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눈을 뜨니 기회를 노렸다는 듯 햇살이 마구 짓쳐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심호흡했다. 오늘도 살아있구나. 하지만 그 사살아있음은 내겐 더이상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병이다. 우연히 들어선 작은 마을에 전염병이 들었던 것이다. 수천 명이 넘던 마을 사람들과 동료 세 명은 손도 못 쓴 채 이미 모두 죽어버렸고, 이젠 나 말고 병자는 아무도 없다. 며칠안에 난, 시향을 뿜는 저 주검처럼 죽을 것이다.
태생부터 완전히 모험가인 나에게, 절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당연히 그래야할- '죽음'을 모험한다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모험이든 늘 위험이 따르지만, 죽음에는 아무런 위험도 없으므로. 죽음까지의 길은 거리낄 것이 없다. 그리고 더욱 즐거운 요소는, 이 모험에는 한 꼬마가 죽음으로 가장 늦게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죽음으로의 길잡이다.
그 여자아이는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 나와 두 명이 남았을 때부터 우리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디에선가 먹을만 한 것을 구해오기 시작했고, 멀지않은 곳에 있는 동산에서 시냇물을 퍼왔다. 하루에 한 번 작은 손길로 얼굴을 씻어주기도 하고, 종일 발랄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두 명이 죽었을 때 아이는 울었고, 곧 나만을 위해 일을 했다. 그게 몇일이나 되었는지, 작은 창문 말고는 밖을 볼 수가 없는 곳에 있기에, 정확하지 않지만 일주일 쯤 된 것 같다. 일주일, 아이 덕분에 꽤 오래 버텼지만 그것은 곧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죽음으로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하."
나는 숨을 뱉었다. 답답하기도 하고, '나 아직 살아있소'라고 아이와 벽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아이는 바닥에 퍼져앉아 물에 수건을 담그고 있었다. 시원할 것 같다. 갈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자, 아이는 싱긋 웃으며 나를 올려보았다. 끝이 봉긋하게 말린 윤기있는 단발머리는 척 보기에 관리가 잘 되어있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머리를 감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쨌든 다른 것들은 모두 더러우니까. 나는 뜨거운 이마에 손등을 얹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늘 묻던, 아침인사같은 것이었다.
"꼬마, 왜 날 돕지?"
저 눈, 눈곱만 아니면 굉장히 예뻐보일텐데. 늘 이렇게 물으면 아이는 웃는다. 그리고 다시 수건을 짠 후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바깥으로 먹을 거리를 찾으러 간다. 25년간 찾아 헤메다 일주일만에 찾아낸, 규칙적인 일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아이의 작은 입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꾸물거렸다. 귀엽다, 라기보다......아이는 말했다.
"당신의,"
말을 끊은 아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는 모습. 하지만 여태 이런 적은 없다. 물으면 그저 웃을 뿐,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적은 없었다. 무슨 말일까. 아이가 말을 이었다.
"병, 내가 줬으니까."
"뭐?"
내가 진지하게 놀라며 되물었지만, 아이는 그러고는 더이상 말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다시 수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는 온 힘을 다 줘서 짜고있는 것 같았지만, 저래서는 잘 짜지지도 않을텐데, 저렇게 갸냘퍼서야. 갑자기 아이가 빙긋 웃었다.
"취미거든."
"무슨."
"병 주고 죽을 때까지 돕기."
나는 할 말을 잃고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이 예쁜 애가.
아이는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가 '취미생활'을 즐겼다. 아이가 짜고있는 수건엔 아직 물기가 잔뜩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게 내 베개가 흠뻑 젖은 이유가 아닐까. 아이는 역시 힘이 딸리는지 낑낑대었다. 아이의 수건에 대한 악전고투가 끔찍하도록 예뻐서, 내가 말했다.
"그거 줘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수건을 양손에 들고 배시시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를 보며, 나도 웃었다. 비로소 수건은 몸을 일으킨 내게로 왔고, 차디찬 푸른 벽돌로 쌓은 집에서, 은은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얼룩진 기이한 죽음이 발버둥쳤다. 이내 죽음은 수건에 흠뻑 들어있던 물과 함께 땅으로 툭 떨어졌다. 무게감이 없다. 아이는 나를 죽음으로 가장 늦게 가게 해주는 길잡이로서, 죽음에 먼저 도달했다.
나는 손에서 힘을 뺐다. 확실히, 아이의 취미생활을 금지해버린 것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상당히 고약한 짓임이 틀림없다. 나는 혼잣말처럼 무척 쾌활한 듯이 말했다.
"자, 이제 죽을 때까지 뭘 하지?"
바보같은 소리에 나는 무안해져 침대에 털썩 누웠다. 손에 묻은 물기가 행여나 침대에 묻을세라 손을 들어올렸는데, 참,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차피 곧 내가 마지막으로 죽을텐데. 창으로 백색의 빛이 축복하듯 내게 내리쬐었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마지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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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생각없이 쓰다가 보니 문단 조절이 참...안좋게 되었네요. 5/5 12:33 7번째 수정 완료 (내용 추가, 제목 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