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⑴


  친구는 아침부터 불안해 보였다. 지각은 물론이고, 청소 시간에도 밀대 자루만 멍청하게 잡고 있었고, 수업이 시작되자 불안하게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다른 아이들이 매섭게 눈치를 줬지만 아랑곳않고 계속 떨어댔다. 무시한다기 보다는 그런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먼산이나 보고 있는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친구를 흔들었다. 친구는 깜짝 놀라며 뒤돌아봤다.
  "어? 왜?"
  "다리 좀 그만 떨어. 복나갈라."
  친구는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곧 바른 자세로 돌아가서 수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얼마되지 않아서 자세는 흐트러졌다. 손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오독오독 소리를 냈다. 뭐하는거야? 생각은 곧장 입으로 나왔다.
  "너 뭐하는거야?"
  친구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한번 흔들어보려다가 말았다.
  쉬는 시간이 다시 돌아오자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너 왜 그래?"
  친구는 시선을 바로두지 못했다.
  천장, 책상, 칠판, 손, 걸상, 선풍기, 나, 발, 시계, 손등.
  친구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게 느껴지는데."
  "신경쓸 것 없어."
  "신경쓰이니까 말하는거잖아."
  "미안해." 성을 내려는데 대뜸 꼬리를 내렸다. "생각할게 좀 있어서 그래."
  나는 잠깐 신음하고 설렁설렁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일 있으면 그냥 말해."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세계가 멸망이라고 하고 있는 듯, 공황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괜찮다고 했어도 학교가 끝날 때 까지 무슨 일이나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친구를 살폈다. 학교에서의 하루는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친구의 멍한 표정을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친구와 함께 하교길을 걸을 때 시작되었다.
  "너 집에 무슨 일 있지? 무슨 일이야?"
  "아냐."
  "아니면 친구 관계?"
  "아냐."
  "애인이라도 생겼냐?"
  "그런 것도 아냐. 적어도 니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냐."
  "그럼 뭐야?"
  잠깐 동안 타박타박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친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알고 싶어?"
  "응" 하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한숨이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기다렸다. 친구가 말했다.
  "너는 니가 너무 많은 걸 모른다고 생각한 적 없냐?"
  "어? 무슨 말이야?"
  "거시적으로 보자면 우주 같은게 있지."
  "우주?"
  "빅뱅이나 암흑 물질, 블랙홀 같은거 말이야."
  언어 지문이나 다큐멘터리에서 한번 쯤 들어봄직한 단어들이었다. 근데 그게 지금 왜 나와?
  친구는 내 얼굴 위로 떠오른 물음표를 무시하면서 계속 말했다.
  "과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정말 진실일까? 열역학 법칙은 정말 법칙이라고 할만큼 영원불멸한 것일까? 고전물리학은 이미 한물갔지. 하지만 그때 당시에만 해도 그게 진리처럼 받아들여졌단 말이야. 그렇담 지금 알고 있는 것들도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않을까? 누가 하늘을 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겠어. 지금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언젠가는 우스개소리로 치부될 날이 오지않을까? 그런 생각해본적 없어?"
  나는 멍청하게 듣고 있다가 피식 웃었다.
  "뭐야. 그런게 고민이야? 역시 중2를 넘어선 고2 답네."
  농담 삼아 웃어넘기려는데 친구는 심각한 얼굴로 가로저었다.
  "내가 그걸 고민하고 있다는게 아니야. 니가 그런 고민을 해본적이 없냐고 묻고 있는거지."
  눈매가 매서웠다. 아까같은 꿈이 덜깬 눈이 아니었다.
  "글쎄에." 나는 길게 잡아 늘렸다. "아마 없는 것 같은데. 근데 그런걸 왜 묻는거야?"
  "알고 싶다고 했잖냐."
  "왜 고민을 하느냐고 물었잖아."
  "그전에 너한테 물은 질문부터 답을 내야지."
  "답이 뭔데?"
  "니가 있는 세상은 '엉성하다'는 거야."
  "뭐?"
  "엉성하다고.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지구와 수 많은 생명체들을 결과로 본다면 원인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이유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안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듣고보니 그런거 같기도 하고……."
  친구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 사실 듣고보니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거야. 마치 성급하게 만들어 낸 것 처럼."




어제


  나는 허공을 밟았다. 옆을 보지 않고 친구에게 말했다.
  "전쟁이 끝났다면서?"
  친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가 졌지."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돌고, 태양이 보다 무거운 것을 중심으로 돌았다. 그렇게 회전에 의한 에너지는 축적되고 우리 은하의 문명을 보다 발달시켰다. 그리고 최근 몇 천년 사이 우리 은하의 에너지는 다른 은하를 삼킬 수 있을 만큼 거대해졌다.
  하지만 그런 은하는 우리 은하 뿐 만이 아니었다. 모든 은하는 우주 탄생 초기 부터 시작된 에너지를 차곡차곡 모아왔고, 문명을 발달 시켜왔다. 우리 은하가 도달한 위치는 다른 은하들도 이미 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은하 에너지의 한계였다. 보다 높은 문명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로 했고, 동등한 위치에 도달한 은하들은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도 했다.
  전쟁은 전 우주적으로, 그리고 은하가 만들어 질때와 같이 수 십억 년 동안 진행되었다. 늙은 행성으로 블랙홀을 만들어내거나, 단단한 행성들을 궤도에서 이탈시켜 미사일 처럼 날려댔다. 생명이 넘쳐나던 우주는 죽어가기 시작했다. 식물과 동물의 자연 유기적 네트워크로 영혼을 가졌던 행성들은 그렇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끝에, 우리 은하는 패배했다.
  생명은 가진 별은 지구를 비롯해서 몇 남지도 않았다.
  "이제 어떻게 될까?"
  내 말에 친구가 대답했다.
  "우리 은하가 삼켜지겠지"
  "문명은? 우리가 이룩한 저 위대한 것들은?"
  친구는 내 말을 감상적으로 듣는 것 같았다. 친구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뜨면서 숲과 들판, 흐르는 물과 파도 치는 바다. 어느새 나도 그 시선을 따르고 있었다.
  "어떻게 될까?"
  내가 무심코 말했다.
  친구가 대답했다.
  "잊혀지겠지."




오늘⑵


  "결국엔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거야?"
  친구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잊어버렸구나."




내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돌아봤다. 회색질의 벽. 분명 이질적인 느낌이 났다. '도시' 밖엔 이런 것들이 없다. 분명 도시라는 건 특별했다. 밤이 되면 별빛도, 달빛도 아닌 것들이 자라지 않는 강철 나무에 걸렸다. 어떤 동물과도 닮지않은 '자동차' 들이 있었다. 자동차들은 다리 대신 바퀴를 가지고 있었는데, 학자들은 도시의 평탄하고 딱딱한 지형 상 자동차들이 바퀴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그렇담 그것이 생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인데, 어떤 진화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것 말고도 인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저 높은 '빌딩' 들은 어떻게해서 생겨났는지, 누군가 지어낸 것이라면 어떻게 지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인류는 아직 알아야 할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