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기인지우[杞人之憂]의 줄임말인데,
중국 기나라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어찌할까를 걱정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보통 쓸데없는 걱정, 안해도 될 근심을 이를 때 쓴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쓸데 없는 걱정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늘을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정말 무너지면 어떡하지?"


















나이트 후드(Nighthood)







기우[杞憂]












0.

대전의 밤은 차다.

문득 핸드폰 슬라이드를 여니 시간은 이미 밤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라면 대부분 이런 시간에 집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한국이 다른나라에 비해 치안이 좋은 편이긴 해도. 새벽에 가까운 시간에 어린 학생들이 돌아다니는건 안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학생에게 미래의 성공을 빌미로 현재의 안전을 담보잡는다. 이상하지 않는가?

"……."

어찌되었든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큰 길로만 다니자고 생각했다.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나는 이미 빛이 잘 들고, 넓고, 차도를 되도록이면 안 건너도 되는 루트를 확보한지 오래다.

세상에는 위험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꺅!"

그 순간. 짧은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묵직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상황판단을 하자. 주위에는 공사현장이나, 차가 돌아다닐 도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공사현장에서 자제가 떨어지거나 차가 추돌을 일으킨건 아니라는 소리다.

좋아. 난 안전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도와줄 수 있는 한은 도와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꺾어 들어가자. 그 곳에는 작은 생수통이 난잡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으으……."

소녀는 신음을 흘렸다.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이봐, 괜찮아?"

소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단발머리로 컷을 한 귀여운 상의 소녀다.
엷은 밤색의 눈 한쌍이 나를 바라본다.

"아,괜찮아요. 짐을 옮기다가 미끄러져서……."

그거야 상상이 간다. 작다면 작은 몸집으로 이 많은 생수통을 짊어지고 가려하니까 말이지.

나는 생수통을 집어서 옆에 떨어진 박스에 집어 넣었다.

"아 안 도와주셔도 되는데……."

"난 도와주셔도 되니까 도와주는거야. 밤중에 이런걸 나르다니 크게 다친다고."

난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안전 불감증이 걸린 사람들을 대할때는 언제나 짜증난다.
그런 간단한것도 생각하지 못한단 말인가.
가만 보니, 이 소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근처의 중학교의 교복이다. 생각보다 더 어리군.

결국 생수통을 다 상자에 담았다. 소녀는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생수를 한병 주었다. 괜찮다고 하는데 거의 강제로 주

듯이 하고서는, 상자를 들고 저쪽 골목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별로 생수 같은거 받아도 기쁘지 않은데 말이지.

생수통을 들어 표지를 보았다. 영문자로 크게 [NIRVANA]라고 써 있다. 설마 영국 록 밴드 이름을 쓴건 아닐테고. 열반이란 의미의 '니르바나'를 쓴거겠지.

마시면 열반할것 같은 맛인가. 은근히 기분나쁜 문구로구만.

버릴까 했지만 그래도 호의로 준건데 버리기에는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양심이 찔린다. 뚜껑을 살짝 열고 냄새를 한번 맡아본다.

이상한 낌새는 없다. 무게도 정량 그대로인것 같다. 혀를 살짝 대서 맛을 보고 침과 함께 뱉어내었다. 맛에도 이상한 점이 없는것 같다.

그럼 살짝 마셔볼……으악!

생소통을 입에 가져가는 순간에 생수는 순간 두 동강이 나버렸다.
난 놀라서 생수를 바닥에 떨어트렸고, 물은 순식간에 바닥을 적셨다.

"잠깐. 그 물 마시지 마."

"이미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걸어오는 후드티를 입고 후드를 눌러 쓴 괴한이 있었다.
아마 생수는 저 대검으로 갈라버린 것이겠지. 얼마나 위험하고 무식한 행동인가는 접어두고, 어떻게 저 거리에서 내 물병을 자를 수 있었는가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괴한과 나의 거리는 5M도 넘게 떨어져 있다.

도망치기 이전에 그것을 생각한건. 만약 저 괴한이 그런 능력이 있다면. 내가 도망치는 순간 나도 베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물병을 베어버린건 일종의 위협이라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도망친다면 더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는것이다. 여기서는 조용히 있자.

"하하하. 이 녀석 의외로 정신이 나간 놈이네? 생긴건 멀쩡해가지고."

나는 괴한을 바라보았다. 후드로 얼굴이 살짝 가려진것 같지만. 목소리나 체형은 여성의 그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어린.

"좋아. 난 별로 네가 후드를 뒤집어 쓰고 다니는지, 왜 그렇게 무식하게 생긴 대검을 들고 다니는지 간섭하고 싶지 않아. 혹 나한테 보이기 부끄러울 사생활의 단면을 보였다고 치면 그 사실은 철저히 잊어주겠어. 혹시 나의 생김새가 마음에 안들었다고 치면 성형수술을 하던 가면을 쓰던 너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게 할게. 그러니 내가 집에가는걸 묵인해 주겠어?"

나로서는 자존심을 최대한 숙인 언사였다. 하지만 괴한은 어깨에서 대검을 순식간에 들어 바닥에 내리 꽃았다.

"맘에 안드는건 어떻게 되먹은지 모를 네 놈 성격이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 마침 시간이 됐군. 이유를 알고 싶다면 직접 보는게 낫지 않을까? 뭐라고 하더라…… 백문이 불야행?"

불여일견이다. 나는 그녀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하늘이었다.
그리고 불투명한 유령이 날고 있었다.
나는 순간 놀라서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러니까, 내가 본게 뭐지?

"알겠지? 그 생수를 마시게 되면 저렇게 된다고. 그 생수에도 써있잖아. 너바나라고."

"니르바나……열반 [涅槃] 그런 뜻이었군."

유령. 아니, 영혼들은 뭐가 즐거운지 꺄르륵 가리며 웃고 있었다. 육체와 집착을 버린 해탈의 경지란 저걸 말하는건지도 모른다.


"그럼 왜 안된다는 거지?"

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왜 그러면 안된다는 건가. 왜 육체의 틀을 벗어버리고,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는가.
그리고 그 여자는 왜 그것을 막았는가.
머리가 분열하는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집착이 머리에 가득 찼다. 나는 황급히 목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 구역질을 하자 투명한 물이 몇가닥 입술에서 떨어졌다.
기분은 최악이었지만 머리는 약간이나마 맑아졌다. 위험물질인지 확인할 때 혀에 잠깐 대었던게 식도를 타고 내려갔던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것일까. 알 수 없었다.

"흐흥. 뭐 지들이 약을 먹고 유령이 되건 귀신이 되건 상관 없지만. 문제는 저 녀석들이 지구를 뚫고 나갈려고 한다는거지. 그러면 하늘에 구멍이 뚫리게 되버려. 아무래도 그러면 곤란하겠지."

하늘에 구멍이 뚫린다.

하늘이 무너진다.

어렸을 때 그런 걱정을 해본적은 있었다. 하늘은 그 어떤 지지대도 없는데 어떻게 저 위에 있는 걸까 하고. 언젠가

저 하늘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하자면 대기가 사라진다. 그런 뜻인가?"

"아, 뭐 그런 듯한 말도 했었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큰일. 정도의 일이 아닌것이다. 지금도 영혼들은 자기들끼리 하나 둘 모이고 있었다. 왜 지금까지는 저런 것이 보이지 않았는지, 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모여서 하늘을 뚫을것이라는건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더 많은 영혼이 합세하면 대기가 사라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확실한것은 인류 멸망이라는것이다.

그야말로 최악. 최고의 위험이다.

괴한은 검은 후드를 벗어 뒤로 넘겼다. 그러자 붉은색으로 염색한 긴 포니테일과, 날카로와 보이는 눈매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새침해보이는 인상이다.

"이 물을 만든 녀석은 초반엔 인터넷에서 자신의 세를 불리다가. 요즘엔 강제로 물을 줘서 먹이는 방법을 쓰고 있어. 그만큼 급해졌다는 얘기겠지."

"아니야."

"뭐?"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싶어서일거야."

"살리고 싶다니. 확실히 죽이는 방법이 아니고?"

"어차피 대기가 사라지면 산소가 사라져서 인류는 멸종해. 그렇다면 영혼의 상태로 만들어서 한명이라도 더 살리자는 생각을 한거겠지. 그렇다면 왜 더 쉬운 방법이 있는데 그걸 쓰지 않았을까..."

"더 쉬운 방법이라니?"

괴한은 박혀있던 대검을 뽑으며 물었다. 모든 사람에게 물을 먹게 할 수 있는 방법 하면 뻔하지 않은가.

"수도에 물을 흘려 넣으면 되지. 그렇다면 갈 곳은……상하수도겠군."

"젠장! 그런 건 빨리 말해!"

그녀는 순식간에 나를 안았다. 아니, 안았다라기 보다는 낚아 채인다고 말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것이다. 그리고 나를 낚아 채자 마자 그녀는 '날아 올랐다'



1.

빌딩을 수십번 도약하고 건너뛴 후에 (그리고 내가 몇번이나 기절할 뻔한 후에.) 도착한것은 도시에서 공급하는 상하수도 시설이었다.
요즘에는 경비보다는 기계식 경비장치를 쓰기 때문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하지?"

"아마 소독을 마치고 수도를 통해 흘러들어갈 준비가 된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데. 그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군."

"흐흥. 그럼 직접 확인해 보는 수 밖에."

그녀는 검을 비스듬히 잡고는 순식간에 벽을 향해 내리쳤다.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가 만들어졌다.

"뭐해. 안오고."

"……아니. 잠깐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식한지 통감하고 있는 중이어서."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가. 뭐,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 그렇게 몇번의 소란이 끝나고 난 다음에, 문제의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좀 늦으셨군요. 이미 물은 수도로 들어갔습니다."

물이 가득한 수조 옆에는 내가 본 기억이 있던 소녀가 서 있었다. 바로 내가 도와줬던 소녀였다. 만날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흥. 웃기지 말라고. 너의 생각대로 되기에는 내가 너무 강해서 말이지."

알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이미 물에 섞여들어간걸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녀는 빠르게 달려가서 수조 안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도약의 충격파에 엄청난 괴음을 내면서 물이 솟아 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점프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검은 불타올랐고, 물은 수증기화 해 사라졌다. 라고 묘사할 수 밖에 없다.
그녀는 가볍게 착지하더니.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기며 말했다.

"봤지?"

"너는 어디의 슈퍼로봇이냐!"

"흐흥.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지? 아가씨."

소녀도 마찬가지로 괴한의 능력에 경악하고 있었다. (아마 나의 표정도 이하 동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어째서 막는거야! 인류는 육체라는 틀을 벗어던져야 해! 지구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아마 다른 사람이 말한것을 그대로 말한것일거다. 아마 기본 교리가 아니었을까.
괴한은 살짝 웃더니 말했다.

"빌어먹을 중학생. 도망치지 말라고. 육체에게서 말이야. 틀을 벗어던진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너희들의 행동은 도망치는 것 이상이하도 아니야. 뭐 다른사람이 개소리를 해도 받아주는게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난 민주주의하고는 백만년 정도 떨어진 존재라 말이지."

"너, 넌 도대체 뭔데!"

"이름은 들어본적이 없을거다. 나이트 후드라고 말이지."

나이트 후드라는 이름이었나. 어쩐지 말 그대로의 이름이로군.

"웃기지 마……그런 웃긴 이름에게 계획이 틀어질수는 없어."

소녀의 말에는 동감이다. 하지만 이미 계획이라고 불리는 것이 틀어진것 같은데…….
소녀는 품에서 생수를 한병 꺼냈다. 그리고 벌컥벌컥 들여켰다.

"파하하하하! 이걸로 나는 새로운 인류가. 어."

단발마도 고함도 아니었다. 짧은 단성후에 순신간에 소녀의 몸은 터져나갔다. 그리고 아까전에 본 영혼보다 수십배는 될듯한 영혼이 순식간에 건물을 부수고 일어섰다.

"칫!"

괴한, 나이트 후드는 나를 끌어당겨 도약했다.

"이봐, 저거 아무리 봐도 사기잖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한테 그렇게 말해도. 내 상식으로는 너나 저 녀석이나 상식을 벗어난 존재니까 말이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는 리얼계잖아. 일단."

뭐 그런걸 따질 때는 아닌것 같다. 공중에 있던 우리들에게 거대한 영혼의 펀치가 날아 들었으니까.

나는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이트 후드가 나를 집어 던진 것이다. 그리고 검으로 영혼의 펀치를 막으면서 뒤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튕겨져 나가면서 나를 다시 집어 들었다.

"나이스 캣치."

네가 말하지 말라고. 애초에 나는 죽을 지경이니까 말이지.
나이트 후드는 가볍게 건물의 옥상에 착지 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 뭐. 이제부터는 나이트 후드의 턴이라고 할까."

나이트 후드의 검이 불타올랐다.


2.

"두번은 보고 싶지 않은 전투신이었구만 그거."

어쩐지 한번 더 보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 날라가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지.

"흐흥. 뭐 평범하게 살면 나같은 건 안 보게 되지 않을까?"

평범하게……말이지. 난 잠깐 뜸을 들이다 말했다.

"사례를 하고 싶은데."

"사례라니? 지구를 지켜준 것?"

"아니 그건 미국 대통령이 사례해야 하는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이 사례해야 할 일은 아닌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하늘을 지켜준것에 대한 사례."

나이트 후드는 잠깐 생각하는 척 하다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뭐, 그럼 생크림 케이크 하나 정도로 용서해 주도록 할까."

뭘 용서해 준다는 건지. 어쨌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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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53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