치해버리고 그동안 사건만 더 일어나지 않으면 여론도 가라앉지 않을까요?”
심문실 바깥에서 용의자 성두진의 영상을 보던 지호가 말했다. 심문 형사는 그의 굳게 닫힌 입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그랬다가 풀려나기라도 하면? 저놈이 범인은 맞아. 그런데 그랬다가 판결 제대로 안 나면 욕은 욕대로 먹고 놈은 놈대로 놓치고.”
병오는 담담히 말했다.
“목격자 정보는 제대로 수집하고 있어?”
“네. 그 경로 내 모든 주민들에게 물어보고 있고 택시 회사나 렌터카 회사는 죄다 알아보고 있어요. 그런데 렌터카는 아니지 않을까요? 쟨 면허증도 없는데.”
병오는 촉박한 알리바이를 위해서는 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해당 시각 차량 목격 정보를 수집하라 지시한 바 있었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차 몰았어.”
“그래도 일반적이진 않을 텐데요.”
“딱 보면 안다니까. 운전대 한 번도 안 잡아 본 놈하고 조금이라도 잡아본 놈하고는. 저기 시선 돌리는 거 봐. 따악 운전한 지 얼마 안 돼서 백미러 시선 처리 못 하는 것들 움직임이야.”
“그, 글쎄요…… 저는 잘…….”
“만일 자백하지 않으면,”
병오는 말했다.
“기소 자체가 힘들어질지도 몰라. 살해 동기가 뭔지, 머리를 자른 목적이 뭔지, 왜 이번엔 다리를 잘랐는지 설명되지 않으면 말이야. 그러니까 목격자를 찾아서 자백시켜야 돼. 지금은 그 방법밖에는 없어.”
사건 경위가 논리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증거가 일말 있다 해도 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죄상을 명백히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조 형사의 답답한 질책을 지켜보다가 병오는 마이크를 집었다.
“됐어. 교대해. 내가 직접 심문할게.”
심문 중이던 형사가 피곤한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병오는 자판기 커피를 들이켜며 안으로 들어갔다. 지호는 모니터로 두진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무표정하게 가라앉은 얼굴은 좀 전 그대로였다.
병오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지금은 이렇게 심문 과정이 그대로 녹화되고 경찰서 모든 곳에 CCTV가 설치돼 있어서 경찰도 스스로 감시받고 있어. 예전 같으면 이런 데 들어오면 거꾸로 매달든 코로 고춧가루를 먹이든 아무도 몰랐는데 지금은 인권이다 뭐다 해서 범죄자도 보호를 받는단 말야. 세상 좋은 줄 알아.”
잠시 말이 멎었다가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노리는 흉악한 범죄자가 가끔 있단 말이야.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기 위한 제도를 역으로 이용해서 죄를 짓고도 빠져나갈 수단으로 쓰는 놈들.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불순한 의도로 인권 운운하는 건 오히려 인권에 대한 모욕 같은 게 아니겠나?”
두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 너머에 앉은 병오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를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내린다. 그의 눈에 잠시 경계가 서린 듯했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병오는 관찰할 수 있었다.
눈을 내리깐 채 두진은 입을 열었다.
“지금 유도심문 하고 계시는 건가요?”
병오는 피식 웃었다.
“아니, 그런 범죄자가 있다고 하는 말이야. 하도 입을 안 열기에 그냥 한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힐끔, 병오를 쳐다본다.
“그런데 이 수사라는 게 말야. 십 년이 넘도록 하고 있으면 대충 감이 오거든? 이놈이 범인인가 아닌가, 거짓말인가 참말인가. 그리고 이제까지 그 감이 틀린 적은 거의 없었어. 영화에서는 경찰이 제멋대로 범인을 찍곤 하잖아. 그런 감이 아니야. 명백히 증거에 의한 감이라는 거지. 그런 게 있으니까 우리 경찰은 한 번 범인으로 찍은 사람을 집요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어. 솔직히 말할게. 우리가 이렇게 널 붙잡고 있는 이유는 널 범인이라 확신하기 때문이야. 빨리 검찰로 넘기지 않는 이유는 단지 사건 정황이 정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런 거고. 그러니까 우리가 너한테 자백하라 요구하는 게 아니야. 그저 협조를 조금 해 달라는 거야. 언제 어디서, 어어…… 어떻게. 왜. 또 뭐 있지? 아무튼 육하원칙을 완성하는 데 좀 도와달라는 것뿐이야.”
말을 가만히 듣던 두진은 차분히 말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것이 육하원칙이죠. 그리고 거기에는 가장 중요한 ‘누가’가 빠졌군요.”
“그래? 그렇군. 아무렴 어떤가. 너도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아? 미리 말해주는데 검찰청은 여기보다 훨씬 쾌적한 곳이라고. 높으신 분들 지내시는 곳이니까 말이야. 이렇게 계속 버티기 지겹지 않아? 넌 혼자지만 우린 여럿이야. 우린 그냥 휴게실에서 수다 떤다 생각하고 한 명씩 들어와서 이야기 좀 하다 가면 그만이지만 넌 형사들 전부를 상대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지금 바로 검찰로 넘기면 되겠군요.”
용의자에게 얕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병오가 제대로 내쉬지도 못하는 한숨을 두진과 취조실 바깥의 형사가 내쉬었다. 어려운 상대임은 틀림없었다. 병오가 까는 함정을 그는 전부 파악하고 피해 다니고 있었다.
“네가 잡히고 나서 며칠째 사건이 안 일어나는 거 알지? 그것만 봐도 넌 유죄판결 받을 수 있어. 그러느니 차라리 전적인 협조로 정상참작이라도 받아보는 게 난 좋을 거라 보는데.”
“제가 잡히기 전에도 사건은 안 일어났잖아요.”
“응? 무슨 소리야? 아, 아. 발목 잘린 거 말하는 거야? 발목 자른 이유가 동일범 짓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서였어?”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죠? 저는…… 이해가 안 되는데요. 왜 두 사람은 머리가 잘리고 한 사람은 발이 잘렸죠? 같은 사람 짓인 것은 확실한가요? 앞의 두 사람도요."
다시 둘의 눈이 마주쳤고 두진은 이내 시선을 피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병오의 눈은 매섭게 두진을 노리고 있었고 손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말꼬리를 잡아 추궁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팀장님이라고 불리시던데.”
처음으로 두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사건 수사에서 제일 높으신 분 맞죠?”
“계장, 과장이 있긴 한데 지휘는 내가 다 해. 그건 왜?”
“아뇨. 그냥…….”
두진은 우물거렸으나 말을 채 내뱉지는 못했다.
“그냥요. 그냥…….”
두진은 계속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병오는 그런 두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길지는 않은 침묵이었다. 병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서는 병오에게 두진은 말했다.
“알아요. 그것밖에 없는 거.”
“뭐?”
병오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게이라는 거. 지금 날 잡아놓는 근거가 그것밖에 없는 거 알아요. 그러니까 난……. 결백해요.”
병오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 성질 많이 죽었지?”
데스크로 돌아가며 병오는 말했다. 그의 손에서는 종이컵이 꼬깃꼬깃하게 뭉쳐져 있었다.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어쩔 수 없죠.”
지호는 위로하듯 말했다. 병오는 종이컵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카메라 꺼버린다면 불게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언론도 보고 있다고요. 쟨 자기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럼 얌전히 있지 않겠죠.”
“알아, 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그 사람 의견을 물어보면 어떨까요?”
지호는 좀 전부터 꺼내려던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 사람?”
“김재건이라는 사람이요.”
병오는 입을 다물었다.
재건은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는 사건에까지 나서지는 않았다. 그가 등장한다는 것부터가 이 사건에 뭔가 심상찮은 것이 끼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병오는 끝끝내 재건의 힘은 빌리고 싶지 않았다. 분명히, 재건은 경찰이 설명 못 하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재건의 해석은 터무니없는 것뿐이었고 그런 것을 법정에서 말할 수는 없었다.
“제가 보기엔 그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독특한 관점을 가진 것 같더라고요. 프로파일러와도 조금 다른 것 같고…….”
“그놈이 그때 뭐라고 말한 거야?”
“그냥, 자기 사상 같은 걸 말해줬는데 전 참고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번 쌍둥이 사건 때도 그랬잖아요.”
“흥. 그딴 놈 말 부림에 넘어가다니 너무 순진한 거 아냐? 오 형사 도를 아십니까 이런 데 잘 걸리지?”
“아, 아뇨. 그 정도는…….”
지호는 재건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문득 재건이 그때 그런 이야기를 꾸역꾸역 들이민 이유가 자기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대충 알겠습니다. 머리는 좀 아프지만…….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죠? 어, 그러니까, 지금 김재건 씨의 능력 이야기를 하려던 것 아닌가요?”
재건은 다시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바로 여기서부터 본론이에요. 각 개별자는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없다면야 아무런 의사소통이 되지 않겠지요. 종교 분쟁 같은 건 그래서 일어나는 거고요. 사람은 모두 같은 감각기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아무리 각자 세계를 해석하더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공통점은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 최소한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편집증 환자고요. 혹은 현대 사회에서 귀신을 진심으로 믿는 몇몇 특이한 부류겠고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요? 누군가의 독자적인 세계가 실제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면요.”
“네?”
지호는 되물었다.
“그러니까, 귀신이 그걸 믿지 않는 사람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난다면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이 세상의 법칙이 뒤집힌다면요. 달이 하나 더 생긴다든지 가시광선의 색이 보랏빛으로 바뀐다든지, 방사능 탄소 원자가 갑자기 붕괴한다든지요. 어떤 형태로 존재했든지 간에 결코 변치 않을 줄 알았던 우주의 법칙이 고작 한 개체의 꿈이나 망상 때문에 뒤집힌다면요.”
“그럴 리가요…….”
재건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결코 농담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제 능력은 그런 법칙의 변화를 감지하는 거예요. 증상은 반드시 사람을 매개로 발생해요. 하지만 그게 의식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일 수도 있는데 대개는 무의식적이에요. 아마 대부분 사람이 현대의 상식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무의식 안에서 구조화된 어떤 억압이 이 세계에 간여하게 됐다고 가정하고 있어요. 저는 그런 증상을 특정 개체에게만 발발하는 ‘병’이라고 보고 있어요.”
“이봐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은 돼요. 그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다를 뿐이죠. 형사님의 상식 내에선 저를 공통분모가 없는 세계관을 가진 특이한 놈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형사님의 세계와 저의 세계를 동시에 보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떤 현상이 있고 그것을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면 더 설득력 있는 사람은 누가 될까요? 제 기억으로는 오 형사님의 경험 중에서도 제 설명으로 보충될 만한 사건이 있던 것으로 아는데요.”
오 형사는 한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현금 인출기 앞 날치기 사건이었다. 당시 CCTV 영상과 피해자의 증언으로 용의자를 꼽을 수 있었는데 정작 그 용의자에게는 빼도 박도 못할 알리바이가 있었다. 게다가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도중 CCTV에 촬영된 인물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자의 범행이 발생해 결국 경찰은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재건이 나타났다. 재건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소리를 했다. 범인은 쌍둥이라는 것이었다. 부하 형사들은 그 말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용의자는 법적으로 쌍둥이는커녕 형제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병오 형사는 지호에게 남몰래 조사를 지시했다. 결국 쌍둥이 범인들이 회동하는 장면이 목격되었고 지호는 그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
진짜 이상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재건은 검거 공로를 내세워 시간제한 없이 감시인이나 녹음도 없는 완전한 단독 대면을 요청했다. 밀실에서의 두 시간이 넘는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면서 방 입구를 지키던 형사의 말에 따르면 바깥으로 나온 쌍둥이는 얼굴이 무너질 것처럼 펑펑 울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유치장에 있던 쌍둥이 중 하나가 홀연 사라져버렸다. 증발하는 알코올처럼 누구도 느끼지 못하던 어느 한순간에.
당연히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조사가 들어갔다. 유치장 문은 닫혀 있었는지, 당직이 뭔가를 받아먹은 건 아닌지(혹은 쌍둥이에게 그럴만한 재력이 있었는지), CCTV는 제대로 작동됐는지 등등. 하지만 ‘증발’ 말고는 실종을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다른 한 명, 쌍둥이 중 호적에 등재되었고 일반적으로 그라고 인식돼 온 한 명은 모른다고 잡아뗄 뿐이었고 재건은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댈 뿐이었다. 만일 지금까지 상식이라고 알려진 모든 지식을 잠시 접어두고 재건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다면, 그 이상한 일은 대번에 설명된다. 쌍둥이는 ‘실제로’ 사라졌다고 설명하면 끝이니까. 하지만 그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안이한 설명이라 이거죠?”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재건은 말했다.
“제가 이런 설명을 하루 이틀 해온 게 아니에요. 나름 글자깨나 읽었다는 사람도 많이 만나봤고요. 나는 내가 꺼내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의 반론 정도는 충분히 예측해요. 거의 모든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한 단계에선 말이죠, 그 의문을 갖게 되더란 말이에요. 이상 현상이 있다면 그것을 현실의 믿을만한 규칙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그런 현상을 뜬금없는 규칙으로 설명해버린다면 그건 몽매주의가 아니냐 하는 반론이에요. 일례로 마술이 있죠. 신비로운 현상을 보여주면서도 모두가 이면에는 현실적인 법칙이 있으리라 예측해요. 아무도 모자에서 없던 비둘기가 태어난다고 믿지는 않아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적이에요. 저는 현상을 진짜로 없던 비둘기가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설명하니까요. 사실 믿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어요. 전 저만의 확신을 가지고 사건에 접근하고 있고 실제로 현실을 벗어난 설명이 필요한 사건을 많이 봤으니까요. 도병오 형사님과는 '제‘ 사건으로 몇 번 만났어요. 그게 고등학생 때가 처음이었으니 꽤 오래 안 거죠. 아마 형사님이 겉으로 절 멀리하는 것도 사실 합리성을 추구해야 하는 형사라는 직업상 어쩔 수 없는 거일 거예요. 형사님은 절 내심 상당히 좋아하거든요.”
적어도 지호는 재건의 주장을 그저 헛소리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병오는 어떨까. 재건을 무시하는 듯하면서도 내심 가시를 삼킨 것처럼 신경 쓰여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쌍둥이 사건 때에도 조사를 지시한 것이 병오였다. 그전에도 재건과 얽힌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병오는 도저히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무언가를 본 것은 아닐까. 지호는 생각했다. 너무나 명백한 진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일부러 재건을 멀리하려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도 가설일 뿐이다.
휴대폰이 울려 말이 끊겼다. 병오는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또 너냐?”
-제가 한동안 연락 안 해서 그리웠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형사님은 언제나 절 걱정하고 계시니까요.
속을 긁듯이 너스레 떠는 김재건이었다.
“그자인가요?”
지호가 물었다. 병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시죠? 요즘 범인은 어때요?
“또 왜 전화했어?”
-왜긴요. 아시면서. 히히.
재건은 용의자와의 면담을 부탁했다. 재건은 경찰의 곤경을 잘 알고 있었다.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자기뿐이라고 말했다. 병오는 재건의 요청을 딱 잘라 거부할 수 없었다.
“한번 만나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옆에서 대화를 듣던 지호가 말했다. 병오는 마지못한 듯 수락했다. 틀림없이 재건은 이런 상황을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요청은 전과 같아요. 시간은 충분히, 아무것도 기록하지 말 것, 그리고 제가 생각한 것을 확정 지을 때까지 묻지 말 것, 틀려도 원망하지 말 것.
병오는 모두 허락했다. 수사팀장이라는 직책상 충분히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 하나만 지금 알려주세요.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병오는 재건이 왜 그것을 묻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건 비공식으로 만나는 거야. 너는 참고인도 아니고 그냥 경찰서 견학하는 거고. 네 말은 경위서에 한 마디도 포함되지 않을 거고. 알았지?”
유치장으로 가는 도중 병오는 재건의 뒤통수에 대고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다. 재건은 콧노래를 부르며 병오의 말을 건성으로 받아넘겼다. 그 뒤로 오지호 형사가 뒤따랐다. 그는 재건의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며 걸었다.
“네, 네. 알았다고요. 특이사항은 더 없나요? 독방을 요청하며 난동부린 것 말고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든지 진술 중 암호처럼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다든지 무슨 그림을 그린다든지.”
“없어. 독방 내에선 시체처럼 얌전히 있었어.”
“독방 요청한 것은 게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사람들이랑 같이 갇혀 있다가는 욕먹고 괴롭힘 당할 테니까요.”
지호가 뒤에서 덧붙였다.
“그럴 수도 있겠죠.”
재건은 말했다.
면회실은 한 평이 되지 않은 작은 방이었다. 용의자는 미리 와 앉아 있었다. 다만 그는 맹수 우리라도 보듯이 유리벽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다소 초췌한 얼굴에 불만이 눈꺼풀을 지그시 짓누르고 있었다. 재건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재건은 둘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벽을 두드려보고는 마이크를 테스트해 보았다. 들리나요, 하고 입을 열었다. 양쪽의 스피커로 재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뒤에는 이 사건을 총괄 지휘하는 강력 1반 팀장님과 형사 한 분이 계세요. 어, 이런 걸 미란다 원칙이라 해도 되나? 암튼 지금 하는 말은 기록되지는 않지만 그쪽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말은 알아서 해요.”
재건은 문 뒤에서 저런, 하고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 때문에 재건은 피식 웃었지만 유리창 너머에서는 그저 비웃는 것으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두진의 얼굴은 조금 더 일그러졌다.
“그럼 취조를 시작할까요? 이름은 성두진. 에, 프로필을 좀 보긴 했는데 전 별로 관심 없었고요, 지금 본인은 억울하다는 주장을 하며 여기 잡혀 계시는 거죠? 변호사 선임은 됐나요?”
“알아보고 있어요.”
두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게요.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는데 저에겐 초능력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특이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에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떠보는 거 아니니까. 사람 마음을 읽는다든가 뭐, 거짓말을 판단한다든가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망상, 보통 사람과는 다른 창의력 넘치는 생각을 품으면 저어기 하늘에서 인상을 쓰거든요. 앗, 누군가가 섭리를 거스르려 한다! 하고요. 전 그걸 알 뿐이에요.”
재건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럴 땐 누군가의 행동이 그런 특이한 생각에 기인한 게 아닌가 검사를 해 봐요. 보통 경찰은 주의 깊게 보지 않는 부분을요. 이를테면 목의 절단부위 같은 걸 말이죠. 제가 직접 관찰한 바로는 두 번째 희생자, 황연수 씨는 목뼈 마디가 잘려 있더군요. 마디 사이가 아닌 뼈가요. 몇 번 경추였는지는 확인 못 해봤습니다만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 이유가 과연 뭘까요? 저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했어요. 하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했죠. 그래서 희생자분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세 번째 사건을 기다렸어요. 아, 바란 건 아니에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였을 뿐이에요. 어쨌든 세 번째는 머리가 아니라 발목이었어요. 저는 더욱 혼란에 빠졌죠. 앞서 생각한 다양한 가정들을 뒤집어야 했으니까요. 왜 이번엔 발목이지? 머리와 발목, 대체 여기엔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지? 물론 이렇게 자문해보기도 했죠. 정말 원칙이 있다고 생각해? 그냥 생각 없이 자폐적인 취향으로 잘랐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정말 힘없어지죠. 하지만 그게 오히려 역전의 계기였어요. 원칙. 저는 이 원칙이 머리에 있다는 선입관에 빠져 다리가 잘리자 혼란스러워했던 거예요. 간단한 거예요. 범인의 관심대상이 머리도 발도 아니라면, 남는 부분이 목적이었던 거죠. 자르고 난 나머지요.”
재건은 두진의 표정, 꽉 쥔 주먹, 조심스레 악문 턱, 떨림을 억누르는 무릎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대응하는 가느다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재건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는 세 번째 시신에 접근했어요. 시체 안치소의 직원에게 뻥도 치고 닦달도 하고 용돈도 쥐여주고 해서 원하는 자료를 알아냈어요. 바로 길이죠. 시신의 머리에서부터 잘린 발목까지의 길이예요. 그리고 곧바로 도 형사님한테 알아봤죠. 167센치. 성두진 씨의 신장과 일치해요. 그렇다면 다른 두 시신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바로 알아볼 수는 있죠? 형사님.”
재건은 형사들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 형사가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재건은 잠시 결과를 기다리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두진은 이 침묵을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후 지호가 와서 알려주었다.
“마, 맞았어요. 목 절단면부터 발꿈치까지 정확히 167센티미터예요. 그럼 자기 키에 맞추기 위해서…….”
“그럼 확실해졌군요. 두진 씨는 희생자들의 키를 자신과 맞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거예요. 세 번째가 발목인 이유는 아마 크기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키가 목만큼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위쪽을 자르려면 머리 중간을 잘라야 하죠. 두개골을 절단하는 게 더 번거로울 거라고 생각했겠죠.”
그때까지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두진은 이를 부딪쳐가며 말했다.
“증거는? 내가 그랬다는 증거는 없잖아? 키가 똑같은 거? 그게 어떻게 증거가 돼? 그건 우연히 그 크기로 잘랐을 수도 있고 내 키만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잖아? 내가 그랬다는 증거는?”
재건은 말했다.
“두진 씨는 팔뚝의 상처를 성관계 중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어요. 정말 절묘한 발언이었어요. 똑같은 현상을 사실을 입증할 증거에서 해석 차원으로 끌어내렸으니까요. 결국 남은 건 개연성뿐이죠.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하고 제반 맥락에 맞느냐가 문제죠. 그렇다면 이런 키의 상관성은 경찰 측의 주장을 보충해주는 자료가 될 수 있겠죠? 동기를 설명해 주니까요. 개연성을 더 확보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인 정황이 하나 더 있어요.”
“결정적인 정황?”
곁에 서 있던 지호가 물었다.
“우선 첫 번째 희생자, 전용호 씨는 자던 도중 저항도 못 하고 죽었죠. 두 번째, 지연수 씨는 저항을 했든 안 했든 깨어 있을 때 살해당했어요. 범인이 무릎으로 가슴을 압박한 건 그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째서 전용호 씨는 자고 있었고 지연수 씨는 깨어 있었던 걸까요?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범인은 전용호 씨를 살해할 때 전용호 씨가 잠들기 전부터 그 방에 함께 있었다. 하지만 지연수 씨는 굳이 새벽에 방문하여 깨워서 살해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전용호 씨의 집에는 창문 등에 침입 흔적이 없다 하더라고요. 지연수 씨의 집은 반지하라서 출입구가 하나뿐이고요. 두 사람이 동시에 문단속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라면 이 가정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내죠. 범인은 두 사람과 동시에 면식이 있는 사람이다.”
두진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건은 계속 말했다.
“그런 사람이 또 발견될지 모르겠는데 현재로서는 두진 씨밖에 없는 것 같네요. 이 가정이 맞다면 두진 씨는 거짓말을 하나 한 셈이네요. 유명한 그 인터뷰와는 달리 두진 씨의 애인은 전용호 씨예요. 그래서 용호 씨와 한 방을 쓸 수 있던 거고요. 지연수 씨와는 최소한 얼굴과 핸드폰 정도는 알겠죠. 그래서 애매한 알리바이가 있던 그 밤중에 이웃에게 들키지 않고 깨워 침입한 뒤 살해할 수 있었고요. 거짓말을 한 이유는 경찰이 이런 가정을 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였어요. 네. 역시 이것도 가정이죠. 하지만 세계란 확정된 사실로 이뤄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의 연속일 뿐이에요. 무엇이 더 효과적으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 우리는 결코 사물의 심연에 도달할 수 없어요. 어떤 가정이 앞선 가정과 견주어 모순점이 없고 앞선 가정을 충실하게 보충해 준다면 그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거죠. 아마 법정에서도 저와 똑같은 말을 할 거예요. 당황하지 말기를 바라는데 그땐 아마 저보다 훨씬 불친절하게 설명해 줄 거예요. 그 사람들은 바쁘니까요.”
끝난 듯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는 두진을 재건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병오가 재건의 뒤로 다가왔다.
“자백이나 마찬가지군. 이 정도면 기소하는 데 충분하겠어.”
병오는 말했다. 재건은 머리 위로 병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렇네요. 저, 형사님. 부탁이 있는데요, 코코아 한 잔만 뽑아주시지 않겠어요?”
“뭐? 내가 왜? 나가는 길에 네가 뽑아 먹어.”
“형사님이 뽑아주는 걸 먹고 싶어서 그래요.”
재건은 싱글대며 말했다. 도 형사는 혀를 차고는 복도로 나갔다.
“오 형사님. 형사님은, 어…….”
가만히 재건을 내려보던 지호는 말했다.
“자리를 비켜달란 말인가요?”
재건은 헤헤, 하고 소리를 냈다.
두 형사가 나가고 재건은 자판기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며 서둘러 말했다.
“제 진짜 문제는 이거예요. 왜 자기 키에 상대를 맞추려 했을까. 보통은 그냥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전 아닐 수도 있다고 봐요. 독방을 요구한 것. 지금 이렇게 저에게서 떨어지려 하는 것. 모두 관계가 있을까요?”
두진은 불안을 감추지 못한 시선으로 재건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틀렸다면 말해 주세요. 혹시 두진 씨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요? 그러니까 접촉한 상대에게 자신의 키가 맞춰진다는 건 어떨까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살해해야 했다면.”
두진은 마침내 의자에서 뛰어내리듯이 내려와 유리벽에 달려들었다. 거칠게 유리벽을 손으로 짚고는 작게 뚫린 구멍에 얼굴을 갖다 댔다. 그리고는 흥분에 차서 말도 못 하며 야수처럼 호흡을 내쉴 뿐이었다.
재건은 이어 말했다.
“여기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상식이 지배하는 바깥 세계에서 인정해줄 리가 없죠. 형사들이 돌아오기 전에 대답해요. 도와줘요? 내 치료를 받겠다고 약속한다면 여기서 꺼내줄게요.”
두진은 재건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재건은 재차 문쪽을 돌아보았다. 아크릴 유리 한 장을 맞대고 둘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재건은 그의 눈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와도 같은 공포를 보았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재건이 간과한 것이 그것이었다. 두진은 의혹과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애써 알리바이를 만들고 순간의 재치로 수사에 혼선을 줬지만 그의 정신은 이미 파괴되어 있었다. 성장기 내내 관절과 허리 통증에 시달리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절친한 친구와 자신의 키가 똑같아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키가 가까운 누군가와 같아지려 한다고 믿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는 결국 이 증상을 없애려면 타인의 키를 자신에게 맞추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눈앞의 이 커다란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이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자를 따라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과 그자의 훤칠한 키가 선사하는 공포가 앞뒤 없이 뒤섞였다.
“빨리요. 시간 없단 말이에요. 대답하면 원하는 대로 해줄게요. 그러니 어서…….”
초조해진 것은 재건이었다. 하지만 두진은 여전히 이를 갈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곳은 운명을 가르는 공간이었다. 제발 대답하기를. 매 초가 분기점이었고 자신의 결단과 한 남자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김재건 씨.”
공간을 깨고 지호가 말했다. 뒤에는 병오가 종이컵을 들고 서 있었다.
“무슨 작당 질이야?”
병오는 재건에게 종이컵을 내밀었다.
“이건…… 율무차잖아요. 다시 타와요!”
“뭐? 이 자식이…….”
병오는 재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재건은 실실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괴물이 나오죠.”
율무차를 호르륵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재건은 말했다.
“여행자를 자신의 동굴로 초대한 뒤 침대에 뉘여요. 여행자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비져나온 부분을 자르고 작으면 잡아당겨 늘이죠. 결국 테세우스한테 제압돼 똑같이 침대에 늘여져 죽어요.”
“그래서. 저놈이 그걸 따라 했단 말이야?”
병오가 말했다. 재건은 발걸음을 옮겼다.
“따라 했다기 보단…… 그냥 이 병을 프로크루스테스 콤플렉스라고 붙이면 어떨까 해서요.”
“그딴 병이 어디 있냐? 갖다 붙이면 그만이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못 들어보셨어요? 일종의 대유 같은 거죠. 방금 면담해본 결과 저 사람은 남의 키를 자신에 맞추지 않으면 자기가 그렇게 된다고 믿고 있어요. 기소의견서 쓸 때 참고했음 해서요.”
“말은…….”
재건은 면회실 문턱에 서서 한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작고 겁에 질린 동물이었다. 재건은 시선을 돌리고는 다시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