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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구원
지금 세상은 모조리 불타고 있다.
지구상의 개미 같이 많은 인간들은 몸을 피신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해봤지만, 도시는 매캐한 재와 검은 연기 속에 뒤덮인 채, 활활 타오르고 있는 도시에서 그들은 무능한 개미들에 불과했다. 모든 생물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재앙중 하나인 화마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세상을 지켜야 할 온 세상의 영웅 중 하나인, 배트맨은 고담시를 수호하는 과다한 업무와 조커를 통해 유발된 우울증으로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슈퍼맨은 말에서 떨어져 반신불수의 몸이 되어버렸다. 그 밖에 수많은 영웅들은 지구를 버렸다. 왜냐고? 그들에게 더 이상 이 지구를 지킬 이유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돈으로 흥해서 돈으로 망하고, 과학으로 흥해서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진 로봇과 셀 수없이 많은 화학무기로 자중지란에 빠진 지구를 보고, 여태 수차례 죽을 위기를 넘기며, 매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피눈물이 날 정도의 고뇌 속에 빠져서 결국 여차여차 엄청 맞고 거의 죽을 뻔 하다가 끝나기 오 분 전에 슈퍼 히어로가 되었던 것을 생각할 때 너무나 가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더 이상 인간들에게 힘이 돼 줄 영웅 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제 인류는 누가 구원할까?
*
어마어마한 불길 속에서도 초연히 길을 걷고 있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미끈한 몸매에, 새하얀 피부, 거기에 섬세하고 섹시한 아이라인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가슴을 콩닥거리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다만 눈빛이 조금 음침하다는 게 흠이였을 뿐. 그는 이 불타는 거리를 보면서 내심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은 아비규환에 현장 속에서 그저 도망가려는 생각만을 하고 있는데 상황에서 말이다.
주변에 누군가가 그런 그의 이상한 거동을 보고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누군데 이런 상황에서 그리 편안하게 걷고 있는 겁니까?
그는 시답잖다는 투로 받아 넘겼다.
“아, 나는 루시퍼.”
“뭐라고요?”
질문을 던졌던 그는 정신병원을 탈출한 환자를 보는 눈길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게 뭔 질 알겠어?” 바로 지옥의 모방이야. 이제부터 보라고 니들이 엿 먹일 스페셜 플랜을 들고 왔으니까.”
잠시 그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참, 이거 다 내가 이렇게 한 거야. 오늘이 드디어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기다리던 심판의 날이거든. 히히히. 너는 천국 가겠어?”
이 상황에서 가장 익숙한 코드는 이런 인류를 구원해줄 어떤 초월적인 힘일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악마의 그 반대, 바로 그것은 천사였다. 하지만 아쉬운 일이 하나 생겼다. 천사들의 집단 파업 소식이 얼마 전부터 하늘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교황청과 기타 종교단체들에게로부터 전해져 왔다. 예수가 탄생하고 2000년 동안 한 번도 임금 상승이나, 별도의 휴식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 인류의 문제를 두고 루시퍼를 보낸 일을 두고 조금 삐졌다는 지극히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그렇다고 신은 무작정 화내고 윽박지르진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그래도 신은 이 광경을 보고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못난 놈. 정말로 그길 뿐인가?’
신은 여러모로 생각해보다가 오른편의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 바로 그 오른편이라는 것은 부활해서 하늘로 승천한 예수. 즉 지저스 크라이스트였다.
“아들아, 어쩔 수 없구나.”
신은 체념한 체 이야기를 했다. 예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순명해야 합니까? 제 뜻이라면 가고 싶지 않지만. 전능한 아버지의 뜻이라면.”
“가거라. 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담의 원죄에서 벗어나 이제 다시 하늘의 문으로 돌아와야 할 인간들을 위하여!”
여기까지는 그럴싸한 영웅적인 서사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왜 그들의 영웅적인 서사가 조금은 인간들에게 슬프게 보이는 걸까.
*
졸지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구로 부활하게 된 예수가 맞이한 것은 매캐한 타는 냄새와 혼탁한 공기였다. 그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덜떨어진 루시퍼여.’
여전히 2000년이 지나도 그의 변함없는 패션센스는 지나가는 모든 이로 하여금 그를 알아보게 만들었다. 그의 등장은 이런 위기 순간에 수십만의 인파가 크리스천으로 변하는 기적의 순간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오! 찬미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는 구원하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필이면 그들이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예수는 라틴어를 썼지 영어를 쓴 적은 없다. 물론 기적이라는 이상적이고 사기적인 능력으로 말하고 대답할 수 있지만, 아버지께선 지구를 구하라고 하셨지, 쓸 데 없이 또 기적을 일으켜 성경의 페이지 수를 늘리라곤 하지 않으셨다. 지금까지야 묵시록이 있으니까 괜찮지만은.
‘이럴 때만 찬미예수지. 나날이 봉헌 금이랑 우리 집은 좁아져만 가드만.’
이러한 고뇌에 빠져 있을 무렵, 역시 영화처럼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안녕, 예수!”
다름 아닌 그의 상대, 그가 인간들로부터 구해내야 할 우리의 악역. 천국에서 선악과를 따먹게 종용한 악마. 루시퍼였다.
*
“우리 마지막으로 만나고부터 얼마 됐지?”
정말로 반가운 눈치인 루시퍼가 악역답지 않게 예수에게 친근하게 물었다.
“아마도 에덴동산에서 너를 처음 봤으니까.”
“음 그때 너는 없었잖아?”
“난 그때 아버지 뒤에 있었어! 너는 아담과 하와, 누구는 이브라고 부르는 남녀를 꼬드기고 있었지만 말이야. 덜 떨어진 자식.”
예수는 정말로 그가 눈꼴사납다는 듯 한 기분 나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기독교에선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지 악마를 사랑하라고 하진 않았으니 전혀 문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불은 저렇게 질렀어?”
“뭘? 잘 질렀잖아? 아주 매캐한 연기도 잘 올라오고, 이곳저곳 골고루.”
“뭐 너의 난잡한 지옥하고 비슷하군 그래. 너의 모자람은 20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구나.”
주위의 수많은 시민들은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둘은 영어나 다른 나라 말을 안 쓰므로 무슨 말이지만 알 도리는 없었지만, 표정은 여타 히어로와 악당의 전투처럼 비장하고 안 좋았지만 그들이 보기엔 너무나 많은 대사, 즉 노가리가 너무나 길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슨 새로운 철학 논쟁이나 종교적 이념의 대립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인류의 구원, 이런 환란 속에서 여러 만화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 보던 짜릿하고 속 시원한 악의 패망을 보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 할 무렵이었다. 저 멀리서 드디어 둘의 목소리가 격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불을 꺼야 겠어!”
“안 돼! 심판의 날이야! 이건 필연적인 거라고! 다수의 대중이 바라는 구원이라고.”
“그렇다면!”
그 순간 불길을 가르는 그들의 주먹이 서로의 얼굴로 향했다. 마치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주먹을 인간이 맞았다면 그는 이미 산산조각 났으리라.
*
세상은 그를 잊었더라도, 세상을 잊지 않고 율도국에서 편안히 여생을 즐기다 다시 홀연히 저승으로 가버린 의적(義賊) 홍길동은 저승에서 조심스레 세상을 내다보았다. 물론 지극히 영웅적인 삶을 살았기에 영웅적인 각도도 사진이 발명되기 전부터 잘 잡았는지 모르겠다마는 검은 연기가 자욱한 세상에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는 정말로 근심스러운 듯 속삭였다.
‘내 율도 국에서 이승을 떠나 평화롭게 이 강 저편에서 편히 거닐었거늘, 어찌 이상적인 신 세계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찌 대사가 예수보다 더 이타적이고, 온갖 시름과 걱정이 베어 나오는 듯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슬슬 이곳에서 오래 있다 보니 매일 같이 비슷한 생활이 질력이 나고 말았다. 물론 조선에는 천국이니 뭐니 없이, 그저 저승과 이승이라는 경계만이 있었고, 불교적인 패러다임이 자리 잡고 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천국이고 극락이고 나발이고 칼질 한 번 할 일 없는 이 생활에 슬슬 질력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궁금하기도 한데 서양에서 천국에 간 성인 성녀들도 과연 이 시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대체로 죽음으로 영웅적인 순교의 완성을 이루는 슈퍼 히어로들도 이 시간에 무엇을 하고 지내고 있을까?
이런 물음들은 잠시 홍길동의 독백을 듣고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내 이제 여기에 수백 년을 머물었고, 이 요지경 같은 속세에 다시 새로운 이상, 이미 망해버린 율도 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에게는 이미 아무런 구속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죽고 얼마 안가 망해버린 율도국은 크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여담이지만 그것이 환태평양 조산대로 인한 강한 지진으로 망해버렸다는 설이 있다), 사나이 가는 길에 누가 막으랴?
“부인, 내 다시 세상에 다녀오리다.”
홍길동은 수백 년 동안 묻혀놔서 녹슬다 못해 이제 형체마저 알아보기 힘든 검을 부드럽고 절제 있게 뽑아 들며 말했다. 물론 이 검 역시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했기에 초월적인 힘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 설마 영웅이 뻥을 치랴?
“서방님, 소녀는 그저 가시는 길을 배웅하는 거 밖에요.”
참 소녀라고 하기에는 주름이 바글바글한 할머니가 최대한 예쁘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더 역겨웠는지 길동은 쳐다보지도 않고 길을 나섰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조선이 버린 영웅 홍길동. 그가 세상을 향해 칼을 빼드는 순간이었다.
*
예수와 루시퍼, 그들은 인간을 초월한 초현실적인 환상적이고 성스러운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지구의 인과와 개연성 속에 속해있었다. 그것을 깨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인과라는 것은 둘 다 깰 수 있는 것이었고, 결국은 어찌 머리를 굴려 생각해 봐도, 같이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존재들이었다. 개연성에 속하던, 속하지 않던, 초월적인 힘으로 대결을 하던 이미 그들은 어차피 서로 처절하게 싸워야 할 숙명이었다. 아마 둘 다 같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공유하기에 다른 초월적인 힘 따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주위에 지옥의 불길이 치솟으면, 루시퍼의 주위에는 삼위일체의 성령의 후광이 그의 눈을 부시게 했다. 루시퍼의 음침함이 예수의 정신을 자극할 때, 예수는 성전에서 휘두르던 그의 무자비한 폭력을 선사했다.
그들이 한참 치고 받다 얼굴에 불길이 스친 예수가 잠시 얼굴을 매만지며 말했다.
“왜이래? 아마추어같이? 그냥 불타서 심판 받게 내비두면 되잖아.”
예수가 정말로 귀찮은 듯이 루시퍼에게 물었다.
“나도 밥그릇이 달린 문제라고. 네가 좀 양보하면 되잖아!”
루시퍼 역시 아까보다는 훨씬 지친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들의 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류를 건 싸움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 싸움도 너무 런닝타임이 길면 대중들에게 외면 받는 것일까. 슬슬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도 아비규환을 넘어서서 지루함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카타르시스 넘치던 혈전은 진정 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나 보다.
예수가 아까보다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이왕 지른 거, 성경에 나온 것처럼 심판의 날이야. 물론 이건 내가 정한 건 아니지만. 너도 아버지가 시키니까 한 거잖아. 더구나 이건 우리를 선택하고 믿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거야.”
루시퍼가 대답했다.
“근데 신이 내 밥줄 끊어 놓게, 지구를 없애버리라곤 안했잖아!”
“아, 그러셔? 너의 덜 떨어진 일처리가 부른 화야.”
예수가 살짝 비웃는 태도로 이야기 했다. 왠지 예수의 태도가 조금은 시크하달까.
“바보야! 인간들이 다 죽으면 내가 실업자가 되잖아! 지옥은 내가 없어도 운영돼. 나는 끊임없이 수많은 악마로 다시 태어나고, 악령으로 변장해 인간들을 괴롭히면서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너 같이 선이라고 추앙받는 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게 내 일이니까 말이야! 내가 없다면 영웅 따위, 메시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아마 아담과 하와도 내가 없었다면 선악과를 먹지 못해 결국엔 너도 존재하지 못했을걸!”
열변을 토하는 루시퍼와 달리 예수의 반응은 여전히 시크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무심한 예수의 반응에 루시퍼는 체념한 듯 다시 싸울 채비였다. 어째 루시퍼가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예수는 지구를 아예 전소 시키려는 악당이 되었는지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신의 뜻이다. 아까 모두가 부르짖던 신의 뜻. 화세를 통한 진정한 인류의 심판의 날이라는 것이 예수의 주장이었다.
“결국엔 이 길 뿐인가!”
둘 다 동시에 말을 내뱉은 동시에, 둘은 불길 속에서 서부극에 나오는 황야의 무법자들처럼, 비장하게 불 길속을 돌면서 기회를 엿봤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지랄 마!”
그들의 주먹이 서로를 향해 내뿜어지는 순간이었다.
*
아까로 돌아가 신은 이들의 싸움이 시작 되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루시퍼 이 자식이 불만 잘 질렀어도. 인간들에게 겁만 주려고 했거늘. 내 저런 덜 떨어진 놈을.’
신의 생각대로 원래는 루시퍼를 시켜서 종말론을 조금 더 강조하고, 점점 더 떨어져 가는 인간들의 기강만 바로 세울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적과는 달리 루시퍼는 정말로 악마인지 아니면 2% 부족한 멍청이 인지는 몰라도 불을 너무 크게 지르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가 고의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평소 지옥에서처럼 불을 피우고 그냥 평소처럼 태업을 하다 보니 지구라는 특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대형 사고를 쳐버리고 만 것이었다. 지옥에도 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옥 물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부를 수도 있기에 루시퍼가 유일하게 현명한 판단으로 아직 물을 쓰지 않은 것이리라.
‘결국엔 이 길 뿐인가, 예수의 재림을 통한 인류의 구원.’
그는 물론 모든 것을 다 지우고 새로 만들고 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라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그런 생각은 없는 거 같았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자신의 경전대로. 지금 인류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다수의 종교가 가진 진리라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예수를 통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것은, 대중이 바라는 카타르시스 넘치는 구원이 아닌, 현세의 멸망을 통한 내세의 구원이리라.
그는 그래서 조용히 옆에 있던 예수를 불렀다. 2000년 동안 그냥 자신의 오른편에만 두어 이제 슬슬 지루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인류는 심판 받게 되었던 것이다. 신이 내린 악마의 불꽃으로 종말의 심판을. 과연 이제 인류가 원하는 영웅, 메시아는 그들에게 존재할 것인가?
신이 이렇게 예수를 불러서 구원을 시작하려는 무렵, 길동은 슬슬 저승의 문턱을 지나 이승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
그 둘의 일격은 누구도 구원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그들의 지나치게 큰 스케일의 초월적인 힘 덕분에, 주위의 시가지는 모조리 날아가 버렸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많은 인간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 파괴의 묵시록이었다.
“거봐, 그냥 태우는 게 나아! 아무도 구하지 못해! 어차피 폭력은 폭력이라는 재앙만을 계속 낳을 뿐이야!”
예수가 여전히 무심하게 말했다. 루시퍼도 여전히 조금 모자라게 대꾸했다.
“내가 좀 딸린다고 그렇게 묻어가려고 하지 마. 이 사기꾼아! 널 믿고 있는 저 대중들의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아깝다. 정말로 저 들의…….”
루시퍼가 모자라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일지는 몰라도 예수는 일관적으로 시크한 반응으로 말을 끊었다.
“아아, 그만! 일장 연설은 하늘에서 많이 듣고 있으니까.”
이 광경을 바라보는 수많은 대중들은 어째서 이런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무엇이 착오였던 것일까? 점점 멀어져 가는 지구 소생의 길을 그들이 모르는 것이 차라리 더 마음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루시퍼가 조금은 기분이 상한 채 입을 열었다.
“음 조금 내가 딸리는 건 사실이야, 인정해! 하지만 나는 이대로는 못 물러나.”
예수가 다시 한 번 일격을 준비하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한번만 말할게. 그냥 물러나, 정말로 이 지구가 우리 둘이 싸우다가 망하기 전에. 차라리 이 심판을 보고 그 심판의 결과에서 너의 밥그릇을 찾는 게 너한테 훨씬 이득 아니냐? 이미 물은 엎질러졌어. 이 세계의 생리를 받아 들여. 이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어차피 인류가 겪어야 할 구원이야.”
“이이이……. 이런.”
루시퍼는 분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예수의 말이 그의 입장으로 봤을 때도 정확한 답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악마지만, 결국 구원을 도와주는 보조자, 선을 빛나게 하는 보조자 일 뿐이니 말이다. 그 역시 필연성의 일부분, 이 세계의 거대한 순리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인간들의 운명은 태초에 그리스에서부터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라는 것은 비극으로 인해 태어나고, 비극으로 귀결 되는 염세주의의 산물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예수와 루시퍼의 대립이 루시퍼의 수긍으로 마무리 되어갈 무렵이었다.
“자, 이제 그만 너의 지옥으로 돌아가.”
“음...하지만, 하지만.”
“나 두 번 말 안한다?”
예수가 그를 손을 흔들고 있을 때였다. 루시퍼가 고개를 숙이면서 조금 모자란 자신의 마무리에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워 할 무렵, 누군가의 음성과 살기가 그들을 덮쳤다.
길동이었다.
“그대들이 내가 태어난 아름다운 팔도강산, 조상께서 숨 쉬고, 내 백성들이 숨 쉬는 이 고향을 짓밟은 자들인가?”
그는 바로 어느새 저승을 건너 이승으로 와, 이곳에 당도한 의적 홍길동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당도했는지 하나하나 따지지는 말라. 그는 범인이 아닌, 조선을 호령하고 율도 을 건설하고, 도술을 섭렵한 초인이니까. 이번엔 죽음마저 초월했다고 밖에.
예수와 루시퍼는 갑자기 벌어진 이 광경에 황당함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놈이 갑자기 나타나 그들에게 칼을 들이 대는 꼴이라니. 예수는 뒷목을 잡으며 애처롭게 말했다.
“후우. 내, 내 이웃을 사랑하라…….”
*
"조선을 부수고 아름다운 강산을 부시는 무뢰한 폭도들이오, 내 칼을 받으라. “
사극에서도 이제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잘 안 나올법한 멘트를 길동이 던지며 그들에게 녹슨 칼을 빼들었다. 하나 옥의 티라면 그는 조선을 이야기 하고 있었지만 그가 밟고 있는 것은 자유의 여신이라던가 하는 아주 크고 아름다운 여인네의 머리였다는 걸 빼면.
“푸하하하핫!”
갑자기 벌어지는 희곡적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주인공과, 악역을 맡고 있는 둘과, 주위의 한국말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옆에서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데 주체할 수 없는 길동의 개그 감각과 타이밍은 어쩔 수 없는 거 같았다. 그의 진지한 표정은 이 상황을 더욱 희곡적으로 만드는 듯 했다.
예수는 언어의 본질,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뒤 누구도 사용하지 못했다는 비트켄슈타인은 절대언어라고 이야기 하던 사물과 감정의 모든 본질을 표현 할 수 있는 초월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하려다, 그 생각도 우습다는 생각에 바로 만국적인 제스처로 보답하기로 했다. 바로 입가와 눈가의 주름,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주는 것이었다. 이 속세에선 그걸 썩은 미소라고 하고, ‘엿이나 먹어라‘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봐, 이건 너를 미워해서 날린 게 아니라, 단지 내 효과적인 의사 표현을 위해서야. 오해는 마.”
예수는 지긋이 웃으며 태연하게 이야기 했다.
“네 놈, 그것은 날 희롱하는 것이냐?”
우의 저런 예수의 우려처럼 길동은 그 뜻을 너무 과대하게 잘 파악했나 보다. 길동은 기다리지도 않고 녹슨 칼을 가지고 예수에게 달려갔다. 조금 뜬금없기는 하지만, 희곡적인 설정의 그가 아니던가. 이런 희롱 따위를 참아낼 수는 없었다. 원래 클라이막스는 좀 긴장감 넘치고 긴 법이지만, 현실에서 까지 그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수(手)!, 족(足)!”
그는 어떻게 귀신 같이 찾았는지 예수의 손과 발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예리하게 발견했다. 이승과 저승을 초월한 녹이 슬은, 찔리면 파상풍으로 즉사 할지도 모를 거 같은 검은 2000년 전 로마병정들이 아프게 했던 십자가형의 자국 들을 관통했다.
“헉!”
예수는 뜻밖에도 신음소리를 흘렸다. 이것 역시 지구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길동의 능력에서 비롯된 불의의 일격일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의 세계라면 물리적으로도 예수의 압승이려지만,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세계관들의 모임, 여러 신, 성인 성자, 영웅들이 숨 쉬었던 곳, 지구라는 독특한 공간이기에.
“요(療)”
마지막으로 그의 검이 예수의 허리를 관통했다.
*
“허허허허.”
불의의 일격을 당한 예수는 고통스러워하면서 꽤나 담담했다. 여전히 무심한 듯 시크한 그 표정은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차피 상관없어, 이미 세상은 거의 다 불타가니까. 나는 내 목표만 완수하면 되거든.”
예수가 친절하게 한국말로 말했기에 길동은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짐은 이 팔도강산을 구하러 저승에서 온 의적이거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는 어이없다는 듯 경멸하는 눈빛을 내보였다/
“참나! 이 놈, 저 놈 영웅놀이 참 좋아하네. 세상이 우리의 뜻대로 우리 아버지의 세계관, 즉 아버지에 대한 믿음만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리스도의 힘이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지. 그리고 세상은 다양성에 기반을 하고 있기에 너같이 신비한 힘을 가진 자가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이미 이 세상의 수많은 인간들은 우리의 세계, 계명 속에서 살고 있어, 거기에서 나오는 신앙의 아우라들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지상 세계를 감싸고 있지. 물론 이것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아우라들이 세상을 감싸고 있지만.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니까.”
길동은 예수의 장황해지려는 말을 끊고 다시 칼을 내밀었다.
“죽어가도 그 입만은 살아 있는가? 닥치거라!”
“아아, 내 콘셉트는 시크한 거였지. 그래 간단히 설명할게. 결국 종교라는 것도 약육강식이나 다름없어. 다수의 종교가 소수의 종교를 배척하고, 다수의 무언가가 결국 소수의 무언가를 배척하니까. 구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야. 결국 여태 수많은 다수가 꿈꾸고 바라는 구원이 이뤄져야 하는 게 이 세상의 순리. 다수의 논리가 소수를 지배하는 것은 태초에 이 세계가 만들어지고부터 계속 이어져 오는 것들이니까.”
예수는 고통스러운 듯 잠시 표정을 찡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소수를 사랑하려고 해. 다만 그 생각, 그들이 내뿜는 아우라까지는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그러니 이번 일도 다 인간을 사랑하기에, 최후의 천국의 문을 열어주기 위함이라는 거다! 푸하하핫. 그게 인간들이 바라는 구원 아니야? 여태 우리한테 계속 그렇게 기도해 왔잖아!”
길동은 무슨 소리인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그가 있던 곳은 천국도 아니요, 서구화된 사상이 유입될 겨를이 없는 신선들이 머물고, 하늘의 선녀들이 춤을 추는 저승세계였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무언가 틀어진 것을 알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인간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쉽게, 한 마디로 이번 세상에선 여기 수많은 인간들은 우리가 내세우는 유토피아에 가야해. 난 그것이 옳다고 믿기에, 진정 인간이 구원된다 믿기에 고작 그릇에 불과한 이 지구 따위를 태워버리려는 것뿐이지. 원래 그게 계획이 아니었다 해도, 다수가 믿고 있는 순리에 따라서! 나는 단지 그것을 실현하려는 것뿐이야. 억울하면 다음 세상엔 너가 원하는 세상에 이념, 그것이 통용되는 세상을 만들어. 그러면 되는 거야!”
길동은 무언가 자신이 거스를 수 없는 어떤 힘이 지금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구원이라는 것, 자신보다 다수가 따르는 누군가의 이뤄지는 구원이라는 이 세계의 필연적인 개연성을 베어버릴 수 없다는 것을. 단지 그가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이 따르던 세계관의 힘으로 그에게 상처를 주는 정도에 불과 하다는 것뿐이었다. 그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그 광경을 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뒤틀려버린 구원의 현장에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 그들이 여태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서 보던 구원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이 원하는 구원은, 메시아가 생각하는 구원과는 무언가 차이가 있었나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즉 우연적이고 절대적인 해결, 기계적인 신은 인간들의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아! 그리고 그들 모두가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이 광경은 이 천 년 전에 유대인들이 겪었던 예수라는 자가 일으켰던 구원처럼(누군가는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또다시 대중과 메시아의 소통의 오해라는 또 하나의 모방된 작품, 즉 그때의 데자뷰라는 것을 말이다. 그 당시 로마 통치에서 그들을 절대적으로 구원해줄 메시아가 아니라, 그들의 영생을 구원하는 메시아가 왔기에 그들은 그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못 박아버렸다. 이번에는 그런 기회는 없는 거 같다. 진정한 수많은 이들이 읽고 바랐던 제대로 된 심판의 순간. 즉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순간이라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이번 세계가 향하는 필연적인 지점이기에 말이다.
“아 그리고, 이 육신은 불멸이 아니기에 다시 쓰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삼위일체라는 우리의 교리 정도는 외워둬. 나의 정신이나, 진정한 본질은 죽지 않는 불멸이니까.”
길동은 더 이상 그에게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는 다 몰라도 게임이 끝났다는 정도야 직감적으로 깨달았기에 조용히 검을 다시 칼집에 넣고, 그가 밟았던 길을 따라 다시 되돌아갔다. 루시퍼는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아 너무 말이 길었네. 안녕 천국에서 다시 봐.”
결국 인류는 구원받았다. 다수가 따르는 신과 그가 보낸 메시아에 의해서.
*
그 후 어떤 심판을 받았는지는 미천한 내가 알 도리는 없었다. 그러나 신은 한 개의 세상을 창조했다고는 어디에도 증명 된 바 없다. 그리고 다른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어디에 증명 된 바 없다. 지금 우리가 봐온 세계는 하나의 그 세계의 다수가 원한, 그 세계의 가장 필연적인 개연성의 결과 일 뿐이다. 그렇기에 다른 세상이 있을지, 새로운 세상이 창조 될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기에 앞으로 있을, 아니면 지금도 이 글이 쓰이고 있는 이차원보다 앞선 삼차원의 공간에서 이 글을 볼지도 모르는 당신들에게 영웅과 모방에 대한 이 이야기와 나의 생각이 계속 살아 숨 쉬고 보존되기를 바라며,
이만 안녕.

죄송하지만 반도 못 읽고 좀 읽다 넘기고 넘기고 해서 봤습니다.
사실 거칠다는 표현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