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바퀴
문득 스산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깨어났다. 손바닥 만한 바퀴 하나가 벽을 타고 있었다. 신문지로 치니 배를 까고 툭 떨어졌다. 살이 어찌나 쪘는지 몸을 지탱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여섯 개밖에 되지 않는 다리가 끔찍하게 발버둥치는 것을 신문지로 조심스레 들어다가 그대로 변기에다 버렸다. 그리고 물을 내렸다. 하지만 놈은 변기 안에서 빙글빙글 돌뿐 내려가지를 않았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그대로 두면 익사하겠지 싶어 바퀴를 변기에 내버려두고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보니 놈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바퀴가 헤엄칠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내가 본 놈만 해도 몸을 뒤집지 못하고 요란 떨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물을 내린 건 아닌지, 가족들을 깨워 물어보았지만 밤새 변기를 쓴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힘이 빠져서 구멍 안으로 가라앉아버린 것은 아닐까. 솔로 구멍을 쑤셔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든 놈이 그 안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가능성이라면 도둑고양이가 몰래 화장실까지 침범해서 그 벌레를 집어먹었다든가 하는 허황되었다고 할 만한 것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놈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나는 상상했다. 묵직한 배를 질질 끌며 그 뒤로는 배에서 흘러나온 물기의 자취가 길을 내고 있고, 한줄기 길옆으로 메뚜기마냥 두터운 다리로 도장 찍듯 여섯 개, 여섯 개씩 찍히는 발자국. 마치 각자 따로 노는 듯한 우악스러운 발걸음. 부엌을 범하듯이 느릿느릿 기어가는 한 끔찍한 생명체를. 나는 그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생김새는 도저히 잊히지 않는다. 두 개의 더듬이는 까닥까닥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거는 것 같다. 하지만 미물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다. 침대에 누우면 무언가가 내 머릿속을 기어다닌다.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 나는 그 기괴한 생물체가 고대로부터 살아남은 무언가가 아닌가 생각했다. 바퀴라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그것만의 목숨을(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만) 가지고 수만 년을 견뎌온 것은 아닐까. 결코 일반적인 종으로는 볼 수 없는 놈의 생김새는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본연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지는 동안 음험하고 그늘진 모퉁이에 웅크린 한 생명체를 생각했다. 몸집을 불릴 대로 불려서 결국 육체 하나 유지할 열량을 얻지 못하고 추위와 화산재의 폭풍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비명 속에 죽어갈 수밖에 없는 미련한 생명도 생각했다. 죽어가는 모든 이들을 비웃으면서 놈은 살아남았을 것이다.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길인 가련한 생명체. 모든 시대의 가장 더러운 곳을 누비며 부패한 찌꺼기를 갉아먹다가 땅이 다시 황폐해졌을 때에는 다시 웅크리고 몇백 년이고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놈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놈은 잘못된 시대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놈의 생명력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혐오스런 생명체가 오래 살아봐야 혐오감만이 길게 늘어질 뿐이다. 생명? 도대체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것이 과연 생명이라면 생명의 본질은 끔찍하리만큼 무의미한 것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놈을 죽이기로 했다. 나는 놈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나의 길고 실용적인 다리를 조롱하는 듯한 불균형한 다리와 거울을 우습게 보는 듯한 끊임없는 생존을 나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나는 밤새 놈이 출몰하기를 기다렸다. 빵부스러기를 뿌리고 놈이 냄새를 맡기를 기다렸다. 어둠 속을 노려보며, 나는 놈이 나타나기를 하릴없이 기다렸다.
내 숨소리만이 공기를 가르는 한밤중. 생각대로 놈이 어둠 속에서 기어나왔다. 미끼 냄새를 맡은 건지 아니면 일상적인 산책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놈과 다시 마주치는 데 성공했다.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놈이 사정거리에 들기를 기다렸다가 온 힘을 다해 내려쳤다. 단단한 껍질이 깨지는 느낌이 방망이 끝을 통해 전해져 왔다.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과 함께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발견한 것은 머리에서 검붉은 핏덩이를 쏟은 채 쓰러져 있는 내 아들 녀석이었다. 비릿한 냄새와 녀석의 뱃속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알콜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