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콘라드의 영화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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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의 결정판을 만나려면 단연 오손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The Lady From Shanghai, 1947)]을 볼 일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를 고려하면 로잘린 역의 리타 헤이워즈의 노출도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천재 감독으로서 언제나 첨단을 달리고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던 오손 웰즈다. 이제 오손 웰즈라는 이름은 영국영화사상 최고의 경지로, 그리고 테크닉의 교과서로 불리지만 그 근엄하고 딱딱한 겉모양과는 다르게 몹시 스릴이 있다. 적어도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을 보며 '로즈버드'의 블랙홀에서 헤매다 떡실신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나도 보면서 거듭 졸았다)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뽕짝 필름 느와르는 아주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오손 웰즈는 그야말로 오직 영화를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오손 웰즈는 훌륭한 감독이기 전에 훌륭한 배우였고 마이클 오하라 역을 직접 연기함으로서 하드보일드하고 터프한 싸나이 뱃놈이 되었다. 마이클과 로잘린 간의 성적 긴장감과 비례하여 함께 깊어지는 미스터리를 보고 있으면 각본에서 60년이 넘도록 무엇이 발전했나 싶다. 요즘 사람들은 반전(反轉), 역전하는 영화를 좋아라 하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가 딱이다. 뺨다구를 이쪽으로 후리고 저쪽으로 후리며 노는 솜씨가 역시 비범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저 유명한 거울방 총격씬이다. 거울에 담겨 산산조각 파열되는 형상들과 피냄새에 홀려 서로 물어뜯다 다 뒈졌다는 상어 이야기는 이곳에서 딱 맞아떨어진다. 무수한 형상들로 카피되어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공간의 불안감은 도무지 끝을 짐작할 수 없도록 휘모리 속으로 몰아넣는다. 거울방 총격씬은 무척 유명하여 엄청나게 많은 감독들이 자기 영화에 뚜룩쳤다. 최근 두기봉 감독의 홍콩판 사이코 미스터리 스릴러 [매드 디텍티브(神探, 2007)]도 역시 거울방 총격씬으로 마무리되는데 두기봉의 스타일로 요리하여 알맹이는 거의 완전히 달라졌지만 뿌리에는 오손 웰즈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팜므 파탈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만 말이다. 팜프 파탈은 2차대전 이후 여자들에게 자리를 위협당하는 남자들의 불안과 초조를 대신 이야기한다. 내 짐작이지만 오손 웰즈도 역시 당대의 사나이라서 어찌 달리 끝을 낼 수는 없었을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