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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암흑의 세계
우선 World of Darkness(이하 WoD)라는게 뭔지부터 간단히 설명해야겠군요. WoD는 Vampire: the Masquerade라는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삼은 RPG로 대 힛트를 친 White Wolf Studio에서 만든 세계관입니다. 이 세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눈을 들어 창 밖을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똑같습니다. TV에선 그저 그런 뉴스가 매일 흘러나오고, 어느 동네에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우리들은 매일매일 피곤하게 삶을 이어가는 세상입니다. World of Darkness는 현실의 침울한 분위기가 강조되어 있으며, 그래서 고딕 펑크 세계관이라고 불립니다. 아니, 세상을 우울한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인에게는 전쟁과 불행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고딕 펑크보다 더러운 세상일지도 모르겠군요.
근데 WoD와 현실에 결정적으로 틀린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전설'이라고 믿고 있는 비현실 속의 존재들이 실존합한다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나 워울프나 마법사, 요정과 유령 같은 것들이 말이죠.
WoD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시리즈 RPG들은 그 괴물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해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섹시하고 관능적이며 흡혈을 통해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뱀파이어, 자연의 혼을 대변하고 지켜나가는 수호자 워울프, 믿음과 관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마법사 등등. 소설속에서나 볼 수 있는 쿨하고 특별한 존재들을 게임으로 즐긴다는 점이 사람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어서 WoD 시리즈는 RPG 세계에서 꽤 유명하고 잘나가는 세계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세계관의 교묘한 점은, 현실의 역사를 그대로 가져다쓰되 역사 속에 괴물들을 교묘히 개입시켜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음모론과 설화와 신화와 도시전설과 종말론을 현실에 믹스하고 괴물들의 비극적인 요소를 크게 강조해서 다른 장르들과의 차이점을 강조했습니다. 비극, 이 얼마나 가슴을 진탕시키는 단어입니까. 인간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감정이 즐거움이라면, 인간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저열하고 깊이 잠재된 감정이 슬픔입니다. 비극은 카타르시스를 끌어내기 가장 좋은 도구인 것이지요.
WoD 시리즈는 세계 자체가 말세, 세계 파멸로 다가가고 있음을 밑바탕에 진하게 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왔던 시절의 1st, 그 설정의 폭을 넓히고 확정한 2nd, 그리고 시리즈에서 예고된 종말의 시대 설정인 Revised를 거쳐서 한번 끝이 난 상태입니다. 현재 나오고 있는 WoD는 new World of Darkness 라고 해서 기존의 WoD(대개 old World of Darkness)를 재해석한 새 시리즈입니다. nWoD와 oWoD는 전혀 관계가 없죠.
오늘 할 이야기는 oWoD의 Hunter: the Reckoning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시기인 Revised (1999년)을 배경으로 해서 썰을 풀겠습니다.
괴물들이 넘쳐나는 WoD에서 인간의 입지는 참 좁습니다. 어떤 괴물들이든 보통의 인간 따윈 단숨에 때려죽일수 있지요. 인간들은 약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골치아픈 것은 괴물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겁니다. 심지어 괴물의 조종을 받으면서도 그렇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요!
WoD 세계의 초자연적인 괴물들(Supernatural)들은 인간이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도록 하고 살아갑니다. 모든 WoD 게임들의 기본 법칙이죠. 인간들이 괴물들의 존재를 알아봤자 좋은 일이 없거니와, 인간들이 괴물의 존재를 인지했다가 한번 호되게 데인 적이 있거든요. (중세시대 인퀴지션, 마녀사냥)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괴물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접근하는 모탈(mortal, 필멸자, 인간을 일컬음)이 생기곤 합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괴물들에게 잡혀 죽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기존의 WoD 책은 마치 호러 영화처럼 이야기의 주역은 괴물이고 인간은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 갈갈이 찢겨죽는 3류 엑스트라 조연들입니다만...
Hunter: the Reckoning은 인간의 입장에서 괴물들과 조우하면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냥 인간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특이한? 인간이지만요.
1. 종말의 시작
우선 WoD 세계에서 있었던 커다란 사건을 한가지 이야기해야겠군요. WoD의 시리즈 물이 Revised, 제 3판이 나오면서 WoD 세계관에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합니다. WoD는 원래부터 종말이 고해진 세계이고, 현대라는 시간은 그 종말의 서곡이죠. 종말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리는 대 사건이 1999년에 일어납니다. Week of Nightmares를 선두로 한 일련의 세기말 사건들. 이걸 메이지들은 Avatar Storm이라 부르고, 워울프에서는 Anthelios가 떠올랐다고 말하며 레이쓰들은 Sixth Great Maelstrom이라고 합니다.
Week of Nightmares는, 간단히 말하자면 반신적 존재인 3세대 Antediluvian 뱀파이어 중 라브노스 클랜의 선조인 자파싸수라가 깨어난 사건입니다. 깨어나면 모든 자들의 피를 마셔버릴 것이다 라고 예언되던 그 공포스러운 존재들 중 하나가 결국 깨어나고 만 것입니다. 앤티딜루비안은 일어나자마자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휩쓸고, 가장 강력한 쿠에이진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의 활동을 감시 및 처리하는 테크노크라시가 이런 악몽같은 괴물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죠. 위성궤도 거울로 집광 공격을 가했는데(뱀파이어니까 태양빛이 상극), 그래도 안죽자 핵폭탄 급의 뉴트런 봄을 떨궈서 한방 크게 조진 다음에 다시 위성궤도 거울로 녹여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라브노스는 잔챙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엘더급 쿠에이진, 테크노크라시의 태스크포스, 위성궤도 집광샤워, 뉴트런 봄, 다시 집광 샤워를 뒤집어쓰고 나서야 간신히 사망한 거죠. 근데 이놈의 자파싸수라는 죽어도 그냥 곱게 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Chimestry 디시플린 10도트 능력로 자기 클랜의 모든 자식들이 서로 디아블러리를 하게 전 세계적인 저주를 걸었고, 결국 라브노스 클랜은 거의 사멸하고 말았죠. 그게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또 골치아픈 일이 생겨납니다.
Wraith 세계에서는 서방측 스티지아와 동방측 다크 킹덤 오브 제이드가 열라게 전쟁하고 있다가, 언더월드에 뱀파이어의 고대 도시 Enoch이 숨어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에녹은 뱀파이어 팩션 중에서 가장 수상쩍은 넘들인 트루 블랙 핸드가 비밀기지로 삼고있었죠. 레이쓰 해군은 이 더러운 에녹을 지워버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폭격을 가했고 에녹은 몇주나 버텨냈습니다. 에녹에 있는 트루 블랙 핸드 멤버들도 결코 약하지 않거든요. 결국 레이쓰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공포스런 기억으로 남겨진 무기 - relic 핵폭탄을 사용합니다. 예, 히로시마에 떨어진거 그거가 레이스 세계에도 있습니다. 에녹은 그렇게 해서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죠.(덤으로 트루 블랙 핸드 절멸 ^^;)
근데 타이밍 좋게(아니면 최악으로?) 테크노크라시의 움브라 수색 전문 팩션인 보이드 엔지니어는 다크 움브라에서 오블리비언을 어떻게 처리해볼 생각으로 오블리비언의 아가리에서 두번째 핵을 터트리고 있었단 말이죠. 핵 정도면 오블리비언도 타격을 입겠지! 음하하 하고 실험을 감행했는데...
이 폭발들이 공진을 일으켜서 언더월드 사상 최악의 파멸을 가져온 겁니다. Sixth Great Maelstrom이 발생했습니다. 언더월드가 개쪽이 났고 언더월드와 스킨랜드 간을 가로막는 슈라우드가 찢어지고 최초의 리즌인 페르세포네는 폭풍을 피해 스킨랜드로 달아나고 그 와중에 수많은 망령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지옥에 갖혀 있던 타락천사(Demon)들도 이 틈을 타서 지상으로 달아났지요! 덤으로 이 폭발은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던 메이지들의 아바타도 갈기갈기 찢어버려서 대부분의 메이지들이 죽었습니다. 움브라와 지상 간에는 아바타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영혼을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폭풍이 일어나고 지상과 건틀렛 너머 움브라 간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게 끊겨버립니다. 메이지들은 이걸 아바타 스톰이라고 부릅니다.
지상은 뱀파이어가 날뛰고 악마가 강림하고 악령들이 설쳐대며 일부 악령들은 시체 속에 들어가서 일어나서 좀비가 되거나 리즌으로 부활하는 정말 세계 종말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풍경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아직 그걸 모릅니다.
예, 세계의 주류이자 구성원이며 어리석고 눈이 멀은 우리 가련한 인간들은 아직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인류가 잠자고있는 사이에 세상이 끝장나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무서운 위기가 닥쳤고, 그러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여기에 드디어 Imbued라고 불리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2. Take back the NIGHT!!!
인간들은 초자연적 존재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이성'이라는 것이 그런 존재를 믿지 않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뱀파이어나 워울프 따위가 현실에 실존한다고 믿습니까? 당연히 안빋죠. 헛소리죠 그건.
헌데 우리의 현실과 꼭 닮았지만 전설속 괴물들이 실존하는 WoD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슈퍼내츄럴의 실존을 믿지 않습니다. 봐도 합리화 합니다. 워울프를 본 사람은 그게 전설 속의 워울프라고 생각하기 보단 뭔가 곰 같은걸 보고 착각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회색의 회의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괴물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숨겨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그런 존재들에 대해 무지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조직, 테크노크라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건이 너무 커진 겁니다. 뱀파이어들이 대량 포옹으로 Thin Blood를 양산하기 시작하고 길거리에 좀비가 어슬렁거리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어떤 존재가, 혹은 어떤 '힘'이, 어쩌면 인류의 무의식이, 괴물과 맞딱트린 인간에게 번개같은 깨달음, 진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아주 소수의 인간들이 '슈퍼내츄럴'들의 존재를 직시할수 있게 각성한 것입니다! 예,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잡아먹을 먹잇감을 노리는 좀비를, 내 가족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피를 빠는 뱀파이어를, 인간을 살해하는 워울프, 고블린, 흑마술사 등등의 괴물들의 존재를 불현듯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을 보고, 그 괴물들을 사냥해야 한다고 행동하기로 결심한 인간들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각성하고 사냥하는 존재를 임뷰드(Imbued) 라고 부릅니다. 그저 목격하고 각성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괴물들을 사냥하겠다고, 행동하러 나선 사람만이 헌터가 됩니다.
헌터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던 슈퍼내츄럴들을 사냥하는 자를 가리키는 용어죠. H:tR의 헌터들은 특별히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임뷰드라고 칭하겠습니다.
임뷰드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임뷰드 자신들도 모릅니다. 헌터들이 메신저 라고 칭하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깨달음을 주고 힘을 부여한건 사실인데, 대체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적 존재나 천사일까요? 수호정령일까요? 인류의 무의식이 경고한 것일까요? 정부의 음모? 환각? 여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WoD 책에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요. 임뷰드의 발생에도 '의심스런 썰'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설은 테크노크라시의 개입입니다. 테크노크라시 서플 중에 '평범한 모탈에게 다른 정보를 주지 않은 채로 슈퍼내츄럴의 존재를 보여서 각성을 유도한다' 같은 실험에 대해서 약간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묘한게 임뷰드가 적으로 삼는 슈퍼내츄럴에는 뱀파이어 워울프 메이지 체인즐링 레이쓰 데몬 다른 존재들은 다 있는데 테크노크라시 마법사만 없어요. 왠지 수상쩍지 않습니까? 또 다른 썰로는 아랄루나 기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반신적 존재들이 개입했다 라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임뷰드의 발생에 관한 헌터 스토리텔러 북 기준으로 설정 상의 정설은... 이건 스포일러니까 뺍시다 ^^ 궁금하시면 헌터 스토리텔러 핸드북을 읽어보시면 첫 장에 나옵니다. 아니 스토리텔러 컴패니언이었나? 여튼 스토리텔러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뷰드의 존재 기원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임뷰드가 '보통 사람'이라는 겁니다. 일상에 지친 중년 직장인, 엄지족 여고생, 지팡이 짚고 다니는 할아버지, 애가 둘 있는 아줌마, 취직이 안돼서 힘들어하는 청년... 그런 보통 사람들이 괴물의 존재를 인지한 겁니다. 그냥 인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과 내 친구와 무고한 보통 사람들이 그런 괴물들에게 위협당하고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겁니다. 가슴 속에서 울컥 하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인간은 저런 괴물에게 죽으려고 태어난게 아닙니다! 그렇게 가치없는 존재가 아니죠! 정의감일 수도 있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서 복수를 맹세했을수도 있으며, 그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을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두고볼 수 없다!
보통 사람이, 지극히 평범하고 무력한 보통의 인간이 초자연체의 존재를 자각하고 맞서싸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에 그에게는 특별한 힘이 부여됩니다. 괴물을 보고, 괴물과 상대할 수 있는, 하지만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보잘것 없는 힘이.
메신저는 헌터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그에 맞설 사명과 힘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부여받은 자, Imbued가 됩니다.
3. 비극의 서막
하지만 불행하게도... 임뷰드는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괴물들이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존재지요. 헌터에게 생긴 힘은 무력하게 참살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괴물을 인지하고 그들의 사술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만 주어집니다. 임뷰드는 한손으로 자동차를 집어던질 수 있는 괴물에게 쇠파이프를 꼬나쥐고 달려드는 용감하지만 무모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모탈들은, 다른 사람들은 괴물의 존재를 모릅니다... 기가 막히고 안타깝지만, 다른 인간들의 눈은 멀어있어서 괴물들의 존재를 모릅니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임뷰드가 제아무리 괴물의 존재를 소리높여 말하더라도, 임뷰드는 그저 길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려 한 미치광이로밖에 안보입니다.
그렇습니다. 헌터는 누가 자신들에게 힘을 부여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힘과 사명을 부여했는지도 모르며, 자신들끼리의 믿을만한 조직도 없고, 심지어 자신들이 지키려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합니다. 어떤 만족감도 보상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 싸워야 합니다. 괴물의 존재를 본 이상 일상생활은 끝장나버립니다 - 직장 동료, 학교의 학우,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이웃 속에 그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잠복해있는 것을 보고도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미치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오해합니다! 이런 헛짓거리가 또 없어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보통 인간이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헌터는 합니다. 그래서 헌터인 것입니다.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사르며 세계적인 불합리에 분연히 맞서 일어선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영웅이 임뷰드입니다.
4. Welcome to Hunter-net.org
누가 만들어냈는지 알수 없으며 1999년이 되자 갑자기 생겨난 기원을 알 수 없는 존재들, 임뷰드들은 자신들조차 왜 자신이 헌터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조직성이 떨어집니다. 아니 조직이란거 자체가 없죠. 그리고 조직이 생기더라도 믿을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hunter-net.org라는 헌터 세계의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witness1이라는 닉을 가진 헌터가 (본명은 Kim Sun, 한국계군요 ^^) 친구와 함께 만든 건데, 메일링 리스트와 채팅으로 돌아가는 임뷰드만을 위한 웹사이트입니다. 더미 사이트를 통해서거나 아니면 다른 헌터에게 소개를 받아서만 입장할 수 있죠. 하지만 이 헌터-넷에도 몇번이나 괴물들이 침입한 적이 있습니다. 괴물이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해서 당당히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e-메일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임뷰드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뇌의 마술사도 아니고 SF 영화 속 해커도 아닙니다. 그들의 능력은 아주 범상한 일반인의 범주에 머무를 뿐이죠. 이런 상태에서 헌터-넷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못믿죠. 그래서 헌터-넷에서는 보안을 위해 아주 간단한 방법 - 익명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개인 정보를 짐작해낼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밝히지 말라고 하죠.
임뷰드의 조직은 그래서 극도로 점조직화 해 있습니다. 사실은 조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그저 괴물과 맞서싸우겠다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점점히 뭉치는 일이 간혹 일어날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사람이며 괴물에 대해서 그릇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 속에서 운좋게 다른 헌터와 만나서 손을 잡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게 어떤 큰 조직적인 형태를 갖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누구도 다른 헌터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헌터들을 모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 지시를 내린게 괴물이라면 어쩝니까? 다른 사람이 헌터라는 것은 어떻게 입증합니까? 직접 만나는 수 밖에 없죠. 직접 만나서 헌터라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심지어 개개인의 개성이 다 다릅니다! 리더십을 가진 인물, 헌터-넷에 잠입한 괴물의심요소를 킥밴하는데만 열중하는 인물, 괴물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 네임밸류가 있는 인물, 이런저런 다양한 부분에 오지랖이 넓은 인물, 자신의 목적의식이 뚜렷해서 그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인물, 잘못된 지식으로 언성을 높이는 인물, 그런 인물과 말싸움을 벌이는 인물, 그저 잠수한 채로 지켜만 보는 인물, 헌터-넷에서만 활동하고 현실에서는 활동하지 않는 인물, 다른 헌터의 뒷다마를 까는 인물, 다른 헌터들과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는 인물, 인물, 인물, 인물...
헌터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리고 극도로 혼란스러우며 어떤 기준이 주어지지 않은 존재들이죠. 인터넷의 인간 군상을 그대로 갖다 박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다 다르고,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적의식은 모으다보면 몇가지 경향성으로 분류할수 있게 됩니다. 게임적 메카니즘으로도 존재하고, 일부 헌터들이 관념적으로 주장하는 이론이기도 하죠. 바로 헌터의 성격을 결정짓는 Creed입니다.
* Avenger: 괴물을 '물리친다'는 것에 가장 집중하는 크리드가 어벤저입니다. 괴물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잡아먹고, 이용합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숭고하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지 않습니까? 괴물과 싸우고 괴물을 말살해서 위험을 배제한다! 어벤저는 가장 공격적이고 사냥(the Hunt)에 집중하는 헌터입니다.
* Defender: 하지만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 친구 내 가족 무고한 아이들이 괴물에게 죽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디펜더는 무엇보다도 방어하고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물론 적극적인 방어의 의미로 공세를 주장할 수도 있고, 견고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디펜더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 Innocent: 다른 크리드들이 괴물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이노센트는 그저 순수하게 그들 자체를 보려 합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 하죠. 인간이라고 '다른 면모'가 없겠습니까? 괴물도 그저 이 세상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이해해야 그들에게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순수하게 괴물을 이해하더라도 그에 대한 행동은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위험한 괴물을 용서하려 하기도 하고, 그들을 설득하려 하기도 하고, 그들이 저지른 살인과 죄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 Judge: 괴물을 죽이거나 살리는 것은 그저 대처 말초적인 대처일 뿐입니다. 다른 헌터들도 괴물을 이해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져지 만큼 괴물을 자세히 살피고 판단해서 '심판'을 내리는 자들은 없습니다. 져지는 괴물을 분석하고 괴물의 능력 사용을 막고,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심판을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죄를 저지른 자에게 가장 큰 심판은 바로 그가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죠. 져지의 능력은 괴물들이 자신의 죄악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 Martyr: 이들은 괴물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입니다. 괴물에게서 인간을 보호하든, 혹은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나서서 싸우든, 다른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바에야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입니다. 숭고한 희생의식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선량한 행동일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을 내던지지 않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납득하지 못하는 결벽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무고한 사람에게 달려드는 괴물의 발톱 앞에 자신을 내던져서 다른 이를 지키는 인물입니다.
* Redeemer: 리딤머는 모든 괴물이 악하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노센트와 비슷하죠. 하지만 그들이 '비정상'이라고는 생각하며, 그 상태를 치유하거나 혹은 정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선량하고 회개할 생각이 있는 괴물이라면 설득하고 치유해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줄수 있겠죠. 좀비 같이 치유할 방법이 없는 경우엔 파괴해서 성불시키는게 낫겠죠. 워울프나 흑마술사 같이 치유될 생각이 아예 없는 악한 존재는 깨끗하게 말살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며 맞서 싸웁니다. 가치있는 자는 구원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파괴한다는 것이 리딤머의 믿음입니다.
* Visionary: 비져너리는 다른 헌터들에게 있어 정신적인 리더의 역할을 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괴물을 죽이고 파괴하고 회개시키는 것도 좋습니다만,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계획과 올바른 추구의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비져너리는 이성적인 계획과 감독, 그리고 직감과 영감을 통해서 바른 길을 찾아내는 크리드입니다.
5. Weapons of the HUNT
헌터가 되는 사람들은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메신저도 영 개념없는 존재는 아니어서, 선택받은 자들(혹은 스스로 일어선 자들)에게 그들이 헌터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두가지 힘을 부여합니다.
첫번째가 Conviction 입니다. 헌터의 '신념'이죠. 강철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고 정신을 보호하며 괴물의 존재를 꿰뚫어보는 겁니다. 룰적으로 컨빅션을 사용하면 Second Sight라고 하는 괴물이 만들어낸 환상과 거짓을 꿰뚫고 진면모를 보는 시야를 얻을수 있고, 초자연적인 공포나 정신지배를 즉각 해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터가 사용하는 특수능력 Edge의 판정 롤에서 컨빅션 점수를 사용한 만큼 더해서 Edge를 강화할 수도 있으며, Conviction을 많이 쌓으면 Virtue(Mercy, Vision, Zeal 세가지의 헌터의 미덕)을 올려서 Edge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Edge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엣지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하지만 헌터들은 서로가 사용하는 Edge를 사악하거나 잘못된 힘이라고 인지하지는 않습니다.)
엣지의 발현은 묘해서, 같은 엣지라고 해도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으며 매우 '우연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Cleave라는 엣지는 근접 무기의 공격력을 강화하는 힘입니다. 근데 어떤 헌터는 이걸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그래서 나는 손에서 시뻘건 불검을 뽑아낸다'라는 형태로 쓰기도 하는 반면에, 다른 헌터는 '그냥 쇠파이프로 후리니까 뱀프의 대가리가 터졌다!' 라는 식으로 쓰기도 합니다. Hide 라는 엣지는 이노센트의 대표적인 엣지인데, Hide 엣지를 사용한 이노센트는 괴물의 눈 앞을 지나가도 괴물이 인지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노센트가 너무 순진무구해서 '무해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죠.
6. ...그리고 '적'이 있었다.
헌터가 적으로 삼는 괴물들은 기존의 WoD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삼아온 뱀파이어, 워울프, 메이지, 체인즐링, 레이쓰 따위입니다. 예 예 물론 당신이 이전 룰북으로 플레이 하던 Supernatural-Sexy-Powerful-Allmighty-Genius-Egoist-Gorgeous-간지 guy는 선량하거나 고독하거나 비범하거나 사내답거나 비극적이거나 어쨌든 크고 아름다웠겠죠. 하지만 헌터는 인간이고, H:tR에서는 인간의 입장에서 World of Darkness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전 룰북의 슈퍼내추럴들은 '괴물'입니다.
헌터 북에서는 크로스-오버를 그다지 권장하지 않고 있으며(물론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는 로망이긴 하죠 ^^) 임뷰드가 다른 슈퍼내츄럴들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지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십자가나 마늘로 퇴치한다고 실제로 믿는 헌터가 있습니다. 워울프? 상처입으면 감염될지도 모르고 울프스베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들이 정말로 전설 속의 존재일까요? 아니면 전설이 틀린 걸까요? 모르죠. 알고 싶으면? ...자기 목숨을 걸고 실험해봐야겠죠. 헌터-넷에서 물어본다고 답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몇번의 Hunt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헌터가 전설 속의 뱀파이어의 특징을 진짜라고 고스란히 믿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괴물들이 일부러 자신들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헌터는 항상 탐구적이고 조심스런 접근을 해야 합니다. 괴물의 존재를 인지하면 그 행동을 연구하고 조사해서 어떻게 해가 되는지, 정말로 해가 되는지, 무슨 수단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확신을 의심하고 진실을 추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무모한 공격은...
위에서 헌터의 두가지 능력을 말했죠. 이 능력들은 헌터가 헌터로써 싸울 수 있도록 돕는 큰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게 있다고 헌터가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한손으로 자동차를 들어엎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쥐나 늑대를 부리고 변신하고 저주를 거는 능력만 상대해도 된다면 이런 말 안합니다. 괴물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세계에 잠입해있었고, 인간을 양떼처럼 부리면서 잡아먹거나 이용해왔습니다. 정부, 경찰, 폭력조직, 언론, 금융, 기타 모든 것의 배후에 괴물이 있습니다. 그런 괴물을 어떻게 물리쳐야 할까요? 괴물을 쳐죽이려고 쇠파이프, 산탄총, 기타 손에 쓸 수 있는 무기란 무기는 다 긁어모아서 야밤중에 습격을 했더니 경찰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살인미수로 체포해간다면? 우리 집에 "가족이 화기애애해보이는군" 하고 blackmail이 날아온다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은행 계좌가 정지되며 현상수배가 된다면? 이웃집 사람들이 수근수근 대면서 피하거나 몰래 유리창에 돌을 던지거나 담벼락에다 "창녀" "개X끼" "살인자" 라고 낙서를 한다면? 가족들조차 당신의 고뇌를 이해하지 않고 '당신 미쳤어. 이만 헤어져'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이 꼴을 당하는 주인공은 그런 모든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보통 사람, 바로 당신 같은 인물이라면?
두렵습니까? 그럼 제대로 이해하셨군요. 그것이 바로 헌터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냥에만 집중하는,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헌터라고 해도, 추락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광기의 나락으로 말이죠.
모든 헌터는 조금씩 미쳐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헌터는 미친 놈입니다. 있지도 않은 괴물이 있다고 믿으며, 공포에 떨고, 심지어 괴물과 싸운다고 하니 말이죠! 하지만 헌터는 정말로 미쳐가고 있습니다. 좀비가 사람 시체를 뜯어먹는걸 보고도 태연할 수 있습니까? 뱀파이어가 인간의 마음을 희롱해서 자기 노예로 삼는 것을 보고도 멀쩡할 수 있습니까? 흑마술사가 저주를 걸어서 가족이 죽는 꼴을 보고도 제정신일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다바쳐 괴물을 없애면서도 아무런 만족감이나 희망을 얻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사람다울수 있습니까? 보통 사람이기에 헌터는 못견딥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헌터는 미쳐갑니다. Hunt에 목을 매고 인생을 깎아먹으면서, 후회와 고통에 사무치면서, 정신병과 환각에 시달리면서 이성이 조금씩 붕괴되어 갑니다. 실제로, 헌터는 미쳐갑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인간이 아니라 Hunt 그 자체를 위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Extremist로 변해버립니다. 인간으로 살던 김씨 아저씨는 없어지고, 메신저의 꼭두각시,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화신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모든 헌터는 파멸을 향해 기어가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괴물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마음 속에 정의로운 분노가 존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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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내가 해줄 말은 다 했습니다. 이런 미친 세계 속에서 대체 무엇이 신뢰할만 하겠습니까? 그저, 내가 해준 이야기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BadMidd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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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World of Darkness(이하 WoD)라는게 뭔지부터 간단히 설명해야겠군요. WoD는 Vampire: the Masquerade라는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삼은 RPG로 대 힛트를 친 White Wolf Studio에서 만든 세계관입니다. 이 세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눈을 들어 창 밖을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똑같습니다. TV에선 그저 그런 뉴스가 매일 흘러나오고, 어느 동네에선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우리들은 매일매일 피곤하게 삶을 이어가는 세상입니다. World of Darkness는 현실의 침울한 분위기가 강조되어 있으며, 그래서 고딕 펑크 세계관이라고 불립니다. 아니, 세상을 우울한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인에게는 전쟁과 불행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야말로 고딕 펑크보다 더러운 세상일지도 모르겠군요.
근데 WoD와 현실에 결정적으로 틀린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전설'이라고 믿고 있는 비현실 속의 존재들이 실존합한다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나 워울프나 마법사, 요정과 유령 같은 것들이 말이죠.
WoD를 배경으로 한 일련의 시리즈 RPG들은 그 괴물들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해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섹시하고 관능적이며 흡혈을 통해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뱀파이어, 자연의 혼을 대변하고 지켜나가는 수호자 워울프, 믿음과 관념의 한계를 뛰어넘는 마법사 등등. 소설속에서나 볼 수 있는 쿨하고 특별한 존재들을 게임으로 즐긴다는 점이 사람들에게 제법 인기를 끌어서 WoD 시리즈는 RPG 세계에서 꽤 유명하고 잘나가는 세계관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세계관의 교묘한 점은, 현실의 역사를 그대로 가져다쓰되 역사 속에 괴물들을 교묘히 개입시켜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음모론과 설화와 신화와 도시전설과 종말론을 현실에 믹스하고 괴물들의 비극적인 요소를 크게 강조해서 다른 장르들과의 차이점을 강조했습니다. 비극, 이 얼마나 가슴을 진탕시키는 단어입니까. 인간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쉬운 감정이 즐거움이라면, 인간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저열하고 깊이 잠재된 감정이 슬픔입니다. 비극은 카타르시스를 끌어내기 가장 좋은 도구인 것이지요.
WoD 시리즈는 세계 자체가 말세, 세계 파멸로 다가가고 있음을 밑바탕에 진하게 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왔던 시절의 1st, 그 설정의 폭을 넓히고 확정한 2nd, 그리고 시리즈에서 예고된 종말의 시대 설정인 Revised를 거쳐서 한번 끝이 난 상태입니다. 현재 나오고 있는 WoD는 new World of Darkness 라고 해서 기존의 WoD(대개 old World of Darkness)를 재해석한 새 시리즈입니다. nWoD와 oWoD는 전혀 관계가 없죠.
오늘 할 이야기는 oWoD의 Hunter: the Reckoning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온 시기인 Revised (1999년)을 배경으로 해서 썰을 풀겠습니다.
괴물들이 넘쳐나는 WoD에서 인간의 입지는 참 좁습니다. 어떤 괴물들이든 보통의 인간 따윈 단숨에 때려죽일수 있지요. 인간들은 약합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골치아픈 것은 괴물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겁니다. 심지어 괴물의 조종을 받으면서도 그렇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요!
WoD 세계의 초자연적인 괴물들(Supernatural)들은 인간이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도록 하고 살아갑니다. 모든 WoD 게임들의 기본 법칙이죠. 인간들이 괴물들의 존재를 알아봤자 좋은 일이 없거니와, 인간들이 괴물의 존재를 인지했다가 한번 호되게 데인 적이 있거든요. (중세시대 인퀴지션, 마녀사냥)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괴물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에 접근하는 모탈(mortal, 필멸자, 인간을 일컬음)이 생기곤 합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괴물들에게 잡혀 죽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기존의 WoD 책은 마치 호러 영화처럼 이야기의 주역은 괴물이고 인간은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접근했다가 갈갈이 찢겨죽는 3류 엑스트라 조연들입니다만...
Hunter: the Reckoning은 인간의 입장에서 괴물들과 조우하면서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냥 인간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특이한? 인간이지만요.
1. 종말의 시작
우선 WoD 세계에서 있었던 커다란 사건을 한가지 이야기해야겠군요. WoD의 시리즈 물이 Revised, 제 3판이 나오면서 WoD 세계관에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합니다. WoD는 원래부터 종말이 고해진 세계이고, 현대라는 시간은 그 종말의 서곡이죠. 종말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리는 대 사건이 1999년에 일어납니다. Week of Nightmares를 선두로 한 일련의 세기말 사건들. 이걸 메이지들은 Avatar Storm이라 부르고, 워울프에서는 Anthelios가 떠올랐다고 말하며 레이쓰들은 Sixth Great Maelstrom이라고 합니다.
Week of Nightmares는, 간단히 말하자면 반신적 존재인 3세대 Antediluvian 뱀파이어 중 라브노스 클랜의 선조인 자파싸수라가 깨어난 사건입니다. 깨어나면 모든 자들의 피를 마셔버릴 것이다 라고 예언되던 그 공포스러운 존재들 중 하나가 결국 깨어나고 만 것입니다. 앤티딜루비안은 일어나자마자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휩쓸고, 가장 강력한 쿠에이진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입니다. 초자연적인 존재의 활동을 감시 및 처리하는 테크노크라시가 이런 악몽같은 괴물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죠. 위성궤도 거울로 집광 공격을 가했는데(뱀파이어니까 태양빛이 상극), 그래도 안죽자 핵폭탄 급의 뉴트런 봄을 떨궈서 한방 크게 조진 다음에 다시 위성궤도 거울로 녹여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라브노스는 잔챙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엘더급 쿠에이진, 테크노크라시의 태스크포스, 위성궤도 집광샤워, 뉴트런 봄, 다시 집광 샤워를 뒤집어쓰고 나서야 간신히 사망한 거죠. 근데 이놈의 자파싸수라는 죽어도 그냥 곱게 죽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Chimestry 디시플린 10도트 능력로 자기 클랜의 모든 자식들이 서로 디아블러리를 하게 전 세계적인 저주를 걸었고, 결국 라브노스 클랜은 거의 사멸하고 말았죠. 그게 무려 일주일이나 걸렸습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또 골치아픈 일이 생겨납니다.
Wraith 세계에서는 서방측 스티지아와 동방측 다크 킹덤 오브 제이드가 열라게 전쟁하고 있다가, 언더월드에 뱀파이어의 고대 도시 Enoch이 숨어있는걸 발견했습니다. 에녹은 뱀파이어 팩션 중에서 가장 수상쩍은 넘들인 트루 블랙 핸드가 비밀기지로 삼고있었죠. 레이쓰 해군은 이 더러운 에녹을 지워버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폭격을 가했고 에녹은 몇주나 버텨냈습니다. 에녹에 있는 트루 블랙 핸드 멤버들도 결코 약하지 않거든요. 결국 레이쓰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공포스런 기억으로 남겨진 무기 - relic 핵폭탄을 사용합니다. 예, 히로시마에 떨어진거 그거가 레이스 세계에도 있습니다. 에녹은 그렇게 해서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죠.(덤으로 트루 블랙 핸드 절멸 ^^;)
근데 타이밍 좋게(아니면 최악으로?) 테크노크라시의 움브라 수색 전문 팩션인 보이드 엔지니어는 다크 움브라에서 오블리비언을 어떻게 처리해볼 생각으로 오블리비언의 아가리에서 두번째 핵을 터트리고 있었단 말이죠. 핵 정도면 오블리비언도 타격을 입겠지! 음하하 하고 실험을 감행했는데...
이 폭발들이 공진을 일으켜서 언더월드 사상 최악의 파멸을 가져온 겁니다. Sixth Great Maelstrom이 발생했습니다. 언더월드가 개쪽이 났고 언더월드와 스킨랜드 간을 가로막는 슈라우드가 찢어지고 최초의 리즌인 페르세포네는 폭풍을 피해 스킨랜드로 달아나고 그 와중에 수많은 망령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지옥에 갖혀 있던 타락천사(Demon)들도 이 틈을 타서 지상으로 달아났지요! 덤으로 이 폭발은 무방비로 노출되어있던 메이지들의 아바타도 갈기갈기 찢어버려서 대부분의 메이지들이 죽었습니다. 움브라와 지상 간에는 아바타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영혼을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폭풍이 일어나고 지상과 건틀렛 너머 움브라 간의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게 끊겨버립니다. 메이지들은 이걸 아바타 스톰이라고 부릅니다.
지상은 뱀파이어가 날뛰고 악마가 강림하고 악령들이 설쳐대며 일부 악령들은 시체 속에 들어가서 일어나서 좀비가 되거나 리즌으로 부활하는 정말 세계 종말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풍경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아직 그걸 모릅니다.
예, 세계의 주류이자 구성원이며 어리석고 눈이 멀은 우리 가련한 인간들은 아직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인류가 잠자고있는 사이에 세상이 끝장나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무서운 위기가 닥쳤고, 그러고도 아무런 일이 없을 수가 없지요!
그래서, 여기에 드디어 Imbued라고 불리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2. Take back the NIGHT!!!
인간들은 초자연적 존재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이성'이라는 것이 그런 존재를 믿지 않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뱀파이어나 워울프 따위가 현실에 실존한다고 믿습니까? 당연히 안빋죠. 헛소리죠 그건.
헌데 우리의 현실과 꼭 닮았지만 전설속 괴물들이 실존하는 WoD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슈퍼내츄럴의 실존을 믿지 않습니다. 봐도 합리화 합니다. 워울프를 본 사람은 그게 전설 속의 워울프라고 생각하기 보단 뭔가 곰 같은걸 보고 착각한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회색의 회의주의 때문만이 아니라, 괴물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숨겨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그런 존재들에 대해 무지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조직, 테크노크라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건이 너무 커진 겁니다. 뱀파이어들이 대량 포옹으로 Thin Blood를 양산하기 시작하고 길거리에 좀비가 어슬렁거리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어떤 존재가, 혹은 어떤 '힘'이, 어쩌면 인류의 무의식이, 괴물과 맞딱트린 인간에게 번개같은 깨달음, 진실을 보여준 것입니다.
저 놈은 살아있지 않다
네 친구, 동료의 자리는 다른 것이 차지하고있다
눈을 떠라
인간의 밤을 되찾아라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아주 소수의 인간들이 '슈퍼내츄럴'들의 존재를 직시할수 있게 각성한 것입니다! 예,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잡아먹을 먹잇감을 노리는 좀비를, 내 가족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피를 빠는 뱀파이어를, 인간을 살해하는 워울프, 고블린, 흑마술사 등등의 괴물들의 존재를 불현듯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을 보고, 그 괴물들을 사냥해야 한다고 행동하기로 결심한 인간들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각성하고 사냥하는 존재를 임뷰드(Imbued) 라고 부릅니다. 그저 목격하고 각성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괴물들을 사냥하겠다고, 행동하러 나선 사람만이 헌터가 됩니다.
헌터라는 말은 예전부터 있었던 슈퍼내츄럴들을 사냥하는 자를 가리키는 용어죠. H:tR의 헌터들은 특별히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임뷰드라고 칭하겠습니다.
임뷰드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임뷰드 자신들도 모릅니다. 헌터들이 메신저 라고 칭하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깨달음을 주고 힘을 부여한건 사실인데, 대체 그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신적 존재나 천사일까요? 수호정령일까요? 인류의 무의식이 경고한 것일까요? 정부의 음모? 환각? 여기에는 몇가지 설이 있습니다.
WoD 책에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요. 임뷰드의 발생에도 '의심스런 썰'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설은 테크노크라시의 개입입니다. 테크노크라시 서플 중에 '평범한 모탈에게 다른 정보를 주지 않은 채로 슈퍼내츄럴의 존재를 보여서 각성을 유도한다' 같은 실험에 대해서 약간 언급한 것이 있습니다. 묘한게 임뷰드가 적으로 삼는 슈퍼내츄럴에는 뱀파이어 워울프 메이지 체인즐링 레이쓰 데몬 다른 존재들은 다 있는데 테크노크라시 마법사만 없어요. 왠지 수상쩍지 않습니까? 또 다른 썰로는 아랄루나 기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반신적 존재들이 개입했다 라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임뷰드의 발생에 관한 헌터 스토리텔러 북 기준으로 설정 상의 정설은... 이건 스포일러니까 뺍시다 ^^ 궁금하시면 헌터 스토리텔러 핸드북을 읽어보시면 첫 장에 나옵니다. 아니 스토리텔러 컴패니언이었나? 여튼 스토리텔러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뷰드의 존재 기원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임뷰드가 '보통 사람'이라는 겁니다. 일상에 지친 중년 직장인, 엄지족 여고생, 지팡이 짚고 다니는 할아버지, 애가 둘 있는 아줌마, 취직이 안돼서 힘들어하는 청년... 그런 보통 사람들이 괴물의 존재를 인지한 겁니다. 그냥 인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과 내 친구와 무고한 보통 사람들이 그런 괴물들에게 위협당하고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겁니다. 가슴 속에서 울컥 하는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 인간은 저런 괴물에게 죽으려고 태어난게 아닙니다! 그렇게 가치없는 존재가 아니죠! 정의감일 수도 있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어서 복수를 맹세했을수도 있으며, 그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을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두고볼 수 없다!
싸우자!
보통 사람이, 지극히 평범하고 무력한 보통의 인간이 초자연체의 존재를 자각하고 맞서싸우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에 그에게는 특별한 힘이 부여됩니다. 괴물을 보고, 괴물과 상대할 수 있는, 하지만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하는 보잘것 없는 힘이.
메신저는 헌터에게 진실을 보여주고, 그에 맞설 사명과 힘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부여받은 자, Imbued가 됩니다.
3. 비극의 서막
하지만 불행하게도... 임뷰드는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괴물들이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존재지요. 헌터에게 생긴 힘은 무력하게 참살당하지 않을 정도로만, 괴물을 인지하고 그들의 사술에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만 주어집니다. 임뷰드는 한손으로 자동차를 집어던질 수 있는 괴물에게 쇠파이프를 꼬나쥐고 달려드는 용감하지만 무모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모탈들은, 다른 사람들은 괴물의 존재를 모릅니다... 기가 막히고 안타깝지만, 다른 인간들의 눈은 멀어있어서 괴물들의 존재를 모릅니다. 이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임뷰드가 제아무리 괴물의 존재를 소리높여 말하더라도, 임뷰드는 그저 길거리에서 사람을 죽이려 한 미치광이로밖에 안보입니다.
그렇습니다. 헌터는 누가 자신들에게 힘을 부여했는지, 어떤 목적으로 힘과 사명을 부여했는지도 모르며, 자신들끼리의 믿을만한 조직도 없고, 심지어 자신들이 지키려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합니다. 어떤 만족감도 보상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 싸워야 합니다. 괴물의 존재를 본 이상 일상생활은 끝장나버립니다 - 직장 동료, 학교의 학우, 길거리에 걸어다니는 이웃 속에 그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잠복해있는 것을 보고도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미치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이해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오해합니다! 이런 헛짓거리가 또 없어요! 평범하기 그지 없는 보통 인간이 이런 미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헌터는 합니다. 그래서 헌터인 것입니다.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사르며 세계적인 불합리에 분연히 맞서 일어선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영웅이 임뷰드입니다.
4. Welcome to Hunter-net.org
누가 만들어냈는지 알수 없으며 1999년이 되자 갑자기 생겨난 기원을 알 수 없는 존재들, 임뷰드들은 자신들조차 왜 자신이 헌터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조직성이 떨어집니다. 아니 조직이란거 자체가 없죠. 그리고 조직이 생기더라도 믿을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hunter-net.org라는 헌터 세계의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witness1이라는 닉을 가진 헌터가 (본명은 Kim Sun, 한국계군요 ^^) 친구와 함께 만든 건데, 메일링 리스트와 채팅으로 돌아가는 임뷰드만을 위한 웹사이트입니다. 더미 사이트를 통해서거나 아니면 다른 헌터에게 소개를 받아서만 입장할 수 있죠. 하지만 이 헌터-넷에도 몇번이나 괴물들이 침입한 적이 있습니다. 괴물이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해서 당당히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e-메일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임뷰드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뇌의 마술사도 아니고 SF 영화 속 해커도 아닙니다. 그들의 능력은 아주 범상한 일반인의 범주에 머무를 뿐이죠. 이런 상태에서 헌터-넷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못믿죠. 그래서 헌터-넷에서는 보안을 위해 아주 간단한 방법 - 익명을 사용합니다. 자신의 개인 정보를 짐작해낼수 있는 어떠한 정보도 밝히지 말라고 하죠.
임뷰드의 조직은 그래서 극도로 점조직화 해 있습니다. 사실은 조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그저 괴물과 맞서싸우겠다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점점히 뭉치는 일이 간혹 일어날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통 사람이며 괴물에 대해서 그릇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현실 속에서 운좋게 다른 헌터와 만나서 손을 잡을 수는 있을 지언정 그게 어떤 큰 조직적인 형태를 갖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누구도 다른 헌터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헌터들을 모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 지시를 내린게 괴물이라면 어쩝니까? 다른 사람이 헌터라는 것은 어떻게 입증합니까? 직접 만나는 수 밖에 없죠. 직접 만나서 헌터라는 것을 확인하더라도 심지어 개개인의 개성이 다 다릅니다! 리더십을 가진 인물, 헌터-넷에 잠입한 괴물의심요소를 킥밴하는데만 열중하는 인물, 괴물에 대한 지식이 많아서 네임밸류가 있는 인물, 이런저런 다양한 부분에 오지랖이 넓은 인물, 자신의 목적의식이 뚜렷해서 그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인물, 잘못된 지식으로 언성을 높이는 인물, 그런 인물과 말싸움을 벌이는 인물, 그저 잠수한 채로 지켜만 보는 인물, 헌터-넷에서만 활동하고 현실에서는 활동하지 않는 인물, 다른 헌터의 뒷다마를 까는 인물, 다른 헌터들과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는 인물, 인물, 인물, 인물...
헌터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리고 극도로 혼란스러우며 어떤 기준이 주어지지 않은 존재들이죠. 인터넷의 인간 군상을 그대로 갖다 박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다 다르고,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의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목적의식은 모으다보면 몇가지 경향성으로 분류할수 있게 됩니다. 게임적 메카니즘으로도 존재하고, 일부 헌터들이 관념적으로 주장하는 이론이기도 하죠. 바로 헌터의 성격을 결정짓는 Creed입니다.
* Avenger: 괴물을 '물리친다'는 것에 가장 집중하는 크리드가 어벤저입니다. 괴물이 사람들을 현혹하고, 잡아먹고, 이용합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숭고하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려면 방법은 하나 뿐이지 않습니까? 괴물과 싸우고 괴물을 말살해서 위험을 배제한다! 어벤저는 가장 공격적이고 사냥(the Hunt)에 집중하는 헌터입니다.
* Defender: 하지만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에는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 친구 내 가족 무고한 아이들이 괴물에게 죽고 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디펜더는 무엇보다도 방어하고 수호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물론 적극적인 방어의 의미로 공세를 주장할 수도 있고, 견고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즉각적인 대처를 할 수도 있습니다. 디펜더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 Innocent: 다른 크리드들이 괴물을 '적'으로 간주한다면, 이노센트는 그저 순수하게 그들 자체를 보려 합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려 하죠. 인간이라고 '다른 면모'가 없겠습니까? 괴물도 그저 이 세상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이해해야 그들에게 올바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순수하게 괴물을 이해하더라도 그에 대한 행동은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위험한 괴물을 용서하려 하기도 하고, 그들을 설득하려 하기도 하고, 그들이 저지른 살인과 죄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 Judge: 괴물을 죽이거나 살리는 것은 그저 대처 말초적인 대처일 뿐입니다. 다른 헌터들도 괴물을 이해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져지 만큼 괴물을 자세히 살피고 판단해서 '심판'을 내리는 자들은 없습니다. 져지는 괴물을 분석하고 괴물의 능력 사용을 막고,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심판을 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죄를 저지른 자에게 가장 큰 심판은 바로 그가 자신의 죄를 인지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죠. 져지의 능력은 괴물들이 자신의 죄악을 직면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 Martyr: 이들은 괴물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입니다. 괴물에게서 인간을 보호하든, 혹은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나서서 싸우든, 다른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바에야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입니다. 숭고한 희생의식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선량한 행동일수도 있으며 자기 자신을 내던지지 않으면 '최선을 다했다'고 납득하지 못하는 결벽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무고한 사람에게 달려드는 괴물의 발톱 앞에 자신을 내던져서 다른 이를 지키는 인물입니다.
* Redeemer: 리딤머는 모든 괴물이 악하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이노센트와 비슷하죠. 하지만 그들이 '비정상'이라고는 생각하며, 그 상태를 치유하거나 혹은 정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선량하고 회개할 생각이 있는 괴물이라면 설득하고 치유해서 정상적으로 만들어줄수 있겠죠. 좀비 같이 치유할 방법이 없는 경우엔 파괴해서 성불시키는게 낫겠죠. 워울프나 흑마술사 같이 치유될 생각이 아예 없는 악한 존재는 깨끗하게 말살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세상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하며 맞서 싸웁니다. 가치있는 자는 구원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파괴한다는 것이 리딤머의 믿음입니다.
* Visionary: 비져너리는 다른 헌터들에게 있어 정신적인 리더의 역할을 하기 위한 존재입니다. 괴물을 죽이고 파괴하고 회개시키는 것도 좋습니다만,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계획과 올바른 추구의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비져너리는 이성적인 계획과 감독, 그리고 직감과 영감을 통해서 바른 길을 찾아내는 크리드입니다.
5. Weapons of the HUNT
헌터가 되는 사람들은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메신저도 영 개념없는 존재는 아니어서, 선택받은 자들(혹은 스스로 일어선 자들)에게 그들이 헌터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두가지 힘을 부여합니다.
첫번째가 Conviction 입니다. 헌터의 '신념'이죠. 강철같은 신념으로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고 정신을 보호하며 괴물의 존재를 꿰뚫어보는 겁니다. 룰적으로 컨빅션을 사용하면 Second Sight라고 하는 괴물이 만들어낸 환상과 거짓을 꿰뚫고 진면모를 보는 시야를 얻을수 있고, 초자연적인 공포나 정신지배를 즉각 해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헌터가 사용하는 특수능력 Edge의 판정 롤에서 컨빅션 점수를 사용한 만큼 더해서 Edge를 강화할 수도 있으며, Conviction을 많이 쌓으면 Virtue(Mercy, Vision, Zeal 세가지의 헌터의 미덕)을 올려서 Edge를 올릴 수도 있습니다.
두번째로, Edge라는 능력이 있습니다. 엣지는 말 그대로 '초자연적인 능력'입니다. (하지만 헌터들은 서로가 사용하는 Edge를 사악하거나 잘못된 힘이라고 인지하지는 않습니다.)
엣지의 발현은 묘해서, 같은 엣지라고 해도 다르게 표현될 수도 있으며 매우 '우연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Cleave라는 엣지는 근접 무기의 공격력을 강화하는 힘입니다. 근데 어떤 헌터는 이걸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그래서 나는 손에서 시뻘건 불검을 뽑아낸다'라는 형태로 쓰기도 하는 반면에, 다른 헌터는 '그냥 쇠파이프로 후리니까 뱀프의 대가리가 터졌다!' 라는 식으로 쓰기도 합니다. Hide 라는 엣지는 이노센트의 대표적인 엣지인데, Hide 엣지를 사용한 이노센트는 괴물의 눈 앞을 지나가도 괴물이 인지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노센트가 너무 순진무구해서 '무해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죠.
6. ...그리고 '적'이 있었다.
헌터가 적으로 삼는 괴물들은 기존의 WoD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삼아온 뱀파이어, 워울프, 메이지, 체인즐링, 레이쓰 따위입니다. 예 예 물론 당신이 이전 룰북으로 플레이 하던 Supernatural-Sexy-Powerful-Allmighty-Genius-Egoist-Gorgeous-간지 guy는 선량하거나 고독하거나 비범하거나 사내답거나 비극적이거나 어쨌든 크고 아름다웠겠죠. 하지만 헌터는 인간이고, H:tR에서는 인간의 입장에서 World of Darkness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전 룰북의 슈퍼내추럴들은 '괴물'입니다.
헌터 북에서는 크로스-오버를 그다지 권장하지 않고 있으며(물론 제대로 된 크로스오버는 로망이긴 하죠 ^^) 임뷰드가 다른 슈퍼내츄럴들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지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뱀파이어? 십자가나 마늘로 퇴치한다고 실제로 믿는 헌터가 있습니다. 워울프? 상처입으면 감염될지도 모르고 울프스베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들이 정말로 전설 속의 존재일까요? 아니면 전설이 틀린 걸까요? 모르죠. 알고 싶으면? ...자기 목숨을 걸고 실험해봐야겠죠. 헌터-넷에서 물어본다고 답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몇번의 Hunt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헌터가 전설 속의 뱀파이어의 특징을 진짜라고 고스란히 믿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괴물들이 일부러 자신들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헌터는 항상 탐구적이고 조심스런 접근을 해야 합니다. 괴물의 존재를 인지하면 그 행동을 연구하고 조사해서 어떻게 해가 되는지, 정말로 해가 되는지, 무슨 수단으로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확신을 의심하고 진실을 추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무모한 공격은...
위에서 헌터의 두가지 능력을 말했죠. 이 능력들은 헌터가 헌터로써 싸울 수 있도록 돕는 큰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게 있다고 헌터가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한손으로 자동차를 들어엎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쥐나 늑대를 부리고 변신하고 저주를 거는 능력만 상대해도 된다면 이런 말 안합니다. 괴물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세계에 잠입해있었고, 인간을 양떼처럼 부리면서 잡아먹거나 이용해왔습니다. 정부, 경찰, 폭력조직, 언론, 금융, 기타 모든 것의 배후에 괴물이 있습니다. 그런 괴물을 어떻게 물리쳐야 할까요? 괴물을 쳐죽이려고 쇠파이프, 산탄총, 기타 손에 쓸 수 있는 무기란 무기는 다 긁어모아서 야밤중에 습격을 했더니 경찰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살인미수로 체포해간다면? 우리 집에 "가족이 화기애애해보이는군" 하고 blackmail이 날아온다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은행 계좌가 정지되며 현상수배가 된다면? 이웃집 사람들이 수근수근 대면서 피하거나 몰래 유리창에 돌을 던지거나 담벼락에다 "창녀" "개X끼" "살인자" 라고 낙서를 한다면? 가족들조차 당신의 고뇌를 이해하지 않고 '당신 미쳤어. 이만 헤어져'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이 꼴을 당하는 주인공은 그런 모든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그저 그런 평범한 보통 사람, 바로 당신 같은 인물이라면?
두렵습니까? 그럼 제대로 이해하셨군요. 그것이 바로 헌터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냥에만 집중하는,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헌터라고 해도, 추락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광기의 나락으로 말이죠.
모든 헌터는 조금씩 미쳐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헌터는 미친 놈입니다. 있지도 않은 괴물이 있다고 믿으며, 공포에 떨고, 심지어 괴물과 싸운다고 하니 말이죠! 하지만 헌터는 정말로 미쳐가고 있습니다. 좀비가 사람 시체를 뜯어먹는걸 보고도 태연할 수 있습니까? 뱀파이어가 인간의 마음을 희롱해서 자기 노예로 삼는 것을 보고도 멀쩡할 수 있습니까? 흑마술사가 저주를 걸어서 가족이 죽는 꼴을 보고도 제정신일수 있습니까? 모든 것을 다바쳐 괴물을 없애면서도 아무런 만족감이나 희망을 얻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사람다울수 있습니까? 보통 사람이기에 헌터는 못견딥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헌터는 미쳐갑니다. Hunt에 목을 매고 인생을 깎아먹으면서, 후회와 고통에 사무치면서, 정신병과 환각에 시달리면서 이성이 조금씩 붕괴되어 갑니다. 실제로, 헌터는 미쳐갑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인간이 아니라 Hunt 그 자체를 위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Extremist로 변해버립니다. 인간으로 살던 김씨 아저씨는 없어지고, 메신저의 꼭두각시, 괴물을 사냥하기 위한 화신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모든 헌터는 파멸을 향해 기어가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괴물을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마음 속에 정의로운 분노가 존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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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내가 해줄 말은 다 했습니다. 이런 미친 세계 속에서 대체 무엇이 신뢰할만 하겠습니까? 그저, 내가 해준 이야기가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BadMidd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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