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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살인 사건 - 김상현
김상현은 판타지 작가로서 이미 이름을 알린 사람이라 한다. 하지만 난 그의 판타지 소설을 하나도 읽어보지 못하였다. 대신 정약용 살인 사건이라는 역사 추리물(작가 본인은 역사 보다는 소설에 방점이 찍혀있는 글이라고 말했다)을 읽어 보았을 뿐이다.
작가를 미리 알지 못하고 고른 것이니, 어떤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서점에 갔다가 정약용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만 보고 대뜸 골라잡았을 뿐이었다. 보통 나는 책을 한참 살피고서야 사는 편인데, 이날따라 무슨 일인지 속의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샀던 것에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려서 영원한 제국을 처음 읽었을 때 ‘야, 역사를 소재로 이런 이야기도 만들 수 있구나’싶어 무척 감탄했었다. 정약용이란 말에, 또 살인 사건이란 말에 영원한 제국의 향수가 떠올라 살피지도 않고 골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원한 제국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하였다. 추리 소설에 대한 장르적 열정이나 대중 소설적인 함량은 그런대로 갖추었다고 여기지만, 훌륭한 소설이라 말하기에는 배경과 이야기가 너무 부실하였다. 또 사소한 것으로는 어색한 문장 구사와 속된 말로 사람을 낚기 위한 얼토당토 않은 제목에 대한 분노가 있을 수 있겠다.
우선 배경부터 말하여 보자. 정약용 살인 사건은 역사 소설다운 품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그렇다. ‘선배, 뭐라는데요?’와 같은 너무도 현대적인 말투나 현대인이 사용할 법한 ‘상대적’과 같은 단어 등을 천연덕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다. 정약용 살인 사건에는 이런 일이 너무 많아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건 이야기에 방점을 찍었다는 식의 변명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똑같은 줄거리의 이야기라도 실재했던 배경에서 이루어지느냐, 가상으로 꾸민 배경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그 흥미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상의 공화국에서 어느 대통령이 측근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와 대한민국에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실제 있었던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 배경이 이야기를 탄탄하게 뒷받침할 때는 이야기 자체의 힘을 넘어서 독자를 더욱 깊숙이 끌어들일 수 있지만, 배경이 어설프게 느껴질 때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비웃음을 사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지적은 한편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애당초 현대의 역사 소설에서 진정으로 옛 시대의 말투가 쓰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는 사용하는 어휘는 물론이거니와, 발음도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중, 근세 한국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이는 없을뿐더러,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때문에 현대의 역사 소설가들은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수준을 설정하여 그 안에서 고풍스러운 말투를 구사하고 심지어 창작하기도 한다. 소설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옛 한국어가 아니라 주제와 옛스러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습적인 경향이 이른바 문학의 핍진성이라는 것 아닐까? 하지만 정약용 살인 사건의 말투는 이런 보편성에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문제를 너무 오래 붙들었나? 내가 너무 깐깐하여 별 것 아닌 일을 악착스레 물고 늘어진 것인가? 어차피 추리 소설이니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어서 살펴야 했던 것일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약용 살인 사건은 이야기조차 그렇게 세련되지는 못하였다.
정약용 살인 사건은 추리물이다. 추리물의 생명은 정합성이요, 개연성이다. 하지만 이에도 허술한 부분이 많다. 정약용을 해치려는 조양기의 이유나, 대치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는 부분 등 너무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읽는 이를 떨떠름하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렇듯 개운치 않은 뒷맛이 많이 남아서야 좋은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난 작가가 아직은 아마추어리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 ‘겸양으로라도 사양하는 시늉이라도’와 같은 토씨의 반복들이 너무 잦았다. 이는 마음만 급한 습작생들의 고질적인 실수 아닌가? 역량과 관계없이 퇴고만 성실히 하여도 낫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나 역시 퇴고를 끔찍이 싫어하는 까닭에 이런 잘못을 많이 저지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팔 것이라면 이런 정도는 충분히 살펴 주어야 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한 지적이다. 세상에,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나. 정약용 살인 사건이라니. 이 제목을 읽고 정약용을 누가 죽였나 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물론 정약용 살인 사건이란 제목이 주는 홍보 효과가 엄청날 것은 물정 어두운 나도 알만하다. 하지만 제목이란 것은 당연히 책의 내용을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정말 너무 심각한 사기이다. 작품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제목에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장난을 쳐 놓다니. 책의 홍보에만 눈이 어두워 책의 완성도까지 해쳐서야 상업적으로도 큰 도움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난 이것까지 작가의 잘못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 스스로 이런 제목을 지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 누가 이런 제목을 제공 또는 강요했을까? 누군진 몰라도 그 얄팍한 속셈이 참 얄미울 뿐이다.
보태기 : ‘판타지 팬덤에게 권해주고 싶은 장르문학에 대한 평’이라는 이번 대회의 취지와는 걸맞지 않은 단점 색출 일변도의 감상이지만, 그래도 기왕 쓴 글이라 제출하여 봅니다.
김상현은 판타지 작가로서 이미 이름을 알린 사람이라 한다. 하지만 난 그의 판타지 소설을 하나도 읽어보지 못하였다. 대신 정약용 살인 사건이라는 역사 추리물(작가 본인은 역사 보다는 소설에 방점이 찍혀있는 글이라고 말했다)을 읽어 보았을 뿐이다.
작가를 미리 알지 못하고 고른 것이니, 어떤 기대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더 솔직히 말하면 서점에 갔다가 정약용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만 보고 대뜸 골라잡았을 뿐이었다. 보통 나는 책을 한참 살피고서야 사는 편인데, 이날따라 무슨 일인지 속의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샀던 것에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려서 영원한 제국을 처음 읽었을 때 ‘야, 역사를 소재로 이런 이야기도 만들 수 있구나’싶어 무척 감탄했었다. 정약용이란 말에, 또 살인 사건이란 말에 영원한 제국의 향수가 떠올라 살피지도 않고 골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원한 제국만큼 만족스럽지는 못하였다. 추리 소설에 대한 장르적 열정이나 대중 소설적인 함량은 그런대로 갖추었다고 여기지만, 훌륭한 소설이라 말하기에는 배경과 이야기가 너무 부실하였다. 또 사소한 것으로는 어색한 문장 구사와 속된 말로 사람을 낚기 위한 얼토당토 않은 제목에 대한 분노가 있을 수 있겠다.
우선 배경부터 말하여 보자. 정약용 살인 사건은 역사 소설다운 품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그렇다. ‘선배, 뭐라는데요?’와 같은 너무도 현대적인 말투나 현대인이 사용할 법한 ‘상대적’과 같은 단어 등을 천연덕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다. 정약용 살인 사건에는 이런 일이 너무 많아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건 이야기에 방점을 찍었다는 식의 변명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똑같은 줄거리의 이야기라도 실재했던 배경에서 이루어지느냐, 가상으로 꾸민 배경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그 흥미도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상의 공화국에서 어느 대통령이 측근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와 대한민국에서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실제 있었던 역사를 소재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그 배경이 이야기를 탄탄하게 뒷받침할 때는 이야기 자체의 힘을 넘어서 독자를 더욱 깊숙이 끌어들일 수 있지만, 배경이 어설프게 느껴질 때는 이야기가 그럴 듯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비웃음을 사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지적은 한편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애당초 현대의 역사 소설에서 진정으로 옛 시대의 말투가 쓰이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는 사용하는 어휘는 물론이거니와, 발음도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중, 근세 한국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이는 없을뿐더러, 구사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때문에 현대의 역사 소설가들은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수준을 설정하여 그 안에서 고풍스러운 말투를 구사하고 심지어 창작하기도 한다. 소설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옛 한국어가 아니라 주제와 옛스러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습적인 경향이 이른바 문학의 핍진성이라는 것 아닐까? 하지만 정약용 살인 사건의 말투는 이런 보편성에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문제를 너무 오래 붙들었나? 내가 너무 깐깐하여 별 것 아닌 일을 악착스레 물고 늘어진 것인가? 어차피 추리 소설이니 이야기에 더 중점을 두어서 살펴야 했던 것일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약용 살인 사건은 이야기조차 그렇게 세련되지는 못하였다.
정약용 살인 사건은 추리물이다. 추리물의 생명은 정합성이요, 개연성이다. 하지만 이에도 허술한 부분이 많다. 정약용을 해치려는 조양기의 이유나, 대치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는 부분 등 너무 억지스럽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읽는 이를 떨떠름하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렇듯 개운치 않은 뒷맛이 많이 남아서야 좋은 추리물이라고 할 수 없다.
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난 작가가 아직은 아마추어리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인상까지 받았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꽤 있었다. 무엇보다 ‘겸양으로라도 사양하는 시늉이라도’와 같은 토씨의 반복들이 너무 잦았다. 이는 마음만 급한 습작생들의 고질적인 실수 아닌가? 역량과 관계없이 퇴고만 성실히 하여도 낫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나 역시 퇴고를 끔찍이 싫어하는 까닭에 이런 잘못을 많이 저지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책을 팔 것이라면 이런 정도는 충분히 살펴 주어야 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한 지적이다. 세상에,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나. 정약용 살인 사건이라니. 이 제목을 읽고 정약용을 누가 죽였나 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물론 정약용 살인 사건이란 제목이 주는 홍보 효과가 엄청날 것은 물정 어두운 나도 알만하다. 하지만 제목이란 것은 당연히 책의 내용을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건 정말 너무 심각한 사기이다. 작품의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제목에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장난을 쳐 놓다니. 책의 홍보에만 눈이 어두워 책의 완성도까지 해쳐서야 상업적으로도 큰 도움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난 이것까지 작가의 잘못으로 돌리지는 않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 스스로 이런 제목을 지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 누가 이런 제목을 제공 또는 강요했을까? 누군진 몰라도 그 얄팍한 속셈이 참 얄미울 뿐이다.
보태기 : ‘판타지 팬덤에게 권해주고 싶은 장르문학에 대한 평’이라는 이번 대회의 취지와는 걸맞지 않은 단점 색출 일변도의 감상이지만, 그래도 기왕 쓴 글이라 제출하여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