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예니체리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듰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모모> 본문중에서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을 손에 잡은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책을 든 순간, 내 마음은 머리맡에 잔뜩 쌓인 책무더기, 다가오는 기말고사, 제대로 풀리지를 않는 인간관계, 그외 잡다한 문제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등 그때까지 내 머리속을 괴롭히던 골치아픈 문제대신 그리움과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이 책이 가진 알 수 없는 마법의 힘이었을까?

어느 시골의 원형극장에 고아소녀 모모가 집을 만들어 살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모모의 특별한 매력에 마을사람들과 어린이들은 모모의 친구가 된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모모와 친구들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바로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아 가는 회색신사들이다. 회색신사들은 사람들과 계약을 맺어 시간을 자신으로 만들어 가는 악당들로, 그들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되찾아주는 모모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모모는 시간을 찾는 모험에 나서게 된다.

이 책이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들었을 때, 아마 주자의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 한 순간의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이다(少年易老學難成,一寸光陰不可輕)’과 같은 시간을 아끼라는 내용이리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소설은 ‘시간을 아끼지 말라’라는 주제처럼 느껴졌다.

물론 소설에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아껴서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욕심내고, 더 많이 바쁘게 사는 것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앵무새를 돌보고,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어린이들과 같이 놀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보내라고 말한다.

세상은 바뀌었다. ‘현대’라는 시대가 사람들을 덮치면서 세상은, 그리고 사람들은 바뀌었다. 그때까지 느긋하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은 시간에게, 정확히는 ‘회색신사’들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더 바쁘게, 더 열심히 살게 되었다. 시간을 아낀다고 말하며 조금이라도 ‘쓸데없는’ 시간을 줄이고, 더 유용하고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분명 현대인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더 많은 물건을 손에 넣었을 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서 현대인들은 행복해졌는가? 물질적 풍요를 얻는 대신 많은 것을 잃었다. 시간을 잃었다. 여유를 잃었다. 아이들의 웃음을 잃었다. 이웃과 친구들을 잃었다. 그리고 환상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더 많은 것을 얻으면 얻을수록 정신적인 무언가를 잃고, 더욱더 외로워 졌다.

과연 우리들의 삶은 이대로 행복한가?

작가 미하엘 엔데(1929~1995)는 ‘작가의 짧은 뒷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일인 듯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앞으로 일어날 일인 듯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게는 그래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쩌면 소녀 모모는 우리 앞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모모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회색신사들과 싸우자. 회색신사들이 빼앗아 간 시간을 되찾자. 그리고 다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