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8년 12월 15일 조이SF(http://www.joysf.com)의 자유 게시판에 올라온 '벌거지' 님의 글을 글쓴 분의 허락을 받아 담아온 글입니다.
* 자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므로 논조에 대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글의 게재를 허락해주신 벌거지 님께 감사드립니다.


 거창하게 이해조나 이광수나 김동인이나 문윤성까지 끌어다가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전설 속의 작품들은 도서관에서 찾아 읽으면 됩니다. 과거 한국 문단에서 한 가락 했던 분들이 SF에 관심을 갖고 번안이든 창작이든 비평이든 글을 남 겼다고 추억할 꺼리는 되겠죠. 

 SF 문학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분도 있고, 또 SF 게시판에 국산 SF를 찾는 분도 있고 해서.. 국산 창작 SF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잡담을 좀 늘어놓겠습니다.

 국산 SF 창작물이 어떤 게 있었다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은 잡담글에서 다루기엔 무리한 일이고,
일단 SF 팬덤의 형성과 SF 창작의 발현에서부터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 한국 사회에서는 무언가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PC 통신이라는 것이 차츰 범용화되어가고 있었고, 텔넷 기반의 파란화면이긴 하지만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것이 대중화되고 있었습니다. 케텔을 거쳐 하이텔이 차리를 잡았고, 더불어 천리안이라는 PC 통신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었죠. 

 한국 문단에는 1980년대 말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라는 대형 폭탄이 투하되어 모두를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즘 젊은분들은 '복거일' 이름 석자가 나오면 "수구보수 꼴통의 대표자"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지만, 1987년 당시 <비명을 찾아서>라는 단 한 권의 책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거대 폭탄이었고, 폐쇄적이고 진입장벽이 한 없이 높았던 당시 한국 문단의 양상을 생각해보면 일말의 가능성도 없었던 무대포 도전이 갑작스럽게 거둔 어마어마한 성과였습니다..

 <비명을 찾아서>의 구조가 PKD의 <높은 성의 사나이>를 그대로 모방해서 한국으로 배경만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당시 한국 문단의 유식한 분들이 알 리가 없었습니다 - 장르 소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하여간 대단히 완성도 높고 대체역사물이라는 획기적이고 신기한 장르 소설이 등장하자 문단은 뒤집어져 버렸죠. 이문열이라는 당시 한국 문단과 독서계에서 최고의 인기와 평단의 칭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작가가 <비명을 찾아서>의 구조를 모방한 대체역사소설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를 내 놓았다는 것은 애교에 불과합니다. 복거일은 뭇작가들의 선망어린 시선 속에 일간경제신문에 <역사 속의 나그네>를 연재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각 대학 국문학과와 평단에 있는 분들은 1990년대 초반 SF라는 장르의 가능성에 대해 입방아를 찧고 있었습니다. 

 1993년 하이텔에 <파란 달 아래>가 한국의 기성작가 최초로 PC 통신으로 연재되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을 때, SF 독자들이 복거일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품었는지 작품 후기의 독자들과의 대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992년 고려원에서 출간된 전환기 한국문학 단편집에서는 한국 유슈의 평론가들이 국산 SF 단편을 기대한다고 하면서, 당시 한국문학 평단의 SF라는 장르문학에 호기심을 넘어선 커다란 기대심리를 한 껏 드러내기도 했죠.

 개인적로는 1993년 서강대 국문과 다니던 제 친구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들이 말씀하시길, '앞으로 한국 문단을 리드할 작가로 평론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조정래도 이문열도 박경리도 아닌 복거일이다 - <비명을 찾아서>는 우리 문학의 미래이다'라고 하신다"
 ... 물론 1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되짚어 보건데, 그 이후 단 한 발짝도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한게 아닌가 합니다. 

 각설하고, 1992년... 1차 SF 번역출간 빅뱅이 일어납니다. 당시 SF 번역물이 한꺼번에 노도와 같이 출간된 것에는 몇 가지 사연이 좀 있습니다.

 본래 처음부터 SF를 따로 익히고 공부하고나서 한국에 보급하려고 애썼던 선구자들이 있었습니다. - 해외 유학파이거나, 영미 소설을 원서로 읽다가 SF라는 장르를  잘 이해하게 된 사람들이었죠. 복거일의 경우에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SF 원서를 혼자 읽다가 장르 SF 팬이 되었던 사례입니다. 하여간 이런 학구적인 SF 독자들은 나름대로 따로 SF 연구회를 꾸려서 SF 보급에 나섭니다.

 그리고 <비명을 찾아서> 덕분에 출판을 하는 분들이 SF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문단과 출판계에 SF도 아주 훌륭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꽤 퍼져나가면서, 그럼 세계적인 SF 명작을 한 번 찍어보자라는 식의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또 한 가지, 사회과학서적을 찍던 운동권 출판사들이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던 시기였습니다.
운동권의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지만, 1987년 민주화 투쟁이 승리로 끝나자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졌습니다. 한 때 해금 서적을 찍고 해빙 분위기를 돋구는 역할을 하면서 사회과학 서적을 맹렬하게 찍었지만, 젊은 대학생들이 더 이상 그런 무거운 책들은 사 주지 않았죠.
 그렇다고 본격 문학 서적을 찍는 것도 방향이 맞지 않았고, 또 중국이나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을 찍는 방향으로 출판을 해 봐도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것은 사회과학 서적 출판을 계속 하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SF가 그 자리를 파고 듭니다.
 SF는 본질적으로 사회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한 장르입니다. 때문에 운동권 서적을 찍던 출판사들의 방향성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없었죠. 그래서 '백산서당'은 자회사 '현대정보문화사'를 통해 <라마와의 랑데뷰>, <파운데이션>, <로봇> 등을 찍었고, 한국을 대표하는 운동권 출판사였던 '풀빛'은 <듄> 시리즈를 4부까지 펴내는 모험을 합니다. 무수한 고전 SF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수 있었죠.

 평소 찾아볼 수 없었던 SF 들이 서점에 쏟아지자, 낮선 책에 호기심을 느끼고 읽기 시작했다가 열광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이 사람들은 PC 통신을 통해 자신들과 지적 교류가 가능한 이들을 찾아냈습니다. 한국땅에서의 SF 팬덤의 형성이죠. 

 PC 통신 시대에서 하이텔의 전신인 케텔 시대부터, 이미 창작 SF가 통신망에 조금씩 연재되고 있었습니다. 이성수 같은 분은 꽤 자극적이고 잔인한 묘사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들이기는 했지만 하여간 장편 SF를 나름대로 꾸준히 써서 그럭저럭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의 책은 장편이 <마이컴>과 같은 PC 잡지에 연재되기도 했고, 고려원 등의 메인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도 했죠. 이러한 1세대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 창작 멤버로는 듀나, 송경아와 같이 나중에 프로 작가로 성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창작 SF 들이 '서울창작'과 같은 무협지 전문 출판사에서 <창작 기계>라는 단편집으로 출간되기도 했죠. 이후 듀나는 <나비전쟁>이라는 최초의 창작집을 내면서 한국 SF 단편집 중 유일하게 쓸만한 책이라는 평가를 얻습니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앞으로 한국 SF 창작의 미래가 무한히 밝고 빛나게 될 줄만 알았습니다.

 이렇게 SF 팬덤에서 계속 창작이 이루어지고, 도전적인 장편 SF가 몇 편 출간됩니다. 현재는 SF 팬덤으로부터 꽤 많이 멀어진 분이지만, 장강명(테스)이 하이텔 과소동에 연재했던 장편 <클론 프로젝트>는 1996년 턱하니 동아일보사에서 장편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대형 사고를 칩니다. 작가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 쓴 처녀작이지만 나름 탄탄한 문장력에 줄거리 구성이 쓸만했죠. 이 작품을 쓴 장강명님은 [월간 SF 웹진]의 편집자로 나서서 한 때 SF 팬덤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 졸업 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가 된 지금에는 거의 SF 팬덤 활동을 하지 않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 서가에는 <클론 프로젝트>가 나름 소중히 간직되어 있죠. 

 1997년 천문학자 박석재의 <가리봉의 비밀>이 나옵니다. 나중에 <코리안 페스트>라고 제목을 바꾸어 달고 다시 출간되기도 했지만, 어떻든 한 편의 소설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약간 떨어진다손 치더라도 천문학 칼럼으로 더 명성을 얻은 작가의 SF 에 대한 애착이 참 눈물겨웠죠. 

 1999년에 나온 정년철의 <헤테로>는 확실히 물건이었습니다. 아마도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왔으면 그 평가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생학에 대한 통제 사회를 다루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영화 <가타카>보다 나았습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 그냥 매장되고 잊혀지는 것이 슬플 정도였죠. 장강명님이 이거 월척이다라는 평가를 내린 것을 보고 대뜸 서점으로 내달려 사보고 나서, <헤테로>같은 책이 계속 나온다면 한국 SF의 창작 소설도 자리를 잡겠구나라는 생각마저 했었습니다. 

 1999년 두 권의 중요한 창작 SF 단편집이 '국민서관'에서 동시 출간됩니다.
 하나는 듀나의 두 번째 SF 단편집 <면세구역>,
 또 다른 책은 김호진의 SF 단편집 <인디케이터>였습니다.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시절부터 창작 SF 단편으로 주목을 받던 김호진님의 단편을 모은 <인디케이터>는... 개인적으로 어지간한 해외 SF 단편집과 비교해 봐도 별로 꿀릴 게 없다고 봅니다. 듀나의 작품에서 항상 비슷하게 보이는 한계 - 사고의 지평을 더 치열하게 전개하지 못하는 적당한 마무리보다도, <인디케이터>의 치열함과 완성도는 한국 SF 창작의 새로운 지평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될 지경이었죠.
 하지만 이 책은 단발성으로 그칩니다 - 이후 김호진님은 더 이상 SF를 내지 못했으니까요. 올해 (2008년) <우주에서, 이소연입니다>의 필자가 바로 그 김호진님인 것을 보고 혼자서 속으로 감격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제대로 된 SF 작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아직 펜을 놓지는 않았구나 확인한 것이 꽤 기뻤거든요. 

 김호진님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스포츠 서울의 SF 문학상을 집고 넘어가야 하는데, 과거 스포츠 서울에서 SF 문학상을 제정해서 시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김호진님은 1993년 SF 부문 수상자였죠.
 한 때 스포츠서울의 편집국장은 추리소설가 이상우씨였습니다. 이상우씨에 대해 알만한 분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이 분은 한국에서 추리작가로서도 한 시절 김종성과 쌍벽으로 불렸으면서도  
언론계의 경영자로서도 성공해서 한 때 스포츠 신문 업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죠. 스포스서울 편집국장, 일간스포츠 사장, 스포츠투데이 사장, 굿데이 사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추리문학의 출판과 SF 출판은 일본의 하야카와 문고의 사례를 봐도 그렇고 한국의 동서추리문고, 일신추리문고의 예에서 보듯 과거에는 별개일 수 없었습니다.
 이상우씨가 스포츠서울을 편집하던 시절 무려 SF 고전 <솔라리스>가 연재되기도 했고, 추리문학과 SF 문학 신인을 찾는 신춘문예가 스포츠서울에서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상우 본인도 작가인만큼 나름대로 SF를 쓰기도 했죠. 하지만 SF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형편이었기에, SF 문학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1989년 김진우님, 1992년 방재희님, 1993년 김호진님 등이 발굴된 것만 해도 나름대로 꽤 다행스러운 성과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서도... 방재희님은 개인 작품집이나 장편 소설을 단행본으로 따로 내지는 못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의 단편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SF 작가라는 자아를 가지고 계속 작품을 쓰는 몇 안되는 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밖에 말 나온 김에, 추리문학 전문가가 쓴 SF가 과연 쓸만했는가...
 <여명의 눈동자>와 <제 5열>로 유명한 김종성 작가도 1995년 자신의 전집을 내면서 그 중 한 권을 <죽음의 도시>라는 창작 SF 단편집으로 꾸며서 펴낸 적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SF에 무지한 자는 SF를 손 댈 자격이 없다는 말부터 나오는 책이니 원... 차라리 이상우 작가가 SF라고 생각하고 썼던 <컴퓨터 살인> 쪽이 추리문학의 관점에서는 더 나았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또 모르지만 SF라고 보기에는 영 어설프고 무리가 있었지만서도..

 1999년 뜻밖의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우광훈의 <플리머스에서의 즐거운 건맨생활>이 민음사에서 수상하는 '오늘의 작가상'을 받습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다루는 사이버펑크 SF를 표방한 작품이었죠. 신인에게 주는 상이긴 했지만, 한국의 메이저급 대형 문학상을 SF가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단행본으로도 즉각 출간되었고, 몇몇 팬들은 꽤 만족해 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에도 아직까지 한국 땅에서 쓰여진 사이버스페이스를 주제로 한 책 중에는 가장 낫습니다. 

 1999년에는 또 한 권의 괜찮은 SF 단편집이 나옵니다.
 이한음님이 이전부터 과학동아에 연재했던 단편들을 모은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가 출간된 것이죠. 물론 표제작은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컴퓨터 HAL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지만, 수록 단편들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훌륭했습니다. 이는 작가가 SF 매니아니고 SF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2000년 무렵 스포츠투데이에서 SF 신춘문예가 제정됩니다. 물론 과거 스포츠서울에 계셨던 이상우 작가가 스포츠투데이의 CEO로 있었으니, 그 SF 신춘문예라는 행사가 누구 작품인가는 불 보듯 분명한 일입니다. 1999년에서 2000년 사이에 박상준님은 스포츠투데이에 SF 작가를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하였고, SF 신춘문예를 통해 신진 SF 작가까지 발굴하는 일도 진행됩니다. 그래서 2001년 백은영의 <최초의 시간>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죠. 2000년인가는 작가 이름은 잊었지만 <섬>이라는 단편이 당선작이었는데, 작품이 <월광천녀>와 메인 아이디어가 완벽하게 똑같아서 표절 논란이 좀 일었습니다. 스포츠투데이의 SF 신춘문예도 단발성에 그치고, 계속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사실 2000 년대 들어서면서 창작 SF의 기세는 꺽였다고 봐야 합니다. 1999년 봇물처럼 창작 SF 중에서도 쓸만한 수작이 쏟아지던 것을 생각해보면, 갑자기 2000 년대에 접어들면서 창작 SF가 완전히 쓰러지다시피 한 것은 의아할 지경입니다.

 우선 드래곤 라자와 해리 포터 이후 장르문학의 주도권이 팬터지로 넘어가버렸습니다. 10대 독자들은 팬터지만 읽고 소비하게 되었고, SF에는 별반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죠. 창작 SF라는 것은 SF를 읽고 느끼고 소비하는 독자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새로 유입되는 SF 독자들이 그리 많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한국의 양산형 판타지, 혹은 일본의 라이트 노벨 정도를 소비하는 게 전부였죠. 

 2000년대 이후에는, 국산 창작 SF는 씨가 말라가기 시작했고, 새로운 작가도 거의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2002년 인터넷 문학상을 수상한 김지훈의 [L 함수의 연산법]이 나름 정통 SF물로 도전을 시도했지만, 엉성한 마무리로 작품의 완성도가 용두사미가 되면서 작품 내부적으로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이런 책을 그나마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꼽아야 할 정도로 창작 SF가 별로 나오지 못했죠.

 2001년 김진우의 <밀양림>이 나왔죠. 이 분은 본래 1989년 스포츠 서울 SF 신춘문예 당선자입니다. 통 작품을 제대로 내지 못하다가 십 수년 만에 장편 SF로 돌아온 셈이죠. 주로 영화 평론일을 하다가 장편 SF를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작품이 소설이라기보다 영화스럽고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작업도 별로 문학작품답지 않습니다. 

 2001년에는 순수문단의 중견 작가인 윤대녕이 사이버스페이스를 다루는 <사슴벌레 여자>를 펴냈습니다. 나름 엄청난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썼다고는 하지만, 결과물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죠. SF 를 모르는 작가가 문장력만 믿고 SF에 덤빈 결과가 어떤 것인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이문열의<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는 대체역사물이니까 좀 나았죠. 

 하긴 윤대녕의 경우에는 차라리 그럭저럭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2003년 나름 순수문학계의 기대주라는 백민석의 <러셔>가 나왔을 때, 나름 기대를 품고 책을 읽다가 결국 손을 떨면서 쓰러졌습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연재가 되었다고 하는 데 왜 이 정도 쓰레기인지  몰랐던 것인지, 이후 작가가 절필을 선언하고 작품 활동을 그만두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SF를 쓰고 디스토피아물을 쓰고 빅 브라더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런 책을 자기 이름 달고 작품이라고 출판할 지경이라면 향후 작가 활동에 지장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최근의 창작 SF 중 진정 걸출한 물건은 2003년 김영래의 <씨앗>입니다. 본래 이 작가는 <숲의 왕>으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을 때부터 팬터지와 근연성을 보이는 행보를 보이더니, 겉으로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SF라고 할 수 있는 <씨앗>에서 완성도 있는 장르소설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씨앗>은 개인적으로 2000 년대 이후 한국 작가 손에 의해 쓰여진 SF 중 최고작이라고 봅니다.

 듀나는 계속 단편집을 내고 있고, 2002년에 펴낸 세 번째 단편집 <태평양 횡단 특급>이 동인문학상 후보로 결선에 오르는 등 주목을 끌었지만, 2006년 네 번째 단편집 <대리전>과 2007년 다섯 번째 단편집 <용의 이> 등에서 더 이상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 작가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이다라는 느낌을 준 것이 개인적으로 무지하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새로 내는 단편집마다 새로 쓴 작품보다 예전에 발표한 작품을 고쳐서 재수록 한 게 더 많다는 것도 늘 걸리고..

 몇 가지 기이한 국산 창작 SF 작품들을 좀 소개하면...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대중 소설가 오세영이 1999년 <타임 레이더스>를 썼습니다. 시간여행물을 표방한 작품이었는데, 순문학계도 대중문학계도 독자도 SF 팬덤도 모두 이 책을 저버렸습니다. 아무도 얘기를 안하는 것이 답답해서 구해다 보다가,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시간여행만 들어가 있고 제대로 된 비전도 철학도 고민도 없는 멍한 상태의 모험담이죠. 필력도 영 형편없어진 것이 작가가 별 생각없이 마구잡이로 쓴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2006년 조폭 소설 및 기업 소설의 대가인 이원호가 <신의 제국>을 발표했습니다. 솔직히 다 읽지 못했습니다 - 제 정신을 유지하려면 끝까지 못읽겠더군요. SF 팬으로서의 정신 상태를 더 유지하지 못할까 겁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SF 를 모르는 사람이 SF를 업수히 여기고 손을 대면 어떤 참화가 일어나는 가...  과거 김종성의 단편집 <죽음의 도시>의 경우에는 약과였다는 생각이 떠오를 지경이었죠.

 고원정은 <대한제국 일본 침략사> = <횃불>이라는 대하 장편소설을 10 여년 전부터 쓰고 있습니다. 과거 나오던 책 제목을 보면 금새 알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대체역사소설이죠. 흥선대원군과 민비와 개화 세력이 조선 반도에서 막 전쟁을 벌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어마어마한 포부를 지닌 대작이라고 하는데 언제 완성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 복거일의 <역사 속의 나그네>와 비슷한 형국이랄까요.

 2005년 이후에는 김보영이라든지 조금 더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한 번 다루어보기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