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피곤한 하루였다고 김 감시관은 생각했다. 미국 산하 특수 기관에서 일하면서 십 수년 전부터 다발적으로 급증한 초현상 사례들에 대처하느라 온갖 진이 빠졌다. 보고 차 들른 워싱턴의 한 호텔에 묵고 있는 김 감시관은 마이를 옷걸이에 걸어두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는 서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정리된 자료들은 하나의 그래프로, 그의 뇌내에서 만들어졌다. 그에게 종이나 펜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시각적 편의를 위해 그런 것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사치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저 침대에 몸을 맡긴 채 실재하지 않는 그래프를 바라보았다.

 초현상 사례들, 이른바 벽 속의 유령이나 모스맨 같은 사례들은 그 빈도가 급증하게 되면서 대부분 인간에 의한 것들임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초능력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초자연 현상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뇌내 작용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인간 스스로 그걸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21세기. 초능력자들은 진화된 인류 혹은 돌연변이라는 존재로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공개적으로 초능력 현상이 급증하면서, 그리고 사회 분석 및 과학에 의해 공인되기 시작하면서 그들 자신의 능력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초능력자들의 존재는 세계에 사회적 무정부 상태를 만들기 충분하였고, 국가의 존재에 더 이상 기댈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초능력자들을 신, 혹은 악마로써 여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화적 혼돈과 종교적 절망, 그리고 자연과학적 묵시가 한데 섞인 시기, 그것이 바로 21세기 초엽이었다.

 비록 갑작스레 증가했던 초능력자들의 수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일부는 각국 정부에 의한 학살 및 암살이었지만, 그 밖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례는 많았다-로 약간의 감소를 보이고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초능력자들의 존재는 일반인들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다. 사건 그래프를 되새기며 검토하던 김 감시관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초능력자들의 수가 일부나마 감소 추세를 보인 반면에 전 세계적으로 초능력자들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들의 빈도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미국 및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여러 가설을 내놓았다. 가령 초능력자라는 하나의 새로운 종이 인류라는 종의 위협에 반응했다는 식으로 종 전체를 하나의 의식체로 보는 가설에서부터, 초능력자들이 기존의 체계를 전복하려는 하나의 범죄 집단을 만들었다는 가설까지, 그 범위가 다양한데다 근거도 오리무중이라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국가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왕좌왕 해결안을 내놓지 못하자, 국가의 힘을 행사하는 부분, 즉 각 국의 정부들은 힘의 행사 및 그에 대한 권리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까지 오면 초능력자들이 대중에게 개입하지 않더라도 사회는 충분히 무정부주의의 흐름에 몸을 맡길 것이었다.

 김 감시관의 한 한국인 친구는 벌써 과격한 무정부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시민들은 남부, 북부로 갈려져 여기저기서 폭력 사태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 감시관은 그가 속한 미국, 더 나아가 기존의 사회를 배반하진 않을 것이었다. 어떻게든 강력한 윤리 제도를 갖춘 인류 사회가 지속되는 편이 지금과 같은 혼돈기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사태들을 돌이켜보고 지금 자신이 속한 상황, 즉 그 싸움의 원인인 초능력자들을 뒤쫓으며 체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에 놓인 그 상황에 김 감시관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들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게 아닌 한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었다. 산에서 구르며 불은 눈덩이를 바라보는 심정이 딱 이것일 거였다.

 머리가 아파진 김 감시관은 생각 없이 리모콘을 들어 티비를 틀었다. 딱히 무언가를 보려는 심정은 아니었지만, 티비의 방송음이 머릿속의 잡상들을 흘러보내길 바라는 속마음이 있었을 것이었다. 그는 켜진 티비 화면은 무시하고서 넥타이와 와이셔츠의 단추들을 풀었다. 말랐지만 근육으로 다져진 몸에 수 년 전에 한 초능력 범죄자를 쫓다가 생긴 상처가 드러났다.

 “……최근에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통해 우리는 고대 마야인들이,” 그가 멍하니 상처를 바라보는 동안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은 전 세계적인 역사 다큐멘터리 채널이었다, “심장과 동시에 두뇌 역시 신성한 부분이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심장을 영혼의 엔진으로, 그리고 두뇌를 영혼의 구성 혹은 원료로 여겼다는 것이죠. 두개골 절개 수술 같은 것도 죽어가는 영혼을 밖으로 꺼내 더 오래 이 세상에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는 염원에서였을지도 모른다는 게 페드로 박사의 주장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입장이니 어느 정도 여러 나라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게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김 감시관은 현대사를 제외한 고대사 같은 오랜 냄새가 나는 학문은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학 시절 자신과 앙숙이었던 고대문명사 조교 때문일 거라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그는 티비를 완전히 무시한 채 세수나 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세숫대야 앞에 서서 지친 모습으로 고개를 떨구었을 때, 마이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으로부터 기본 설정의 벨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그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상대방의 전언을 듣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킬 수밖엔 없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군 수송 차량 운전수가 뒷좌석에 앉아 있는, 군에 어울리지 않는 인상의 안경잡이 청년에게 존대로 외쳤다.

 21세기 초엽. 초능력자들이 신이나 악마로 치부되는 것은 전세계적인 문제였던 동시에, 국지적으로 해결이, 물론 그것이 문제 하나하나에 관한 일시적이고 매우 늦는 해결들이긴 했어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독, 전세계적으로 문제시되며, 어느 장소에서도 처리되지 않는 한 초능력자가 있었다. 그는 그의,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강력한 다중 초능력과 다른 어떤 한 가지 이유로 인해, 어느 특정한 사회로부터가 아니라 전 인류로부터 ‘악마’라 불리게 되었다.

 수송 차량은 스무 명의 장성들을 태울 수 있게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단 한 사람만을 수송하기 위해 전 속력을 내고 있었다. 모두들 도시를 빠져나간 것인지, 아니면 집 안에서 숨어있는 것인지, 비록 8시가 약간 안 됐을 뿐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마왕의 탄생과 지옥의 강림이라는 것인가?’

 안경의 청년, 김 감시관은 군에서 아무리 통제하려 해도 전 세계의 예지 능력자들이 동시적으로 꺼낸 말을 상기했다. ‘악마’라 불리게 된 초능력자가, 전 세계의 수많은 초능력 범죄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인류에게 ‘악마’라 불리는 한 가지 다른 이유는, 그에 관해 모든 예지 능력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게 됐던 예언 때문이었다. 십 수년 전, 초능력자의 존재가 공인되지 않은, 21세기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그런 예언 따위는 설령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장된다 해도 무시될 것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현대 문명의 상식이 무너지기 시작한 21세기 초엽은 이미 무엇이 일어나든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 감시관은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빌딩 숲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 순간 빌딩들은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에 잔디밭이 펼쳐졌다. 경제 위기와 초능력자들의 범죄 행위로 말미암은 국민들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취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 공사로 조성된 비엠엘 공원이었다. 공원에는 본래 차량의 진입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인도, 차도 가릴 때가 아니었을 뿐만 아닌 만큼 차량 통행 금지야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통행인 하나 없으니 만약의 사태 같은 게 생길 리도 없었다. 이어 수송 차량은 약 15분 간의 질주를 통해 공원 중앙에 있는 기념탑 입구에 도착하였다. 차 안에서조차 듣기에 괴로울 정도의 마찰음을 내며 군 차량은 멈추었고, 김 감시관은 종교인인 운전수의 짧은 기도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하늘로 높게 솟은 탑 앞에 선 그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차가 후진한 뒤 돌아 공원을 빠져 나가자, 탑의 안으로 들어갔다.

 탑 안은, 문을 열어 젖히기 전까지 김 감시관이 생각하던 것과는 매우 달리, 전 부분에 전기가 돌아가 환한 상태였다. 벽의 한 쪽 끝에 달려 있는 영사기는 반대편 벽면으로 영화를 영사하고 있었고, 탑 내부 곳곳에 달린 고음질 스피커들은 영화의 배경음을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신기한 것은 안이 등들로 인해 환한데도 불구하고 영화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암시나 환각 같은 건가?’

 그는 긴장하면서 탑 내부를 둘러보며 그곳에 있을 누군가, ‘악마’에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온 이유를 소개했다.

 “아도니아! 약속대로 혼자 왔다! 전 국가를 대표해 당신을 감시 및 일말의 사태 발생 시의 구속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가 발언을 마치자마자, 영화의 배경음이 우레와 같은 효과음과 함께 멎고, 순애 영화 전매의 청순 가련한 여주인공의 대사가 흘러 나왔다. 비록 일본어 음성이었지만, 외교 경험이 많은 김 감시관은 의식하지 않아도 대사를 따라갈 수 있었다.

 대사는 영화 속 남우의 대사이기도 했지만, 그 남우의 목소리와 함께, 탑 안에서 울리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섞여, 두 명의 통일된 대사가 되었다. 김 감시관은 영화 속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목소리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약 8층 높이의 장소였을까, 그는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도니아! 이곳으로 내려올 것을 요구한다!”

 국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를 전담하는 재오는 사상 최악의 초능력 범죄자를 앞에 두고서 능숙히 외쳤다. 그러나 아도니아는, 재오가 자세히 볼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영어로 얘기하지 않아도 돼,” 아도니아가 그의 모국어인 듯, 스페인어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든 중국어든, 난 60개 국어가 가능하니까 모국어든 뭐든 편한 말로 얘기하라고.”

 김 감시관은 아도니아에 대해 ‘여유로군’이라고 생각했다.

 “난 미국에서 태어난 2세라 영어가 모국어다. 그리고 편하게 얘기하든 뭘 하든, 요구의 내용은 바뀌지 않는다!”

 “요구?” 아도니아가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물었다.

 “내려오란 건가? 그러고는? 그게 요구의 전부는 아닐 텐데?”

 “물론.”

 김 감시관은 정장 안 쪽에서 권총을 꺼내 아도니아에게 겨눴다.

 “내려오지 않을 시 발포, 내려오더라도 체포에 따르지 않으면 발포다!”

 아도니아는 재오의 요구에 재밌다는 웃음을 보였다.

 “생긴 거완 달리 강압적이군.”

 그는 8층 높이의 복도에서 뛰어내려 메인 홀까지 내려왔다. 그는 여유롭게 착지한 후 김 감시관의 앞을 향해 걸어갔다.

 “네 요구는 누구로부터 내려온 거지?”

 “직접적으로는 미국, 외부 압력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을 포함해 전 세계 138개국이다.”

 “헤,” 아도니아가 거짓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어내며, “꽤 이 나라 저 나라까지 날 걱정하고 있나 보네”라고 말했다.

 “너를 걱정하는 게 아니지. 네가 그들에게 뭘 할지를 걱정하는 거지.”

 아도니아가 재오의 바로 앞까지, 엎어지면 닿을 곳까지 다가왔다. 재오는 총구를 움직이며 그 자리에서 멈출 것을 명령했다. 아도니아는 별 수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멈춰선 뒤 양손을 들어올렸다.

 “이제 체포할 셈?”

 아도니아가 물었다.

 “따르면 신변은 보호된다. 단지 따르지 않을 시 발포 및 체포를 강행할 것이다.”

 “하지만 총 한 정으로 날 어떻게 하지는 못할 텐데?”

 아도니아가 들어 올렸던 오른손으로 조심히 손을 움직이며 앞머리에 가르마를 냈다. 분명한 히스패닉 계열의 외모에도 불구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그는, 마치 알비노처럼 머리카락과 눈동자조차 새하앴다. 그리고 그 새하얀 머리카락을 들춰내자, 역시나 새하얀 이마에는 총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미 몇 년 전에 확인했었잖아.”

 “아니,” 김 감시관은 사회 혼란의 가장 큰 악을 마주하고서는 그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며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관통되도록 만들겠어.”

 그는 자신이 분노로 인해 임무를 잠시나마 망각했었다는 사실에 숨을 들이키고 말했다, “네가 달아난다거나 하는 만약의 경우가 생기면 말이지.”

 김 감시관이 말을 마치자마자 아도니아는 그의 귀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고 “달아날 건데?”라고 속삭인 후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김 감시관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서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아도니아의 두부를 향해 발포했다. 총알은 그의 머리를 관통한 듯 아도니아는 공중에서 뒤로 넘어지며 쓰러져 갔다. 그의 몸은 머리에서 터지듯 흩어져 나온 피의 비와 함께 떨어졌다.

 이로써 일이 끝난 것인지 확연치 않던 그는 아도니아가 떨어진 자리로 걸음을 하려고 했다. 분명 머리에 총알이 맞는 것도 보았고, 그가 무력하게 땅으로 떨어진 것도 보았다. 그리고 그 시체 주변에 피가 흥건히 젖어있는 것도 멀리서라 하더라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사상 전례가 없는 힘을 가진 초능력자이니만큼, 그의 능력을 이용해 어떤 장난을 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결국 김 감시관은 총구를 들어 몸 옆에 가까이 붙인 뒤 조심히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한 발짝이나 옮겼을까, 마치 건물이 요동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지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하게 할 정도의 큰 지진이 갑작스레 일어났고, 감시관은 쓰러져 머리를 부딪힌 탓에 정신을 잃었다. 그의 총은 감시관의 손에서 빠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김 감시관이 처음에 눈을 떴다고 생각했을 때는 어둠이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눈을 뜨려고 했기에 떴다고 생각했을 뿐, 실제로는 아직 눈꺼풀을 닫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은 감시관은 떨어가며 든 손으로 눈을 비볐다. 기절해 있던 터라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눈을 뜬 그는 기념탑 내부에는 아무런 지진의 흔적도 없었다. 전기는 여전히, 어떤 이유에서인지 깜빡이긴 했지만, 잘 들어오고 있었다. 영화는 끝나 있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이 안전한 상태에 있다는 걸 어느 정도 확신한 후, 잊고 있었던 초능력 범죄자에 관한 것을 깨달았다. 그가 아도나이가 쓰러져 있던 장소를 바라봤을 때에 아도나이의 시체는 원래 장소에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있었다.

 ‘역시 죽은 건가.’

 감시관은 지진의 영향으로 언제 탑이 무너질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해 몸을 일으키고서 밖을 향하기로 했다. 몸은 결코 성하지 않았다. 쓰러질 때 오른쪽 팔이 몸에 갑작스레 짓눌렸던 탓인지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외상은 보이지 않았고, 내상의 증후 역시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단지 심하게, 조금 심하게 저린 것일 거였다.

 탑의 바깥으로 나온 그는 겨울의 차가운 바람 대신에 근원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바람을 얼굴로 마주해야만 했다. 숨이 답답해오자, 그는 역시 내상을 입은 것일까 확인해봤지만, 단지 바람 때문에 잠깐 숨쉬기 힘든 것뿐이었다. 그가 처한 상황을 위기 상황이라고 볼 순 없었지만, 안전한 상황도 아니었다. 임무를 마친 이상, 아도나이의 죽음을 확인하고서 상부에 보고할 나머지 요원들이 필요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상태를 확인했다. 전파 수신율이 도시 한 가운데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낮았지만, 어쨌든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그를 데려다 주고서 먼저 떠난 요원들은 어째서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감시관은 통화를 취소하고 힘없이 핸드폰을 쥔 손을 떨어뜨린 채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부모가 태어났었을 나라의 밤하늘은 어째선지 기분 나쁜 청회색이었다.

 ‘밤하늘?’

 그는 핸드폰 메인 화면을 확인했다.

 ──09:38 AM.

 물론 핸드폰에 시간 정보를 입력하는 전파를 보내는 곳에서 실수한 것일 수도 있었다. 실수라기보다도, 지진으로 인해 오류가 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그는 손목시계를 바라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오전 아홉 시 삼십팔 분. 이국의 하늘엔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김 감시관은 한국의 도심을 홀로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예언과 관련된 최악의 범죄자와 관련된 일인만큼 서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실 죽은 자가 되살아나거나 할 일이 없는 한 걱정 없을 것이었다. 지금은 지진으로 바닥에 쓰러지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누는 게 우선이었다.

 ‘말도 안돼,’ 그는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반나절을 기절해 있었다는 건가? 믿겨지지 않는군. 거기다가 낮인데도 불구하고 펼쳐진 밤하늘이라니.’

 그는 다시 한 번 빌딩 숲을 위에서부터 안고 있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의 모습은 사람으로서는 그 경계를 알아볼 수 없기에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을 일이겠지만, 김 감시관에게 밤낮이 뒤바뀐 기이한 현상을 보이는 하늘은 어떤 이유에서건 따뜻하게 안고 있다기보다는 어디로든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누구로부터 도망간단 말이지?’

 결국 그는 자신의 생각이 쓸모 없는 것임을 떠올리고는 요원들이 묵고 있을 호텔로 가는 것만을 생각했다.

 거리는 조용했다. 그가 비엠엘 기념 공원을 향할 때와 마찬가지였지만, 뭔가 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인기척 자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모두 증발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느낀 그러한 불안감은 곧 확신이 되었는데, 그것은 일부 건물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균열이나 거리를 한가득 메우고 있는 유리파편들 때문이었다. 이윽고 도심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가자 파괴된 차량들이나 시체들도 발견되었는데, 감시관이 보기에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진이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지진으로 인한 피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가령 발화 같은 것들이 그러할 텐데, 무엇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소동 이후라면 사람들이 거리를 떠나기에 정신이 없을 것인데…….

 감시관은 그제사 ‘아, 그런 건가’라고 생각해낼 수 있었다. 이미 서울 한복판은 유령 도시가 되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기절해 있는 반나절 사이 어디론가 도망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나 깔끔하다. 유리파편이나 시체들이 간간히 보이긴 했지만, 혼란 속에서 야기될 약탈이나 방화 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증발해 버린 것처럼 깔끔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일부 가게들은 파괴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약탈의 흔적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파괴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건 약탈도 무엇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더 이상한 것은 자동차들이었다. 자동차 위로 무언가가 뛰어다닌 듯, 많은 양의 자동차 천장이 무너져 있었다. 그 밖에도 마치 거대한 상어에게 물어 뜯기기라도 한 자동차들 역시 있었다. 그는 곧 그것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 이상한 시체들!’

 그는 주위에 또 다른 시체가 없을까 둘러 보았다. 우연찮게, 깜빡이는 가로등의 불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쓰러져 있는 남성의 시체 한 구가 있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서둘러 걸어 간 그는 무릎 꿇고 앉아 시체를 뒤집어 보았다.

 ‘역시…….’

 시체에도 차에 난 것과 같은 상처가 나 있었다. 상어라고 하기에는 좌우가 많이 짧은 무언가가 물어뜯은 듯한 상처. 그는 그런 생명체는 알고 있지 못했다.

 ‘지진을 틈타 초능력 범죄자가 저지른 소행인가?’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이런 상처를 낼 수 있었던 것일까? 그가 십 수년간 겪어온 초능력 범죄 사례들에 의하면 가능성은 적잖이 있었다. 가령 초능력으로 엑토플라즘이라고 불리는 물질을 구성해 존재하지 않던 무기 등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었고, 어쩌면 지금 그가 마주하는 것 역시 그 흔적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한 가지였기에, 그는 시체를 조금 더 천천히 살펴보고 싶었다. 파먹히듯 뜯긴 부분은 마치 커다란 가위 혹은 집게 같은 것으로, 이상하게도 자른 게 아니라 뜯은 듯 보였다. 그곳에는 피와 함께 이상한 반투명의 액체 역시 고여 있었는데, 그는 시체 상처 부분을 뒤덮고 있는 그 액체에 대해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을 갖다 댔다.

 “큭.”

 그 액체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시신을 더욱 빨리 부패시키는 듯했다. 액체 그것의 색마냥 반투명하고 지저분한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우우웅──하고 멀리서 무언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감시관은 도심의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감지하면서 땅이 울리기 시작하는 것임을 느꼈다. 또다른 지진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빌딩 숲 아래에 있는 건 자살행위였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대피할 장소도 없었다.

 굉음이 다가오면서 전기가 끊겨서인지 어째서인지 주변의 가로등이 일시에 꺼졌고, 오전 열 시 경의 밤하늘이 완전히 도심을 뒤덮었다. 그는 빌딩과 빌딩 사이로 들어오는 열기에도 불구하고 정체 모를 오한을 느꼈기에 스스로의 몸을 감싸 안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고층 건물 사이에 있는 건 사람 한 명 없는 가도로 나가는 것보다 위험할 것 같아 나갈까 생각했지만, 어쩌면 빌딩 사이에 있는 편이 단번에 무너질 일이 없으니까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니 도망갈 틈이 없는 좁은 골목은 약간의 바위 덩어리에도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생각 역시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 생각하는 것조차 짜증났다. 평소와 같은 정신 및 육체상태에 있었다면,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안을 내놓을 수 있었을 테지만, 아무래도 세계 최강의 초능력 범죄자를 대면했었다는 데에 심리적 부담이 있었던지, 생각이 수월하지 못했다.

 감시관은 구석에 틀어박혀있기보다는 요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도로 나왔다. 아무도 없던 가도의 지평선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 검은 하늘을 등지고 있는 검고 거대한 그림자의 물결이었다. 아마 그가 서 있는 곳의 땅울림은 저 그림자의 물결 탓일 것이었다. 하늘의 어둠이 깊었던 만큼 멀리서는 그것이 무엇으로 이뤄진 것이었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림자의 그것들이 점점 다가옴과 함께 그는 그것의 정체가 무수히 많은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어째서 거리를 비웠던 사람들이 굉음을 울리며 밀물마냥 몰려오는지를 묻기 위해 그는 다리를 절며 그림자에 다가갔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그가 말을 붙일만한 상대가 없다는 정도의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앞을 보는지, 보지 않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괴악스러운 표정이었다. 후방의 사람들은 얘기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후방에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시관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그림자의 물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다른 두 가지의 행렬이었다. 하나는 앞에서 줄행랑을 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뒤에서 사람들을 쫓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괴이한 형상의 짐승 같은 것들이었다. 감시관은 그 괴물들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열에 합류해 뛰기 시작했다. 줄행랑의 끝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망가지 않으면 금방 붙잡혀 죽을 것이었다.

 괴물의 형체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뒤돌아봐 확인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죽임 당할 것이었다. 괴물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더라도 상황은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감시관은 그를 마주하여 달려오는 행렬에 합류했던 만큼 행렬의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사람들의 행렬에 있어서는 괴물로부터 가장 안전한 거리에 있었지만, 그 거리란 고작 십 수 미터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 거리조차 사람들의 장벽으로 이뤄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괴물들이 무언가를 이용해 사람들을 공중으로 내치며 죽인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그의 귀를 통해서 말이다. 사람들의 비명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옅어졌다가 다시 사람이 떨어짐과 함께 짙어지는 것이라든가, 사람들의 몸이 마치 수건이나 무어마냥 공중을 가르며 내는 바람소리 같은 것들이 거친 숨에도 불구하고 지친 몸을 어떻게든 달리게 하는 감시관의 귀에 똑똑히 새겨졌다.

 사람들의 벽, 감시관을 괴물들로부터 보호해주던 그것이 점점 옅어지며, 감시관은 그의 바로 뒤에까지 괴물들이 다달았을 거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행렬은 비엠엘 공원의 근처까지 도달하게 되었는데, 결국 그는 괴물들이 지금처럼 사람들을 쫓아 물결처럼 이동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공원 편의점으로 몸을 숨기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그는 틈을 타 재빨리 바로 옆, 문을 빼고는 거진 셔터로 닫혀져 있는 편의점 문을 열어젖혔다. 다행히도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가 유리문을 닫았을 때 보게 된 것은 자동차 천장 위에 올라 그를 바라보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것은 우연찮게 건물 안으로 숨는 그를 발견한 것인지 괴물들의 물결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는데, 그것에 얼어붙은 그는 그를 사냥하고자 하는 괴물의 움직임을 목격하게 됐다. 그것은 그것이 등지고 있는 건물로 뛰어올라 2, 3층 높이의 벽을 박차고 마치 로켓포마냥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왔다.

 곧 쿵 소리가 났고, 감시관에 있어 운 좋게도, 괴물은 그가 서 있는 유리문이 아닌 그 위의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때문에 감시관은 괴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모로 보나 사람이었다, 다만 머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핏덩어리마냥 붉게 부푼 머리는 마치 새, 혹은 한 때 하늘을 점유했던 익룡의 그것처럼 생겼었다. 그가 봐왔던 자동차의, 그리고 시체의 무언가가 뜯은 듯한 흔적은 아마 저 괴물의 부리 비스무리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일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괴물임에도 앞서 감시관이 눈치챘듯 엄연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비단 신체의 윤곽만이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 괴물은 분명 여느 사람들과 다름 없이 의류를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맙소사.’

 그는 충격이 채 가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건물의 셔터를 내리고서는 뒤로 쓰러져 앉았다. 그는 정신을 추스르며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괜찮으십니까?”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있는 한 노년의 남자가 물었다.

 감시관이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확인하고서 내린 결론은 이 편의점에는 현재 자신과 저 누구도 해칠 수 없을 것 같은 예순 가량의 노인 뿐이라는 것이었다.

 “괜찮습니다.”

 “그것 참 다행……. 으으으.”

 감시관이 보기에 괴물이 넘쳐나는 상황에 숨지도 않고 그저 카운터에 앉아있기만 한 노인은 몸이 편찮아 보였다. 감시관은 상식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노인에게 안부를 물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고통으로 인한 신음뿐이었다. 이윽고 감시관은 노인의 두부가 어둠 속에서 검붉은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눈치채었고, 정장 품 안에서 권총을 꺼내 노인을 향해 겨눴다. 곧 노인의 머리는 폭발하듯 앞쪽으로 마치 종양 같아 보이는 것들 것 확장시켰고, 차차 모양새가 갖춰진 부리로 형성되어지기 시작했다.

 두 발의 총성이 편의점 안을 울렸지만,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수많은 괴물들의 추적 혹은 맹목적인 질주로 인한 굉음 탓에 감시관의 귀에 잘 잡히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두 개의 총상을 계산대의 괴물로부터 확인해낼 수 있었다. 더 이상 노인의 변태, 혹은 괴물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안에는 이제 그 혼자만이 되었다.

 안전한 시간을 갖게 되자 그는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었을까? 영화 같으면 좀비 바이러스 같은 것들이 있을 테지만, 현실은 달랐다. 혹시나 모른다는 심정에 감시관은 한 때는 노인이었던 괴물의 몸을 확인해봤지만 총상 외에 어떠한 감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라면 자신이나 밖에서 추격당하던 사람들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고, 식품 등을 통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라면 너무 무작위적이라 그가 보았던 것 같은 거대한 물결은 볼 수 없었을 것이었다. 편의점 앞에 쓰러진 괴물도 그렇고, 계산대 안의 노인도 그렇고, 마치 지진 이후에 갑작스럽게 평범하던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가 그 자신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을 즈음, 바깥의 소리가 점점 옅어졌다. 마치 중세 한 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지옥에서의 행진은 멀리 간듯했다. 감시관은 권총을 다시 품에, 이번에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잠그고서 집어넣은 뒤 편의점 건물을 빠져 나왔다.

 

 애당초 호텔을 아도니아와의 약속 장소 근처로 잡았었기 때문에 걸어가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았을 때 도착시간은 그가 정신을 차린 후로 불과 두 시간 가량이 흐른 뒤였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뒤덮고 있는 밤하늘은 여전했다. 그것은 분명히 어떤 연기나 재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어둠이 깔린 밤하늘일 뿐이었다.

 호텔 건물 앞에는 그가 비엠엘 공원을 향할 때 이용했던 차가 놓여져 있었지만, 모로 보나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차 안에나 밖에나 피로 흥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시체들과 다량의 피로 즐비한 로비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제 들어가서 요원들에게 상황을 보고 하고 휴식을 취하면 된다. 초능력 범죄는 이제 지쳤어, 쉬고 싶다, 그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그가 묵고 있던 9층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른 것 역시 떠올리게 되었다. ──자신과 함께 한국으로 파견된 요원들은 괴물로 변태하지 않았을 거란 보장이 있던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는 909호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서는 괘종시계의 추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미미하게 들려올 뿐, 어떠한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바깥이 밤과 같이 어두운 데도 불구하고 불 하나 켜놓고 있지 않았다. 그와 함께 온 요원들은 아마 죽었거나, 괴물이 되었을 것이었다. 후퇴했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괴물들이 예상 불가능하게 평범한 인간에서부터 변태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후퇴했을 가능성은 너무나도 희박했다. 그는 품에서 총을 꺼내 들고 안전장치를 푼 후, 혹여나 소리 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호텔방 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감시관이 방 안 정중앙에 도달,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현관이 닫히면서 방의 불들이 켜졌고, 그는 총구를 겨누며 뒤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쪽이야.”

 스페인어. 감시관은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돌아서 총구를 겨눴다. 그곳에는 괘종시계에 기대 양주를 마시고 있는 히스패닉계 알비노, 아도니아가 있었다.

 “여, 이번이 세 번째인가? 다시 봐서 기쁘군.”

 “바깥의 상황, 어떻게 된 거지?”

 감시관은 어떤 때라도 발포할 생각이었다. 아도니아가 살아있는 한 그가 받았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설령 임무는 끝났고,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아도니아가 설령 환영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겪은 세기말적 풍경 때문에라도 눈 앞의 범죄자를 쏴 죽이고 싶었다.

 “무슨 소리인지, 난 전혀 모르겠는걸.”

 총구가 계속해 불을 뿜었다.

 하지만 총알들은 하나같이 목표에 닿지 못하고 그 앞에서 힘을 잃은 채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우습군, 애시당초 난 인간이 상상 가능한 모든 일들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몸이었어. 초능력이라는 게 응용력만 있으면 꽤 재밌는 거거든.”

 그는 눈을 감고 잠자듯 말하고 있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총알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며 감시관을 향해 머리를 향하는 것은 아도니아가 자유자재로 능력을 사용하용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미 인간과는 다른 위상에 선 종을 마주한 김 감시관은 다리에 힘을 잃고 주저 앉았다.

 건물 바깥에는 현재 사태에 한국 정부가 잘 대응하고 있다는 식의 방송을 고층에서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랗게 틀어놓고 다니는 선전용 차량이 있는 듯했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다소 잡음이 낀 방송음은 감시관으로 하여금 워싱턴에서 얼핏 접한 방송을 떠올리게 했다. ‘설마’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감시관은 고개를 들며 절망을 마주한 퀭한 눈으로 그 앞의 알비노를 바라보았다. 그 알비노의 새하얀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마에 생긴 상흔, 총상.

 이제사 모든 것들이, 마치 자료들이 그래프로 정리되듯 감시관의 머릿속에서 도표로 정리되었다.

 근거 1. 두뇌는 초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은 21세기 들어 과학에 의해 확립되었다.

 근거 2. 초능력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여러 응용이 가능한 만큼 초능력의 한계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숫자 수 십 개만 갖다 놔도 그 조합은 무수한데, 그만한 양의 초능력들이 있고, 그것들이 모두 조합 및 응용 가능한 것들이라고 생각해 보라.

 근거 3. 가설. 이건 정말 밝혀지지 않은 건데, 만일 두개골이 일종의 초능력 제어기라면? 그렇기에 인간은 인간으로서 문명을 구축하고 살아올 수 있던 것이라면? 혹은 한 때는 이 제어기를 조작해 초능력을 이용하기도 했었다면?

 ‘마치…… 마치 고대 마야인들처럼…….’

 근거 4. 가장 최근의 근거. 아도니아 머리에 난 총상. 아도니아 정도쯤 되는 초능력자라면 탄피가 두개골을 뚫었을 때 뇌에 침투하지는 못하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탄피를 막는 건 반사 속도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도, 미리 무언가의 장치를 해놨다면 다른 얘기일 것이었다.

 “애초에, 모든 게 함정이었군…….”

 감시관은 아도니아의 시나리오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예언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킬 기회에 대해서 알게 되고, 예언을 실행시키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한 뒤 자신을 끌어들인다. 그의 두뇌, 즉 초능력의 핵심과 세상이 두개골과 같은 장애물 없이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의 생각은 이 세상에 직접적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한 명의 초능력자가 예지를 통해 신이 되었다는 편이 쉬운 얘기일 터였다.

 “……예언가들이 말한 마왕의 탄생은 이런 얘기였나…….”

 아도니아는 술잔을 내려놓은 뒤 자신이 인류가 지탱하고 있는 세계의 멸망에 이용당했다고 믿어 절망에 침식된 김 감시관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못 당당한 자세로, 한 손을 허리에 얹고 한 손은 하의 주머니에 넣은 채, 감시관에게 말했다.

 “백 점 만점에 팔십 점. 우등생이군.”

 아도니아는 허리를 굽힌 뒤 한 손으로 감시관의 턱을 붙잡아 자신의 눈을 마주하게 했다.

 “정말로 내가 두개골에 구멍 하나 내려고 널 이용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건 내 초능력으로도 가능해. 널 이용하고, 널 살려둔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어.”

 그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쿡쿡, 정말로 내가 예언된 마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창 밖을 보라고.”

 감시관이 힘없이 눈알만을 굴려 창 바깥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에는 빌딩을 대신해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형언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그 그림자는 마치 그가 거리에서 봤던 괴물들과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얼굴 주위에 무수하게 많은 촉수가 있었다. 부리 곳곳은 물론 두부의 상하좌우 가리지 않고 붉은 촉수가 마치 먹이를 바라듯 징그럽게,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세 대의 한국 국적의 전투기로 추정되는 것들이 그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돌진했지만 채 닿지도 못한 채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하하, 저들도 변이하기 시작했나 보군!”

 아도니아의 커다란 비웃음에 감시관은 그가 마주했던 편의점의 노인을 떠올렸다.

 “분명 마왕은 널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군……. 초능력의 증폭은 하나의 계기. 그것이 네 비틀어지고 추악한 상상을 현실로 불러냈다는 얘기로군?”

 “애초에 사람들은 날 악마로 불렀었잖아. 다른 존재였다고. 그리고 지금도,” 아도니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괴물이 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지. 나와는 다른 존재로써 말이야.”

 그는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했다.

 “그들이 괴물이 된 건지조차 모르겠어. 내게 저 광경은 내가 바라본 사람들이 살던 사회의 광경이나 진배 없는 걸.”

 “하지만 그게 네가 나만을 살려놓은 이유는 되지 않아. 왜지?”

 절망에 잠겨 있으면서도 분노에 차 있는, 사람으로써의 감정이 살아 있는 감시관을 보면서 아도니아는 의미심장한 입웃음을 보였다.

 “아직도 모르겠어? 너의 손과 내 능력이 이 세상을 잉태했다는 걸? 네가 나를 다른 종인양, 혹은 괴물인양 여기든 어떻든, 최후의 인류는 우리뿐인 걸.”

 방 밖에서는 악몽으로 빚어진 밤하늘 아래 거대한 그림자로만 보일 뿐인 괴물, 마왕은 촉수들을 몸부림치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하였고, 방 안에서는 오후 1시를 알리는 괘종의 울림 아래 아도니아가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감시관을 안아 주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