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고 S박사와 부인은 식탁에 앉았다. 때마침 불고기가 식탁에 있었기에 S박사의 기분은 좋았다. 불고기는 S박사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S박사는 허겁지겁 불고기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짭짤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즙이 입안 가득이 번져나갔고 S박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 그때 S박사의 부인이 말했다.

“여보! 고기만 먹지 말고 야채 좀 드세요. 고기만 먹으면 나중에 병 걸려요.”

S박사가 느끼고 있던 기쁨은 아내의 잔소리를 듣자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렇다고 S박사가 딱히 할 말이 있지는 않았다. 아내의 말은 어느 한 구석 틀린 데가 없었으니까. S박사는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S박사는 야채를 하나하나 입에 넣었다. 마늘쫑, 파줄기 볶음, 무말랭이, 콩나물 무침. 야채가 뱃속에 들어갈수록 배는 불러왔고 불고기가 들어갈 공간은 점점 줄어만 갔다. 마침내 식사가 다 끝났다. S박사의 배는 터질 지경이었지만 아직도 불고기는 많이 남아있었다. 야채와 고기를 균형 맞춰 먹느라 고기를 많이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맛도 없는 야채를 먹느라 고기를 적게 먹어야 된다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문득 S박사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맛이 좋은 음식은 건강에 안 좋고 맛이 없는 음식은 건강에 좋은 걸까. 맛이 없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균형잡힌 식사를 하게 되어 건강하게 살 수 있을텐데.’

이 생각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S박사는 그날로 미각 연구를 시작했다. 미각을 완벽히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여태까지 그 누구도 시도해본 적이 없고,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연구이다. 음식의 맛은 미각뿐만 아니라 후각, 촉각 등이 종합되어 느껴진다. 단순히 혓바닥과 미각세포만 건드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S박사는 자신이 있었다. 박사가 손 댄 연구 중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않은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의 첫 단계는 미각을 관장하는 부분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미각은 본질적으로 뇌와 깊은 관련이 있다. 모든 맛은 여러 감각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뇌에서 종합시킨 후 느낀다. 미후각 세포, 미뢰, 미신경 따위도 중요하지만 뇌의 반응이 가장 중요했다. 뇌의 반응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맛도 마음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S박사는 CT와 MRI를 이용하여 맛을 느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촬영했다. 이에 대한 연구는 이미 다른 이들에 의해 진행된 적이 있지만 박사는 그 정도 분석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여러모로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박사의 명성과 모아둔 재산 덕에 연구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근 6개월의 시간이 경과한 뒤 뇌의 어느 부분이 맛을 관장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게 되었다. 종전의 연구들보다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결과였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뇌의 반응은 단순하지 않았고 박사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밀했다. 단지 한 부분에서 하나의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뇌의 여러 부문이 동시 다발적으로 반응했다. 현재의 기술로는 어떤 부분에서 어떤 맛을 느끼는 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죽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관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박사는 난생처음 좌절감을 느꼈다.

‘어찌해야 되는가. 도무지 어떻게 해야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이제 와서 모든 연구를 중단하기엔 노력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박사는 우울한 나머지 연거푸 술을 들이켰고 끊었던 담배마저 줄줄이 펴댔다. 맑은 머리로도 생각해내지 못한 해결책을 술, 담배로 찌들은 몸이 생각해낼 리 없다. 날이 갈수록 박사의 몰골은 피폐해져갔고 부인의 걱정은 커졌다.

“여보, 당신 연구도 좋지만 건강부터 생각해요. 요새 당신 꼴이 말이 아니에요.”
“음.......”
박사는 쉽사리 답변을 못했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연구니 건강을 망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이다. 허나 박사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고 쉽사리 포기를 용납 못했다.

“그 얘긴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고 저녁 먹을 때가 다 됐어.”

부인은 박사를 생각해서 특별히 불고기를 준비했다. 박사는 성의를 생각해서 몇 점 먹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고기가 퍽퍽하게만 느껴져 조금 먹다가 관두었다.

“왜 이리 적게 드세요. 좀 더 드시지 않고.”
“입맛이 없네.”

지나친 술과 담배는 미각을 해친다. 연구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더라도 박사의 미각은 예전만 못했다.

‘진정 연구를 그만둬야 하나. 불고기조차 맛없게 느껴지다니. 이러다 아예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 순간 박사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맛을 아예 못 느끼게 하자. 일단 미각을 완전히 차단한 후 조금씩 맛을 느끼게 한다면 뇌엔 조그만 반응만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작은 반응을 종합한다면 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것 같은 정밀한 분석이 가능하다.’

착상은 그럴 듯했지만 누가 실험에 지원할까가 문제였다. 동물 실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쾌락 중 하나는 먹는 것이다. 돈을 아무리 준다해도 사람들이 쉽사리 미각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일단 미각을 없애는 건 신경만 차단하면 되니 쉬웠지만 되살릴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야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 실험을 할 경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모른다. 사람들을 속이고 지원자를 찾을 수도 있지만 실험이 실패할 경우 온갖 손해배상을 감수해야한다. 또한 불명예를 지닌 채 과학계에서 매장당할 가능성이 컸다.

박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광고를 찾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험 대상은 박사 자신 아니면 부인 밖에 없었다. 그 외의 다른 사람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허나 박사는 차마 부인에게 그런 일을 부탁할 수 없었다. 실험이 혹시라도 잘못된다면? 아무 맛도 못 느끼며 살아가는 아내를 평생 동안 봐야한다. 생각만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모든 책임을 박사 혼자 지는 게 나았다.

‘실험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반드시 성공할거고.’

박사는 자기 자신을 위로했지만 안심이 되질 않았다. 연구를 여기서 관둘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20년이 넘도록 쌓아온 명성과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누군가 반드시 박사의 실패를 비웃을 것이다. 경쟁과 시기는 과학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더는 멈출 수 없었다. 결국 박사는 모든 미각을 차단했다. 물론 부인에게는 비밀이었다. 아내가 위험한 실험을 용납할 리가 없었으니까.

박사는 식사시간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음식을 씹는 데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차라리 쓰디쓴 맛이라도 났으면 나았을 것이다. 허나 이빨 사이로 씹히는 느낌만 들 뿐이었다. 음식의 부드러움이나 딱딱함, 연함, 질김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고무를 씹는다 해도 이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는 실험이 하루빨리 성공적으로 끝나기를 빌었다.

신경이 완전히 차단된 상황에선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맛을 느끼는 부분에 반응이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박사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아주 약간의, 미세하리만큼 조금만 차단을 풀은 뒤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뇌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허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박사는 실망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실험을 계속했다. 감각은 일정 이상의 자극을 받을 때만 반응을 한다. 이번엔 차단된 신경을 너무 적게 풀었기에 반응이 없었던 것이리라.

박사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신경을 묶은 끈을 풀었고 오래지 않아 미각을 느끼는 최소점을 발견하였다.

‘앞으로 해야 할일이 많지만 중요한 고비는 넘겼다.’

신경은 수많은 연결고리를 가지며 하나하나의 가지가 모여서 맛이라는 나무를 이룬다. 뿌리를 쭉 따라 올라가면 가지 끝에 이르듯이 가지 끝에서 내려가면 뿌리에 이르게 된다. 단 하나의 단추를 꿰맨 것에 불과하지만 연구의 완성이 멀지 않았음을 박사는 직감했다.

연구는 급속도로 진행되어 갔다. 박사는 맛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서서히 알아갔다. 이제 박사는 더 이상 불안하지도 초조하지도 않았다. 실험을 위해서 미각을 완벽히 회복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예전보다 밥맛이 좋아진 기분이었다. 연구를 시작한지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박사는 맛의 원리를 완벽히 파악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을 느끼는 과정이 박사의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졌고 뇌의 어떤 부분이 반응하는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고 그것만으로도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박사는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목표를 완전히 달성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맛의 원리를 아는 박사에게 맛의 통제와 조절은 단지 시간문제 일뿐이었다. 박사는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아 신경과 세포들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박사는 꿈을 이루었다. 박사는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맛있게 느꼈다. 변화된 박사의 미각은 더 이상 맛없다라는 감각을 용납하지 않았다. 과거엔 맛이 없어 도저히 먹기 싫었던 야채도 고기 같이 느껴졌다. 비록 씹는 느낌은 달랐지만 맛은 고기였다.

박사는 만족스러웠다. 이제는 야채를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모든 야채에서 불고기 맛이 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박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박사는 정말로 기뻤다. 이 연구를 통해 박사는 과학사에 한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식생활에도 커다란 만족을 얻었다.

“당신, 그렇게 좋아요?”

모든 상황을 지켜봤던 부인이 물었다.

“물론이지. 사람들은 편식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당근 먹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고 특정 음식을 못 먹어서 생기는 고통 따위도 없어질 거야. 떪은 맛이나 신맛 같은 맛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원하는 맛을 아무 때나 아무 음식을 통해서든 느낄 수 있어. 맛보다도 건강을 생각해서 음식을 먹게 될 거고 그로인해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할 거야.”

“하지만 난 어쩐 지 내키지가 않아요.”
“걱정 마. 직접 경험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걸?”

박사는 여러 차례 부인을 설득했지만 끝끝내 부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사는 아쉬움을 느꼈지만 개의치 않았다.

완성된 박사의 연구는 순식간에 퍼져나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절반 이상이 채식주의자로 변했고 가축 사육양도 급감했다. 그로 인해 남는 땅이 늘어났으며 굶주리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건강 위주로 한 식단 덕에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증가했고 박사를 찬양하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 또 다시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박사는 오늘도 밥을 남겼다. 예전에는 그토록 맛있었던 불고기 맛도 이제는 질려버렸다. 목이 마를 때 물이 달게 느껴지는 법이다. 흐린 날이 있어야 맑은 날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박사는 문득 야채가 그리워졌다. 고기 맛이 나는 야채가 아니라 야채 맛이 나는 야채. 박사는 모든 미각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뒤 야채를 사먹었다. 허나 이게 진짜 야채의 맛인지 야채의 맛이라고 느끼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박사는 문득 혓바닥을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