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콘라드의 영화 노트
영화 제목 '반두비'는 벵골어로 '(여자)친구'라는 뜻이다. 참으로 달콤한 말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어쩐지 서먹한 기분이 든다. 사내의 까만 피부색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스물 아홉살 이주노동자 카림과, 고단한 열 여덟살 여고생 민서의 첫만남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서 소외된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일은 자석처럼 자연스럽다. 카메라는 이주노동자와 여고생이 세상에서 어떻게 소외되었고 어떻게 분노하고 어떻게 돌파하는지 따라간다. 따라서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 또한 영화에 아주 중요하다. 카림과 민서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름아닌 바로 지금이다. 이명박 정권의 대한민국이다. 영화는 민서처럼 씩씩하고 당차다. 괜히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욕설도 참 시원하게 하는데,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궁금할 정도로 자기 색깔을 똑똑하게 밝힌다. 시대를 통렬하게 고발하는 장면들이 많다. 사장의 뺨을 후리고 '어떤' 신문을 집어 던지며 "이딴 걸 보니까 네가 개같이 살잖아" 하고 윽박지르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카림과 민서 사이를 오가는 감정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종점이다.
카림은 더럽고 힘들고 험한 일을 도맡아 한다. 그래도 돈을 떼먹은 사장에게 1년이 넘도록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실상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카림에게는 사장과 싸울 마땅한 방법이 없다. 거기다 여권 만료 기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한국에 올 때나 떠날 때나 똑같이 가난하다. 카림 같은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를 통하여 일한다. 산업연수제 시절보다는 나은 셈이지만 현행 고용허가제 역시 여러 문제점들이 꼽히고 있다. 그 가운데 역시 핵심은 '단기순환 원칙'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여 이주노동자는 대한민국에서 3년이 넘게 일하지 못한다. 카림이 그래서 불안에 떤다. 이주노동자를 경제의 일회용품으로 쓰고 버리는 식이며 한국 사회의 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에 모든 한국인이 절절히 교육받은 '단일민족'의 신화는 카림을 일상의 영역에서조차 벼랑으로 밀치는 것이다. 단일민족 신화는 유독 백인에게는 힘을 쓰지 못하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카림은 외톨이다.
민서는 영락없이 이명박 시대의 촛불소녀를 닮았다. 열혈소녀 민서는 아마도 백날 빠짐없이 촛불시위에 개근했을 테다. 학교 가방에도 촛불소녀 배지가 붙어 있다. 피가 뜨거워 늘 당당하다. 허나 아빠 없이 허약한 집안과, 돈 없어 다니지 못하는 엠비어학원이 민서를 외롭게 한다. 한국에서 민서도 외톨이다. 그리하여 그 쓸쓸한 연대가 카림과 민서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이들의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다. 당금 현실을 생각하면 피부색이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은 초현실이다. 헌데 [반두비]는 오히려 초현실로 대한민국의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주노동자를 말하며 끔찍한 범죄를 함께 들먹이는 풍경은 곧 광기어린 멸시와 혐오로 번지고야 만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배불뚝이 사장님이든 홀쭉이 일꾼이든 죄다 그들에게 '컴 백 홈'을 외친다. 피부색에 따라 관용과 불관용이 결정되는 이 사회에서 그러한 증상들이 나타나게 하는 병이 무엇인지 곰곰이 살피고자 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끙끙 앓고 있는 병명은 바로 돈이다. 카림의 까만 피부 밑에는 가난의 낙인이 있다. 대한민국 땅에서 가난이란 단지 경제적 궁핍을 뜻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가난이란 인간의 자유 중에서 착취당할 자유, 멸시당할 자유, 불행할 자유를 뺀 모든 행복할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걸 뜻한다. 사람들은 카림의 피부색 이전에 있는 가난을 발견하고 욕지거리를 뱉는다. 바닷가에 꿇어앉아 "우리 모두 노예"라고 울분을 터뜨리는 카림의 말은 올바르다. 방글라데시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모두들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반두비]는 대한민국을 진찰하며 독하게 현실적인 봉우리에 오른다. 거기까지 오르는 길목에 웃음꽃 흐드러지게 피는 독립영화다. [반두비]는 제 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2세 관람가'로 상영되었으며 관객평론가상과 한국장편영화 개봉지원상을 받았다. 덧붙여 올해 7월, 제 11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 초청되는 경사가 났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를 붙였으니 절로 썩은 웃음꽃이 피어오르지 않을 도리 없다. 모두에게 카림과 민서가 외친다. 조금만 마음을 열어! 다음에는 카레를 손으로 먹어보아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