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바라타
예니체리

인도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인도인의 정신세계에는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아더왕과 로빈후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중국의 어린이들이 관운장과 노지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면, 인도의 어린이들은 크리슈나와 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마하바라타는4세기무렵 그때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모아서 완성되었다. 그 분량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합친 것의 다섯배와 맞먹는 세계최장편서사시다. 물론 한국의 주해신씨가 영어본을 번역한 한국어본은 완역본은 아니다. 마하바라타에는 판다바형제와 카우라바형제의 전쟁이라는 커다란 이야기의 축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인도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칼리다사가 극화하여 괴테도 극찬했다고 하는 <샤꾼딸라>, 마하트마 간디의 사상의 원점이 된 고대인도철학의 성전인 <바가바드기타>도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이다. 그 외에도, 세간의 인도신화중 절반이상은 마하바라타에 나왔던 이야기일 정도로, 인도각지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 교훈담이 마하바라타에 녹아있다. 마하바라타가 인도신화의 정수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한국어번역본에서는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대폭 삭감되고, 기본적으로는 판다바형제와 카우라바형제의 전기(戰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완역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지만, 본이야기와 상관없는 전설보다는 전기만을 집중적으로 읽고 싶은 독자에게는 오히려 이런 약역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마하바라타자체가 그다지 유명하지 않기에 여기서는 조금 자세하게 줄거리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마하바라타는 바라타왕가의 명군인 판두왕이 현자가 변신한 사슴을 쏘아죽인 벌로, 부인들과 성적 접촉을 가지면 죽게 되는 저주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다행히 판두의 부인 쿤티는 성적접촉없이 신을 소환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비술을 알고 있었고, 또다른 부인인 마드리와 함께 다섯명의 아들을 낳는다. 죽음의 신인 야마의 아들로 다르마(율법)을 준수하는 고지식한 장남 유디슈티라, 바람의 신인 바유의 아들로 백마리의 코끼리의 괴력을 가진 포악한 차남 비마, 신들의 왕인 인드라의 아들로 궁술등 무술에 능한 삼남(꽤 미청년이다) 아르쥬나, 위 의 세 형들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떨어지는 마드리의 쌍둥이 아들 나쿨라와 사하데바들이 바로 후에 판다바형제라고 부리우는 다섯명이다.

판두는 욕정을 참지 못 하고 마드리와 하룻밤을 지낸 후 죽어버린 후, 바라타의 왕위는 판두의 형인 장님왕 드리트라슈트라에게 넘어간다. 드리트라슈트라에게는 카우라바형제라고 불리는 백명의 아들들이 있었다. 판다바형제에 비교당하며 자질이 모자란다는 평을 받고 있던 카우라바형제의 장남, 듀료다나는 드리트라슈트라왕이 죽고 난 후 사람들의 인기를 받고 있는 유디슈티라가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을 걱정하고, 질투심과 열등감을 불태운다. 자라면서 외숙부인 사쿠니의 나쁜 영향을 받은 두료다나는 사촌형제인 판다바들을 죽일 음모를 몇번이나 시행하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판다바형제는 두료다나의 음모를 피해 쫓겨다니는 신세가 된다.

마침내 카우라바형제의 악행을 참지 못한 판다바형제는 마침내 전쟁을 선포한다. 판다바와 카우라바의 두 편으로 나뉜 인도의 수많은 왕들과 영웅들은 쿠루평원에 모여 전쟁을 시작한다. 비슈누의 화신으로 판다바의 최대의 후원자인 크리슈나, 판다바의 장인인 드루파다와 드루파다의 아들인 드리슈타듐나 판다바의 손을 든다. 반면 바라타왕가의 원로로 다르마를 원칙으로 삼아온 비슈마, 브라만출신으로 판다바와 카우라바에게 무술과 경전을 가르친 드로나, 쿤티가 판두와 결혼하기 전에 낳은 태양신 수르나의 아들로 아르쥬나의 최대의 라이벌인 카르나, 나쿨라와 사하데바쌍둥이의 외숙부살리야등은 정의가 판다바의 편에 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없는 사정들때문에 카우라바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영웅들의 18일간의 피로 피를 씼는 전투끝에 판다바가 승리하여 왕위를 되찾고 현명한 정치를 펼치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스승과 일가친척, 형제와 친구들을 전투에서 잃은 슬픔뿐이었다.
잠시 한국의 판타지소설로 이야기를 돌려보고자 한다.

<중국의 무협소설, 서양의 RPG게임,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낳은 국적불명의 사생아>

‘서양무협지’라는 자조섞인 농담으로 언급되고는 하는 한국의 판타지소설에 대한 소위 ‘순수문학’의 평가다.

한국의 판타지소설중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은 ‘(그리스)/북구의 신화- 중세 기사도이야기- 톨킨의 반지의 제왕- D&D로 대표되는 게임룰- 드래곤라자’라는 소위 ‘서양적인’ 세계관의 계보에 한정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소위 ‘한국적판타지’, ‘동양적판타지’가 인구에 회자되고, 이영도의 <~마시는 새>시리즈나 이우혁의 <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 등등 ‘서양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난 세계관의 판타지소설이 반가운 이유는 천편일률적인 ‘서양적인’ 세계관이 식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종래의 판타지소설에서 쓰여온 ‘서양적’세계관을 비판하거나 새로운 세계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지는 않다. 서양적인 세계관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굳이 이영도나 이우혁처럼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근 있었던 홍정훈씨의 D&D표절논란등은 한국의 판타지소설의 획일화된 서양식 세계관의 한계가 드러내고 있지 않나 싶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인도나 중앙아시아, 남미같은 변경지역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편이다. 세계최장편서사시인 <마하바라타>가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같은 서양의 서사시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고 그 영향력도 낮은 것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마하바라타>에는 인도적인 세계관이 녹아있다. <마하바라타>의 전쟁은 신선하다. 마법대신 저주나 맹세가 큰 힘을 발휘하고, 기사도대신 크샤트리아의 의무가 중시되고, 말대신 코끼리와 전차가 전장을 달린다. 수많은 전설과 낭만이 살아 숨쉬는 이 책은 양판소에 질린 한국의 판타지소설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비춰질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인도풍 판타지소설로 그 세계관을 넓히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서사시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