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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물 익스트림」
“씨발!”
쟝은 소음을 피해 이불을 둘둘 말아 파고들어보았지만 역부족으로 폭발, 어디서 배워먹은 욕을 패밭으며 일어났다.
“뭐야?”
그는 눈을 부라리며 현관문을 열쳤다.
“헤헤.”
“벌써 자냐? 술 사왔다, 술.”
밖에는 이웃원수 두 녀석이 편의점 봉지를 까딱이며 서 있었다. 사이로 언뜻 보인 바깥은 깜깜하고 배때기 꺼진 초승달이 가로등 위에 걸쳐져 있다.
“술? 들어와.”
진의 말에 쟝은 눈깔에 독기를 올린 게 옛날 일이라는 듯 순순히 비켜섰다. 진과 죠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언제나 그렇듯이 난장판이었다. 그들은 책과 옷가지와 가구들이 무법자처럼 늘어져 있는 바닥을 능숙한 솜씨로 팔짝팔짝 뛰어서 좁은 거실로 갔다. 쟝은 부엌으로 가서 머그잔 세 개를 꺼내들고 왔다.
“이거 씻긴 한거?”
죠가 컵을 살펴보다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는 보기보다 깔끔한 성격이었다. 쟝이 그 말을 못들은 척 하면서 비쩍 마른 궁둥짝으로 바닥의 잡동사니들을 비집고 앉을 때, 죠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컵 세 개를 꼼꼼히 비교해가며 가장 청결해 보이는 것을 골라내고 있었고, 진은 비닐봉지에서 사온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다.
“야.. 말린 바나나는?”
미간을 구기며 묻는 쟝에게 진이 검은 봉지에서 마지막 남은 물품-그들의 만년안주-를 꺼내보이자 쟝 떼오도흐 뒤부와는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는 여러 가지가 놓여있었다. 맥주, 소주, 와인, 고구마주, 환타, 생수, 육포, 원산지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자 몇 개, 말린 바나나, 그리고 겉 종이가 거의 다 까지고 녹슬 대로 녹슨 깡통이 하나 있었다.
“뭐여, 이 쓰레긴?”
쟝이 물었다.
“쓰레기 아니라 통조림이다옹.”
죠가 말하자 쟝은 진을 쳐다봤다.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 뚱보가 이걸 돈 받고 팔았다고? 니들 걔한테 오늘 자살할 거라고 말했냐?”
“요, 쟝.”
죠가 쟝을 부르며 캔을 뒤집어 세웠다.
“봐.”
쟝이 들어다보자 우둘두둘한 금속표면에 작은 글씨로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2011.09.09]’
“어제 날짜잖아?”
“그렇다면서 끼워주더라.”
진이 말했다.
“뭔 줄 알고?”
“까보면 알겠지.”
“어제까지잖아.”
“그래도 니네 집 그 어느 것보다 신선해.”
“······.”
쟝은 납득 당했다.
그들 셋은 각자 하나씩 컵을 앞에 놓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구현했다. 쟝은 소주, 고구마주, 환타를 1:1:1로 섞었다. 진은 맥주, 와인, 소주를 1:3:5로 섞었다. 죠는 소주, 생수를 4:1로 섞었다. 쟝은 그런 죠를 약간 경멸스런 표정으로 흘깃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안주봉지들을 전부 개복하여 펼쳐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오래된 통조림만이 남았다. 죠가 쟝의 방 옷장서랍에서 캔 따개를 갖고 왔다.
“어디보자..”
죠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따개를 돌렸다.
개봉의 순간이었다.
“으아!”
죠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캔의 내용물은 그에게 악몽으로 저장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야 진! 이거, 번··,”
죠가 뭔가 말하려는 때 진이 그를 걷어찼다. 신속하고도 잽싸서 쟝은 보지도 못했다.
“뭔데 그래? 이게 뭐야 도대체?”
쟝이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갈색에 주름이 잡혀있는 내용물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진과 죠는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버섯이야.”
죠가 말했다.
“버섯? 너 또 되는 대로 지껄이는 거 아냐? 무슨 버섯인데?”
“음.. 동양버섯.”
“얼씨구.”
통조림을 엎을 기세로 쟝이 코웃음 쳤다.
“한국산 버섯 맞다니까.”
죠가 덧붙였다. 쟝이 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곽진성은 물론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빈 병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덤덤하게 통조림을 음미하던 진이 가장 독하게 마셔대다가 첫 번째로 고꾸라졌고, 다소 입에 안 맞는 듯 통조림을 짓씹던 쟝이 두 번째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체라도 맛보는 듯한 얼굴로 통조림을 삼키던 죠가 쓰러져 잠들었다. 몇 시간 전에 쟝이 그런 죠를 참다못해 한 대 후려쳤었다. 죠는 역습을 시도했고 둘이 티격태격하는 새에 진이 스륵 자빠져선 코를 골아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무차별적인 폭탄음료를 즐겼다. 그건 그들의 복잡미묘한 정신상태와 생득적으로 튼튼한 위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별다른 부작용이란 건 그다지 없었다. 그저 깨어나면 평범한 숙취와 조우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그날 그들의 위장에서 발생했던 불가해한 현상은 90%이상 그 공짜안주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었다.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사카기바라 죠오타로였다. 그는 어떤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어느 바에 앉아있었는데 그 가게엔 바텐더 대신 자동 칵테일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그 기계를 좋아했다. 죠는 잠시 대기표를 들고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가 되자, 언제나 그렇듯이 소주 미즈와리를 마시려고 생수와 소주를 골라 부었다. 기계는 좁고 기다란 대롱에서 시작되어 아래로 가면서 여러 가지 유리잔을 녹여 붙인 것처럼 연결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응? 컵만 주면 알아서 섞어 마실 수 있는데.’
죠는 드물게 효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손이 양쪽에서 온갖 괴악한 음료들을 죠의 유리기계 속에 투하하는 것이었다.
“아놔, 칰쇼-!”
죠는 절망했다. 손의 주인들은 다름 아닌 쟝과 진이었다. 그의 괴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는 느릿하게 진동하면서 액체를 섞어들기 시작했다. 가장 위의 구간에서 뱅글뱅글 돌던 액체들이 이어진 유리관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또다시 젤리처럼 뒹굴던 짬뽕음료수가 다시 아래로, 아래로 이동했다. 마지막 구간에서 춤추는 술을 보며 죠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그 느낌은 확신으로 변했는데, 그의 액체가 미약하게 발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니들 대체 뭘 넣은 거야?”
드물게 그는 인상을 썼다.
“고구마주! 환타! 와인!”
쟝이 외쳤다.
“맥주! 벌레! 소주!”
진이 외쳤다.
“뭐 임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되물었다.
“마셔라! 마셔라!”
진이 소리쳤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쟝이 소리쳤다.
“뭐? 너나 처먹··,”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바의 손님들이 한 입으로 소리쳤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아··!”
군중의 요구는 커져만 갔다. 그 속에 간간히 죠 사이코(쵝오)! 같은 구령도 섞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리하여 죠는 그자신의 본능적인 대중사랑욕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미심쩍은 액체를 원샷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세등등하게 잔을 머리 위에 엎은 그는 문득 부자연스런 고요와 맞닥뜨린다.
“스튜피! 마셨냐? 그걸 마셨어?”
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진짜 그걸 마셨어?”
난감한 얼굴을 한 진이 물었다.
그러고는 죠는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과연 정신 나간 꿈을 꾸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좁고 지저분한 쟝의 아파트 마룻바닥이었다. 여전히 진은 코를 골고 쟝은 이를 갈아대고 있었다.
복통...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헛갈렸다. 배가 고픈 것도 같고 아픈 것도 같고 메슥거리는 것도 같은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죠는 확실한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그는 화장실이 급했던 것이다. 그는 비실비실 일어나 측간을 찾아 기어들었다. 어설픈 휘파람을 불며 볼일을 마치고 나서 물을 내릴 적에, 변기에 담긴 분명 찬란히 발광하는 녹색물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죠는 취기 탓이라며 현상을 외면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죠의 각성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는 거실로 되돌아가 비교적 깨끗한 장소를 찾아 몸을 누이려했는데, 순간 걸림돌이 된 것이 바로 진의 빈티 나는 잠버릇이었다. 공중을 휘적 날아 가르는 녀석의 다리에 걸려 죠는 넘어졌다. 아니, 넘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는 봤다. 바닥을 정면으로. 코가 깨사지기 몹시 적절한 상황이었다. 위기는 비극을, 또는 기지를 유발시키곤 한다. 죠의 경우는 후자에 속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그의 위장 속에 출렁거리던 것이 그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선사하였다.
적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죠는 어둠 속에, 그 카오스와 같은 쟝의 아파트 복도에 오롯이 서 있었다. 상당히 균형이 좋은 그의 실루엣은 밤중에도 퍽 간지나는 것이었으나 그 얼굴만은 얼빠진 얼간이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속으로 ‘다시 자고 싶구나.’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죠는 아까 봐두었던 장소에 누워있었다.
화장실! 죠는 생각했고, 역시나 생각속도보다도 빨리 그는 화장실 앞에 도달해있었다.
“끼-야호!!!!”
그는 승리의 괴성을 지르며 여기저기로 정신 사납게 이동해 다녔다. 그의 두 친구는 그런 소란에도 불구, 깨어날 줄을 몰랐으나.. 사고는 각성과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씨..발..”
죠는 잠꼬대인 듯도 아닌 듯도 한 그 나지막한 욕설에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바닥에서 자신의 발뒤꿈치를 떼어보았다. 그 아래에 쟝의 손꾸락이 깔려있었다.
“썅.... 쥣트!!”
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잠자는 쟝의 코털을 뽑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녀석의 폭력성을 증폭시키는 방법임을 알았던 죠는 몸을 사리며 벽 뒤쪽으로 순간이동했다. 거기서 그는 쟝이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녀석은 몇 번 몸을 뒤틀며 신경질을 부리다가 번뜩 상체를 들었다.
“··뭐야.......”
벽에 바짝 붙어 지켜보던 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쟝의 눈이 마치 야수처럼 번뜩이는 듯 보였다. 물론 쟝은 상황에 따라 다소 흉포한 성품이긴 하였으나, 영 손쓸 데 없는 지경이 아니긴 하였다. 그에겐 참으로 술이 약이었다. 의아할 정도로 쟝은 술 앞에선 얌전해지곤 했다만, 마지막으로 잠든 죠는 지금 이 집구석에 술이라곤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쟝을 손을 더듬어 병들을 기울여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모두 다 빈 것들뿐이었다. 마침내 쟝은 폭발했다.
‘저 새끼는 허구헌날!’
죠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곧 닥쳐올 소음을 대비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순간 그는 보았던 것이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칰쇼! 점마는 왜 또 저기에··!’
포효하는 쟝 근처에 진이 검정색 편의점 봉지를 머리에 쓴 채 골아 떨어져 있었다. 다른 부위들도 쓰레기와 적절히 섞여 쉬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물며 막 깨어난 쟝의 눈엔 전혀 식별되지 않을 터!
진의 머리통은 정확히 쟝이 홧김에 술병을 내리치려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몽롱한 분노로 가득 찬 쟝은 빈 병을 치켜들었다. 방관자이고 싶었던 죠가 다급히 외쳤다.
“진!!!!”
병이 격돌하기 직전에 진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증거로 진의 머리가 움찔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죠가 원했던 형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놀란 진이 머리를 듦으로써 병과 두상이 부딪치는 시각만 빨라졌을 뿐이었다. 쟝도, 진도, 죠도 놀랐다.
“너..너, 왜 갑자기..”
쟝이 말을 더듬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세게 술병을 휘둘렀는지 자각하고 있었다. 진은 과격하게 머리에 쓴 봉지를 뜯어버렸다.
“....이 새끼가 자는 사람 머리를 까?”
그는 눈을 부라리며 뇌까렸다.
“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쟝은 전에 없이 크게 당황했다. 진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허용 범위가 넓은 그가 단 한 가지 질색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머리의 건드리는 일이었다. 가시지 않은 술기운으로, 그는 소싯적에 애용했던 박치기로써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고자했다. 기울어졌던 진의 머리가 가속을 띠고 앞으로 돌진했다. 순간, 가뜩이나 당황한 쟝의 손에서 뒤늦게 술병이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쟝! 피해!”
상황을 알아차린 죠가 소리치며 그리로 이동했다. 또 한번 모두가 놀랐다. 큼지막한 쿠션이 쟝과 진 사이에 있었다. 쟝은 묵직한 충격에 고통을 느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쿠션이 거실이 아니라 쟝의 방 옷장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뭐야 갑자기..”
진이 말을 흘렸다.
“니야말로 뭔데 갑자기.”
쿠션이 흡수하고 남은 충격은 고스란히 복부에 전달받은 쟝이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견디며 이를 갈았다.
“갑자기 머릴 까니까 그렇지 새끼야!”
“내가 일부러 까기라도 했냐?”
“나 머리 까는 거 질색인 거 알아 몰라?”
“알게 뭐야. 오냐오냐 장손인지 씨발인지.”
둘의 분위기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죠는 어디서부터 수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쟝과 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불현듯, 쟝의 전공책이 진에게 날아들었다.
“씨발! 한 번 해보잔 거지?”
진의 헤딩에 책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칰쇼! 잠깐만!”
죠의 절규에도 둘은 말을 듣지 않았다. 책, 빈 병, 쓰레기, 리모컨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날았고 진은 미친 듯이 머리로 그것들을 튕겨냈다.
“니들 미쳤냐?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싶어?!”
죠는 소리치며 쟝과 진의 싸움에 쏟아지는 물건들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활한 쟝은 책상달력으로 진의 주위를 끈 다음, 책모서리를 그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윽!”
진은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허리를 쥐었다. 쟝은 tv리모컨을 천장 위에서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걸 진의 머리 위에 조준하는 걸 죠가 봤다. 죠는 얼른 쟝 뒤로 이동해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작작해! 미쳤어?”
하지만 쟝은 너무 흥분해서 말도 잘 못 알아듣는 듯싶었다.
“자는 데 먼저 건드린 게 누군데! 씨발, 놔! 자는 데 먼저 건드려 놓고 머리통 좀 건드렸다고 이 지랄이야?!”
쟝이 고래고래 발악하며 버둥거렸다. 그때 진이 고개를 들었다.
“쾅!”
강화된 그의 머리가 쟝과 죠가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자리를 들이박았다. 놀랍게도 부딪친 벽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큼 안쪽으로 패여 있었다. 쟝의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봤냐? 속 시원해? 방금 날 죽이려 들었잖아!”
야구배트가 쟝에게 들러붙은 죠의 무릎 뒤를 쳤다. 딴엔 힘조절을 한 것이나 이러한 신경질적인 상황에선 죠의 인내심을 끊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진의 얼굴에 옷가지들을 감아놓고 달려드는 녀석의 등 뒤에 나타났다. 놈의 목을 쥐고 흔들면서 소리 질렀다.
“내가 그랬다! 내가! 내가 니 손가락 밟았다고! 그게 중요해? 그렇게 중요하냐, 이 미친 자식아!!”
진이 투우처럼 달겨들었다. 쟝은 잽싸게 몸을 틀었지만 바위보다 단단한 녀석의 머리에 스친 어깨가 빠졌다.
“씨발!”
마찬가지로 흥분한 죠는 쟝의 얼굴을 때렸다.
“2대 1이냐? 비겁한 놈들.... 더러운 원숭이들.”
책이 날아 진과 죠를 덮쳤다. 진은 이마로 튕겨냈고, 죠는 이동했으나 타이밍이 늦어서 표지에 얼굴을 긁혔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쟝과 죠의 얼굴에. 쟝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코피를 슥 훔쳤고, 죠는 종이가 할퀸 자리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더러운 아시아 놈들.”
쟝이 이죽거렸다. 진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식탁 의자가 그의 다리를 치었다. 진이 고꾸라지자마자 쟝은 뒤돌았다. 거기에 죠가 있었다.
“뒤로 오는 거 밖에 모르냐?”
퍽! 녀석의 주먹이 죠의 얼굴을 가격했다. 쟝은 죠의 모가지를 잡고 벽에 눌러 붙였다. 죠는 쟝의 배를 올려 찼다.
“윽!”
쟝은 야구배트를 날렸다. 하지만 이미 죠가 이동한 뒤였다. 죠는 쟝의 왼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녀석의 무방비한 옆구리에 킥을 먹였다. 핸드폰이 날아들어 죠의 뺨을 때렸다. 이성을 잃은 죠는 녀석을 몇 번 더 까고는 모가지를 잡고 벽에 눌러 붙였다. 쟝이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진과 죠가 바로 앞에 있었다.
“더러운 놈들한테 어디 맛 좀 봐라.”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진은 눈깔이 벌겋게 맛 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쟝의 위기였다. 너무 거리가 가까웠다. 물체로 공격하기 전에 진의 머리가 먼저 그의 몸을 박살낼 것이었다.
“잠깐!”
쟝이 외쳤다.
“좆까.”
진이 비웃었다.
“뭐?”
죠가 물었다.
“화장실.”
“뭐?”
죠가 다시 물었다. 진은 막 웃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하면서.
“술 처먹고 내 집에서 내가 물도 못 빼냐?”
쟝이 쏘아붙였다.
“지랄한데. 야, 죠. 꽉 붙들어. 이 새끼 이거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진이 이를 갈고 있을 때 불쑥 죠가 말했다.
“좋아. 인정.”
“오케이.”
너무 선선히 일어난 일이라 심히 당황한 진은 쟝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그가 독기 서린 대사를 퍼붓는 동안 죠가 쟝을 풀어줬고, 쟝은 편안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걸어가 문을 여는 것이었다.
“뭐냐 니들?”
변기물 내려가는 소리가 날 때쯤에야 진이 무시무시하게 목소릴 깔고 물었다.
“뭐긴 잠시 타임이지.”
산뜻한 대답에 진은 현기증마저 느꼈다.
“뭔데 니 맘대로야?”
“아깐 가만있더니?”
죠가 받아쳤다.
“니들 짜고 지금 나 물먹이는 거냐, 이 후레 자식아.”
진은 분노를 이빨사이로 천천히 내뱉었다.
“뭐 임마?”
“짜고서 씨발, 나 물먹이는 거냐 물었다!”
“아니, 그 뒤에. 다시 말해봐.”
“뭔데 명령조야?”
“쪽발이라고 했냐 안했냐?”
“뭐?”
“하, 이제 와서 오리발이다?”
“......뭐? 아.”
진은 피식 웃었다.
“참 나. 미치겠네. 귀 먹었냐 새꺄? 어떡하면 후레자식이 쪽바리로 들려. 점마한테 마이 맞아서 돈 거 아냐?”
그는 마침 화장실을 나오는 쟝을 턱짓하며 말했다.
“하긴 뭐 틀린 것도 없네. 쪽바리는 쪽바리니.”
“이제사 실토냐. 이 조세··”
죠의 말을 진이 가로막았다.
“그 이상 말 안하는 게 좋을 텐데.”
“난 조센징 말은 잘 못 알아듣겠는데.”
둘 사이에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
“이 새끼들!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저쪽에서 쟝이 소리 질렀다.
“이건 또 뭔 쉰소리야. 각자 알아서 처먹어 놓고.”
“오줌이 초록색인데 그런 소리가 나와? 씨발!”
“니 오줌을 왜 남 탓을 해? 돌았냐?”
쟝이 돌아왔다. 이로써 셋이 다시 모였다. 변한 것은 별로 없었다. 진·죠 vs 쟝에서, 쟝 vs 진 vs 죠로 바뀌었을 뿐. 다시금 비생산적인 전투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돌연 나타난 자신들의 능력에 관해선 깊이 고찰하지 않았다. 감정에 치중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파격적으로 지저분했던 쟝의 아파트는 점점 더 난장판이 되어갔다. 가구가 넘어지고 온갖 주방도구며 필기구들이 날아다니고, 주먹질에 욕질, 틈틈이 진의 머리가 벽에 균열까지 만들어냈다.
한 가지 의문점은 왜 아무도 이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느냐는 사실일 것이었다. 사실 그 아파트엔 다른 세입자 두 사람밖에 들지 않았는데, 그 세입자 중 한명은 가끔 이 척박한 세상에 출현한다고는 하는 보살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한명은 지금, 쟝의 아파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자기 집에서 핸드폰을 찾느라 쌔가 빠지고 있었다.
한편, 쟝과 진과 죠에게는 위기가 차례로 닥쳐왔다. 쟝 다음엔 진이었다. 시계에 발등을 맞고 비틀거리는 것을 죠가 후라이팬으로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뭐?”
“나도 화장실.”
잠시 정적이 그들을 쓸고 지나갔지만 이내,
“인정.”
쟝이 말했고,
“인정.”
죠도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씨발! 뭐야, 진짜 초록색이잖아 새끼들아!”
진이 광분하며 뛰쳐나왔다. 그걸 방아쇠로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머리 속으로 ‘밤중에 이게 무슨 뻘짓이지?’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즈음엔, 이미 싸우고 뒹굴면서 3시간 가까이나 흐르고 있었다. 도중에 쟝은 네 번, 진은 세 번, 죠도 세 번 화장실로 달려갔다. 의외로, 꼭 자신이 불리한 순간일 때만 화장실을 부르짖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간밤에 너무 마셔댔고, 때문에 그들의 방광은 자주 만원사례를 겪었다.
아무튼 간에, 이 밤중의 뻘짓은 이렇게 끝이 났다. 놀랍지만 끝내 핸드폰을 찾지 못한 세입자는 결국 포기하고 귀를 틀어막은 채 잤다. 다음날, 날이 밟자 그는 직접 길을 건너 경찰서에 가서 신고. 출동한 경찰들이 오전 8시, 두드려도 기척 없는 쟝의 아파트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신고한 세입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자기 집보다 더 엉망인 꼬라지를 그는 처음 봤던 것이다. 어쨌거나 집 안엔 세 명의 젊은 남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긴급히 그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기록에 따르자면 당시 그들의 상태는 이러했다. 쟝 떼오도흐 뒤부와 : 골절 및 타박상이 심각하다. 그리고 숙취. 곽진성 : 타박상·찰과상 및 벽을 머리로 들이박아 깨지다. 그리고 숙취. 사카기바라 죠오타로 : 자잘한 부상 및, 미끄러져 넘어져서 골반 비틀어지다. 그리고 숙취.
몇 주 간 입원한 뒤에 쟝, 진, 죠는 나란히 퇴원했다. 입원해있는 동안 그들은 화해했고, 심한 말을 했던 걸 서로 사과했다. 다만 몇 가지 의문점이 여전히 녀석들을 괴롭혔는데, 바로 그날 그들의 능력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사라졌냐하는 것이었다.
“야! 왜 아까보다 초록색이 옅어졌지?!”
네 번째로 화장실을 다녀오며 쟝이 외쳤던 말이다. 죠와 진은 소변을 배출해버릴 때마다 힘이 약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음을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그 능력들은 까꿍, 하고 나타나 말없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쟝은 제가 뜨운 물건에 깔렸고, 진은 스스로 머리를 박아 기절했고, 죠는 되먹지도 않게 몸을 날리다 옷을 밟고 자빠졌다. 그 뿐이었다. 별다른 문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또 한 번 술판을 벌였다간 방 빼라는 집주인의 호통에 괴로워하는 청춘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씨발!”
쟝은 소음을 피해 이불을 둘둘 말아 파고들어보았지만 역부족으로 폭발, 어디서 배워먹은 욕을 패밭으며 일어났다.
“뭐야?”
그는 눈을 부라리며 현관문을 열쳤다.
“헤헤.”
“벌써 자냐? 술 사왔다, 술.”
밖에는 이웃원수 두 녀석이 편의점 봉지를 까딱이며 서 있었다. 사이로 언뜻 보인 바깥은 깜깜하고 배때기 꺼진 초승달이 가로등 위에 걸쳐져 있다.
“술? 들어와.”
진의 말에 쟝은 눈깔에 독기를 올린 게 옛날 일이라는 듯 순순히 비켜섰다. 진과 죠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언제나 그렇듯이 난장판이었다. 그들은 책과 옷가지와 가구들이 무법자처럼 늘어져 있는 바닥을 능숙한 솜씨로 팔짝팔짝 뛰어서 좁은 거실로 갔다. 쟝은 부엌으로 가서 머그잔 세 개를 꺼내들고 왔다.
“이거 씻긴 한거?”
죠가 컵을 살펴보다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는 보기보다 깔끔한 성격이었다. 쟝이 그 말을 못들은 척 하면서 비쩍 마른 궁둥짝으로 바닥의 잡동사니들을 비집고 앉을 때, 죠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컵 세 개를 꼼꼼히 비교해가며 가장 청결해 보이는 것을 골라내고 있었고, 진은 비닐봉지에서 사온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다.
“야.. 말린 바나나는?”
미간을 구기며 묻는 쟝에게 진이 검은 봉지에서 마지막 남은 물품-그들의 만년안주-를 꺼내보이자 쟝 떼오도흐 뒤부와는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는 여러 가지가 놓여있었다. 맥주, 소주, 와인, 고구마주, 환타, 생수, 육포, 원산지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과자 몇 개, 말린 바나나, 그리고 겉 종이가 거의 다 까지고 녹슬 대로 녹슨 깡통이 하나 있었다.
“뭐여, 이 쓰레긴?”
쟝이 물었다.
“쓰레기 아니라 통조림이다옹.”
죠가 말하자 쟝은 진을 쳐다봤다.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 뚱보가 이걸 돈 받고 팔았다고? 니들 걔한테 오늘 자살할 거라고 말했냐?”
“요, 쟝.”
죠가 쟝을 부르며 캔을 뒤집어 세웠다.
“봐.”
쟝이 들어다보자 우둘두둘한 금속표면에 작은 글씨로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2011.09.09]’
“어제 날짜잖아?”
“그렇다면서 끼워주더라.”
진이 말했다.
“뭔 줄 알고?”
“까보면 알겠지.”
“어제까지잖아.”
“그래도 니네 집 그 어느 것보다 신선해.”
“······.”
쟝은 납득 당했다.
그들 셋은 각자 하나씩 컵을 앞에 놓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구현했다. 쟝은 소주, 고구마주, 환타를 1:1:1로 섞었다. 진은 맥주, 와인, 소주를 1:3:5로 섞었다. 죠는 소주, 생수를 4:1로 섞었다. 쟝은 그런 죠를 약간 경멸스런 표정으로 흘깃 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안주봉지들을 전부 개복하여 펼쳐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오래된 통조림만이 남았다. 죠가 쟝의 방 옷장서랍에서 캔 따개를 갖고 왔다.
“어디보자..”
죠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따개를 돌렸다.
개봉의 순간이었다.
“으아!”
죠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캔의 내용물은 그에게 악몽으로 저장된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야 진! 이거, 번··,”
죠가 뭔가 말하려는 때 진이 그를 걷어찼다. 신속하고도 잽싸서 쟝은 보지도 못했다.
“뭔데 그래? 이게 뭐야 도대체?”
쟝이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갈색에 주름이 잡혀있는 내용물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진과 죠는 재빨리 눈빛을 교환했다.
“버섯이야.”
죠가 말했다.
“버섯? 너 또 되는 대로 지껄이는 거 아냐? 무슨 버섯인데?”
“음.. 동양버섯.”
“얼씨구.”
통조림을 엎을 기세로 쟝이 코웃음 쳤다.
“한국산 버섯 맞다니까.”
죠가 덧붙였다. 쟝이 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곽진성은 물론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빈 병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덤덤하게 통조림을 음미하던 진이 가장 독하게 마셔대다가 첫 번째로 고꾸라졌고, 다소 입에 안 맞는 듯 통조림을 짓씹던 쟝이 두 번째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체라도 맛보는 듯한 얼굴로 통조림을 삼키던 죠가 쓰러져 잠들었다. 몇 시간 전에 쟝이 그런 죠를 참다못해 한 대 후려쳤었다. 죠는 역습을 시도했고 둘이 티격태격하는 새에 진이 스륵 자빠져선 코를 골아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무차별적인 폭탄음료를 즐겼다. 그건 그들의 복잡미묘한 정신상태와 생득적으로 튼튼한 위장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별다른 부작용이란 건 그다지 없었다. 그저 깨어나면 평범한 숙취와 조우할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그날 그들의 위장에서 발생했던 불가해한 현상은 90%이상 그 공짜안주에서 비롯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었다.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사카기바라 죠오타로였다. 그는 어떤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어느 바에 앉아있었는데 그 가게엔 바텐더 대신 자동 칵테일 기계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다들 그 기계를 좋아했다. 죠는 잠시 대기표를 들고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가 되자, 언제나 그렇듯이 소주 미즈와리를 마시려고 생수와 소주를 골라 부었다. 기계는 좁고 기다란 대롱에서 시작되어 아래로 가면서 여러 가지 유리잔을 녹여 붙인 것처럼 연결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응? 컵만 주면 알아서 섞어 마실 수 있는데.’
죠는 드물게 효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손이 양쪽에서 온갖 괴악한 음료들을 죠의 유리기계 속에 투하하는 것이었다.
“아놔, 칰쇼-!”
죠는 절망했다. 손의 주인들은 다름 아닌 쟝과 진이었다. 그의 괴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는 느릿하게 진동하면서 액체를 섞어들기 시작했다. 가장 위의 구간에서 뱅글뱅글 돌던 액체들이 이어진 유리관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또다시 젤리처럼 뒹굴던 짬뽕음료수가 다시 아래로, 아래로 이동했다. 마지막 구간에서 춤추는 술을 보며 죠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그 느낌은 확신으로 변했는데, 그의 액체가 미약하게 발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니들 대체 뭘 넣은 거야?”
드물게 그는 인상을 썼다.
“고구마주! 환타! 와인!”
쟝이 외쳤다.
“맥주! 벌레! 소주!”
진이 외쳤다.
“뭐 임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되물었다.
“마셔라! 마셔라!”
진이 소리쳤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쟝이 소리쳤다.
“뭐? 너나 처먹··,”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바의 손님들이 한 입으로 소리쳤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아··!”
군중의 요구는 커져만 갔다. 그 속에 간간히 죠 사이코(쵝오)! 같은 구령도 섞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리하여 죠는 그자신의 본능적인 대중사랑욕구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미심쩍은 액체를 원샷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기세등등하게 잔을 머리 위에 엎은 그는 문득 부자연스런 고요와 맞닥뜨린다.
“스튜피! 마셨냐? 그걸 마셨어?”
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쏘아붙였다.
“진짜 그걸 마셨어?”
난감한 얼굴을 한 진이 물었다.
그러고는 죠는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과연 정신 나간 꿈을 꾸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좁고 지저분한 쟝의 아파트 마룻바닥이었다. 여전히 진은 코를 골고 쟝은 이를 갈아대고 있었다.
복통...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헛갈렸다. 배가 고픈 것도 같고 아픈 것도 같고 메슥거리는 것도 같은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듯한 감각이었다. 그러나 죠는 확실한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거나 그는 화장실이 급했던 것이다. 그는 비실비실 일어나 측간을 찾아 기어들었다. 어설픈 휘파람을 불며 볼일을 마치고 나서 물을 내릴 적에, 변기에 담긴 분명 찬란히 발광하는 녹색물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죠는 취기 탓이라며 현상을 외면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죠의 각성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는 거실로 되돌아가 비교적 깨끗한 장소를 찾아 몸을 누이려했는데, 순간 걸림돌이 된 것이 바로 진의 빈티 나는 잠버릇이었다. 공중을 휘적 날아 가르는 녀석의 다리에 걸려 죠는 넘어졌다. 아니, 넘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는 봤다. 바닥을 정면으로. 코가 깨사지기 몹시 적절한 상황이었다. 위기는 비극을, 또는 기지를 유발시키곤 한다. 죠의 경우는 후자에 속했다. 그 위급한 상황에서 그의 위장 속에 출렁거리던 것이 그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선사하였다.
적막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죠는 어둠 속에, 그 카오스와 같은 쟝의 아파트 복도에 오롯이 서 있었다. 상당히 균형이 좋은 그의 실루엣은 밤중에도 퍽 간지나는 것이었으나 그 얼굴만은 얼빠진 얼간이 그 자체였다.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속으로 ‘다시 자고 싶구나.’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죠는 아까 봐두었던 장소에 누워있었다.
화장실! 죠는 생각했고, 역시나 생각속도보다도 빨리 그는 화장실 앞에 도달해있었다.
“끼-야호!!!!”
그는 승리의 괴성을 지르며 여기저기로 정신 사납게 이동해 다녔다. 그의 두 친구는 그런 소란에도 불구, 깨어날 줄을 몰랐으나.. 사고는 각성과 마찬가지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씨..발..”
죠는 잠꼬대인 듯도 아닌 듯도 한 그 나지막한 욕설에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바닥에서 자신의 발뒤꿈치를 떼어보았다. 그 아래에 쟝의 손꾸락이 깔려있었다.
“썅.... 쥣트!!”
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잠자는 쟝의 코털을 뽑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녀석의 폭력성을 증폭시키는 방법임을 알았던 죠는 몸을 사리며 벽 뒤쪽으로 순간이동했다. 거기서 그는 쟝이 깨어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녀석은 몇 번 몸을 뒤틀며 신경질을 부리다가 번뜩 상체를 들었다.
“··뭐야.......”
벽에 바짝 붙어 지켜보던 죠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쟝의 눈이 마치 야수처럼 번뜩이는 듯 보였다. 물론 쟝은 상황에 따라 다소 흉포한 성품이긴 하였으나, 영 손쓸 데 없는 지경이 아니긴 하였다. 그에겐 참으로 술이 약이었다. 의아할 정도로 쟝은 술 앞에선 얌전해지곤 했다만, 마지막으로 잠든 죠는 지금 이 집구석에 술이라곤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쟝을 손을 더듬어 병들을 기울여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모두 다 빈 것들뿐이었다. 마침내 쟝은 폭발했다.
‘저 새끼는 허구헌날!’
죠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곧 닥쳐올 소음을 대비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순간 그는 보았던 것이다. 이미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칰쇼! 점마는 왜 또 저기에··!’
포효하는 쟝 근처에 진이 검정색 편의점 봉지를 머리에 쓴 채 골아 떨어져 있었다. 다른 부위들도 쓰레기와 적절히 섞여 쉬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물며 막 깨어난 쟝의 눈엔 전혀 식별되지 않을 터!
진의 머리통은 정확히 쟝이 홧김에 술병을 내리치려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몽롱한 분노로 가득 찬 쟝은 빈 병을 치켜들었다. 방관자이고 싶었던 죠가 다급히 외쳤다.
“진!!!!”
병이 격돌하기 직전에 진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증거로 진의 머리가 움찔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죠가 원했던 형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놀란 진이 머리를 듦으로써 병과 두상이 부딪치는 시각만 빨라졌을 뿐이었다. 쟝도, 진도, 죠도 놀랐다.
“너..너, 왜 갑자기..”
쟝이 말을 더듬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세게 술병을 휘둘렀는지 자각하고 있었다. 진은 과격하게 머리에 쓴 봉지를 뜯어버렸다.
“....이 새끼가 자는 사람 머리를 까?”
그는 눈을 부라리며 뇌까렸다.
“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쟝은 전에 없이 크게 당황했다. 진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게으르고, 지저분하고, 허용 범위가 넓은 그가 단 한 가지 질색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머리의 건드리는 일이었다. 가시지 않은 술기운으로, 그는 소싯적에 애용했던 박치기로써 자신의 분노를 드러내고자했다. 기울어졌던 진의 머리가 가속을 띠고 앞으로 돌진했다. 순간, 가뜩이나 당황한 쟝의 손에서 뒤늦게 술병이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쟝! 피해!”
상황을 알아차린 죠가 소리치며 그리로 이동했다. 또 한번 모두가 놀랐다. 큼지막한 쿠션이 쟝과 진 사이에 있었다. 쟝은 묵직한 충격에 고통을 느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쿠션이 거실이 아니라 쟝의 방 옷장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뭐야 갑자기..”
진이 말을 흘렸다.
“니야말로 뭔데 갑자기.”
쿠션이 흡수하고 남은 충격은 고스란히 복부에 전달받은 쟝이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견디며 이를 갈았다.
“갑자기 머릴 까니까 그렇지 새끼야!”
“내가 일부러 까기라도 했냐?”
“나 머리 까는 거 질색인 거 알아 몰라?”
“알게 뭐야. 오냐오냐 장손인지 씨발인지.”
둘의 분위기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죠는 어디서부터 수습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쟝과 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불현듯, 쟝의 전공책이 진에게 날아들었다.
“씨발! 한 번 해보잔 거지?”
진의 헤딩에 책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칰쇼! 잠깐만!”
죠의 절규에도 둘은 말을 듣지 않았다. 책, 빈 병, 쓰레기, 리모컨을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날았고 진은 미친 듯이 머리로 그것들을 튕겨냈다.
“니들 미쳤냐? 아파트에서 쫓겨나고 싶어?!”
죠는 소리치며 쟝과 진의 싸움에 쏟아지는 물건들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교활한 쟝은 책상달력으로 진의 주위를 끈 다음, 책모서리를 그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윽!”
진은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허리를 쥐었다. 쟝은 tv리모컨을 천장 위에서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걸 진의 머리 위에 조준하는 걸 죠가 봤다. 죠는 얼른 쟝 뒤로 이동해 녀석의 팔을 붙잡았다.
“작작해! 미쳤어?”
하지만 쟝은 너무 흥분해서 말도 잘 못 알아듣는 듯싶었다.
“자는 데 먼저 건드린 게 누군데! 씨발, 놔! 자는 데 먼저 건드려 놓고 머리통 좀 건드렸다고 이 지랄이야?!”
쟝이 고래고래 발악하며 버둥거렸다. 그때 진이 고개를 들었다.
“쾅!”
강화된 그의 머리가 쟝과 죠가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자리를 들이박았다. 놀랍게도 부딪친 벽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큼 안쪽으로 패여 있었다. 쟝의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봤냐? 속 시원해? 방금 날 죽이려 들었잖아!”
야구배트가 쟝에게 들러붙은 죠의 무릎 뒤를 쳤다. 딴엔 힘조절을 한 것이나 이러한 신경질적인 상황에선 죠의 인내심을 끊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진의 얼굴에 옷가지들을 감아놓고 달려드는 녀석의 등 뒤에 나타났다. 놈의 목을 쥐고 흔들면서 소리 질렀다.
“내가 그랬다! 내가! 내가 니 손가락 밟았다고! 그게 중요해? 그렇게 중요하냐, 이 미친 자식아!!”
진이 투우처럼 달겨들었다. 쟝은 잽싸게 몸을 틀었지만 바위보다 단단한 녀석의 머리에 스친 어깨가 빠졌다.
“씨발!”
마찬가지로 흥분한 죠는 쟝의 얼굴을 때렸다.
“2대 1이냐? 비겁한 놈들.... 더러운 원숭이들.”
책이 날아 진과 죠를 덮쳤다. 진은 이마로 튕겨냈고, 죠는 이동했으나 타이밍이 늦어서 표지에 얼굴을 긁혔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쟝과 죠의 얼굴에. 쟝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코피를 슥 훔쳤고, 죠는 종이가 할퀸 자리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더러운 아시아 놈들.”
쟝이 이죽거렸다. 진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식탁 의자가 그의 다리를 치었다. 진이 고꾸라지자마자 쟝은 뒤돌았다. 거기에 죠가 있었다.
“뒤로 오는 거 밖에 모르냐?”
퍽! 녀석의 주먹이 죠의 얼굴을 가격했다. 쟝은 죠의 모가지를 잡고 벽에 눌러 붙였다. 죠는 쟝의 배를 올려 찼다.
“윽!”
쟝은 야구배트를 날렸다. 하지만 이미 죠가 이동한 뒤였다. 죠는 쟝의 왼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녀석의 무방비한 옆구리에 킥을 먹였다. 핸드폰이 날아들어 죠의 뺨을 때렸다. 이성을 잃은 죠는 녀석을 몇 번 더 까고는 모가지를 잡고 벽에 눌러 붙였다. 쟝이 가까스로 눈을 떴을 때, 진과 죠가 바로 앞에 있었다.
“더러운 놈들한테 어디 맛 좀 봐라.”
목을 앞으로 빼고 있는 진은 눈깔이 벌겋게 맛 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죠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쟝의 위기였다. 너무 거리가 가까웠다. 물체로 공격하기 전에 진의 머리가 먼저 그의 몸을 박살낼 것이었다.
“잠깐!”
쟝이 외쳤다.
“좆까.”
진이 비웃었다.
“뭐?”
죠가 물었다.
“화장실.”
“뭐?”
죠가 다시 물었다. 진은 막 웃기 시작했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 하면서.
“술 처먹고 내 집에서 내가 물도 못 빼냐?”
쟝이 쏘아붙였다.
“지랄한데. 야, 죠. 꽉 붙들어. 이 새끼 이거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진이 이를 갈고 있을 때 불쑥 죠가 말했다.
“좋아. 인정.”
“오케이.”
너무 선선히 일어난 일이라 심히 당황한 진은 쟝을 저지하지도 못했다. 그가 독기 서린 대사를 퍼붓는 동안 죠가 쟝을 풀어줬고, 쟝은 편안한 걸음으로 화장실로 걸어가 문을 여는 것이었다.
“뭐냐 니들?”
변기물 내려가는 소리가 날 때쯤에야 진이 무시무시하게 목소릴 깔고 물었다.
“뭐긴 잠시 타임이지.”
산뜻한 대답에 진은 현기증마저 느꼈다.
“뭔데 니 맘대로야?”
“아깐 가만있더니?”
죠가 받아쳤다.
“니들 짜고 지금 나 물먹이는 거냐, 이 후레 자식아.”
진은 분노를 이빨사이로 천천히 내뱉었다.
“뭐 임마?”
“짜고서 씨발, 나 물먹이는 거냐 물었다!”
“아니, 그 뒤에. 다시 말해봐.”
“뭔데 명령조야?”
“쪽발이라고 했냐 안했냐?”
“뭐?”
“하, 이제 와서 오리발이다?”
“......뭐? 아.”
진은 피식 웃었다.
“참 나. 미치겠네. 귀 먹었냐 새꺄? 어떡하면 후레자식이 쪽바리로 들려. 점마한테 마이 맞아서 돈 거 아냐?”
그는 마침 화장실을 나오는 쟝을 턱짓하며 말했다.
“하긴 뭐 틀린 것도 없네. 쪽바리는 쪽바리니.”
“이제사 실토냐. 이 조세··”
죠의 말을 진이 가로막았다.
“그 이상 말 안하는 게 좋을 텐데.”
“난 조센징 말은 잘 못 알아듣겠는데.”
둘 사이에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
“이 새끼들!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저쪽에서 쟝이 소리 질렀다.
“이건 또 뭔 쉰소리야. 각자 알아서 처먹어 놓고.”
“오줌이 초록색인데 그런 소리가 나와? 씨발!”
“니 오줌을 왜 남 탓을 해? 돌았냐?”
쟝이 돌아왔다. 이로써 셋이 다시 모였다. 변한 것은 별로 없었다. 진·죠 vs 쟝에서, 쟝 vs 진 vs 죠로 바뀌었을 뿐. 다시금 비생산적인 전투가 재개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돌연 나타난 자신들의 능력에 관해선 깊이 고찰하지 않았다. 감정에 치중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파격적으로 지저분했던 쟝의 아파트는 점점 더 난장판이 되어갔다. 가구가 넘어지고 온갖 주방도구며 필기구들이 날아다니고, 주먹질에 욕질, 틈틈이 진의 머리가 벽에 균열까지 만들어냈다.
한 가지 의문점은 왜 아무도 이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느냐는 사실일 것이었다. 사실 그 아파트엔 다른 세입자 두 사람밖에 들지 않았는데, 그 세입자 중 한명은 가끔 이 척박한 세상에 출현한다고는 하는 보살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남은 한명은 지금, 쟝의 아파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자기 집에서 핸드폰을 찾느라 쌔가 빠지고 있었다.
한편, 쟝과 진과 죠에게는 위기가 차례로 닥쳐왔다. 쟝 다음엔 진이었다. 시계에 발등을 맞고 비틀거리는 것을 죠가 후라이팬으로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뭐?”
“나도 화장실.”
잠시 정적이 그들을 쓸고 지나갔지만 이내,
“인정.”
쟝이 말했고,
“인정.”
죠도 말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씨발! 뭐야, 진짜 초록색이잖아 새끼들아!”
진이 광분하며 뛰쳐나왔다. 그걸 방아쇠로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머리 속으로 ‘밤중에 이게 무슨 뻘짓이지?’ 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즈음엔, 이미 싸우고 뒹굴면서 3시간 가까이나 흐르고 있었다. 도중에 쟝은 네 번, 진은 세 번, 죠도 세 번 화장실로 달려갔다. 의외로, 꼭 자신이 불리한 순간일 때만 화장실을 부르짖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간밤에 너무 마셔댔고, 때문에 그들의 방광은 자주 만원사례를 겪었다.
아무튼 간에, 이 밤중의 뻘짓은 이렇게 끝이 났다. 놀랍지만 끝내 핸드폰을 찾지 못한 세입자는 결국 포기하고 귀를 틀어막은 채 잤다. 다음날, 날이 밟자 그는 직접 길을 건너 경찰서에 가서 신고. 출동한 경찰들이 오전 8시, 두드려도 기척 없는 쟝의 아파트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신고한 세입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자기 집보다 더 엉망인 꼬라지를 그는 처음 봤던 것이다. 어쨌거나 집 안엔 세 명의 젊은 남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경찰은 긴급히 그들을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기록에 따르자면 당시 그들의 상태는 이러했다. 쟝 떼오도흐 뒤부와 : 골절 및 타박상이 심각하다. 그리고 숙취. 곽진성 : 타박상·찰과상 및 벽을 머리로 들이박아 깨지다. 그리고 숙취. 사카기바라 죠오타로 : 자잘한 부상 및, 미끄러져 넘어져서 골반 비틀어지다. 그리고 숙취.
몇 주 간 입원한 뒤에 쟝, 진, 죠는 나란히 퇴원했다. 입원해있는 동안 그들은 화해했고, 심한 말을 했던 걸 서로 사과했다. 다만 몇 가지 의문점이 여전히 녀석들을 괴롭혔는데, 바로 그날 그들의 능력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사라졌냐하는 것이었다.
“야! 왜 아까보다 초록색이 옅어졌지?!”
네 번째로 화장실을 다녀오며 쟝이 외쳤던 말이다. 죠와 진은 소변을 배출해버릴 때마다 힘이 약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음을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그 능력들은 까꿍, 하고 나타나 말없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쟝은 제가 뜨운 물건에 깔렸고, 진은 스스로 머리를 박아 기절했고, 죠는 되먹지도 않게 몸을 날리다 옷을 밟고 자빠졌다. 그 뿐이었다. 별다른 문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또 한 번 술판을 벌였다간 방 빼라는 집주인의 호통에 괴로워하는 청춘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