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지어진지가 40년도 지난 대진빌라 304호가 내가 사는 집이다. 주민들은 이곳을 부르길 뒈진빌라라 부른다. 뒈진빌라. 씨발. 그래 차라리 좀 제발 뒈져주라.

긴 세월의 풍파를 그대로 이야기하는 듯 이 빌라는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허름하고. 후졌다. 위에서부터 새는 물 때문에 항상 바닥이 젖어있는 입구하며 4층 계단은 반절이 무너져서 올라가려면 벽에 찰싹 붙어서 암벽등반마냥 게걸음으로 올라가야 했다. 지랄할 노릇이다. 계단 층층마다 붙어있는 백열등은 어떤 염병할 새끼가 몽땅 다 뽑아갔다. 사다가 꼽아놓으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또 뽑아간다. 덕분이 빌라 주민들은 밤마다 원치않은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야만 했다. 어떤 개자식인지 걸리기만 하면 입안에 백열등을 쑤셔넣고 보도블럭으로 갈겨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여름에는 죽도록 덥고 겨울에는 무식하게 추운것이 이 빌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언젠가 내장단열재를 대체 무엇을 쓰나 궁금해서 벽을 조금 부수어봤다. 발로 퍽 차니 어처구니 없게 쉽게 깨져버린 벽 뒤로는 텅텅 빈 암흑의 무저갱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름엔 온돌의 역할을, 겨울엔 냉각파이프의 역할을 확실히 해 주고 있는 벽 뒤를 보며 기가 막혀 할말을 잃었었다. 그리고 비어있는 벽 뒤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방음처리도 전혀 안 되어있어서 늦은 밤이면 쉽게 잠을 못 이루고 담배나 뻑뻑 피워야 했다. 어떻게 5층 년놈들이 뒹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담?

재건축을 하자는 소리는 이곳 주민들의 비공식적 인사나 다름없었다. '철수엄마. 이 빌라는 언제쯤 재건축 되려나요.' '글쎄나 말이에요. 후.' 하지만 2005년인지 언젠지 제정된 미친놈의 법에 의거하여 대단지 재건축 이외의 재건축은 거의 불가하다고 한다. 차라리 20세대 미만의 소규모 단지면 허가가 떨어지는 기간이 짧아서 밀어붙여보겠지만, 이 빌어먹을 뒈진빌라는 그 기준마저 어설프게 넘어버리는터라 답이 없었다. 어떤 싸이코 같은 놈이 그따위 법을 제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뒈진빌라 주민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해보겠답시고 나름 추진의원회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이 돈 들고 날라버린게 벌써 두번째이다.

그런데 오늘로 먹튀가 셋으로 늘었다. 게다가 털린 금액은 역대 최고. 나는 지자체에서 스피커로 전하는 소식을 들으며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연신 씨발을 읖조리며 웅크리고 앉아 그 목소리를 들었다.  이 사태가 좆같지도 않은지, 담담한 어조는 나를 더 환장하게 만들었다. 아, 나 이런 씨발 진짜.

기가 막혀 천장을 올려다보니 누렇게 뜬 얼룩이 보였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다가.

가라앉았다.

어쩌다가 내 인생이 이리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아도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첫째로 태어나 나름 말짱하게 생겼고 나름 공부도 잘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정신을 차리고 나름 명문이라는 대학교에 들어가 나름 디트 점수도 좋았고, 이제 개인 병원을 차려 사람들 이빨 뽑아가며 돈이나 벌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왜 이런 짜증나고 냄새나는 곳에서 부패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떨리는 손이 흐릿하게 보인다.

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엔 전혀 문제 없는 정상인이었지만 실상은 비전없는 장애인이었다.
멀쩡한 사람 하나 조지는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사람, 동물, 생물을 다루는 것만 그렇게 공부해왔으니까 위험한 약물이야 잠깐 생각해봐도 수백가지가 넘게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진짜로 위험한것은 일상에서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렇게 처먹어도 문제없던 알콜새끼들이 갑자기 속에서 발작을 일으킬지나 누가 알았겠는가. 급성 알콜중독으로 실려간 뒤에 깨어나보니 내 눈과 손은 병신이 되었다. 흐릿한 눈은 겉보기엔 말짱하지만 그 어떤 안경을 껴도 초점을 잡지 못했고 손은 연장은 커녕 밥수저도 똑바로 못 들 지경이었다.

더욱 강한 약을 써서 집중치료를 받는다면 완치될 수도 있겠다고 의사는 말했다. 6개월동안 집중치료를 받은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가 하는 말을 듣는것은 무척이나 웃겼다. 그리고 내가 어찌되던간에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미 동기들은 모두 버젓한 의사가 된지 오래였는데
나는 4년동안 이모양이었다. 희뿌연 세상에서 얌전히 썩어갔다.
인간이란 얼마나 약해빠졌는가. 술 몇병에 장애인이 되는 몸뚱아리도, 26년 동안 버티다 한순간에 망가져버린 정신머리도.
자신에 대한 진단은 매우 빨랐다. 심신 고루 구제못할 병신.

마시던 술병에 술이 떨어졌다.

"저기 누구 계세요?"

순간적으로 '누가 술 배달 왔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 떨어진 줄 알고 칼같이 오는군? 현관으로 나갔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초인종을 누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양이었지만 그게 무의미한 장식품에 불과하게 된지 오래라는걸 알 턱이 없을 것이다.

"누구세요?"

인기척이 잠시 멈추었다가 대답했다.

"어, 저기. 정민욱씨 댁 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세상이 워낙에 시껍해놓은지라 무턱대고 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문 열었는데 왠 미친놈이 칼들고 덤비면 어쩌란 말인가.
하긴 이런 거지같은 빌라에 강도가 들 일도 없긴 하겠지만.
그 강도인지 뭔지 모를 사람이 말했다.

"혹시 민욱이니?"

"맞는데요. 누구시죠."

"나야 민욱아. 병창이."

머리속에 병창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고등학교 동기인 오병창. 그때는 정말 친했었는데 녀석은 S대 나는 Y대로 대학이 갈리면서 연락이나 가끔 하다가 군대 다녀와서는 거의 소식 모르고 지내던 녀석이었다.
이 순간에도 '혹시라도 보증서달라는거면 어쩌지?' 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질책하며 문을 열었다.
어릴적 모습이 눈에 선했지만 녀석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한눈에도 수척해 보이는 얼굴에 긴 머리가 정말 안어울렸다.

"왠일이냐 너……."

"오랜만이다."

"일단 들어와."

어적거리며 들어오는 폼이 옛날 녀석의 걸음걸이 그대로이다. 고등학교때를 떠올려보면 사람 무서운 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고 치대던 둘이 이렇게 앉아있으니 정말 기분이 묘했다. 할 말이 많았지만 할 말이 없는 희안한 상황이었다. 아마 병창이도 지금 내 심정과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이빨 잘 까던 새끼가, 철학과까지 간 새끼가. 조용했다.
한참을 서로가 말이 없었다.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부엌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고 병창은 테이블 구석을 보고 있었다. 말 없이 우리는 교류하고 있었다. 씹새끼……. 올려놓은 주전자가 끓기 시작했다. 커피를 따라주고 나니 그제서야 녀석이 입을 연다.

"넌 왜 이렇게 되었냐."

씹새끼가, 묻지나 말지.

"그런 너는 새꺄."

뚱한 표정을 하고 있던 녀석이 픽 바람새는 웃음을 내며 말했다.

"없어도 살고 있어도 사는게 아니겠냐."

"완전한 소크라테스가 되려면 배고파야 한다고?"

"지금 난 돼지지만 말이다."

"배나 부르고 돼지면 소크라테스가 안부럽지 병신새끼야……."

되쏘면서도 왠지 서글퍼졌다. 자기는 꼭 철학을 해야겠답시고 철학과를 가더니. 너는 왜 그러고 있어. 새끼야. 철학도는 거지같은 비주얼을 해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법이라도 정해놓은게 있냐? 필수로 지녀야 하는 자격조건이냐? 꼭 예술하는 새끼들은 하나같이 맛이 간 것 같더니만. 정신적 예술을 하는 새끼들은 더더욱 맛이 가 있다.
지금와서야 그게 뭔 잘난 맛이겠냐만

"어, 다른게 아니라……. 나는 요즘 뭔 사업을 좀 한다고."

"뭐, 역전에서 찬송가라도 트냐?"

내 말에 녀석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새끼가 처 웃기는, 마시던 커피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액체가 목구멍을 틀어막는 기분은 정말 더러웠다.
한참을 실없이 웃더니 녀석은 말을 이었다.

"그냥, 아는 선배랑 같이 하는 사업인데. 시계 만들어."

"시계?"

"그래 손목시계."

그러면서 녀석은 손을 내밀었다. 메탈바디의 평범하게 생긴 손목시계였다.

"시계를 만든다고?"

자꾸 되묻는 내가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녀석의 얼굴에 급격히 피곤이 드리워졌다.





녀석은 왔을때와 마찬가지로 휘적거리며 나갔다. '연락이나 좀 하고 살자 씹새끼야.' 라며 건낸 명함에는 주식회사 판가리아 라는 상호가 찍혀있었다. 직급도 뭣도 없고 그냥 회사 이름과 오병창이라는 이름, 핸드폰 번호만 찍혀있는 이상한 명함이었다.

그리고 놓고 간 시계.

"아니 무슨놈의 시계를 만든다고…….'

한눈에 봐도 별볼일 없어 보이는 시계였다. 브랜드가 이름있는것도, 장식이 화려한것도 아니었고 보석이 달려있지도 않았다. 단지 이상한 문양같은것이 그려져있는게 신기하게 생겼다. 나름 고급스럽기는 해도 어디 하청이 아니라 정말 자체제작하는 시계라면 갈 길이 참 암담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시계를 차 보니 마른 내 손목에 딱 맞았다. 묘한 차가움이 신선했다. 혼자 살면서 시간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살았기에 시계란것을 차 본지가 벌써 몇년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잠시 시계를 만져보다가 쇼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지구가 수몰되어 인류가 멸망하는 영화가 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는 사람을 하여금 대자연의 힘 앞에 감격하게 만들려는 병신같은 수작이라니. 그냥 하나님께서 제2의 대홍수를 일으키는게 더 현실성 있어보인다. 그리고 제2의 노아는 미국인인거지.

채널을 돌리니 별 이상한 쇼 프로그램과 홈쇼핑 광고가 차례차례 지나갔다. 껌뻑이는 텔레비전을 멀거니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는 찰나, 무언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어? 저거 뭐야?"

홈쇼핑 광고에서 시계를 선전하고 있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상품은 장인중의 장인! 거장중의 거장! 판가리아의 시계입니다!"

나는 얼이 빠져서 텔레비전과 손목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텔레비전에서 다양한 앵글로 보여지고 있는 시계는 내가 차고 있는 이것과 똑같이 생긴 모델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것은 큰 글자로 떡 하니 박혀있는 화면 구석의 가격표였다.
6백만원.
뭐야 이거 씨발? 6백만원? 내가 눈이 나쁘다 못해 완전 맛이 갔나 싶어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숫자는 0이 6개였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어보아도 달라짐은 없었다. 6백만원이었다.

지금 이 집값보다 비싼 시계를 손모가지에 차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기 보다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 사이에 대한민국에 슈퍼 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현관에 붙어있던 중국집 찌라시를 보니 자장면은 여전히 4천원이었다. 대한민국의 물가는 정상이었다. 그렇게 비싸다는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태그호이어 링크 시계들도 6백만원짜리들은 비싼 모델들이었다. 세상에, 씨발. 어렸을 적 돈 많이 벌면 포르쉐 몰면서 월 200만원짜리 오피스텔 살고 시계는 5백만원짜리 차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가격 옆으로 작게 무언가 씌여져 있었다.

X12

쇼 호스트가 신나서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번 제품은 특별한 가격 7200만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결제시 무이자 12개월 할부 가능하고요! 지금 주문이 폭주하고 있으니 어서빨리 주문해주세요! ARS로 주문해주시면 2백만원 할인 가능!"





그 광고만 얼마나 처다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신나서 깔깔거리던 재수없는 쇼 호스트는 넘어가고 이젠 무슨 서울대 박사니 뭐니 하는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품에 대한 설명을 뭘 한다는 것 같았다.
한 남자가 그 서울대 어쩌구 하는 머리가 휑한 사람에게 시계를 보여주며 말했다.

"판가리아 비트레이얼, 배반. 이라는 뜻이죠. 정말 아주 훌륭한 제품입니다."

"제 살아 생전 이런 물건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계에 비하면 롤렉스나 스와치 따위는 싸울 때 너클 대신 차는 용도 정도죠. 하하하."

"하하하. 그건 중고등학생들 지샥정도의 레벨의 시계가 아닌가요?"

"네 중국에 가면 만원에 6개씩 묶어서 판다고들도 하죠. 하지만 이 제품은 어떻습니까? 판가리아 비트레이얼! 아주 굉장하죠. 간지가 철철 흐르다 못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고 은하수를 이루는 듯 합니다. 가히 우주의 신묘함과 비견되는 포스라고나 할까요."

"정말 간지가 넘치는군요."

"간지도 넘치고 여성들도 넘친다죠?"

"하하하."

"이 시계만 딱 차주면 길가던 여자들이 모두 만성 요실금 환자가 된다는게 사실인가요?"

"정말입니다. 실지로 일본 여성들 중 70%가 탈수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게 모두 이 제품 때문이라는 학계의 연구발표가 있습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 제품을 알았더라면 사막을 녹지로 바꾸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읉 텐데요."

"아! 사막을 아주 비옥한 땅으로 만들 수 있겠군요?"

"그렇잖아도 중국이 이미 고비 사막 녹지화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간지가 지나쳐도 문제이긴 하죠."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간지가 지나쳐서 문제가 되다니? 왜 그렇죠?"

"네덜란드가 수몰 위기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게 모두 이 제품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덕분에 네덜란드에서는 판가리아 비트레이얼에 수입 금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하하하."

"이미 선진국 미국에서는 이 시계를 찬 여성들로 이루어진 소방대까지 있다고 합니다. 정말 선진국답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군요."

보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송이 공중파고 뭐고 막나가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완전 또라이 수준 아닌가? 저런 병신같은 음담패설을 떠들면서 무슨 상품홍보를 하겠다는거야? 기가막혀서 뭐라 할 말이 안 나온다. 근데 더 웃긴건 화면 옆에 떠있는 잔고수량이 정말 1초에 5개씩 줄어간다는 점이었다. 개당 7200만원 짜리가. 진짜 팔리는건지 뻥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량은 이제 백개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숫자가 줄어드는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고 곧 0이 되었다.
여성 호스트가 웃으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안타깝군요. 판가리아 비트레이얼! 순식간에 전량 매진입니다! 구입하시지 못한 분들은 다음을 기약하세요! 항상 좋은제품 멋진신용! 69S홈쇼핑이었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컴퓨터를 틀어 판가리아 비트레이얼을 검색했다. 수많은 정보들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7천만원이라던 어처구니 없는 가격이 미친 홈쇼핑의 장난이 아닌 정말 그 제품의 소비자가라는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난 더 황당한 사실을 발견했다.
아까 그 박사라던 인간들이 저질스럽게 떠들던 말들은 그냥 변태적인 농담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었다.

-횽아들! 나 비트레이얼 질렀는데ㅋ 이거 진짜 효과 완전 지댕! ㅋㅋ오늘 편의점 알바 질질 싸는거 진짜 대박이었는데 ㅋㅋ
ㄴ미친 부르주아새끼
ㄴ나도 그저께인가 대출받아서 샀는뎈ㅋㅋㅋ 씨발 완전 개쩔
ㄴ여성부 미친년들이 비트레이얼 반대 시위한데메? ㅡㅡ 얼탱이가 없어서
ㄴㅋㅋㅋㅋㅋㅋㅋㅋ
ㄴ야 씨발 나 그거 하루만 차보게 빌려주라.
ㄴ중고로 파실 생각 없나요?

"뭐야 이거 씨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폭풍간지에 질질 싸겠다 라는 말은 관용적으로 쓰이는 어구였지 이렇게 문자 그대로 쓰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현실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별다른 특징도 없어보이는 이 시계를 보고 뭐가 느껴진다는거지? 그것도 여성들만 골라서. 이게 당췌 말이 되는 소린가.

뉴스기사들을 보니 이 판가리아 비트레이얼은 그 특성때문에 고소당한것만 700만건이 넘어간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문제도 끊임없이 야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 미친 시계회사는 아직도 활발하게 시계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7000만원이라는 미친 가격으로. 그리고 세상엔 넘쳐나는 돈을 주체못하는 미친 싸이코들이 너무 많았다.

목적을 가지고 이 시계를 구입한 새끼들이야 당장에 시계를 차고 그 위력을 실험해보려 안달을 했을 터이지만 나는 얌전히 시계를 끌러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전화를 꺼내들었다.

"빨리 받아 이 미친 새끼야……."

온 몸이 잔뜩 긴장됨을 느꼈다. 오병창 이 새끼는 도대체 뭐하는 시계회사에 들어간거지? 몰골은 완전 지하철 노숙자처럼 해가지고는 장난이 아니었다.
나에게 7천만원이나 하는 물건을 그냥 건내준것도 엄청나게 수상했다. 어찌 보면 나는 땡잡은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깟 거 모르는 척 끝까지 잡아떼며 잠자코 있던지 팔아치우던지 하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기쁘다기보다는 무서웠다. 병창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명함을 준 것조차 일련의 수작으로 생각되었다.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옛 친구라는 하나의 믿음으로 전화를 걸고는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정체모를 그림자가 느껴졌다.

한참의 신호 끝에 누군가가 받았다.

"뭐냐? 빨리도 전화하네."

병창의 목소리였다. 사실 전화 걸 생각만 했지 아직 생각도 똑바로 정리가 안된 터라 나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 뭐시냐. 시계. 그래 너 시계 말이야."

"그게 왜?"

병창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결국 나는 소리질렀다.

"너 도대체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는거야!?"

전화기 너머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일단 저지르긴 저질렀다. 혹시라도 끊어지지 않을까 나는 노심초사 기다렸다. 곧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 시계 어때?"

"뭐?"

"써봤으니까 연락을 준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보지? 어디 다른곳에서 봤어?"

"홈쇼핑에서……."

병창은 한참을 혼자 웃어댔다.

"하하하하. 아, 그걸 생각을 못했네. 나는 니가 그걸 차고 밖으로 나가서 직접 성능을 확인해봤으리라 생각했지."

"이 미친새끼가 지금 사람 놀려?"

"놀리기는 무슨, 내가 널 놀릴 작정이었으면 수천만원짜리 시계를 그냥 줄 이유가 없잖아."

나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씨발, 진짜 무슨 영화처럼 '네 목적이 뭐냐.' 라고 물어봐야하나? 생각만해도 쪽팔리지만 저 능글거리는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세계멸망이라도 시킬 생각이냐?"

"세계멸망?"

"그 시계 분명히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을거 아냐? 이렇게 세계 전체에 뿌려버린다면 절대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데?"

"멍청하게 굴지 마. 난 네가 그렇게 멍청하다 생각하지 않아. 만약 정말 발정제같은걸 살포하는거라면 이렇게 팔 수 있을 것 같냐?"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어투는 정말 경멸이 스며있었다.

"이 시계는 그따위 싸구려가 아니야. 약을 쓴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이 시계는 일종의 예술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아."

"예술품?"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그래, 생물학이나 해부학은 전공일테니 알아들을 수 있으리라 믿고 설명해주마. 사람이 훌륭한 예술품을 보면 전율을 느낀다고 하잖아? 이 모든것이 다 뇌 중심의 시상하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그런데 비트레이얼은 위치가 약간 달라. 하지만 크게 다르진 않지. 시상하부 전엽의 성욕을 주관하는 부분을 건드릴 뿐야. 조금 강렬하게."

"뭐라고?"

"간단히 설명해주지. 우리는 예술품을 팔고 있을 뿐야. 단지 여성들이 남자보다 좀 더 깊이 감동할 뿐이지."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으나 그 메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가능한 기술이라고? 예술품을 보고 감동하듯 보는것만으로 오르가즘에 이르게 한다? 이론상으로야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성욕이라는게 그렇게 간단하게 컨트롤당하는게 아닌데 어떻게 현대과학으로 그런게 가능하지?

"씨발 그게 말이 된다고?"

"안 될건 또 뭐야? 뇌에 철침을 박아넣지 않고 시각정보만으로 인의적이고 강제적으로 인간을 감동시키는 기술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어찌되었던간에 우린 그걸 성공시켰어. 그리고 지금 고소당한게 한 두건이 아니로 국가에게서 당한것도 있지만 세상의 법이란 것에는 구멍이 참 많아. 아무리 걸고 넘어지려고 해도 뭐라도 잡고 버티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은걸. 우리는 걱정없어. 시간만 질질 끌면 되는 일이야. 일년이고 십년이고. 사실 그렇게 길게도 필요없지만."

"지금 문제가 그게 아니잖아!"

병창은 웃으며 말했다.

"문제는 무슨 문제. 우리 제품은 하자는 커녕 너무 훌륭할 뿐이고 인간이 하자가 있는건데."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저런 중학생 수준의 마인드로 지껄이는 미친개소리가 이렇게 무섭게 들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새끼는 정말 완전히 돌아버린게 틀림없다. 전화기를 든 손이 유난히 격하게 떨려왔다. 씨팔 이 빌어먹을 병신 손 같으니.
나는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너, 이 새끼. 그럼 나한테 시계를 준 이유가 뭐야?"

"글쎄……. 달리 나쁜 이유는 없어. 그저 친구들을 같이 방주에 태우고 싶었을 뿐이니까."

"뭐? 방주?"

병창은 침묵했다.
방주 하면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때 노아가 만들었다던 그 방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 방주라는 건 보통 재앙에 대비하여 만들어놓은 셸터 등을 뜻하지 않던가?
순간 등골이 섬뜩해졌다.

"야! 뭐야! 방주라니! 이 미친 새꺄!"

대답으로는 전화가 끊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나는 놈이 마지막으로 남긴 방주라는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졌다.

시계를 팔아서 세계를 전복시키려는 미친 새끼들이 모인 곳에서 기획하는 '방주'라는 것을 그리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가만히 넋놓고 앉아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었다. 방주부터 시작해서 홍수 등등 여러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검색을 해 보았다.

그런데 그 정체는 생각외로 빨리 드러났다.

"뭐야 이게 씨발?"

매년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뉴스기사였다.
10년도 전부터 항상 방송매체에서 징징거리던, 하지만 별 신경쓰지 않아도 될 평범한 찌라시 기사였다. 지진이 잦아졌다 라던지 빙하가 녹하서 해수면이 상승한다 어쩐다 하는 골깨는 소리가 나오면 나는 그냥 비웃음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리 단순치 않았다.
지구의 해수면은 2년 사이에 40cm가 상승해 있었다. 다른 말이 필요없는 해수면의 상승에 대한 확실한 증거였다.

뉴스 기사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F모 회사의 시계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 이 시계를 본 여성들이…….

앞줄만 읽고도 어이가 없었다.
분자설과 질량보존의 법칙을 완전히 갈아엎는 무개념한 기사였다.
리플을 보니 F회사의 시계가 지구를 멸망시킨다 어쩐다 하는 소리들이 많았으나 몇몇 개념인이나 공돌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허황된 개소리인지 한번에 지적하고 있었다. 이론상 절대로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지구 전체의 여성들을 쥐어짜낸다고 해도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또 모른다. 전세계 여성들이 모조리 다 우주 어디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라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의 물이 될 터이니 물의 절대량이 불어날 수도 있겠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2주일간 집과 학교만 번갈아가며 왔다갔다 하며 정보를 모으고 연구를 했다. 해수면 상승에 대한 과학자들의 토론방송도 보았다. 그 방송은 어처구니없게도 판가리아의 시계의 탓으로 결론이 났다. 세상에 씨발, 과학자라는 이름은 섯다쳐서 땄냐? 분명 한 측에서 시계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한다는것은 이론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뭔가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을것이라고 주장했었으나 반대편의 한 사람이 실지로 벌어진 일을 이론만으로 계산해서 어쩌자는 식으로 나왔다. 맘만 같아선 갈아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하간 그 후에도 많은 말들이 있었고 결국 판가리아에서는 시계의 제작을 중단시켰다. 그에 전세계적으로 올린다는 사과말이 가관이었다.

-저희 회사는 인류의 문화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그리고 또 인간으로서의 예술의 궁극을 추구하기 위해서 비트레이얼을 만들었습니다만……."

미친새끼들. 이제 연막도 어느정도 깔았으니까 발 빼겠다는 수작이지?

난 근 몇달간 엄청나게 늘어난 지진, 화산분출 횟수와 판가리아의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거대 석유회사 DC 를 조사하고 그 연관관계를 밝혀내었다. 세계지도에 DC가 심해석유추출기를 건설해놓은 곳들을 표시했는데 석유는 커녕 가스도 안나올 곳에 건설해놓은 곳도 많앗다. 숫자를 세어보니 총 791곳. 말도 안되는 숫자이다. 저기서 모두 석유가 나온다면 석유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메스컴에서는 이것을 단 한번도 기사화 한 적이 없었다. 저렇게 많은 수의 심해석유추출기가 아무대나 막 설치되어있는데도 말이다.

저렇게 몇가지 정보들을 조합해보니 결론이 나왔다. 바로 지구를 축소시키는 것이었다. 상상도 안 가는 소리였지만 물의 절대량을 유지하면서 해수면을 높힐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간단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지구를 축소시키는데에 그 방법으로 추정되는것은 극초단파로 맨틀층을 액화, 기화시켜서 밖으로 분출시키는 방법이다. 그렇게 맨틀층은 지구 밖으로 뽑아져 나오고 지구는 축소된다.역학적으로 엄청나게 힘든 일임이 분명했으나 800에 가까운 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DC의 심해석유추출기를 조사해보면 분명히 그 끝에서 석유추출기가 아닌 다른 기계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조사해보려 하지 않겠지. 아니, 못할 것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물증을 잡기는 힘들것 같으나 전세계적으로 하루에 4천번씩 일어나는 크고작은 지진들과 그외 사실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것은 그것 뿐이었다. 모든 음모론이 이렇게 시작될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음모론이고 씨발 나발이고 지금 사태가 장난이냐.

이제 이 설을 어떻게 세상에 폭로하냐는 것인데. 방법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시도해보지 않아도 미친놈 취급 받을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양키 영화에서 나오는 해병대 출신 흑인 친구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적으로 받아선 안될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난 수화기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나다 민욱아."

놈이었다. 오병창.
잠자코 있자 놈이 먼저 말했다.

"그 동안 말미를 좀 길게 줬었지? 내가 저번에 말한 방주에 대한 생각이 어떤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미친 새끼……. 지옥에나 가라."

진심으로 증오와 환멸이 느껴졌다.
나는 여지껏 내가 알아냈다 생각한 사실들을 모조리 말했다.

"너희 미친 또라이 새끼들이 어떻게 세계를 수몰시킬 계획인지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미 몇년 전부터 너희 미친놈들이 맨틀층을 녹여왔는지는 모르겠다만, 비트레이얼은 그 연막에 불과한 것이겠지. 미친 놈들."

"……정말 대단하군."

설마 하던 가설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래로 세계지배를 꿈꾼 사람은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봐서 세계는 한 집단이 지배하기엔 너무 커. 인간의 행동구역을 제한시키기에 인간은 너무 다리가 길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지구를 축소시키는 것이었어. 전체적으로 작아질 뿐더러 해수면의 상승으로 땅들도 많이 물에 잠기겠지. 그렇게 작아진 세상은 다루기 쉽겠지."

"현실적이고 자시고가 아니라 그걸 실현시키면 안 되잖아 이 미친새끼야!"

놈은 내 말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지?"

"니가 알 바 없잖아. 그리고 닥쳐. 이 쓰레기 새끼. 너같은 새끼가 친구였다는 사실이 쪽팔린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그래, 씨발놈아. 지금부터 나는 너희 그 미친 시나리오를 박살낼 거다. 내가 하나 못하나 한번 봐라."

"전 세계 그 누구도 짐작치 못하는 우리 계획을 알아챈 널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같이 방주에 오르기만 하면 돼."

"닥치라고 좀 미친새꺄 그 방주니 뭐니 하는것에 탈 생각 전혀 없으니까."

"그래? 유감이네."

그리고 이상한 노이즈가 들려왔다. 스피커의 화이트 노이즈와 비슷한 듯한…….

"씨, 씨발. 뭐야."

노이즈 위로 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비트레이얼에 사용된 원리와 비슷한거지. 지금 이 소리는 시상하부를 자극하는 음파야."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이 미친……. 씨발 이게 뭐…….

"아직 개발중이긴 하지. 문제가 있다면 전화상으로밖에 불가능하고 아직 모든 인간에게 공유되는 하나의 주파수를 못 찾았다는 점 정도?."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다. 머리속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팽창하고 있었다. 머리 안에는 신경이 없어서 감각을 느끼지 못해야 정상이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수화기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손에 달라붙어버린 듯, 아니 씨발, 몸 자체를 가눌 수가 없었다. 뭐야……. 씨발? 이게 성욕이라고?
머릿속 물음에 대답하듯, 놈이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건 비트레이얼과는 달리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를 폭주시키는 음파야. 반동분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지."

흐릿하던 시야가 검게 변해갔다.

"다행이야. 하하. 전화 끊기 전에 너와 맞는 주파수를 찾아서.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