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콘라드의 영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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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프로야스의 [노잉(Knowing, 2009)]은 새로운 계단에 발을 올린 재난 블록버스터다. 지금까지 할리우드는 온갖 영화들로 지구를 괴롭혀왔다. 운석도 있었고, 외계인도 있었고, 환경재해도 있었다. 알렉스 프로야스는 초현실에 있는 것들을 뭉뚱그려 현실 영역으로 끌어오더니 지금껏 재난영화에 숱하게 있었던 관습법들을 죄다 비틀어 낸다. 심지어 해결사 니콜라스 케이지조차 프로야스의 세계에서는 60억 인구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특별하다. [노잉]은 기독교와 외계인을 연결하고 예언자와 지구 멸망을 변주한다. 현실과 초현실이 같은 공간에 쌍둥이처럼 공존하는 괴상한 영화다. 결국에는 주제넘게도 운명결정론과 자유의지론 사이 지리멸렬한 논쟁의 역사조차 쌈싸먹으려 든다. 때문에 짜임새가 허술하고 왠지 설익은 모양이다. [크로우(The Crow, 1994)]나 [다크 시티(Dark City, 1998)]의 세기말적 상상력이 [노잉]에 수혈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프로야스식 편집은 이야기의 과잉 혹은 부족을 일으킨다. 끊어야 할 때 더 잇고, 이어야 할 때 끊는 화면이 적잖다. 스릴러로서는 맥이 빠진다. 그래도 [노잉]을 보게 되는 이유는 역시 짬뽕 장르의 묘한 스타일이다. 박제된 역사에서 911 테러를 소환하는 방법은 거의 테러적이다. 종종 나오는 여러 재난 씬은 흔치 않을 정도로 현실감이 싱싱하다. 비행기 추락 직후의 풍경을 잡아내는 순간적인 카메라워크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막바지 부분, 지구를 통째로 구워먹는 태양광의 박진감은 거의 딥임팩트급 명품이다. 어제까지의 할리우드 재난영화를 몸에 익히고 [노잉]을 본다면 아마도 낯설고 불편한 자리가 될 듯싶다. 실은 나 역시 조금 산만하게 볼 밖에 도리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