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마당 - 구게시판 모음
글 수 335
서평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
전격문고, 미카게 에이지.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는 전격문고에서 나온 미카게 에이지 씨의 라이트 노벨이다. 장르적으로 구분하자면 카도노 코우헤이의 부기팝 초기 시리즈나 코우다 가쿠토의 Missing과 유사한 미스테리 현대 학원물 쯤이 되겠다.
이 이야기는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와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진다.’의 두 권으로 나누어져 발매되었는데 후자는 아직 구입하지 못한 관계로 본 서평에서는 전자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덧붙여 본 서평은 국내에 들여 온 대원씨아이 발행의 번역본이 아니라 전격문고에서 발간된 일판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는 시간 순으로 배열된 4개의 에피소드와 하나의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에서 카미스 레이나는 조금씩 다르면서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대해서는 네 개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녀는 나(와타시)의 친우. 육상부에 소속되어 있으며, 반은 다르지만 언제나 함께 하교하는 친우.
그녀는 나(보쿠)의 가족을 죽인 미운 원수.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 내 가족을 죽여 놓고도 태평스레 살고 있는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녀는 나(와타시)의 동료. 인간형 에너지를 없애기 위해… 세계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함께 싸우는 동료.
그녀는 나(오레)의….
그녀는 언제나 신비할 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다.
그녀는 당신에게는 무엇…?’ (속표지의 소개말에서)
먼저 각 장의 제목인데, 1장은 사이토 후미, 2장은 코구레 아츠시, 3장은 와쿠이 시즈카, 4장은 토요시나 카즈아키로 각 장의 주인공의 이름이 그대로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각 주인공의 1인칭은 ‘와타시-보쿠-와타시-오레’이며 주인공들과 카미스 레이나의 관계는 ‘우호-적대-우호-적대’의 관계를 이룬다. 1인칭으로는 둘 사이의 연관성이 불분명한 듯 보이지만 이를 주인공의 성별로 치환해 보면 ‘남성-여성-남성-여성’으로 카미스 레이나와의 관계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여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카미스 레이나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런 부분에서부터 이 소설이 구성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인 ‘카미(神)’스 ‘레이(麗)’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책 전반에서 그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표현만이 그녀를 따라다닐 뿐이다. 이름조차도 그녀의 성질을 대변하듯 神이라는 글자와 麗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라이트 노벨치고는 드물게도 삽화가 없다. 작가는 삽화를 배제하고 묘사를 줄여서 카미스 레이나의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지 않음으로서 신비감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배경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리라. 게다가 이것은 4장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정체와도 관련이 있다.
그녀의 정체에 관해서는 1장~4장을 거쳐 점진적으로 편린을 드러낸다. 특히 1,2장의 도입부에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자신에게 있어 카미스 레이나가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리고 4장에서 이윽고 카미스 레이나와 토요시나 카즈아키의 대화를 통해 친절하게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설명해 주는데, 이 부분은 매우 황당하다. 실제로 3장의 와쿠이 시즈카 편에서 초능력 설정이 없었더라면 더욱 황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1~2장을 통해 카미스 레이나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고 3장에서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현실성을 희석한 후 4장에서 카미스 레이나의 황당한 정체를 드러내는 방식은 꽤 신경 썼다고 평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장에서 드러난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다.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현대적인 배경 때문이다. 어쩌면 미스테리는 미스테리로서 남아줬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뜩이나 이야기 구조와 분위기 상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카미스 레이나의 황당한 정체는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에코즈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둘의 유사성보다도 미카게 에이지 씨가 카도노 코우헤이 씨와 똑같은 실수를 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무릇 미스테리와 에로의 요점은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각 주인공들이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알게 되는 과정인데, 2장과 4장, 즉 남성이 주인공인 에피소드에 한해서 카미스 레이나의 흔적을 쫓는 일종의 추리 과정이 보인다는 점이다. 코구레 아츠시는 카미스 레이나에 의한 희생자의 유서를 열람하고, 토요시나 카즈아키는 카미스 레이나의 졸업앨범을 찾아낸다. 반면에, 남성과 여성을 이성과 감성으로 대비시키려고 한 걸까? 여성 주인공들은 좀 더 직관적이다. 특히 1장의 사이토 후미의 경우 일견 그녀가 카미스 레이나의 존재를 표면 그대로 긍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전후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녀야말로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직관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안 물어봐?”
“……뭘?”
키무라 군의 입술의 움직임이 어딘가 어색한 듯 보였다.
“내가 옥상 열쇠를 왜 키무라 군에게 가져오도록 부탁했는지, 그 이유”
키무라 군은 머뭇거렸지만, 이내 ‘어째서?’라고 물었다.
사실은 나도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였다.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준비한 대답은 키무라 군을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정도 괜찮겠지? 어차피 키무라군도, 나와는 관계없는 클래스메이트의 한 사람이니까.
나는 대답했다.
“자그마한 복수.”
…(중략)…
“저기, 키무라 군――”
“――카미스 레이나라는 사람, 알고 있어?”‘(1장 사이토 후미에서)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호러적인 요소가 강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소극적이면서도 누군가를 저주하는 여성의 심리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얘기한 건 사이토의 자살이 아냐.”
“그럼 누군데?”
유우지는 그 녀석의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키무라야.”‘(2장 코구레 아츠시에서)
그녀야 말로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직관하고 자신이 맞이할 파멸을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그 파멸을 남에게 선사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와쿠이 시즈카의 경우는 좀 더 간단하다. 그녀에게는 힌트를 줄 조언자가 있었다, 토요시나 카즈아키가.
‘현실은 어떤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평등하게, 기계적으로, 랜덤하게, 어떤 고려도 사려도 없이 무자비하게 이빨을 들이댄다.
그래――
그 것은 나의 지론이 아니라――
원래는 거짓말이 서투른 카즈아키의, 정직하고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중략)…
“카미스 레이나――”
“……무슨 일?”
“너는 누구야?”‘ (3장 와쿠이 시즈카에서)
간략히 말하자면 카미스 레이나는 결국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심리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그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이다. 그러면 그녀는 왜 여성에게서는 이해자로, 남성에게는 공격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 것은 외부로부터 어떤 심리적 충격이 왔을 때 여성은 이해자를 구하려는 습성이, 남성은 그 사태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를 공격하려는 습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녀차별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동아시아 사회가 남녀차별 적이기에 이 가설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간다.
카미스 레이나는 때로는 절대적인 이해자로서 때로는 모든 분노를 받아낼 원수로서 나타난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정신적 결함을 매워주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파멸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구원의 길을 닫아 놓는 것은 아니다. 1,2장과는 달리 3장과 4장에는 카미스 레이나에 빠져드는 주인공들을 구원하려 애쓰는 조역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한다. 또한 이 부분이 필자가 이 소설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카즈아키는 시즈카를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상처 입히고 만다. 호스미도 카즈아키를 구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카즈아키를 절망에 빠뜨리고 만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누군가를 구하는 방법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대단한 방법이 아니다. 주변인의 관심과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과 관심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 것이 항상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사람은 그 한순간의 엇갈림으로도 파멸할 수 있다.
‘안타까워. 정말로 안타까워.
조금만 더했으면 되는데, 정말로.
나를 바꾸는 데에는――‘ (4장 토요시나 카즈아키에서)
여기에 방법을 알면서도 충분히 실행하지 못하는, 실행했는데도 바람직한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게다가 그런 점에서 4장은 각별하다. 4장의 주인공 토요시나 카즈아키는 적어도 카미스 레이나에게 만큼은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난 그는 승리를 얻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고 결과적으로 그 또한 파멸하고 만다. 일단 카미스 레이나에 직면한 인간은 카미스 레이나에게 승리한 후에도 파멸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 운명론적인 요소야 말로 비극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에필로그에 있다. 에필로그에서 카미스 레이나는 부활, 아니 재등장한다. 그러나 4장에서 카즈아키가 카미스 레이나에게 이기지 않았다면, 혹은 카미스 레이나에게 이기고도 파멸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에필로그에서의 카미스 레이나의 재등장은 싸구려 공포물의 'to be continued'식의 엔딩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3장에서 4장으로 이어지는 전개와 4장의 클라이막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의 마무리야 말로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미카게 에이지 씨의 소설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카게 씨는 계획대로 인물을 쓰고 버린다. 희극을 쓸 때에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비극에서 작가는 이처럼 냉정한 편이 좋다. 이는 후권을 구입하기가 꺼려지는 이유이기도 한데, 4장에서 작가가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에 대해 장황설을 푼 것으로 보아 작가가 카미스 레이나에게 만큼은 일말의 애정을 갖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최후를 다루었을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진다’에는 기대보다도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게다가 만약 ‘여기에 진다’가 ‘여기에 있다’와는 정 반대로 카미스 레이나를 물리치는 내용이라면 그보다 더 큰 실망은 없을 것이다.
문체를 보면 종이가 아까울 정도로 줄 바꿈을 남용한 감이 있다. 장황한 대사와 단문을 번갈아 사용하여 인물 심리의 완급을 표현하려 한 작가의 집착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법은 적재적소에 쓰지 않으면 집중과 환기라는 충분한 효과를 불러오지 못하고 오히려 값싸 보이는 역효과를 불러오는데 개인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웃에 가깝다고 본다. 이런 줄 바꿈의 남용으로 유명한 작품이 바로 Missing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Missing의 탈을 쓴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이 외에 이 작품에는 자잘한 트릭과 반전도 존재하며 비극을 비극답게 만들어주는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도 나쁘지 않을 뿐더러 그 것을 잘 배치해 놓아 시너지 효과를 살린 작품이기도 하다. 단 4장만은 개별 에피소드로서의 가치가 없겠지만 말이다.
감상평을 작성하는 도중에 ‘MB님이 모두 잘 해주실 거야.’ 선거운동원 아줌마의 짤방을 보게 되었다. 카미스 레이나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는 것 같다. 이름난 종교조차 자칫 엇나가면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 사람은 망가지기 쉽고 망가지기 시작한 사람은 구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의외로 시사성이 높은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미카게 에이지 씨의 건필을 기원하며 감상평을 마친다.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
전격문고, 미카게 에이지.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는 전격문고에서 나온 미카게 에이지 씨의 라이트 노벨이다. 장르적으로 구분하자면 카도노 코우헤이의 부기팝 초기 시리즈나 코우다 가쿠토의 Missing과 유사한 미스테리 현대 학원물 쯤이 되겠다.
이 이야기는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와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진다.’의 두 권으로 나누어져 발매되었는데 후자는 아직 구입하지 못한 관계로 본 서평에서는 전자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덧붙여 본 서평은 국내에 들여 온 대원씨아이 발행의 번역본이 아니라 전격문고에서 발간된 일판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있다.’는 시간 순으로 배열된 4개의 에피소드와 하나의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에서 카미스 레이나는 조금씩 다르면서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대해서는 네 개의 이야기를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녀는 나(와타시)의 친우. 육상부에 소속되어 있으며, 반은 다르지만 언제나 함께 하교하는 친우.
그녀는 나(보쿠)의 가족을 죽인 미운 원수. 나는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 내 가족을 죽여 놓고도 태평스레 살고 있는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녀는 나(와타시)의 동료. 인간형 에너지를 없애기 위해… 세계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함께 싸우는 동료.
그녀는 나(오레)의….
그녀는 언제나 신비할 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를 띠고 있다.
그녀는 당신에게는 무엇…?’ (속표지의 소개말에서)
먼저 각 장의 제목인데, 1장은 사이토 후미, 2장은 코구레 아츠시, 3장은 와쿠이 시즈카, 4장은 토요시나 카즈아키로 각 장의 주인공의 이름이 그대로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각 주인공의 1인칭은 ‘와타시-보쿠-와타시-오레’이며 주인공들과 카미스 레이나의 관계는 ‘우호-적대-우호-적대’의 관계를 이룬다. 1인칭으로는 둘 사이의 연관성이 불분명한 듯 보이지만 이를 주인공의 성별로 치환해 보면 ‘남성-여성-남성-여성’으로 카미스 레이나와의 관계와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덧붙여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카미스 레이나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런 부분에서부터 이 소설이 구성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잠시 돌려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인 ‘카미(神)’스 ‘레이(麗)’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책 전반에서 그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이상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표현만이 그녀를 따라다닐 뿐이다. 이름조차도 그녀의 성질을 대변하듯 神이라는 글자와 麗라는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은 라이트 노벨치고는 드물게도 삽화가 없다. 작가는 삽화를 배제하고 묘사를 줄여서 카미스 레이나의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지 않음으로서 신비감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배경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리라. 게다가 이것은 4장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정체와도 관련이 있다.
그녀의 정체에 관해서는 1장~4장을 거쳐 점진적으로 편린을 드러낸다. 특히 1,2장의 도입부에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자신에게 있어 카미스 레이나가 어떤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그리고 4장에서 이윽고 카미스 레이나와 토요시나 카즈아키의 대화를 통해 친절하게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설명해 주는데, 이 부분은 매우 황당하다. 실제로 3장의 와쿠이 시즈카 편에서 초능력 설정이 없었더라면 더욱 황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1~2장을 통해 카미스 레이나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내고 3장에서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현실성을 희석한 후 4장에서 카미스 레이나의 황당한 정체를 드러내는 방식은 꽤 신경 썼다고 평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장에서 드러난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하기 어렵다. 작품 전체를 감싸고 있는 현대적인 배경 때문이다. 어쩌면 미스테리는 미스테리로서 남아줬으면 하는 심리가 작용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뜩이나 이야기 구조와 분위기 상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카미스 레이나의 황당한 정체는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에코즈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둘의 유사성보다도 미카게 에이지 씨가 카도노 코우헤이 씨와 똑같은 실수를 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무릇 미스테리와 에로의 요점은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각 주인공들이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알게 되는 과정인데, 2장과 4장, 즉 남성이 주인공인 에피소드에 한해서 카미스 레이나의 흔적을 쫓는 일종의 추리 과정이 보인다는 점이다. 코구레 아츠시는 카미스 레이나에 의한 희생자의 유서를 열람하고, 토요시나 카즈아키는 카미스 레이나의 졸업앨범을 찾아낸다. 반면에, 남성과 여성을 이성과 감성으로 대비시키려고 한 걸까? 여성 주인공들은 좀 더 직관적이다. 특히 1장의 사이토 후미의 경우 일견 그녀가 카미스 레이나의 존재를 표면 그대로 긍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과 전후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녀야말로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직관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안 물어봐?”
“……뭘?”
키무라 군의 입술의 움직임이 어딘가 어색한 듯 보였다.
“내가 옥상 열쇠를 왜 키무라 군에게 가져오도록 부탁했는지, 그 이유”
키무라 군은 머뭇거렸지만, 이내 ‘어째서?’라고 물었다.
사실은 나도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였다. 어쩌면, 아니 어쩌면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준비한 대답은 키무라 군을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정도 괜찮겠지? 어차피 키무라군도, 나와는 관계없는 클래스메이트의 한 사람이니까.
나는 대답했다.
“자그마한 복수.”
…(중략)…
“저기, 키무라 군――”
“――카미스 레이나라는 사람, 알고 있어?”‘(1장 사이토 후미에서)
이 부분이 이 소설에서 가장 호러적인 요소가 강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소극적이면서도 누군가를 저주하는 여성의 심리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얘기한 건 사이토의 자살이 아냐.”
“그럼 누군데?”
유우지는 그 녀석의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키무라야.”‘(2장 코구레 아츠시에서)
그녀야 말로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를 직관하고 자신이 맞이할 파멸을 예측했을 뿐만 아니라, 그 파멸을 남에게 선사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와쿠이 시즈카의 경우는 좀 더 간단하다. 그녀에게는 힌트를 줄 조언자가 있었다, 토요시나 카즈아키가.
‘현실은 어떤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평등하게, 기계적으로, 랜덤하게, 어떤 고려도 사려도 없이 무자비하게 이빨을 들이댄다.
그래――
그 것은 나의 지론이 아니라――
원래는 거짓말이 서투른 카즈아키의, 정직하고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중략)…
“카미스 레이나――”
“……무슨 일?”
“너는 누구야?”‘ (3장 와쿠이 시즈카에서)
간략히 말하자면 카미스 레이나는 결국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심리적인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그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이다. 그러면 그녀는 왜 여성에게서는 이해자로, 남성에게는 공격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 것은 외부로부터 어떤 심리적 충격이 왔을 때 여성은 이해자를 구하려는 습성이, 남성은 그 사태를 불러온 원인 제공자를 공격하려는 습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남녀차별적인 시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동아시아 사회가 남녀차별 적이기에 이 가설은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간다.
카미스 레이나는 때로는 절대적인 이해자로서 때로는 모든 분노를 받아낼 원수로서 나타난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정신적 결함을 매워주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파멸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구원의 길을 닫아 놓는 것은 아니다. 1,2장과는 달리 3장과 4장에는 카미스 레이나에 빠져드는 주인공들을 구원하려 애쓰는 조역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한다. 또한 이 부분이 필자가 이 소설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카즈아키는 시즈카를 위로하려다가 오히려 상처 입히고 만다. 호스미도 카즈아키를 구하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카즈아키를 절망에 빠뜨리고 만다.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누군가를 구하는 방법으로 작가가 제시하는 것은 대단한 방법이 아니다. 주변인의 관심과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과 관심을 유지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 것이 항상 긍정적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사람은 그 한순간의 엇갈림으로도 파멸할 수 있다.
‘안타까워. 정말로 안타까워.
조금만 더했으면 되는데, 정말로.
나를 바꾸는 데에는――‘ (4장 토요시나 카즈아키에서)
여기에 방법을 알면서도 충분히 실행하지 못하는, 실행했는데도 바람직한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있다.
게다가 그런 점에서 4장은 각별하다. 4장의 주인공 토요시나 카즈아키는 적어도 카미스 레이나에게 만큼은 승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난 그는 승리를 얻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고 결과적으로 그 또한 파멸하고 만다. 일단 카미스 레이나에 직면한 인간은 카미스 레이나에게 승리한 후에도 파멸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이 운명론적인 요소야 말로 비극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장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에필로그에 있다. 에필로그에서 카미스 레이나는 부활, 아니 재등장한다. 그러나 4장에서 카즈아키가 카미스 레이나에게 이기지 않았다면, 혹은 카미스 레이나에게 이기고도 파멸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에필로그에서의 카미스 레이나의 재등장은 싸구려 공포물의 'to be continued'식의 엔딩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3장에서 4장으로 이어지는 전개와 4장의 클라이막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의 마무리야 말로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장점은 미카게 에이지 씨의 소설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카게 씨는 계획대로 인물을 쓰고 버린다. 희극을 쓸 때에는 인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플러스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비극에서 작가는 이처럼 냉정한 편이 좋다. 이는 후권을 구입하기가 꺼려지는 이유이기도 한데, 4장에서 작가가 카미스 레이나의 정체에 대해 장황설을 푼 것으로 보아 작가가 카미스 레이나에게 만큼은 일말의 애정을 갖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최후를 다루었을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진다’에는 기대보다도 실망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게다가 만약 ‘여기에 진다’가 ‘여기에 있다’와는 정 반대로 카미스 레이나를 물리치는 내용이라면 그보다 더 큰 실망은 없을 것이다.
문체를 보면 종이가 아까울 정도로 줄 바꿈을 남용한 감이 있다. 장황한 대사와 단문을 번갈아 사용하여 인물 심리의 완급을 표현하려 한 작가의 집착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식의 기법은 적재적소에 쓰지 않으면 집중과 환기라는 충분한 효과를 불러오지 못하고 오히려 값싸 보이는 역효과를 불러오는데 개인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웃에 가깝다고 본다. 이런 줄 바꿈의 남용으로 유명한 작품이 바로 Missing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Missing의 탈을 쓴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라고 폄하할 수도 있다.
이 외에 이 작품에는 자잘한 트릭과 반전도 존재하며 비극을 비극답게 만들어주는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도 나쁘지 않을 뿐더러 그 것을 잘 배치해 놓아 시너지 효과를 살린 작품이기도 하다. 단 4장만은 개별 에피소드로서의 가치가 없겠지만 말이다.
감상평을 작성하는 도중에 ‘MB님이 모두 잘 해주실 거야.’ 선거운동원 아줌마의 짤방을 보게 되었다. 카미스 레이나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는 것 같다. 이름난 종교조차 자칫 엇나가면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 사람은 망가지기 쉽고 망가지기 시작한 사람은 구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의외로 시사성이 높은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미카게 에이지 씨의 건필을 기원하며 감상평을 마친다.

'카미스 레이나는 여기에 진다'는 별로 실망하지 않으실겁니다. 여기에 '지는' 카미스 레이나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 입니다. 즉, 카미스 레이나 현상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