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서 일을 시킨건 이런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

"..."

"그런 사람들은 이 마을을 떠나면 죽는 수 밖에는 없으니까. 협박하기도 용이하고.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했겠지"

"..."

"일을 못해서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마음을 파고 들어가기도 쉬울테고.  그러고보면  여기는 군인들 숙소하고 가까운 곳이잖아. 참 가지가지 해놨군"

"..."


우리는 지금 그 빌어먹을 곳을 나와서 바로 근처의 빈 건물에 숨어서 몰래 이동하는 참이었다.

군인들을 죽였다.

잡히면 죽는다.

확실하게 죽는다.

강간범이니 뭐니 하는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에 쫙 깔린 100명이 넘는 군인들을 어떻게 피해서, 어디로 가지?


"여기는 군인들 숙소하고 가깝고, 군인들 숙소 바로 옆에는 무기고가 있어.  일단은 그곳으로..."

"저기다!"



-타타타타탕!

-드드드득!



"젠장! 뛰어!"























"총소리가 계속 이어지는군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늘의 교섭은 더 이상 없는걸로 알고, 가보겠습니다"

"...그럽시다. 다음 회담일정은 언제?"

"나중에 이쪽에서 통보하겠습니다. 그럼"



대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다가, 곧 표정을 풀고는 일어서서 시장을 향해서 거수경례를 한다.

그와 동시에, 대대장 뒤에 호위로 나와 일렬로 쭉 서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한다.


"알겠습니다. 통보를 기다리도록 하지요.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시장은 어물쩡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측근들, 호위들과 함께 허겁지겁 회담장을 나섰다.















"...신호가 떨어졌다"

"신호입니까?"

"그래, 작별인사다. 준비한대로 해"

"알겠습니다"


멀리 마을쪽에서 망원경으로 회담장을 바라보던 중대장이 말하자, 옆의 부관이 깃발신호를 보냈다.

곳곳에서 군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기고로 잠입하는것 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중간에 들키는 바람에 무기고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아, 어떻게 하지?  포위된 것 같은데"

"그래도 여기가 마을밖으로 도망치기에는 제일 용이한 곳이야.  저 군인들만 없다면"

"...."



지금 밖에는 어림잡아도 대략 50명? 60명 정도의 군인들이 주변을 빽빽하게 포위하고있다.  고개를 내밀기만 해도 총알이 날아와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더 될지도 모르겠다.


"자, 이거"

"이건...수류탄?"

"그래, 어떻게든 뚫고 지나가봐야지"

"..."

"그리고 총소리를 사방 곳곳에 울리게 만들었으니까,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응?"

"확률은 반반이야, 젠장, 우리 목숨을 또 이런 어설픈 확률놀이에 맡겨야 한다니"







-땡땡떙떙떙떙떙떙!


"비상! 비상! 비상!"




밖에서 엄청나게 시끄러운 종소리와 함께 군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50명도 절망적인데 겨우 3명 잡으려고 비상까지 걸다니.  하긴 무기고를 탈취당했는데 당연한 건가? 하지만 당연하다고는 해도 우리로써는 전혀 반갑지 않은 사실이다.  이제 전 마을에 비상이 걸리고 마을 밖으로 나간 군인들을 제외하고 마을에 있는 군인들이 100명이 넘게 몰려들겠지... 젠장, 이렇게 죽게 되는거야?


"됐어"


뜻밖에, 다영이의 표정이 밝았다.






"비상! 비상이다!"

"적들이 쳐들어왔다!"

"뭐?! 무슨일이야!"

"비상배치! 비상배치! 언넝 집합 안하냐 이 개새끼들아!"





뭐라고?




"다행이다, 시민연대랑 군인들이랑 싸우게 된 것 같아"

"그래? 겨우 저 총소리덕분에?"

"시민연대가 등장하고 요 한달간, 총소리가 전혀 울리는 일이 없었어.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해 봤는데, 다행이다"







바깥을 살짝 살펴보니, 군인들이 우왕좌왕 당황하고 있는것이 보인다.




"여긴 또 뭐야!"

"범죄자입니다! 무기고를 탈취당했습니다!"

"이런 씨발! 내통자구나!"

"적들이 쳐들어왔다니 무슨 말입니까!"

"저놈들이 회담장과 마을을 동시에 기습했다! 지금 대대장님은 생사불명이고 강가 전역에 걸쳐서 전투중이다!"

"뭐라구요?"

"저놈들은 몇명이야?"

"3명입니다!"

-뻐억!

"이런 병신아! 60명이 겨우 3명을 못잡아서 무기고를 탈취당해?"

"..."

"1분대장! 2분대장! 적은 겨우 3명이다! 책임지고 반드시 사살한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따라와!"







한창 발자국 소리가 우르르르 나더니, 군인들 중 상당수가 저쪽으로 가버렸다.

2개 분대? 대략 20명 정도일까?

우리 3명에 비하면 너무나 많지만 그래도 이 수류탄들을 터뜨리면 어떻게든 탈출은 할 수 있을지도...


"오빠, 안돼"

"이걸 터뜨릴테니까 다영이 너는 이랑이랑 함께 도망쳐"

"그런걸로는 안돼"

"아니야, 혼란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탈출할 구멍이 생길꺼야"

"오빠가 앞으로 나가서 희생할 생각이지? 시간을 끌려고?"

"..."





-척척척척척척

군인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군인들이 많이 빠져나가자 포위는 포기하고 빨리 돌입해서 끝장낼 속셈인 것 같았다.







"안돼 오빠. 잠깐 기다려 봐"

"시간이 없어. 던지고 난사할테니까 너희는 저곳으로 도망쳐"

"안된다니까"


미안, 나는 더 이상 다영이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오빠"

잠깐만 기다려 다영아, 내가 저녀석들을...





















"전황이 좋지 않습니다"

"...."

"우리측이 불리하지는 않지만 크게 압도적이지도 않습니다.  피해가 굉장히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쪽에서 예비군들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대대장님의 행방이 불명인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개새끼들...."


"무기고를 개방하고 시민들을 무장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습니다"


"총기는 얼마나 있지?"


"2번 무기고는 날아갔지만 나머지 1번, 3번 무기고를 개방하면 수렵용 엽총으로나마 300 여명을 무장시킬 수 있습니다"


".........."


중대장은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중대장님"

"아까 그 빨갱이 새끼들 못봤어? 몇명이고 더 있을지 몰라. 위험하다.  배신은 아니더라도 집단으로 도망갈 우려도 있다.  허락할 수 없다"

빨갱이 새끼...라, 참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명령은....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이상 다들 살인자야.  평소라면 우리도 시민들을 믿고 시민들도 우리를 믿어야 하겠지만, 지금같은 비상시에는 안되. 하나라도 잘못되면 모든것이 끝이야. 위험요소를 하나라도 남겨둘 수는 없어"

"중대장님..."

"불리하지는 않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이길 수는 있겠지만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뒤통수 맞는 것 보다는 낫지.  1개 분대 차출해서 시민들 잘 관리하고 특히 최근 1달 사이에 온 놈들은 따로 모아서 엄중히 감시해.  나머지는 모조리 전선에 투입하고.  나도 나간다"

할 수 없었다.  정말로 내부배신자가 더 있다면, 그래서 아까와 같은 꼴을 한번 더 당한다면 일거에 무너지는 쪽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이 될 것이다.  하물며 중대장이 직접 총을 들고 싸우러 나간다는데야....

"충! 성!"

"충성"













"제기랄, 뭐가 어떻게 된거야?"

"싸우는 거야? 어?"

"진정하십쇼! 지금 군인들이 잘 싸우고 있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수많은 시민들이 아우성치면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그 시민들을 군인들이 밀쳐내며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진정하시고 통제에 따라 주십쇼! 저희도 싸우러 가야합니다! 이러다간 다 죽습니다!"

"다 죽는다니! 뭐가!"

"내 총 돌려줘! 이 잡것들아! 나는 내 총 가지고 왔다고!"

"나도!"

"이렇게 같혀서 죽기는 싫어! 내보내줘! 내보내줘 이 개새끼들아!"





-타타타타타타타탕!!!!


"모두 닥쳐!!!!"



갑자기 등장한 중대장이 하늘을 향해 총을 발포하자 놀란 시민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지금 적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적들이 기습을 해와서 대대장님은 행방불명이고 우리 군인들은 앞에서 목숨을 거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작 한다는 짓이 이것밖에 안됩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도 싸우게 해주세요! 앉아서 죽기는 싫다구요!"

"아까 적들의 내통자로 보이는 놈들이 무기고를 폭파시키고 우리 군인들을 10명 이상 죽였습니다!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피해가 더 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에요?!"

"총을 못주겠으면 그냥 보내주기라도 해요!  우리까지 죽기는 싫어요!"


또다시 시민들이 와글와글 떠들기 시작했다. 한명 두명이 떠들기 시작하면 소란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타타타타타타타탕!!!

"조용히 하십쇼!!!!"



이번에는 시민들에게 거의 맞을듯 말듯, 시민들 머리 약간 위를 향해서 발포한다.  시민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면서 엎드린다.


"지금부터 움직이시거나 떠드시는 분은 무조건 빨갱이 새끼로 간주하겠습니다!"


시민들이 일제히 조용해진다.


"지금 앞에서 군인들이 여러분들의 목숨을 지키려고 싸우는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 안전한 곳에서 가만히 계시는게 제일 도와드리는 겁니다! 그 점 명심하시고 통제에 잘 따라주십쇼!"

"......."

"3분대는 이곳 시민들을 목숨걸고 지킨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가자!"












"위험한것 아닌가?"

"그래도 여기서 안전하게 기다리는게 낫지 않을까?"

"저기선 수백명이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을텐데"

"나는 전쟁터에 끌려가긴 싫어"


사람들이 귓속말로 소근소근 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기가 뚫리면 우리는 다 죽는거잖아"

"중대장까지 직접 싸우러 갔다며"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시민연대인데 우리까지 죽일까?"

"바보야. 서로 총질하고 죽고 죽이다 보면 눈에 뵈는게 있냐? 우리까지 다 죽는거야"



속닥속닥 귓속말이 두런두런 하는 말로 바뀐다.



"하지만 싸우러 나가기는 싫어, 저기는 전쟁터일꺼야"

"그렇다고 앉아서 죽을꺼야?"

"그때가서 저항하려고 해도 늦어. 지금 군인들 있을때 같이 도와주는게 살길이야"


두런두런은 웅성웅성이 되고, 와글와글이 되고, 이윽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우리도 싸워야 돼!"

"하지만 그러다가 죽으면!"

"어차피 다 죽어!"

"배신자가 진짜 있을지도 모르잖아!"

"보이는대로 잡아죽이면 되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안담글꺼야?"




"조용히 하십쇼!!!!"


다시 조용해진다.




"저기, 군인양반, 우리들도 싸우게 해 주십쇼"

한명의 시민이 군인에게 말한다.

"안됩니다!"

"이러다가는 다 죽을꺼야! 우리도 죽고싶지는 않다고!"

"절대로 아닙니다! 조용히 하십쇼!"


시민들이 다시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빨리 우리한테도 총을..."

"너 빨갱이새끼지 !!!!"




시민들이 다시 조용해진다.

"너 이새끼 나와!"

"아니, 나는 그런게 아니라"

"나와 이 새끼야! 나와서 엎드려!"



총구를 들이대며 윽박지르는 통에, 그 시민은 할수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서 바닥에 엎드린다.



"너는 특별감시다.  한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죽을 줄 알아!"

"그런게 어딨어요! 우리 형 그런거 아니에요!"

"지랄하지마! 너도 나와!"

"어린애한테까지 너무하잖나!"

"닥쳐!"


-타타타타탕!


다시 총구를 하늘로 하고 쏜다.  시민들은 그냥 엎드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보게 허씨"

그러던 중, 한 시민이 그 군인에게 아는척을 하며 일어서 나온다.

"조용하십쇼!"

"나는 자네랑 오래 있었어. 내가 배반자가 아니라는건 자네도 알지? 그치?"

"...."

"부탁인데 우리들도 싸우게 해주게나. 우리들은 자네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네!"

"가만히 계시는게 도움되는 겁니다! 아저씨도 그만 엎드리십쇼!"

"우리도 죽기는 싫네!"


그 군인은 자신이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강경하게 나오는 통에 어쩌질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뒤의 시민들도 다시금 한명한명씩 천천히 일어선다.

"우리도 싸우게 해주세요! 네?!"

"나 군대에 있을때 특등사수였어! 잘 싸울수 있다고!"

"우리도 싸우게 해 줘요!"

"내 총 돌려줘!"

"내보내줘!"

"싸우게 해줘요!"



다시 소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 군인은 이내 결심했다.  자신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당황하고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 것이다.



"젠장, 입 다물어!!!"


들고있던 총을 휘둘러서 가장 앞의 그 아저씨를 후려쳤다.


-빠악!


그 아저씨는 자신이 아는 바로 그 군인에게 머리를 맞고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다.


-빠악! 빠악!


그것도 모자라서 총을 거꾸로 잡고 쓰러진 사람을 두번 세번씩 내려치기 시작한다.



"모두들 입 닥쳐! 안 닥치면 다 죽어!! 닥치란 말이야!!!"



사람들의 눈초리가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어?”

으음...어떻게 된거지?  분명히 수류탄 안전핀을 잡은 것 까지는 기억하는데.... 나 기절했던 건가?

주위를 둘러본다. 무슨 건물 안 인것 같다.  내 옆에 다영이가 있고 그리고...

“이랑이! 이랑이는 어디있어?!”

“잡혀갔어”

“뭐?!”

“오빠 때문이야. 그렇게 무식하게 수류탄을 터뜨리면 어떻게 해?  그래도 혼란이 일어난 덕분에 일단 오빠를 끌고 도망쳤어. 오빠를 숨기고 나서 다시 와보니까 이랑이 언니는 그놈들에게 잡혀갔는지 보이지 않았어”

이런 젠장, 이랑이가 잡혀갔다고? 기억이 정말로 안나긴 하지만, 결국 수류탄을 터뜨리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수류탄을 터뜨렸다니....

“다영아, 다친곳은 없어? 괜찮아?”

“괜찮아. 떨어지는 걸 내가 발로 차서 그놈들한테 날려버렸으니까.  던지지도 못할꺼 그렇게 뽑기만 하면 어쩔 거야? 다 죽을뻔했잖아”

“그래? 그래, 다행이다....얼마나 지났어?”

"기절한지 벌써 1시간은 됐을껄"

기절한지 얼마 안되서인지 정신이 몽롱하고 몸이 후들후들 떨리기는 하지만 일단 다친곳은 없는 것 같다.  

-탕! 탕탕!
-타타타탕! 탕!

밖에서는 총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그것도 기억안나?  시민연대랑 싸움이 붙었어. 덕분에 오빠랑 내가 살아난 거잖아.  지금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인것 같아”

아 맞다, 그랬지 참, 그래서 우리들이 군인들 백여명을 상대하지 않아도 됬었고, 그래서 내가 수류탄을.... 지금도 싸우고 있다고? 그럼 지금 밖에는 군인들이 별로 없겠지?

“그럼. 이 틈에 어서 이랑이를 구해서 도망가자”













“안돼”





........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안된다니, 안된다고? 뭐가?

“너무 위험해, 지금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금방 싸움이 멈출지 어떻게 될지 몰라”

“안 멈출수도 있잖아! 만약 멈춘다고 해도 구해야 해!”

“거기다 언니는 군인들에게 잡혀있어.  못 구해.  지금 당장이라도 빠져나가는 게 최선이야”

“말도안되! 그렇다고 이랑이를 버리자고?!”

“그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다영이.  정말 너무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다영이가 아무리 차갑고 냉정하게 변해도 그런...

“안돼. 구하러 가야해”

“가지마”


나는 말을 듣지 않고 옆의 소총을 집어들었다.  탄창을 분리해봤더니 총알이 단 한발도 없었다.



“젠장, 줘”

“뭐를”

“총알, 다 빼서 숨겨뒀지?”

“몰라”

“내 놔!”


나는 다영이의 손목을 잡고 거칠게 휘둘렀다.  순간 다영이는 제대로 힘도 못주고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아.....미안해”

“.....”

“다영아,  이랑이를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어?”

“.....”

“다영이가 위험해졌을 때, 나도 이랑이도 지현이도 다 함께 너를 구하기 위해서 그놈들 하고 싸웠어.  그런데 너는 그 보답이라는 게 고작 이거야?”

“.....”


다영이는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 않다가, 그대로 손을 들어 방 한구석에 있는 가방을 가리켰다.

“고마워”

가서 뒤져보니 총알과 탄창들, 수류탄들까지 잔뜩 있었다.  그곳을 탈출할 때 슬쩍해 온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싸울 수 있겠어.


“다영아, 너는 여기에 숨어있어.  오빠가...”

“오빠”

갑자기 다영이가 내 등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다영아.....”

“꼭 가야해?‘

“꼭 가야해.”

“벌써 죽었을 꺼야”

“괜찮을꺼야”
  
“위험해”

“그래도 가야해”



나의 단호한 말에 다영이는 나를 꽉 안고있던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나는 도저히 이랑이를 버리고 갈 수가 없어. 미안해. 이해해 줘.



“오빠”

“응?”

“아까 어떻게 기절했는지 기억 안나지?”

“응? 그런....흡!”


뭔가가 내 입과 코를 강하게 막았다.  대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이상한 냄새가 내 코, 입을 통해 폐로 내려간다.  말도 안 돼,  이건 마취약?


“오빠는 정말 바보야”

“으읍! 읍! 읍!”

“한숨 푹 자”


말도 안된다. 다영아, 왜 이러는 거야. 이러면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이럴수는....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수류탄 안전핀을 뽑으려는 나를 말리는 다영이. 나는 듣지 않았다. 다영이는 내 뒤에서 나를 마취약으로 덮친다.  마취약에 기절해 쓰러지는 내 눈에 이랑이가 내 뒤에 이미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고, 그리고.......























“정신이 들어?”

으음....뭐지? 여긴....아, 다영이 등에 업혀있구나.  이 작은 어린애가 나를 업고 가다니, 나 기절한건가? 왜? 아까.....

“....!!”

나는 다영이를 밀쳐내고 다영이의 등에서 내렸다.  하지만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다리가 풀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크윽....”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벌써 어두운 밤이었고, 하늘에서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나와 다영이는 언덕배기에 있었다.  저 멀리 우리가 있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다영이가 나를 여기까지 업고 온거란 말이야?  이렇게 멀리, 그것도 높은 언덕을, 마을이 저렇게 한눈에 보일 정도로, 마을이, 마을이.......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탕! 탕탕!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투타타타타타타타탕! 타타탕!
-쾅!

그제서야 총성과 폭발음이 내 귀에 제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싸움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폭동? 내란?  아까의 싸움과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의 커다란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을은 불타고 있고, 총성은 시내 모든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멍하니 있던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저런 전쟁터 한복판이라니, 어서 가지 않으면 이랑이가...

“다영아. 저기 옆에 집에 들어가서 숨어있어. 금방 갔다올게”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총을 집어들고 몸을 돌렸다.  저 전쟁터로 내려갈 생각은 들면서도, 이상하게도 도저히 다영이를 바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철컥

“가지마”




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다영이가 권총으로 나를 겨누고 있었다.

“가지마”

“가야해”

“가지마”

“가야해”

“가면 죽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뭘 어쩌려고?”

“그래도 가야해”



-탕!

총성과 함께 내 발밑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저런 곳에서 죽게 놔두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주겠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절대로 보내지 않을 거야”



-탕!

이번에는 총알이 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꿰뚫은 것도 아니고 총알이 옷만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다영이는 이 정도로 총을 잘 쏘지 못한다.  위협사격이 아니라, 진짜로 내 다리를 쏘려다가 빗나간 것 같다.



“저 곳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야”

“....”

"가지마"

"안돼"

“가지 마. 위험해, 이미 죽었을 거야”

“아니야”

-탕!

이번에도 총알이 내 다리를 스쳐지나간다.  빗나간 것 같다. 아니, 빗나간 게 아니다.





다영이가 나를 쏠 수 있을 리가 없다.










다영이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총을 든 손을 내리고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년이 나빠”

“뭐?”

“남은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고작 몇 번 대주는 것 가지고 그렇게 징징대니까 이렇게 된 거라고”


"너...어떻게 그런소릴....”

“내 말이 틀려? 그렇게 구해달라고 못살겠다고 그렇게 징징대면, 그래서 어떻게 할 껀데? 군인들 수백명이 깔려있는데 어떻게 해달라고?  오빠보고 죽으라는 이야기밖에 더 되? 진짜로 오빠를 생각한다면 찍소리 말고 견뎌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여자가 되서 그런 짓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나는 견뎠어!!!!!!”



“......”


그래, 견뎠지. 다영이는 견뎌냈지.  그런 짓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내색도 안하고 참았지, 나 때문에, 나를 위해서, 아아.......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래, 이랑이는 오빠를 좋아해,   하지만 그건 평상시의 평화로울 때와 같은 연애감정일 뿐이야”

“.....”

“자기가 힘들어지자 오빠에게 그런 걸 부탁했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오빠가 죽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던 거라고”

“아니야”

“맞아! 그래서 그런 거야!  그년은 오빠랑 저 사람들이 싸우게 만들었어! 오빠를 이용했어! 그러다가 저렇게 된 거야! 다 그년 때문이야! 자업자득이라고!”

“아니야!!!”


아니다, 그런것이 아니다, 설령....

“설령 그게 진짜라고 해도. 나는 갈 거야”

“.....”

“말 돌리지 마. 지금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게 아니잖아.  이랑이가 위험하고, 그래서 내가 구하러 가는 거야.  그것뿐이야.  잘못했건 아니건 상관없어”

“오빠를 이용했어”

“그래도 상관없어”

“자업자득이야”

“됐어, 더 이상 이랑이 욕하는 건 듣지 않겠어”

“....”

“나는, 이랑이를 구하러 갈 거야”



나는 정말로 몸을 돌려서 시내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다영이가 무슨 말을 하건 듣지 않을 결심이었다.




“오빠”

나는 듣지 않았다.

“오빠”

나는 듣지 않았다.

“하아...”

등 뒤에서, 다영이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나는 듣지 않았다.


“나 임신했어”












말도 안돼.




"생리가 벌써 1달이나 없어. 단순한 생리불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아무래도 아니겠지. 매일같이 그 놈들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아니야. 나도 가임기는 피하고 싶었지만 이랑이와 내 생리주기가 비슷해서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어"










-내가 원해서 한거야

-으흑, 그놈들이, 거의 매주마다...

-매일매일 그놈들을 상대해야 했으니까

-다쳐서 쓸모없는 사람들을 협박해서...

-생리주기가 비슷...








다영아.......너는........






"그래, 언니를 대신해서"






목소리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말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간신히, 목소리를 짜낸다.





"...왜?"

"그년이 오빠에게 징징거릴까봐 내가 부담을 덜어준 것 뿐이야. 그리고..."

"..."




다영이는 나에게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오빠가 나에게 이랑이를...언니를 부탁했잖아?"




그리고 다영이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뭐 언니를 죽게 놔두고 싶은 줄 알아?"








나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앞으로 달려가서 주저앉은 다영이를 안아주고 싶고

동시에 다영이의 그 슬픈 눈초리로부터 도망가고 싶고

이런 나를, 이런 빌어먹을 내 머리통을 당장 날려버리고도 싶었다.








그렇다.

이전에도 생각했듯이, 다영이는 결코 냉정하거나 차가운 아이가 아니다.

항상 우리를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우리 앞길을 생각하던 저 천재 다영이가.

나와 이랑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 밖에는 모르는 저 바보 다영이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겠는가.




"도무지 답이 안보여.  군인들에게 잡혀갔고 두 집단간의 싸움에 폭동까지... 잡히자마자 죽었을수도, 어디론가 끌려가다가 당할 수도 있고, 단순히 따져봐도 살아있을 확률은 채 10 퍼센트도 안되, 하물며 그 10퍼센트의 확률로 살아있다고 쳐도, 저런 곳에서 언니를 구해 올 수 있는 가능성은........"




다영이는 무릎을 가슴앞에 모으고 쭈그려 앉아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푹 떨궜다.






"오빠"


".....응....."


"이제는 나도 지쳤어"


"..."


"지쳤다구..."


"..."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오빠, 이제는 편히 쉬게 해준다고 했잖아"

"..."

"다 거짓말이었어?"



눈에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나온다.


나는, 비틀비틀 걸어가서, 주저앉아 있는 다영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나, 나는, 흑, 나는, 흐끅, 나는, 그, 그러니까, 다, 다영아, 흑"


"쉬자....응? 부탁이야"


"으흑, 흑, 다영, 다영아, 으흑"


"저런 무서운 것들은 다 잊고. 아니,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응? 잠깐이라도. 잠깐만"


"하지만, 흑, 으윽, 다영아,  으흑흑, 흑, 다영아, 흑"


"다음에 다시 생각하자...지금은 너무 지쳤어...나도...오빠도....응?"


다영이는 그 말과 함께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내가 다영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내가 오히려 다영이에게서 듣고 있다니.





정신이 혼미해져 오는것 같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다영이의 속삭임이 달콤하게 내 귀로 파고들었다.


쉬게 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나를 위해 고민하고, 고생하고, 희생하는, 다영이를


내 동생을.


함께 편안한 곳을 찾아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주고 싶었다.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턱



나는 다영이의 손을 잡았다.


다영이의 손에는 아까의 그 마취약을 듬뿍 적신 손수건이 들려있었다.



"으흐흑, 바보야, 다, 다음에 생각하자니, 훌쩍"

"..."


"그러면 이랑이를 버리자는 거잖아, 흑, 아하하하, 오빠가, 으흑, 오빠가 그렇게, 훌쩍, 바보같아 보여? 훌쩍, 하하하하하, 으흑, 흑"



눈물이 났다. 끊임없이 눈물이 나면서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화 같은건 나지 않았다. 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에게 화를 낼 수 있을까?


그저 웃으면서, 억지로라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부탁이야, 제발 나를 그냥 웃으면서 보내 줘





















그리고, 다영이는 현수를 절대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하하...하하...훌쩍..."

푹 숙인 다영이의 고개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빠, 흑, 바보인줄 알았는데, 흑, 제법이네? 하하, 하하하하하하"



다영이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다영이의 입에서 힘없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다영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다영아.....





"그래, 흑, 이 오빠가, 흑, 언제까지 그렇게 바보일 것 같아? 으흑, 아까랑, 흑, 똑같은 수법이나, 하하, 쓰고 말이야, 훌쩍"

"아하하, 하하, 훌쩍, 하하, 흐윽, 오빠, 흑, 많이 늘었구나? 하하하하, 내가 졌네, 흑, 하하, 아하하"

"응, 그래, 훌쩍, 그러니까, 훌쩍, 그래, 그러니까, 흐끅"

"하아, 정말 지긋지긋해, 오빠, 으흑, 이제는 다 때려치고 어디 조용한데 들어가서 편히 살고싶어"

"나도, 흑, 나도 그래 다영아"

"말만 그렇게 하고, 흑, 또 저기로 가려고 하잖아, 흑, 으흑"

"걱정마,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하하, 이번에 이랑이만 구해서 오면, 이제는 정말로 쉴 수 있을꺼야"

"정말? 흑, 정말, 정말로? 으흑, 이번엔, 흑, 이번엔 믿어도 되는거야? 으흑"

"그래, 흑, 이랑이를 구해오면, 흑, 우리 셋이서 같이 떠나자"

"다른곳으로? 어디로?"

"아하하, 물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가서, 가서 우리 셋이서, 훌쩍,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그렇게 살자, 훌쩍. 응? 다영아"


"...."




"알았어 오빠"

"응, 고마워, 흑"

"알았으니까 울지마, 훌쩍"

"내가, 훌쩍, 언제, 흑, 언제 울었다고 그래, 흑"

"지금도 울고 있으면서, 하하하, 훌쩍"

"피, 너도 그렇게 울고 있으면서, 하하하"

"정말 때쟁이야, 흑, 안된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으흑, 울면서 때나 쓰고, 훌쩍"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하하, 미안해 다영아"

"맨날 말로만 그러지? 흑"

"아니야, 정말 미안해"

"피이"





그렇게 나는 다영이에게 억지로 때를 써서 결국은 허락을 받고

다영이는 토라진 얼굴을 하고

나는 그런 다영이를 달래고

그래.

그렇게.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에서는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렇게.






"아, 그리고..."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지금이 아니라면 줄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다영아, 생일 축하해"



다영이는 웃는것도 멈추고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푸훗, 푸하핫,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나 밝은 얼굴로, 웃겨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폭소한다.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지금까지 다영이의 이런 표정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오빠, 하하, 이, 이게 뭐야. 아하하하! 너무 뻔, 뻔하잖, 크큭, 아, 뻔하잖아, 하하, 아, 정말 유치한 삼류 소설같아? 아하하하하하"

"응, 몰랐어? 오빠가 사는게 원래 좀 멋있잖아. 하하! 한편의 소설같이 사는 남자!"

"뭐야, 오빠가 주인공이야?"

"응! 내가 이제 저기로 들어가서 나쁜놈들을 파팍! 하고 때려눕히고는 이랑이를 멋지게 구출해 오는거야. 오빠는 주인공이니까"

"정말로?"

"응, 정말로. 그리고는 셋이서 함께 살자. 멀리 가서 셋이서 함께"

"함께?"

"응, 다영이랑, 이랑이랑 함께, 더 이상 걱정같은거 더 이상 하지말고 편하게 쉬자"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어"

"정말?"

다영이가 목이 맨 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정말"

"소설이라면, 물론 해피엔딩 이겠지?

"물론이지"

"그리고 다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응, 그렇게"




다영이는 갑자기 내 품으로 몸을 날려 나에게 안긴다.  나도 다영이를 꼬옥 끌어안는다. 다영이가 내 품에서 웃는 듯, 혹은 우는 듯 들썩이는 것이 느껴진다. 가슴이 젖어온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문득 다영이가 고개를 들고는, 양손으로 내 볼을 잡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노려본다. 그러고는 점점 얼굴을 가까이 댄다. 이건... 생일 축하해 에 이은 키스씬인가?



다영이는 그렇게 흠칫흠칫, 움찔움찔, 나에게 키스를 할까, 말까, 하다가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내 얼굴을 그냥 확 밀쳐내버리고 말았다.

"아하하하, 바보같아"

"바보라니, 누가?"

"변태, 저질, 짐승. 바보오빠.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그렇게 한참을 들썩이면서 웃던 다영이는 곧 웃음을 멈췄다.



"가져가..."


총알들과 수류탄이 든 가방을 내게로 건낸다.



"다영이 너는?"

"나는 괜찮아, 이것만 있으면 돼"



그렇게 말하고는 권총을 들어보이며 웃는다.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굉장히 밝으면서도 자신만만한 얼굴이다. 나도 왠지 마음이 안심이 된다.




"그럼, 다녀와 오빠"



아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간단하게 나를 보낸다.



"응, 다녀올께"


나도 어디 잠시 일을 다녀오는 것 처럼 그렇게 말한다.



"선물은 오빠가 가고 나면 풀어봐! 알았지? 꼭이야!"

"피, 어차피 사랑하는 나의 동생 다영이에게, 이렇게 뻔한 소리만 적혀있을 거면서"

"이 오빠를 바보로 알아?"

"그럼, 아니야?"

"물론! 풀어보면 정말 깜짝 놀랄껄?"

"정말?"

"응! 기대해도 좋아!"

"그래, 오빠 가면 풀어볼께.  얼마나 멋진 선물인지 기대하겠어"





다영이는 그 선물과 카드를 소중하게 품에 꼬옥 안았다.








"다녀와 오빠"

"응"

"오빠"

"응?"

"꼭 살아남아야 해"

"물론! 걱정마!"

"다녀와"

"응"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서 씩씩하게 걸어간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아니, 못할 것 같다.








"오빠는 정말 바보야...."


내 등뒤에서 다영이의 작은 중얼거림이, 아니,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는 차마 돌아보지 못하고, 아예 저 도시 아래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에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흘리면서도.




























-타아아아앙!!!












총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들어온 그 어떤 총소리보다

더 무섭게

더 아프게




바로, 나의 등 뒤에서














"다영아!!!!!!!!!!!"








"다영아! 다영아! 다영아!"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서 간신히 다영이에게로 갔다.



다영이는


죽었다.


권총으로 머리를 쏴서.


한손에는 권총을 들고,


한손에는, 아직 풀지 않은 선물을 꼬옥 쥔채로








"다영아! 왜!"

'정말 몰라?'


"왜! 왜 그래! 왜! 왜 그랫어! 왜!"

'정말로?'


"다영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 나때문이잖아!'








-오빠

-오빠

-흥, 바보오빠

-나보다 더 이뻐?

-이제는 좀 똑똑해졌네, 바보오빠

-오빠, 나 추워

-하아, 모르겠어

-매일 이랑이 언니만 챙기고

-고마워

-흥, 언제나 말로만 그러지?

-이제는 나도 지쳤어...

-우리 같이 편하게 쉬자, 응?



-오빠는... 정말 바보야....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