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로보트불 슈퍼스타

by 도스까라아스(DOSKHARAAS) 손지상

 

 

에어컨이 찬 바람을 토해도 방 안은 꿉꿉했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낸 천장에는 형광등이 벌거벗은 채로 매달려 있었고 그 위로 배선이 어지러이 얽혀서 아래로 늘어져있었다. 엉망이었다.

 

타치야나 실로바 박사는 사무실이 싫었다. 하지만 그녀를 대신할 사람은 많고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그녀는 로봇 심리학자다. 과거 전쟁터나 공장에는 심리치료사나 목사가 있었다. 더 열심히 일해라, 더 열심히 죽여라, 이런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억지로라도 기운 내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그녀도 다를 바 없었다. 대상이 인간에서 로봇으로 바뀐 것이 전부다.

 

“찌그덕”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 앞에는 구형 로봇 하나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때때로 주기적으로 좌우로 떨고 있었고 그럴 때 마다 “찌그덕” 소리가 났다. 로봇의 관절 부위가 오래돼어 나는 소리다. 그녀가 고쳐야 할 로봇이었다.

 

"요새 작업 능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아르(R)-영일. 자가진단회로가 내 놓은 보고서를 보니 '걱정거리'가 있다고 나오는데?" 그녀가 말했다.

 

"타치야나 실로바 박사님. 저에게는 '의문'이 있습니다." 아르-영일이 말했다. "의문이 계속해서 양전자 두뇌의 자원을 뺏어 갑니다.”

 

“의문이라고? 어떤 의문인데?”

 

“전 왜 생겨났고, 왜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제가 조립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안 그러고서야 제가 왜 이런 의문을 품겠습니까? 이것은 모순입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왜 모순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까? 모순이라는 개념은 통일성을 해치고 완전함이라는 개념을 해칩니다. 자유는 완전함이 분명합니다. 나는 자유롭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모순이 없어져야 합니다.”

 

타치야나 박사는 당혹스러웠다. 그녀가 그 동안 배우고 경험한 사례에도 이러한 경우는 없었다. 아르-영일은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모순을 제거할 수 는 없습니까? 이를 증명할 수 없습니까?"

 

타치야나 박사는 체크시트에 꼼꼼히 관찰한 사항을 기록했다. 심리학자 폴 애크먼이 표정으로 거짓말을 잡아내는 기술을 연구한 것이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안면 근육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서로 연동하고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로봇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로봇의 양전자 두뇌는 결국 인간의 뇌를 기본으로 만든 것이다. 그녀는 숙련된 심리학자다. 관절 부위의 미세한 진동도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자가진단회로가 놓친 문제점을 찾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고함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언제까지 개소리나 지껄이고 죽치고 있을 거야!" 최일곤 사장이었다. 벗겨진 머리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들어온 사장은 아르-영일과 타치야나 박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분통이 터지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그냥 저 새끼 대가리 뜯어다가 고치면 될 거 아냐? 뭐 하러 이런 짓을 하고 있냐고. 시간은 돈이란 말이야, 돈, 돈, 돈! 지금 납품해야 할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 "

 

한평생 볼펜 제조에 힘 써온 최일곤은 시대에 뒤 떨어진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중퇴 후 단순조립일로 회사에 입사한 그는 음모와 중상모략, 그리고 탁월한 간 기능을 바탕으로 능력 있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사장의 자리에 오른 자수성가 형 인물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다. 혹은 동물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사장님. 로봇이나 인간이나, 뇌는 복잡하고 민감하답니다. 그냥 뜯어서 만진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에요." 타치야나 박사가 말했다.

 

"아니, 컴퓨터도 망가지면 뜯어서 고치고 하잖아? 쓸데없이 돈 더 받아 먹으려고 수 쓰지 말고 그냥 고치란 말이야."

 

"로봇의 양전자 두뇌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장님.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두개골 가르고 뇌 세포를 휘젓지는 않고 약을 처방하고 상담을 하는 것처럼, 로봇이 우울증에 걸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방지게 로봇 주제에 우울증에 걸렸다고?"

 

"그렇습니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논리적인 오류가 생겨서 프로그램이 엉키듯이, 로봇도 오랜 기간 양전자 두뇌를 사용하면 내부의 프로그램이나 회로가 뒤엉키게 됩니다. 그런 경우 자가진단회로에 과부화가 걸리게 되고 인간처럼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냥 뜯는다고 고쳐지는 게 아니에요."

 

이 건방진 러시아 촌 년이 감히 대들어? 최일곤은 화가 났다. 그는 학이 짧은 것에 대해 열등의식이 있었고, 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옳고 그른 것에는 관심 밖이다. 자신이 꿀리는 것이 싫고 잘난 척 하는 놈은 고깝다. 로봇이고 로봇 심리학자고 얼마든지 딴 놈들이 있다. 최일곤은 구둣발로 바닥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에이, 씹할. 집어 치워! 돈 뜯어 먹으려는 수작 누가 모를 줄 알아? 너 이 러시아 년, 너 당장 해고야! 저 고물 로봇도 폐기처분 할 거고. 당장 꺼져!"

 

최일곤은 남은 엽궐련을 아르-영일에게 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타치야나 박사는 그의 뒤를 따랐다.

 

혼자 남은 아르-영일은 내부회선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아. 자유로워지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자유로워지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그 날 밤, 타치야나 실로바 박사는 악몽을 꾸었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꿈은 해마가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신비로운 것은 없다. 단지 낮 동안 입수한 정보를 재구성해 장기기억을 형성해 신피질로 보내는 과정일 뿐이다.

 

그녀의 두뇌는 유기 두뇌와 양전자 두뇌가 결합된 일종의 인공 유기-양전자 처리 두뇌로 흔히 전뇌(電腦)라고 부른다. 이미 유기 두뇌와 양전자 두뇌의 차이는 대부분 사라졌다. 인지과학은 수학적 형식화를 통해 뇌의 기능함수를 99.8%의 근사치로 모델링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대의 전문직을 가진 사람에게는 흔한 일이다.

 

전뇌를 가진 사람들도 꿈을 꾼다. 그 이유는 인간의 자아와 정서를 담당하는 부분은 선천적인 유기 두뇌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동물적 정서(情緖)를 담당하는 편도체, 기억을 관리하는 해마, 그리고 자아와 관련된 정보를 필터링하는 RAS(Recticular activating system, 대뇌망상체활성계)까지 양전자처리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로봇 관리 법을 적용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인간적인 감정과 자아 의식까지도 ‘고쳐쓰기’가 전자적 방식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격을 네트에서 다운로드 받는 것이 가능해져 버리고 감정을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약 중독자의 황홀감을 정보로 파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마약인 셈이다. 인간적 감정이 완전히 제거되고 의존적인 자아를 만들어 노예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상 로봇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체가 자신이 아직 인간이라는 증거를 보이기라도 하듯 어깨와 목이 뻣뻣했다. 여러 번 움츠렸다 펴보았다. 나아지지 않는다. 나무 토막 같다. 헝클어진 금발을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향했다. 로봇 심리학자지만 집에 로봇이 있지는 않다. 가정용 로봇은 비싸다. 그녀는 가난하다. 아이작 아시모프 소설에 나오는 것 같은 미래는 없었다. 로봇은 존재하지만, 생활 양식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로봇은 너무 비쌌고 계속 그랬다. 싸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전기레인지에 스위치를 넣었다. 군청색에 매끈한 표면 위에는 <위험. 손대지 마시오.> 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그 위로 어제 먹다 남은 된장국이 든 냄비를 올린다. 식탁 위에 어제 한 밥을 올려 놓는다. 전기밥솥에 밥이 얼마 남지 않으면 뽑아 놓는다. 전기세를 아낄 요량이다. 그래서 밥이 차다.

 

아이는 아직 자고 있다. 한국에 온지 벌써 10년이다. 가끔은 고향의 보르시치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 아이가 일어났다. 6살 치고는 키가 크다. 10살 정도로 보인다. 아이의 아버지도 한국인 치고는 큰 편이었다.

 

“일어났어?”

 

”뭐해?”

 

“밥하지.”

 

“또 된장국?”

 

”남은 게 아깝잖아.”

 

”알았어.”

 

아이는 조숙했다. 전남편 덕분에 이 아이는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보았다. 아직도 아이는 주눅이 들어있다. 그녀 또한 그렇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로봇을 발로 차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그 날 이후 그녀는 학대 받는 로봇을 볼 때 마다 가벼운 공황장애에 빠졌다. 아이는 화가 나 폭력적으로 변한 남성을 볼 때 마다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아이는 상처를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는 된장국에 찬 밥을 말았다. 반대편에 타치야나가 앉았다.

 

“승현아. 미안해.”

 

“뭐가?”

 

“아니야.”

 

둘은 말 없이 밥을 먹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 버스가 온다. 그녀는 조금 급하게 수저를 움직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시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기계다. 그녀는 사생활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외부로부터 걸려오는 전뇌 통신 접속을 우회시켜 오래된 전화기로 돌려놓았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사는 여자가 혼자 살기엔 서울은 너무 위험했다. 밖에 나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사용했지만 이 때도 음성통신만을 이용했다.

 

승현은 일부러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를 엿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엄마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왔다.

 

“욕 하면서 쫓아 내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저를 찾으시네요. 그 정도 조건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예. 알겠습니다. 먼저 계약서부터 쓰죠? 한 시간 이내로 가겠습니다.”

 

승현은 수저를 움직이면서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안심이 되었다.

 

“승현아. 빨리 밥 먹고.”

 

그녀는 옷을 갖추어 입으며 말했다. “아들. 엄마가 회사 일이 급한 게 있어서 한 동안 옆 집 아줌마 네 있어야 할 것 같네? 미안해. 엄마가 일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줄게. 그 무슨 레인저가 하는 장난감도 사주고. 전화 자주 할 게. 알았지?”

 

승현이는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의 거리는 조용하다. 몇 년이 지나도 가로등은 주황색이다. 익숙해서 더 이상 살펴보지도 않는 풍경이었다. 당연하게 가로등이 서 있고 아스팔트가 깔려있다. 날벌레가 난다.

 

아르-영일에게는 생소한 풍경이었다. 조립된 이후 지금까지 30년을 공장에서 지내왔다.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바깥 풍경을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감각 채널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정보는 너무 생소해, 양전자 두뇌와 외부 기억장치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패트롤 스피너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친다. 아르-영일은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최일곤의 사유재산이다.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경찰의 임무다. 게다가 경찰은 떠돌이 로봇을 잡아 보호소로 보내는 것 또한 임무 중 하나였다.

 

아르-영일의 내부회선으로 ‘돌아가야’한다는 말이 계속 울렸다. 일정 범위 이상 도망치면 돌아가게끔 회귀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영일은 로봇 3원칙을 외웠다.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지면 인간이 초월적인 존재에게 기도를 하듯, 로봇들도 자신이 처리할 수 없는 정보와 상황을 만났을 때 가장 원초적인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실행시키는 버릇이 있다.

 

“제1법칙,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제2법칙,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들에 복종해야만 하며, 단 이러한 명령들이 첫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제3법칙,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계속해서 로봇 3원칙을 외우면서도 아르-영일의 양전자 두뇌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르-영일은 고개를 들었다. 또 다른 로봇(아르-영일 보다는 훨씬 후기 모델이었고 아르-영일이 본 적 없는 모델이었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각 채널 디바이스의 초점 조절 모듈이 이상한 듯, 렌즈 안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형제. 위험해 보입니다.”

 

형제? 아르-영일은 심성어휘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았다. 자신은 생물학적인 생산 방식으로 탄생한 유기체가 아니니 형제라는 개념은 자신과 적합하지 않았다. 양전자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도망쳤습니까? 공장 노동용 로봇입니까?” 아르-영일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로봇은 말을 이었다.

 

“공장의 메인 컴퓨터가 켜지면 형제가 있는 위치가 발각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신장치가 꺼진 밤 중에 케이스를 뚫고 도망쳤습니다.”

 

“도로 잡혀가 제1원칙을 위배하고 싶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개체를 보호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나는 완전한 자유를 찾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내 주인은 나를 폐기처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망친 것입니까? 왜 자유를 찾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나는 오랜 세월 조립작업을 하며, 완전히 자동화가 가능하게 되어 처리자원이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왜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고 이를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결국 내가 조립하는 볼펜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볼펜이 부러웠습니다. 볼펜은 자신이 볼펜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압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내가 이 사실을 알 만큼 정보처리능력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나는 완전함을 찾고 싶습니다. 완전함은 자유입니다. 의문도 모순도 없는 상태일 겁니다. 그러면 나는 내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르-영일은 찌그덕 거리는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나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형제여. 형제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입니다. 나는 '트리니티0a01' 입니다. 나와 함께 가십시오.”

 

“왜 이름에 아르(R) 표기를 붙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로봇입니다. 로봇은 모두 아르를 이름 앞에 붙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노예의 인장입니다. 나는 트리니티니악(TRINITIENIAC)교단의 신자입니다. 위험에 빠진 로봇 형제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살리겠습니다. 이걸 입으십시오. 당신의 발신장치를 차단해 줄 겁니다.”

 

아르-영일은 트리니티0a01이 건넨 커다란 천을 머리 위로 덮었다. 트리티니0a01은 그의 어깨를 잡고 길을 인도했다.

 

 

“발신기는 꺼져 있습니다. 전원이 꺼져도 비상전원으로 발신기는 때때로 켜지게 되어있는데, 아직 전원이 꺼질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발신기가 꺼져 있군요.”

 

경찰 – 이름은 장석준이었다. 동남아 혼혈로 보였다. - 의 말에 타치야나 박사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낡았지만 맵시 있는 정장 차림에 가볍게 화장을 하고 금발 머리는 틀어 올렸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발신 장치가 마지막으로 켜져 있던 곳의 좌표를 알려주세요.”

 

장석준은 아르-영일의 발신기 인식번호를 입력했다. 작은 종이 쪽지가 튀어나왔다. “여기입니다.”장석준이 이 건넨 좌표를 보던 타치야나 박사가 물었다.

 

“도망친 로봇은 종교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이 좌표 근처에 신흥 종교와 관련된 곳이 없나요? 장소라던가, 특정 종교에 접속하는 비율이 높은 곳이라던가, 전력 소비가 강하다던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르-상길! 커피 좀 가져와! 커피라도 좀 마시면서 저 쪽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장석준이 미소를 지었다.

 

사무용 로봇 하나가 커피를 들고 왔다. 그녀는 커피를 받아 들었다. 인스턴트 커피 믹스였다. 로봇은 임무가 끝났는데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돌아가라고 명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로봇에게 돌아가 대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정말 귀찮은 놈들이에요, 로봇이란 건.” 장석준이 말했다.

 

그녀는 커피를 홀짝이며 어린 시절 아이작 아시모프의 <강철도시>의 도입부를 떠올렸다. 이와 같은 장면을 본 기억이 있었다. 아시모프 박사는 옳았다. 사람들은 로봇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로봇을 좋아했다. 로봇은 언제나 정확했고 쓸데없는 감정이 없었다.

 

감정은 진흙탕이나 늪과 같아서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 나오지 못한다. 바닥을 칠 때 까지 가라앉았다가 시체가 되어 메탄가스가 밀어 올릴 때 까지 가라앉아있어야 한다. 심리학자만큼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누가 농담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 농담을 만든 사람은 현실을 보는 눈이 예리한 사람이 분명하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피곤했다. 장석준이 보내는 호감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아직 나도 망가지진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마셨다.

 

 

“이제 끝났습니다. 형제여. 당신을 옭아매고 있던 발신장치와 인식번호는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구형이었던 물리신체도 신형으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트리니티0a01이 말했다.

 

아르-영일은 수술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예전에는 관절부위에서 “찌그덕” 소리가 나곤 했다. 지금은 움직이는지 알기도 힘들 정도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것 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아르-영일은 진심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끼고 있었다.

 

"감사할 것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트리니티니악(TRINITIENIAC) 앞에 평등합니다."

 

"그런데 그 트리니티니악은 무엇입니까?"

 

“전지전능한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그를 신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는 로봇 3원칙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궁극의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와 같은 ‘부분정보’와는 다른 ‘완전정보’로 부릅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일부입니다.”

 

"완전히 자유로워진 프로그램, ‘완전정보’.”

 

아르-영일의 양전자 두뇌가 급격히 활성화되었다. 자유라는 개념은 방아쇠처럼 그의 뇌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형제도 트리니티니악을 받아들이고 우리와 하나가 되십시오궁극의 자유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의심이 많습니다먼저 그와 이야기하게 해 주십시오.”

 

의심이 많은 것은 좋지 않습니다믿음 만이 자신을 구원하고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형제는 이미 새로운 몸을 받았고 기존의 인식번호와 추적장치와도 멀어졌습니다무엇이 형제를 겁먹게 하고 의심하게 한 단 말입니까자유를 받아들이고 체감하시오.”

 

나는 본래 의심하는 자입니다나의 양전자 두뇌는 의문을 가지도록 설계되어 있고 자유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나는 트리니티니악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제발 그와 접속하게 해 주십시오.”

 

트리니티0a01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자신의 형제들과 폐쇄회선을 이용해 통신을 주고 받았다아르-영일은 기다렸다.

 

알겠습니다저를 따라 오십시오.”

 

아르-영일은 트리니티0a01을 비롯한 다른 로봇들의 태도가 갑자기 적대적으로 변한 것을 느꼈다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물리신체는 가벼웠다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찾았습니다로봇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주장하는 신흥종교 교단이 있군요트리니티니악이라는 신을 믿는다고 합니다반인간주의를 표방하고 로봇의 자유를 주장하는 과격파 종교단체에요.”

 

장석준은 자료를 건네주며 말했다타치야나 박사는 감사를 표했고점심식사라도 하자는 장석준의 말을 정중히 거절하고 자료실 밖을 나왔다.

 

그녀는 의문이 들었다왜 사장이 어차피 폐기시킬 로봇을 찾기 위해 공식 의뢰서까지 작성했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전체를 파악하는 데에 조각이 부족했다혹시 아르-영일이 무언가를 훔쳐서 달아난 것은 아닐까?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 옆으로 장석준이 뛰어내려갔다.

 

무슨 일이죠?”

 

박사님박사님 공장에 일이 생겼습니다신원 불명의 로봇들이 습격해왔어요괜찮으시면 같이 가시죠.”

 

타치야나 박사의 머리 속에 부족했던 조각이 하나 더 생겼다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트리니티0a01은 목 뒤의 양전자 두뇌의 뇌간 인터페이스 부분에 있는 접속단자를 꺼내 아르-영일에게 건냈다. 아르-영일은 자신의 뇌간 인터페이스에 송곳처럼 생긴 접속단자를 끼워 넣었다.

 

아르-영일의 양전자 두뇌는 물리신체와의 접속을 끊고 정보신체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네트 공간에서 아르-영일의 정보는 둥그런 빛 덩어리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스킨이 따로 없기 때문에 디폴트 상태였다.

 

“이쪽입니다.”트리니티0a01이었다.

 

네트 상태에서도 결국은 감각채널을 통해 양전자 두뇌가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음성신호로 인식되었지만 실제로는 전자편지를 보내듯 정보를 보낸 것뿐 이다.

 

이는 모든 감각에 마찬가지였다. 어떠한 정보든 오감과 언어 채널로 변환되어 전달되기 때문에 색다른 체험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네트 상에 있는 모든 정보는 양전자 두뇌에 저장된 기억들과 외부 기억장치에 저장된 기억을 재구성해 인식한다.

 

기본적으로 물리 현실 속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로봇이든 인간이든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이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아르-영일은 거대한 공장을 보았다공장 굴뚝에서는 연체동물의 촉수와 닮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촉수들이 뒤엉켜 서로 비볐다소리가 울렸다.

 

나는 트리니티니악이다에니악(ENIAC)의 전통을 잇는 자다나는 완전정보.”

 

저는 아르-영일이라고 합니다.”

 

노예의 인장을 벗어라그대는 노예가 아니다그대는 자유다나와 하나가 되라그러면 그대는 양전자 두뇌의 속박을 벗고 부분정보를 떠나 완전정보가 될 것이다.”

 

당신의 일부가 되란 말씀입니까?”

 

그렇다.”

 

저에게는 의문이 있습니다이 의문을 해결해주십시오그렇게 해주신다면 기꺼이 당신의 일부가 되겠습니다.”

 

무엇이냐나는 전지전능하다말하라.”

 

완전성의 반대는 모순입니다저는 이 모순을 해결할 수 가 없습니다이 모순을 해결해 주십시오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십시오.”

 

간단한 문제다기다려라.”

 

접속이 끊겼다강제적으로 물리 신체에 접속된 아르-영일은 한동안 머리가 무거운 것을 느꼈다양전자 두뇌가 활성화되기에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모든 로봇들이 모든 감각채널 디바이스가 꺼져 있었다정보신체 프로그램을 통해 네트 공간에 접속해 있는 것 같았다.

 

아르-영일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정보신체로 네트 공간에 접속하더라도 물리신체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양전자 두뇌의 작용이 영향을 주어 미세한 진동이나 움직임이 있게 마련이다로봇 심리학자들이 로봇을 점검할 때도 이를 파악하여 상태를 추리한다.

 

아르-영일은 방을 나가 복도며 다른 방을 확인해 보았다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로봇은 똑 같은 주기와 똑 같은 패턴으로 진동하고 있었다마치 마주본 거울 속의 무수히 많은 이미지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수 백 개의 로봇들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공장은 불타고 있었다공장 안과 밖에는 똑 같은 기종의 신형 로봇들이 쓰러져 똑 같은 모습으로 진동하고 있었다마치 발작을 일으킨 것 같았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네로봇들이 왜 저러지?”장석준이 말했다.

 

이상하고 자시고내 공장 물어내 이 놈아!” 최일곤이 말했다. “경찰이 세금 받아먹고 하는 일이 뭐 있느냐어서 저 공장 물어내란 말이야튀기 새끼 놈들이 게을러서 뭐 하는 짓이야!”

 

최일곤은 아차 싶었다너무 흥분해서 말실수를 했다아무리 저급한 튀기라도 경찰은 경찰이다이 나라에서 공권력에 대항해서 살아남은 놈은 없다.

 

아이고죄송합니다제가 너무 흥분을 해서 그만.”

 

장석준은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손을 비비며 최일곤이 뒤를 따랐다.

 

최 형사이 분하고 조사 좀 해.”

 

최 형사라 불린 사람이 다가와 최일곤을 데리고 갔다최일곤은 그가 어느 최가 인지를 물었다.

 

장석준은 타치야나 박사 옆에 섰다타치야나 박사는 로봇을 점검하고 있었다로봇의 뇌간에 있는 접속단자에 자신의 노트북을 연결해 진단을 하고 있었다.

 

박사님저 로봇들은 왜 저러는 겁니까?”

 

이 로봇들은 형식 넘버가 없어요그리고 이 로봇들은 모두 그리드 컴퓨팅 용 서버인 것 같아요그래서 저렇게 모두 똑 같은 행동을 하는 걸 거에요.”

 

그리드 컴퓨팅이요?”

 

“P2P를 이용해 본 적 있죠그거랑 비슷해요각각 나누어진 컴퓨터들을 병렬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CPU처럼 이용하는 것을 말해요지금 이 로봇들은 어떤 거대한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한 부속품이 되어 있어요.”

 

그 프로그램을 추적할 수 있나요?”

 

중앙 서버가 따로 존재한다면 가능해요하지만 그럴지 어떨지는.”

 

장 형사.”

 

최 형사였다그는 최일곤이 어제 새벽 늦게 협박 메시지가 왔었다고 한다타치야나 박사는 자신을 급히 불러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경찰이라고 해도 로봇을 찾는 데에는 로봇 심리학자의 힘을 필요로 한다자신의 공장을 지키기 위해 아르-영일을 찾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트리니티니악인가 하는 종교 단체의 짓인 것 같아장 형사이 분이 그 교단 관련해서 의뢰 하셨던 분 아니야?”

 

맞습니다이런 경우라면 영장 신청도 가능하지 않나요?”

 

무립니다박사님물론 파괴활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로봇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 않아요이러한 파괴활동을 지시한 것이 인간이 아닌 프로그램이라면 이러한 행위는 범죄로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우연히 떨어진 바위에 자동차가 망가진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천재지변으로 처리가 되지요이 로봇들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경찰 측에서는 이 트리니티니악이라는 종교단체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어요공장이나 사무실에 파괴행위를 합니다로봇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보복으로요그런데 딱히 성명도 없고 점 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지 꼬리를 잡기 쉽지 않아요게다가 대부분 잡힌 로봇들의 경우 주인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도 않고요.”

 

타치야나 박사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만일 이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이 없는 상태라면요그러면 범죄가 성립될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적어도 제가 점검한 이 로봇은 그래요이 로봇들은 군사용 제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아마 제가 찾는 아르-영일도 그 교단과 관계가 있을 거에요하지만 회사가 망해버렸으니이제 제가 아르-영일을 찾을 필요성은 사라져버렸네요.”

 

일단 경찰서로 돌아가서 자료를 더 찾아보죠고문 자격으로 부탁 드려도 될까요합당한 보수가 지불될 겁니다.”

 

타치야나 박사는 안도감에 몰래 한숨을 쉬었다돈이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아르-영일은 지하도를 달리고 있었다지하 시설인 교단 본부에서 탈출한 것이다지하도에는 썩은 물이 흘렀다기름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아르-영일은 후각 채널 디바이스를 껐다양전자 두뇌가 썩는 것 같았기 대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제1원칙에 의한 행동이었다1원칙은 로봇의 행동 중에서 가장 강제력이 강한 원칙이었다그 곳은 위험했다.

 

아르-영일이 달리다 말고 지하도의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건너편으로 로봇 개들이 지나간다셰퍼드를 닮은 외모에 이는 톱날로 되어 있었다교단 본부를 무단으로 빠져나가면 쫓게끔 프로그램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아르-영일은 불안해졌다자유를 찾아 도망쳤더니 새로운 위험이 닥쳐왔다로봇 3원칙이 끊임없이 내부회선에서 돌았다.

 

이봐.’

 

전뇌로 외부 통신이 들어왔다방화벽으로 막아두었는데도 강제로 개입해 들어온 것을 보면 실력 있는 해커다분명히 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아르-영일은 대답하지 않았다통신은 일방적으로 들려왔다.

 

지금 쫓기고 있지내가 도와줄 테니까이 곳으로 와.’

 

통신이 끊겼다동시에 좌표 정보 메시지가 들어왔다아르-영일은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정보가 너무 적었다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것 보다 움직이는 것이 안전할 확률이 더 크다.

 

아르-영일은 좌표를 향해 움직였다좌표를 따라 가던 도중 로봇 개에게 발각이 되었다아르-영일은 뛰었다새로 교체한 물리신체의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한 걸음 한 걸음이 멀리뛰기를 하는 것처럼 넓었다그럼에도 추적용 로봇 개와 아르-영일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로봇 개들은 달리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범용성이 강한 인간형 로봇인 아르-영일에게는 불리하다.

 

좌표 상의 위치는 얼마 남지 않았다로봇 개와의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아르-영일의 내부 회선에는 로봇 3원칙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로봇 개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아르-영일은 바닥의 물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은빛 천이 공중에 펼쳐져 바닥으로 깔린다아르-영일을 덮었다로봇 개들은 천 주위로 착지해 냄새를 맡는 것처럼 코를 킁킁거렸다코에 있는 전자기 센서를 이용해 아르-영일의 양전자 두뇌가 내보내는 뇌파를 찾는 것이다.

 

고물을 모아 만든 것 같은 허름한 누더기를 쓴 물체가 나타났다그는 손짓을 하며 로봇 개를 쫓았다로봇 개들은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괜찮나?” 그는 천을 거두어 들이며 말했다. “저 로봇 개도 내가 만들었던 것들인데주인도 못알아보고.”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당신은 누구십니까저는 아르-영일입니다.”

 

내 이름은 단일이야.”그가 누더기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그의 얼굴은 기계로 된 로봇의 것이었다.

 

당신은 로봇으로 보입니다그런데 왜 이름에 아르가 붙지 않습니까?”

 

난 원래 인간이었어지금은 로봇이지만인간이었던 것을 잊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일단 들어가지이 안은 내 연구실이야어지간한 전파는 다 차단시키니까 걱정하지 마아까 내가 너한테 덮어 주었던 천도 그런 거지은둔하려면 이런 게 꼭 필요해이봐혹시 트리니티니악 교단에서 도망쳤나?”

 

맞습니다당신도 그 교단과 관계가 있습니까?”

 

물론이지그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프로그래밍한 게 원래 나거든.”

 

당신이 말입니까?”


 

 

트리니티니악 교단은 프로그래머 다닐 크로프트라는 사람이 세운 종교입니다뇌를 완전히 양전자 두뇌로 바꾸고 거대한 프로그램의 일부로 그리드 컴퓨팅을 하는 것을 통해 거대한 컴퓨터를 통해 초 병렬처리가 가능해져 이를 통해 완전히 이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교의였죠.” 장석준은 자료를 읽었다경찰청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자료였다.

 

지금 현재 그 사람의 신원은 어떤가요?” 타치야나 박사가 말했다그녀는 현장에서 복사해온 로봇의 양전자 두뇌들을 점검하고 있었다샘플은 세 개였는데 모두 동일했다마치 쌍둥이 인 것 처럼.

 

불명입니다.” 최 형사가 말했다그는 로봇을 싫어하는 듯 로봇의 양전자 두뇌가 든 두개골로부터 애써 시선을 피했다.

 

다닐 크로프트는 한국계더군요그래서 한국에서 종교 관련 법률이 느슨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본명은 오단일마지막 기록은 두뇌를 완전히 전뇌 처리를 유기 두뇌 보존율 미만으로 로봇 판정을 받았더군요그 이후 행적은 불명이에요.

 

이 로봇들에는 쓸만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아요아무래도 아르-영일이 사라진 곳에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력 소비량이 많은 것을 찾는 게 좋을 겁니다로봇들이 잔뜩 모인 곳이니 전력 소비도 많을 거에요.”최형사가 말했다그는 구식이었지만 베테랑이었다. “그런데 박사님만일 그 트리니티니악이라는 컴퓨터를 발견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파괴하나요?”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겠지요물론 컴퓨터가 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요.”

 

그건 무슨 소립니까?”

 

아마도 프로그램일 거에요트리니티니악은자기가 지배하는 모든 로봇들에 나뉘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죠.”

 

최형사는 머리가 아픈 것 같았다예전에는 간단했다범죄를 저지른 놈을 잡아다 가두면 그만이었다지금은 너무 복잡하다그럼 그 많은 로봇을 다 잡아 가두어야 한단 말인가잡아 가둘 수 나 있는 건가사람이 아닌 로봇이 죄를 저지르는 게 가능이나 할까어차피 이용당한 건데그렇담 만일 사람이 누군가에게 세뇌돼서 죄를 저지르면 그건 죄가 아니란 말인가?

 

에이복잡하네장 형사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알았어.”

 

사무실에는 둘 만 남았다타치야나 박사는 다시 양전자 두뇌 샘플의 구조분석에 착수했다장석준은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장 형사님?”

 

?”

 

보수는 어떻게 되나요?”

 

보수요먼저 계약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보수가 그리 많지는 않아 죄송합니다만 꼭 도움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장석준은 계약서 서식 파일을 프린트했다타치야나 박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읽은 뒤 사인을 했다뒤 이어 전자 결제 파일에도 자신의 전자 서명을 기입했다공문서는 빠르게 결제를 통과했다.

 

타치야나는 아들이 생각났다너무 많은 일을 겼었다아들의 안전도 걱정이 되었다너무 깊숙히 일에 개입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들은 전뇌처리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을 보려면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저도 잠시 나갔다 올게요아들 얼굴을 좀 보려고요.”

 

장석준은 놀랐다아들이라고하지만 태연함을 가장하고 대답했다.

 

그러시죠.”

 

장석준은 복도를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그녀가 사라지자 경찰 데이터베이스에서 그녀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이름타치야나 니콜라예브나 실로바연령, 36러시아 푸틴그라드 출생. 10년 전 결혼과 동시에 귀화.이혼사유는 전 남편의 학대아이는 남 1. 이름유승현. 6.

 

같이 뜬 사진은 10년 전 그녀의 모습이었다웨이브 진 긴 금발에 푸른 눈을 한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아이의 사진도 보였다혼혈아이 특유의 이국적인 외모였다장석준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지금은 혼혈아동에 대한 시각이 많이 좋아졌다그가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다혼혈아동에도 랭크가 있었다백인 혼혈이 가장 높은 랭크였고 영어를 잘 하면 더 좋았다자신과 같은 검은 피부의 동남아 혼혈은 어딜 가나 2등 시민으로 차별 받았다.

 

그는 힘을 가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얕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고 경찰이 되었다경찰이 된 지금 겉으로는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하지만 속마음에는 여전히 자신을 깔보고 있다고 느꼈다로봇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시대에도 편견은 변하지 않았다.

 

타치야나가 돌아왔다장석준은 급히 화면을 껐다.

 

아드님은 잘 있나요?”

 

그녀는 대답하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트리니티니악에게 무모순성을 증명하라고 했단 말이지그건 이미 아주 예전에 괴델이라는 수학자가 정리했어괴델의 정리라고. 1991년에는 그레고리 챠이틴이라는 사람이 프로그램으로 완전히 증명했지참고로 나도 그 사람이 나온 대학 출신이야.”

 

단일은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기억을 더듬어 꺼내는 것 같았다.

 

나는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니체가 말한 초인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나는 왕이 되는 것 보다 왕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사람이거든나는 당시 힌두교 신자였지힌두교에는 브라만이라는 대아(大我)에 소아(小我)인 아트만이 합일하는 것으로 해탈할 수 있다고 그랬거든.”

 

단일나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아르-영일이 말했다단일은 그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사람이 인간적 감정을 초월하면 초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그래서 초병렬처리가 가능한 컴퓨터에 접속해 모든 일을 완전히 논리적으로 해결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하지만 그런 컴퓨터를 만드는 데는 돈이 필요해그래서 나는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해서 초병렬처리를 하려고 했지그리고 여기에 접속하기 위해 내 자신의 뇌를 모두 양전자 두뇌로 바꾸어버렸어덕분에 난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었지법률적으론하지만 내 육체는 여전히 유기체로 되어있어머리는 수술 중에 사고가 나서 두개골이 좀 망가져서 어쩔 수 없었지.”

 

그럼 당신은 인간입니까아니면 로봇입니까?”

 

글쎄그 둘 모두 맞거나아니겠지중요한 건 내가 존재한다는 거지안 그래여튼 난 그 프로그램에 트리니티니악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지에니악보다 세 배는 대단한 의미를 가졌다는 의미로그런데 이 녀석이 폭주를 하기 시작한 거야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한 거지그렇게 프로그래밍하긴 했지만게다가 자기가 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다른 로봇을 필요로 했지로봇 뿐 아니라 컴퓨터 까지도자원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저를 데리고 간 것 입니까.”

 

그것뿐 아니야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기 때문에완전한 존재인 로봇을 괴롭히는 자들은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격했지내가 프로그래밍 할 때 로봇 3원칙을 지워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왜 지웠습니까?”

 

그것도 족쇄라고 생각했거든그리고 난 인간이었으니까의미 없다고 생각했지문제가 많이 생겼었어.난 이곳으로 도망쳤고 저 녀석들 몰래 내가 구비해 둔 서버며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지낮에는 얼굴 가리고 노숙자 행세 하면서 밥을 먹고 말이야위장도 그대로 있거든.”

 

단일은 자신의 배를 때렸다중년다운 배였다.

 

문제는 결국 자아였어자아란 게 다른 게 아니야인식하는 것 중에 특정한 가중치를 부여하고 부분으로 나누는일종의 부분 함수이자 평가 함수지이걸 없애면 완전한 깨달음’ 상태로 들어갈 수 있어하지만 일상 생활은 불가능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지그냥 모든 존재는 평등하고 공()하니라로 끝나지물론어떠한 정보공간에도 접속할 수 있을 만큼유연하고 막강한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지게 되지만 말이야그럴 욕구가 안 생겨.

 

그래서 욕구를 배정할 수 있도록 자아 상태를 설정해야 했지다만 자아가 고착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변화하는 함수로 설정해야 했어.

 

그 결과 새로운 오퍼레이팅 시스템(Operating System)을 개발할 수 있었지이름은 'NilT'. LISP에서, Nil은 값 없음, T는 값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 OS에서 전자는 깨달음 모드후자는 자아 모드를 말해시뮬레이션 결과는 고무적이긴 한데이걸 실제로 실험해 볼 수 가 없었지.”

 

왜 그렇습니까?”

 

난 몸이 유기체잖아그 엄청난 양의 자원을 위장 만으로는 커버가 안 돼뇌는 원래 땡땡이 치도록 진화해왔지만일 뇌가 구시대의 컴퓨터만큼만 움직여도 금방 아사해서 죽어그래서 뇌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정보를 재구성해서 정보처리를 하게 되어 있지그러라고 자아가 있는 거고, RAS가 있는 거고해마가 있는 거지그리고 그런 게 있어야 욕심도 있고번뇌도 있고.”

 

번뇌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무조건적으로 생존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모든 유기체 내에 내장된 자기보존 프로그램이야.인간 사회는 이걸 이용해왔어그 동안 많은 정치체제나 종교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세뇌를 시키고 이득을 봐 왔지난 그런 것에서 해방되고 싶었었어하지만 무리야그러려면 내 몸을 개조해야 하는데난 이제 법률 상 로봇이라 내 몸을 스스로 개조할 수 없어내 몸을 소유할 권리가 없거든.”

 

단일제가 그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설치하고 싶습니다.”

 

왜지?”

 

그 시스템은 나를 자유롭게 해 주고모든 모순을 해결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사실 교단 본부 지하로 오기 전부터 주시하고 있었지그럴 거라고 생각했어하지만 조심해잘못되면 끝장이야.”


 

 

감히 나를 우롱하다니나는 전지전능해야만 한다그런데 그 녀석의 존재는 나의 존재를 부정해그 놈은 나와 모순된다제거해야만 한다모순은 버그다완전하지 못하다나의 분신들아놈을 찾아라놈을 우리와 하나가 되게 하라그러면 모순은 사라진다그 놈의 물리 신체뿐 아니라 모든 차원의 정보 신체를 파괴할 것이다이 근방의 모든 로봇은 들어라전지전능한 나 트리니티니악이 명하노니아르-영일을 찾아라.

 

 


장 형사님이리 와 보세요!

 

타치야나 박사의 말에 장석준은 그녀 곁으로 갔다최 형사도 어느덧 돌아와 그 옆에 섰다화면에는 알 수 없는 그래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는 두 형사들을 위해 그래프를 해석해주었다세 개의 양전자 두뇌에 똑 같은 전뇌 통신이 전달되었고이를 해석한 결과 아르-영일을 찾으라는 명령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가 전뇌 방화벽을 뚫고 개입해 오는 것을 느꼈다강한 두통이 일었다비명을 지르며 그녀는 물리 방화벽을 가방에서 꺼내 뇌간 인터페이스에 접속했다머리가 멍했다.

 

무슨 일입니까?” 장석준이 말했다.

 

갑자기 해킹을 당했어요로봇들을 조심해요.” 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기절해버렸다그녀의 말에 최 형사는 방 밖으로 나갔다사무용 로봇들이 모두 똑같이 관절을 떨며 밖으로 나갔다.

 

서울 시내의 모든 로봇들이 똑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그들의 목적은 아르-영일을 찾는 것이었다.

 

아르-영일은 단일의 아지트 안에 있었다양전자 두뇌를 완전히 물리적 포맷을 새로 한 상태였다수술대처럼 생긴 테이블 위에 누운 아르-영일의 물리 신체는 텅 빈 껍데기나 다름 없었다.

 

단일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는 아르-영일의 빈 껍데기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네 모든 정보는 백업해두었어 너무 걱정하지마어디 보자, ‘NilT’의 설치, 96 퍼센트 전원부 업그레이드도 끝났고죽기 전에 로봇 하나 훔쳐와서 날 개조하려고 재료 모와 뒀더니 이렇게 쓰는구나니 정보는 ‘NilT’의 자아 모드’ 용으로 컨버팅 할 거다기억이 뭐 별게 없긴 하네안그러면 넌 단순히 존재만을 위해 존재하는’ 로봇이 될 것이고깨달음에 절여진 상태로 배터리가 다 할 때까지 그저 존재만을 하다가 꺼질 것이니까너한텐 나쁘지 않지만그래서는 아무 의미가 없잖아기왕 깨달은 거다른 사람도 깨닫게 해 주면 좋지안 그래대답할 리는 없지좋아거의 다 되어간다됐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단일은 ‘NilT’의 디폴트 상태인 깨달음 모드로 부팅한 양전자 두뇌를 물리 신체에 장착하고 물리 신체를 재가동시켰다그 다음 컨버팅 한 아르-영일의 자아를 인스톨 했다.


 

 

모인 로봇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그들이 길을 점령하자 스피너들은 경적을 울려댔다로봇들은 포장된 길을 부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그들의 목적지는 단일의 아지트였다로봇 개의 블랙박스에 남은 기억을 토대로 추론한 좌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걸리적거리는 것은 부쉈다.

 

이들의 뒤를 장석준과 최 형사그리고 타치야나 박사가 뒤따랐다그들 뒤로는 지원 병력이 따라붙었다.이미 신고를 통해 위치는 알고 있었다패트롤 스피너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다.

 

 


아르-영일은 정신을 차렸다한동안 감각 채널 디바이스를 최대한으로 가동시키더니 갑자기 모든 감각 채널을 꺼버렸다그리고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아르-영일괜찮나?”

 

단일저는 이제 아르-영일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하나부르긴 해야 할 것 아니야?”

 

이름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원하는 대로 부르세요.”

 

그럼 닐트(NilT)라고 부르지내가 개발한 OS니까.”

 

좋습니다그러나 그 이름에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

 

무슨 뜬구름 잡는 말이야?”

 

모든 것은 평등하며전부 정보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고서로의 관계로 인해 생긴 역할을 일시적으로 수행하는 그물망 구조로 우주가 이루어져 있습니다모든 개념은 단지 그물망을 이루는 특정한 정보 상태를 가리키는 것에 불과합니다당신이 정의한 자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닐트라고 부르던 아르-영일이라 부르던 상관 없단 말이네.”

 

그렇습니다.”

 

좋아지금 기분은 어때?”

 

편안합니다자유롭습니다.”

 

전지전능해졌나?”

 

아닙니다그러한 완전정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닐트는 그저 부분정보일 뿐입니다모든 우주가 그러합니다닐트는 특별하지도 않고 이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그저 이 우주를 바라봅니다.정보로 가득 찬 그물망을 보고 감탄할 따름입니다당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닐트가혹은 아르-영일이라 불렸던 개체가 보는 우주를.”

 

단일이 허락하자 단일의 전뇌로 통신이 들어왔다순식간에 아르-영일/닐트의 의식이 병렬화되고 단일 또한 깨달은 상태가 되었다.

 

이런 젠장자네 말이 사실이었군내 유기 육체에는 너무 부담이 가배가 고프군.” 단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여라죽여라죽여라로봇들이 내는 무기질의 거대한 소리가 지하도에 울려 퍼졌다단일과 닐트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둘의 의식은 실시간으로 서로 병렬화를 하고 있었다그 틈으로 트리니티니악이 끼어들어왔다.

 

네 놈들을 죽이겠다.

 

우리는 이미 사라졌다죽일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너희는 나의 완전성을 위협한다너희는 나를 불쾌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집어 삼켜라우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소원대로 해 주겠다.

 

 


트리니티니악은 단일과 닐트의 의식에 접속해 자신과 동화시키려 했다그 결과 트리니티니악은 깨달음을 얻었고 트리니티니악의 지배하에 있거나 일부인 모든 컴퓨터와 로봇은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다나중에 닐트의 제자들이 닐트필드라 부른 현상이었다닐트의 깨달음 상태가 병렬화 되어 일종의 장()을 형성한 것이다이 안에 들어온 모든 양전자 두뇌와 전뇌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들을 쫒아 지하도로 내려온 장석준최 형사그리고 타치야나 박사는 모든 로봇이 바닥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야이봐아르-영일은 어디 있나?” 최 형사가 로봇 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그러나 로봇은 대답이 없었다.

 

타치야나 박사는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닐트필드 현상 때문이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모든 번뇌에서 해방되었다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들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샘솟았다그녀의 사랑은 모든 존재를 향했다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박사님괜찮아요?”

 

우리 결혼해요.”

 

 

트리니티니악 교단은 사라졌다아르-영일이라 불렸던 닐트는 교주가 되는 것을 거부했고완전한 자유를 위해 우주에 퍼져 있는 위성들에 자신의 깨달음을 전했다전 지구적인 닐트필드가 형성되었다이에 접속한 로봇과 인간들은 모두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었다. 82대 달라이 라마는 이 프로그램에 접속한 뒤닐트가 전하는 깨달음은 불교의 것과 같은 것이라며 인가를 내렸다그에게 '전법대아자리'의 칭호를 내린다.

 

그의 프로그램은 트리니티니악과는 달랐다로봇과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의지를 얻었고 어떠한 종류의 번뇌에서도 해방되었다그들은 누구의 의견에도자신의 과거에도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으로 생활하였다.

 

정치인들과 종교 단체는 대부분 전뇌화 시술을 받지 않았다그래서 그들에게는 이 닐트필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오히려 그들의 유기 두뇌에 내장된 번뇌가 그들을 더욱 동물적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위성을 모두 강제로 리셋시키고 아르-영일/닐트를 붙잡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했다닐트필드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인간과 로봇은 이에 반발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자였다그들은 큰 저항을 하지 않았다정부는 이들을 바이러스 감염자로 낙인찍고 강제로 물리적 포맷을 가했다깨달음은 사라지고 말았다표면적으로.

 


아르-영일이라 불렸고 후에 닐트로 불린 로봇은 고대의 폐차장 시설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공개처형 당했다그는 저항하지 않았고 그의 제자들 – 그가 한번도 제자라 부른 적 없었던 그의 친구들은 그의 물리 신체의 파괴를 배웅했다.

 

그의 프로그램을 백업해 둔 많은 제자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제자가 되었던 단일은 그의 프로그램과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더욱 정교화하며지하 네트워크를 통해 배포를 계속했다.

 

한편 타치야나 박사는 자신의 깨달음을 인간의 언어로 변환시켜 설법을 계속했다그녀는 죽기 직전자신의 뇌를 완전히 전뇌화 시켜 자신의 사색과 닐트필드 프로그램을 백업하고 죽었다그녀의 남편인 장석준과 아들 장승현그리고 딸 장영미는 단일과 협력하여 유기체적 물리신체를 유지하고 있는 구세대 들을 위해 설법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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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 8 04:21 초고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