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콘라드의 영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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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가지 못하여 으악 원통해 땅을 친 이유가 있다. 거기서 [렛 미 인(Lat Den Ratte Komma In, 2008)]이 상영되었기 때문이다. 기회를 놓친 나는 디브이디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나 두손 모아 꼭 쥐고 비칠거렸다. 그러나 이게 웬 기쁜 소식이냐. 집에서 불과 십오 분 거리 대형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틀어준다고 들었을 때 와우우 소리를 친 것이 지나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데려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운이 좋아 어쩌면 서울의 소규모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까 꿈꾸기는 했지만 말이다. 부천에서도 대호평이었다던데 이게 정말 짱짱하게 잘 나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하여튼 놀라운 일이다.
욘 린퀴비스트가 자기 소설을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에게 영화로 만들라고 허락할 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경쟁자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엘리가 여자아이가 아니라 거세된 남자아이였다는 골 때리는 이야기도 그냥 제쳐 두자. 영화에서도 약간의 암시가 주어지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렛 미 인]이 되게 멋있는 공포영화이며 멜로영화라는 것이다. 한국까지 참으로 먼 길을 날아온 스웨덴산 호러는 두고 두고 또 보고 싶을 만하다. 영화는 '열두 살' 먹은 '왕따' 소년과 '열두 살 쯤'의 '흡혈귀' 소녀의 사랑 이야기다. 물론 흡혈귀 나오는 영화도 사랑 이야기도 흔하다. 그러나 오스칼과 이엘리 사이에서는 지금껏 흡혈귀 영화가 가지고 있었던 달뜬 관능이 없다. 매끈한 허벅지와 달콤한 속삭임과 지나치게 빨간 입술을 핥는 혀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두 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데에서 이미 뜨거운 흡혈귀 영화는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렛 미 인]은 온통 싸늘하게 가라앉은 데에서 겨우 살아있는 온기를 보여 준다.
실제로 오스칼과 이엘리가 처한 현실은 살벌하다. 웬만한 여자아이보다도 더 예쁘고 여린 카레 헤레브란트의 용모는 허구헌 날 괴롭힘을 당하는 오스칼 역할에 딱이다. 또한 큰 눈망울을 치켜뜬 리나 레안데르손이 연기한 흡혈귀 이엘리는 창백하게 덧칠되어 설원 배경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이엘리가 사람을 죽이고 피를 쪽쪽 빨아먹을 때 이 작은 아이의 여린 어깨와 등을 보라. 그러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하고 피를 마셔야 하는 흡혈귀의 운명이 처량하다. 스웨덴의 고즈넉한 마을 하얀 눈 위에 뿌려진 피와 늘어진 몸뚱이는 더욱 선명하고 끔찍하다. 정작 신체 훼손은 그리 강한 수준이 아니지만 영화의 하얀 배경이 붉은 살인을 똑똑히 뇌리에 새겨놓는 것이다. 호수에도 얼음이 진짜 꽁꽁 얼었던데 아마도 두 아이가 영화 찍으면서 엄청 고생했을 법하다. 특히 이엘리는 처음 나올때 반팔 옷을 입었던데 떠올리기만 해도 춥다. 스웨덴이 한국보다 덜 춥지는 않을 텐데.
오스칼은 언제나 작은 칼을 가지고 다닌다. 학교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지만 언제나 상상 속에서만 그럴 뿐이다. 힘도 없고 용기도 없다. 이엘리는 맞서 싸우라고 부추기고 오스칼은 역기를 열심히 들며 운동을 한다. 오스칼이 이엘리 같은 힘이 있었다면 당장 놈들을 죽였을지 모른다. 한편 이엘리는 흡혈귀의 무진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결코 생존을 위한 살인 외에는 힘을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함께 지내던 아저씨 하칸에게 피를 구해오라 시키기까지 했다. 이처럼 인간의 비인간성과 비인간의 인간성은 흡혈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둘의 인간성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점점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지는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확실하다. 이엘리는 괴물이다. 괴물에게 사랑을 느끼는 오스칼이나 거기에 함께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이나 이엘리가 인간적이지 않다면 다 불가능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다. 입술에 피를 묻혀가며 키스를 나누는 둘은 완전히 애틋하며 사랑스럽다.
그래도 인간과 흡혈귀의 절망적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를 들여보내 달라'는 제목 자체가 차이를 뜻한다. 아무리 인간적인 흡혈귀라도 끝내 흡혈귀일 뿐이다. 흡혈귀는 인간이 사는 공간에 초대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이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 극복 못할 근원적인 단절이다. 거기에 비극이 있다. 언제나 인간과 흡혈귀의 사랑이 파국으로 끝나는 이유다. 어쩌면 보는 이는 둘의 헌신적인 사랑을 지켜보면서 미래를 의심하기 싫을지 모른다. 오스칼과 이엘리 모두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이고 서로를 보듬어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예쁘고 박수 쳐주고만 싶을 테니까. 하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가지고 기차를 타는 오스칼의 모습에서 나이 먹은 사나이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엘리와 함께 지내던 하칸도 오스칼 같은 꼬마였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오스칼은 흡혈귀가 아니다.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변한다. 몸이 변하는 만큼이나 말이다. 둘의 뒷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남겨 둔다. 영화가 끝나고 화면이 암전되면 살짝 눈을 감고 둘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마침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닫는 음악이 가만히 생각에 잠기기에 무척 좋다. 즐겁게 모스 부호를 그리며 활짝 웃는 오스칼이 눈에서 지워지지 않아 나는 좀체 자리를 뜨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