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동해의 북방한계선 남쪽.
격랑을 일으키는 밤의 수면 아래로 불온하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 있었다.
수심 50미터 가량에서 시동을 끈 채 해류에 의지해 남하하는 중형 잠수함 한척. 그것은 서방세계에서 '로미오 급'이라 불리우는 잠수함의 북한 생산타입중 하나인 '적랑(赤狼)'이었다.
"함장동무. 남조선 영해의 XX함대 기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적랑의 부함장 '리영민'이 속삭이듯 이렇게 말했다.
"우리 공화국의 정신을 남조선에 보여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
함장 '최철주' 중좌는 씩 웃어보였다.
지금쯤 XX에서 같이 출항한 위스키급 '아랑(餓狼)'과 '흑랑(黑狼)'은 민간 항구의 파괴 공작을 위해 똑같이 해류를 타고 이동중일 것이다. 적랑의 목표는 좀 달랐다. 적랑이 파괴를 명령받은 곳은 동해의 군항(軍港)이었다. 적랑은 장비해 둔 기뢰를 군항에 설치해 함정을 초토화시켜,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적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남하한 것이다. 결국 적랑은 대한민국 적화의 최전선에 첨병으로 선 셈이다.
"주체 101년(서기 2012년) 10월. 우리는 조선의 새 력사를 쓴다."
작전에 대한 성공을 확신하는듯한 최 함장에게 부함장 또한 거들었다.
"2년전 함장동무께서 잠수정으로 남조선의 초계함을 격침시키셨을 때에도 놈들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였습네다. 고저 자기네들끼리 금속이 피로해서 갈라졌다느니, 암초에 부딪쳤다느니, 우리 공화국을 두둔하기 바빴지요."
"그것이 놈들의 한계다. 놈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도 우리를 치지 못함매. 더욱이 미제와의 협약을 파기한 지금에 와서는 더욱더 말이야."
그때 수측관(소나맨)이 둘을 향해 외쳤다.
"5시 방향에서 추진음 접근! 남조선의 구축함입네다!"
"걱정하지마라! 우리는 시동을 껐다. 조용히 하면 우리 위를 그냥 스쳐지나갈 것이야."
함장은 전 승조원에게 침묵을 지시했다. 모든 시동장치까 꺼진 고요 속에서 한국 해군 구축함의 스크류 소리가 점차 가까이 들려왔다.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
모두가 식은 땀을 흘리는 와중에도 함장은 태연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는 해전을 겪었던 인물이기에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함장은 실전을 통해 한국 해군을 다루는 법을 익힌 자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스크류 소리는 위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
"남조선의 개들이여. 지금 실컷 항해해 둬라. 몇시간 뒤면 너희들이 돌아갈 곳은 사라질 테니까."
쿵쿵쿵쿵쿵.
쿵쿵쿵.
쿵쿵.
쿵쿵-
스크류음이 멀어지더니 이내 3시 방향으로 사라졌다. 7시 방향으로 향할 적랑에게 있어 이것은 어느 정도 행운이었다. 이제 적랑은 구축함의 위험성을 하나 덜고 기뢰 설치를 할수 있게 된 것이다.
해류를 타고 두시간 뒤, 함장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좌현 추진기만 10프로로 가동. 부상각 15도. 잠망경 심도에서 고정한다."
적랑의 좌현 스크류가 아주 천천히 돌아가며 함체를 연안으로 이동시켰다. 이제부터는 군항 근처다. 조그마한 실수가 작전 실패와 몰살로 이어지기 때문에 최 함장도 제법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때였을까.
"추진기 완전 정지. 여기서 정지한다."
함장이 정지를 지시한 뒤 잠망경석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잠망경을 올린뒤 수면 위를 관측했다.
"최적이다. 군항 바로 앞이군. 수뢰(기뢰)를 설치하면 이득을 볼수 있겠어."
적랑은 출항하면서 30개의 AMD-1000기뢰를 싣고 왔다. 이정도의 기뢰면 군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엔 충분한 양이다.
"스크류를 아주 천천히 역추진하면서 수뢰를 설치한다."
적랑은 그렇게 천천히 기뢰를 해저에 놓았다. 물속의 덫을 사용한 붉은 늑대의 한국 해군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한발, 한발, 기뢰를 조심스럽게 해저에 설치했다. 지금은 가장 어두울 새벽 미명. 함장은 이 어둠이 불길로 환하게 타오르는 것을 보고 싶었다.
"수뢰 30발 전부 설치 완료했습네다."
"계속 저속 역추진. 수뢰의 사정권 밖에서 어뢰발사 준비를 한다."
적랑은 천천히, 들키지 않게 물러나며 함수(艦首)를 군항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함장은 다시 잠망경으로 물 위 정황을 관측했다.
"측은하군. 30개의 덫이 깔린 것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어."
함장은 계속 어뢰를 명중시킬 대상을 찾았다.
저만치에서 정박중인 대형 함정 한척이 보였다. 거리는 약간 멀었지만 어뢰로 명중시키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다. 더욱이 고정된 상태의 함정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거리 4000....우리 어뢰의 사정거리가 4500이니...걸어볼만 하군. 좋아!"
함장은 하전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뢰 1발 주입!"
"주입 완료!"
"어뢰관 주수(注水)!"
"주수 완료!"
4000으로 어뢰의 탄도를 계산해 넣었다. 남은 것은 함장의 발사 지시 뿐이다.
"발사!"
"발사!"
적랑의 함수 발사관에서 어뢰가 솟구쳐 나가며 압축공기를 흩뿌렸다.
"목표와의 거리 3500!....3000!.....2000!....1000!....500!...."
거리가 0이 된 순간, 함장은 잠망경 너머에서 폭발로 인한 물기둥이 하늘높이 치솟는 것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대형 함정은 만신창이가 된 함미에서 2차 폭발을 일으키며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윽고 유류고에 불이 붙으며 3차 폭발. 순식간에 함정과 도크는 불바다가 되었다.
함장은 잠망경을 내리고 승조원들에게 외쳤다.
"우리 공화국의 붉은 이리는 남조선 도당의 함선을 격침시키는데 성공했다!"
좁은 잠수함 내부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것도 잠시,
"추진음 다수 접근! 남조선 고속정들과 초계함입네다!"
"수는?"
"세...셀수 없습네다!"
"음!"
함장은 바라던 바라고 생각했다. 덫에 걸릴 함선을 찾던 늑대에게, 먹잇감이 제발로 온 것이다.
"좌현 추진기 최대추진! 우현 추진기 역으로 최대추진! 이 곳을 벗어난다!"
'벗어난다'는 표현보다는 '유인한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고속정과 초계함이 급속 접근하는 지역은 30개의 기뢰가 깔린 기뢰밭이었으므로.
적랑은 그대로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아서 해안에서 멀어지는듯한 시늉을 했다.
"잠수각 30! 밸러스트 완전 주수! 양측 추진기 최대! 급속 잠수한다!"
잠수해 도망치려는 적랑을 상대로 고속정과 초계함들이 총 출동해 따라잡으려 애썼다. 그 수는 대략 15척 가량.
물론 그들은 적잠수함에 집중하느라 다른 하나를 전혀 알지 못했다.
바로 해저에 설치된 1톤 가량의 기뢰 30발을.
불행히도 가속을 내는 고속정과 초계함의 스크류음은 너무 시끄러웠고, 음향 기뢰의 잠을 깨우기엔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
"콰앙!"
순간 대한민국 해군의 고속정 한척이 폭음과 동시에 하늘로 치솟듯 들썩이더니 반토막나 가라앉았다. 이윽고 다른 고속정 한척도 폭음과 함께 솟구친 물기둥 속으로 사라졌다.
정장들, 함장들이 늑대의 덫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남은 기뢰들이 계속 잠에서 깨어 떠오르며 대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척, 한척 가라앉기 시작하며 전대(戰隊)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미 적랑을 추적할 여유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남은 초계함과 고속정들도 아비규환 속에서 하나둘 폭발을 친구삼아 가라앉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
진동에 함내에 전해질때마다 함장은 수면의 광경을 떠올리며 조소(嘲笑)했다. 지금쯤 군항은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이정도면 적화를 위한 첫 발걸음으로 대성공이다. 지금쯤 아랑과 흑랑도 민간 항구에서 파괴를 수행하고 있을 터. 이제 동해는 더이상 평화로운 해안이 아니다. 바다를 들판삼은 이리떼들의 살육장이 되었을 뿐이다.
"전방에서 추진음! 남조선 구축함입네다!"
수측관의 보고에 함장이 미소지었다.
"이제 임무의 최종단계에 들어갈 때가 되었군..."
수측관이 순간 하이드로폰을 벗으며 외쳤다.
"폭뢰! 폭뢰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폭발이 적랑의 선체를 뒤흔들었다. 한번 흔들릴 때마다 볼트가 떨어져나가며 물이 새어들어왔다. 이대로 가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밸러스트 완전 배수! 부상한다!"
부함장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의 임무는 여기까지임매! 이제 남은 것은 살아서 조국의 통일을 보는 것 뿐이라우!"
"알겠습네다!"
경례를 붙이는 부함장. 그리고 적랑은 수면으로 상승했다.
.
.
.
구축함의 함장은 눈앞에 떠오른 로미오급 잠수함의 모습을 보고 분을 터뜨리려는 것을 겨우 삭혔다. 폭뢰에 맞아 찌그러진 함교에는 백기가 갈려 있었고, 승조원들은 하나둘 선체에서 나와 갑판에 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장이 나와서 의기양양하게 섰다.
"이...이..."
마음같아선 저 교활한 놈들을 모조리 함포로 몰살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국제법상 포로의 대우를 해줘야 하기에 그럴수도 없었다. 동해안의 주요 민간항구가 적잠수함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통신을 들은 직후의 일이라 분노는 더더욱 컸다.
"...포로들을 우리 배로 이동시켜라."
보트로 포로를 이동, 마지막으로 적랑의 함장이 올라타며 구축함의 함장과 대면했다.
"함장 최철주 중좌다. 우리를 국제법에 의거해 신사적으로 대우해 주길 바란다."
"....."
구축함 함장은 생각했다.
'빌어먹을 자식. 법이란 법은 다 어기고 온갖 파괴공작을 펼쳤던 깡패국가의 군대에서 나올 말이더냐.'
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랑의 함장 최철주 중좌가 이렇게 말을 건넸다.
"보아하니 얼마 뒤면 우리 둘의 처지가 역전될 듯 싶슴매."
"뭐라고?"
주먹쥔 손을 부르르 떠는 구축함 함장을 향해 적랑의 함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날, 그날이 오면 말이야."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