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행사 - 판갤SF대회
글 수 47
대회의장. 의자마다 가득 차 있는 사람들. 복도와 통로에는 카메라와 기자들이 가득 차 있고, 연단 위에는 한손으로 세기 어려운 수의 마이크가 올라와 있다.
연단 뒤에 선 사람들이 하는 발표, 연설, 전 세계 총생산량의 10% 규모가 될 거라는 말도 있고, 이런저런 지원을 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희망을 가지라는 사람도 있고, 후손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창밖을 바라보니 지평선 위로 조그맣게 떠 있는 그놈이 보인다. 이 행성의 두 번째 위성. 이 모든 일의 원흉. 저놈만 없었다면 중력의 법칙은 100년은 일찍 발견되었을 거고, 뱃사람들을 괴롭히는 복잡한 조수 문제도 없었을 테고, 우주 탐사도 수십 년은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모여 떠들 필요도 없을 것이고.
우리의 운명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에서 박사학위 연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난 유용한 도구로 주목받기 시작한 초창기의 컴퓨터를 이용해 태양계 행성들과 위성들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컴퓨터란 게 지금 핸드폰보다도 못한 놈들이니, 실행 속도를 위해 난 프로그램이 실시간 계산 대신 단순화된 알고리즘들을 사용해 궤도를 계산하도록 만들었고, 그 탓에 경로 예측은 언제나 조금씩 빗나갔다.
알고리즘을 조금씩 수정하고 추가하며 오랜 기간 테스트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별로 나아지질 않았고, 그것은 대학에서 새로 개발된 슈퍼컴퓨터를 들여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이야 보통 집에서 쓰는 데스크톱으로도 그만한 성능을 낼 수 있지만 그 당시 그 컴퓨터의 성능은 획기적이었고, 그 덕에 난 고생해서 만든 알고리즘들을 사용하는 대신 실시간으로 궤도를 직접 계산하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정확하지만 더욱 느린 방법으로.
그렇게 해서 나온 프로그램은 엄청난 결과를 토해냈고, 그 결과로 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오랜 궁금증. 저 조그만 위성은 저런 비틀거리는 궤도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답은 간단했다.
'궤도를 유지할 수 없다'
6천 년 전 -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5983년 전 - 저 멀리서 날아와 지구 중력에 붙잡힌 후 원래 있던 달과 함께 6천년 동안 비틀거리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중력을 탈출해 저 멀리 날아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날아간 후 태양 근처를 교묘하게 돌아 지구로 돌아온다면 큰 문제가 된다. 지름 10km짜리 운석으로도 대멸종이 어쩌고 하는데 지름 1200km라니, 지구 전체가 용암바다가 되어 버릴 거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대체적으로 죽음을 예고 받은 불치병 환자의 그것과 흡사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사람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간은 다양했다. 끝까지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슬픔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은 적었고, 사회는 전체적으로 첫 번째 단계를 넘어서는 데만 20년이 걸렸다는 점이다.
첫 발견 이후로 지금까지의 혼란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100년 전만 해도 호롱불을 들고 다녔는데, 50년 전만 해도 주판 굴리며 세금계산을 했었는데 100년 후 멸망을 막는 것이 그렇게도 불가능한가?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는가? 인간이 비논리적, 비이성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어쨌든, 30년간의 혼돈은 종말을 맞았고, 그 결실이 오늘이다. 세계 각국의 대표, 그 외 중요하다 싶은 사람들이 모여, 예정된 운명을 피하기 위한 협약을 맺기로 했다. 공동연구, 지원 등등. 난 최초발견자 및 관련 분야 권위자의 자격으로 이곳에 참가했고, 지금 말하는 사람의 바로 다음이 내 차례다.
대중 앞에서 난 사람들의 통합과 그 때를 위한 준비를 촉구하는 과학자로 있어야 했지만, 나 또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때는 이미 나와 나의 자식들까지 다 죽은 뒤일 터이니. 이 우주에 인류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난 그저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페시어의 글은 훌륭하다. 브룬디에서 먹어 본 소고기 요리는 정말 일품이었다. 바레인의 해안선, 깜깜한 어느 날 밤에 본 은하수, 오페라, 클래식. 나의 손자, 손녀들도 이것들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 인류는 우주에서 필요 없을지 몰라도, 지구의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지기엔 너무나도 아깝다.
내 차례다. 나를 소개하는 목소리, 날 바라보는 수많은 눈과 카메라들. 부정과 분노는 지나갔다. 이제 협상을 해야 할 차례다. 우울과 수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후손은 계속해서 이 행성에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연단 뒤에 선 사람들이 하는 발표, 연설, 전 세계 총생산량의 10% 규모가 될 거라는 말도 있고, 이런저런 지원을 하겠다는 말도 나온다. 희망을 가지라는 사람도 있고, 후손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창밖을 바라보니 지평선 위로 조그맣게 떠 있는 그놈이 보인다. 이 행성의 두 번째 위성. 이 모든 일의 원흉. 저놈만 없었다면 중력의 법칙은 100년은 일찍 발견되었을 거고, 뱃사람들을 괴롭히는 복잡한 조수 문제도 없었을 테고, 우주 탐사도 수십 년은 일찍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모여 떠들 필요도 없을 것이고.
우리의 운명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건 대학에서 박사학위 연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난 유용한 도구로 주목받기 시작한 초창기의 컴퓨터를 이용해 태양계 행성들과 위성들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예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컴퓨터란 게 지금 핸드폰보다도 못한 놈들이니, 실행 속도를 위해 난 프로그램이 실시간 계산 대신 단순화된 알고리즘들을 사용해 궤도를 계산하도록 만들었고, 그 탓에 경로 예측은 언제나 조금씩 빗나갔다.
알고리즘을 조금씩 수정하고 추가하며 오랜 기간 테스트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별로 나아지질 않았고, 그것은 대학에서 새로 개발된 슈퍼컴퓨터를 들여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이야 보통 집에서 쓰는 데스크톱으로도 그만한 성능을 낼 수 있지만 그 당시 그 컴퓨터의 성능은 획기적이었고, 그 덕에 난 고생해서 만든 알고리즘들을 사용하는 대신 실시간으로 궤도를 직접 계산하도록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정확하지만 더욱 느린 방법으로.
그렇게 해서 나온 프로그램은 엄청난 결과를 토해냈고, 그 결과로 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오랜 궁금증. 저 조그만 위성은 저런 비틀거리는 궤도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답은 간단했다.
'궤도를 유지할 수 없다'
6천 년 전 -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5983년 전 - 저 멀리서 날아와 지구 중력에 붙잡힌 후 원래 있던 달과 함께 6천년 동안 비틀거리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중력을 탈출해 저 멀리 날아가게 된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날아간 후 태양 근처를 교묘하게 돌아 지구로 돌아온다면 큰 문제가 된다. 지름 10km짜리 운석으로도 대멸종이 어쩌고 하는데 지름 1200km라니, 지구 전체가 용암바다가 되어 버릴 거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대체적으로 죽음을 예고 받은 불치병 환자의 그것과 흡사했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사람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간은 다양했다. 끝까지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슬픔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사과나무를 심는 사람은 적었고, 사회는 전체적으로 첫 번째 단계를 넘어서는 데만 20년이 걸렸다는 점이다.
첫 발견 이후로 지금까지의 혼란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100년 전만 해도 호롱불을 들고 다녔는데, 50년 전만 해도 주판 굴리며 세금계산을 했었는데 100년 후 멸망을 막는 것이 그렇게도 불가능한가?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는가? 인간이 비논리적, 비이성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직접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어쨌든, 30년간의 혼돈은 종말을 맞았고, 그 결실이 오늘이다. 세계 각국의 대표, 그 외 중요하다 싶은 사람들이 모여, 예정된 운명을 피하기 위한 협약을 맺기로 했다. 공동연구, 지원 등등. 난 최초발견자 및 관련 분야 권위자의 자격으로 이곳에 참가했고, 지금 말하는 사람의 바로 다음이 내 차례다.
대중 앞에서 난 사람들의 통합과 그 때를 위한 준비를 촉구하는 과학자로 있어야 했지만, 나 또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때는 이미 나와 나의 자식들까지 다 죽은 뒤일 터이니. 이 우주에 인류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난 그저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페시어의 글은 훌륭하다. 브룬디에서 먹어 본 소고기 요리는 정말 일품이었다. 바레인의 해안선, 깜깜한 어느 날 밤에 본 은하수, 오페라, 클래식. 나의 손자, 손녀들도 이것들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 인류는 우주에서 필요 없을지 몰라도, 지구의 아름다운 것들은 사라지기엔 너무나도 아깝다.
내 차례다. 나를 소개하는 목소리, 날 바라보는 수많은 눈과 카메라들. 부정과 분노는 지나갔다. 이제 협상을 해야 할 차례다. 우울과 수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후손은 계속해서 이 행성에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