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6
제 6 주기 말, 적사병의 도시
1.
백향목의 마녀, 이븐 아이지는 온 몸에 치명적인 독들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 앙가레즈의 저택을 나오면서 그녀와 마주친 사람이나 경비견들은 갖가지 극독에 중독되어 각각 다른 처참한 방법으로 죽어갔다. 독을 퍼뜨리는 수법 역시 기상천외한 것이어서 옆에 있던 마로조차 상대가 왜 죽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지는 저택을 탈출하려는 방편으로 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독살할 수 있는가 실험하며 즐기고 있었다.
문을 지키던 사병들이 녹아내린 위장 조각들을 토하며 죽어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택을 빠져나왔을 때 마로는 결국 아이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따로 주머니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독들을 몸에 품고 있던 거야? 그러면서 너는 중독되지도 않나?”
아이지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며 말했다.
“독사가 자기 독에 죽는 것 봤어?”
마로는 수많은 사람을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고도 명랑한 아이지야말로 정말 독사같은 여자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지 같이 무서운 능력을 가진 여자가 옆에 있기에 자신이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토록 경비가 삼엄한 앙가레즈의 저택을 나오면서도 전전긍긍 몸을 감추거나, 허겁지겁 뛰는 일이 없었다. 그저 산책이나 하듯 여유롭게 걸을 뿐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둘은 어느새 저택 앞의 작은 숲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갑자기 서늘해진 바람을 느끼며 마로는 아이지에게 물었다.
“이봐, 여기가 어디지?”
“여기? 앙가레즈의 집 근처의 숲인데?”
“아니 그런 것 말고. 이 지역이 어디냐고.”
“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왔구나. 여긴 칼레의 성안이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 동편의 부유층 거주지이지.”
“너 혹시 이 근방의 지리 좀 알고 있어?”
“하하, 물론 잘 알지. 대륙 안에서 내가 모르는 길은 거의 없어. 너야 잘 몰라서 물은 말이겠지만, 대륙의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백향목의 마녀에게 여러 가지를 물으러 오곤 해. 난 대륙의 누구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거든. 물론 내가 모르는 것 한두 가지를 아는 이도 있겠지만, 그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지식의 양으로만 따지면 나를 능가할 사람은 없을걸?”
“아니, 네 나이가 몇 인데?”
“열 아홉.”
마로는 어이가 없었으나,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지는 마로의 표정을 본 것만으로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하, 내 말을 믿지 못하는구나? 하긴 보잘 것 없는 상식으로 더 넓은 세상을 처음 마주치면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
순간 아이지의 손이 불쑥 자신의 손을 잡아끌었다. 잔혹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과는 달리 너무도 보드랍고 따뜻한 손이라서 마로는 오히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새장 속에서 아이지의 몸을 만졌을 때와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명치를 아리게 하는 것만 같던 그 느낌은 이내 사그라졌다. 아이지는 마로의 표정이 금세 침착해지는 것을 보면서 살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아이지는 마로의 손을 끌어 자신의 뒤통수에 가져다 대었다.
“여기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자국, 느껴져?”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아이지의 머리칼 사이로 흉터처럼 살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것이 느껴졌다.
“그래.”
“가시 거머리가 뚫은 자국이야.”
가시 거머리란 귀나 콧구멍을 통해 머릿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뇌를 망가뜨리는 동물이었다. 르로이의 다리를 으스러뜨린 코끼리 역시 가시 거머리에 감염되었던 것이기에 마로 역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시 거머리를 숙주를 미치게 하는 징그러운 동물로나 알겠지만, 사실 가시 거머리는 그것보다 훨씬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우리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수법을 거친 가시 거머리는 사람의 뇌와 뇌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단 말이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난 가시 거머리를 통해 우리 아버지, 아니 내 조상들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머릿속에 이어 받았어. 물론 이건 매우 까다롭고 위험한 일이야. 준비과정도 복잡하고 어렵거니와,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 낮거든. 지식을 내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열에 아홉은 미치거나 죽어버리기 마련이지.”
여전히 상식이 방해하였지만, 마로는 아이지의 말을 믿으려 노력하였다. 마로 본인부터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신비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로는 진심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믿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로군. 자식의 목숨을 걸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하다니. 그나마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 단박에 성공했으니.”
아이지는 다시 또 웃었다.
“하하, 운이 좋기는? 오히려 평균보다 운이 나쁜 편이라고 해야지. 나는 열 두 남매 중에 막내니까.”
아이지의 말을 이해하기에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 섬뜩한 속뜻을 깨달은 마로는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럼 네 형제들은 그 괴상한 짓을 하다가 모두 죽었단 말이야?”
“뭐,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해야겠지. 미쳐 버린 네 명도 결국 죽었으니.”
“아니, 그럼 네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그 끔찍한 짓을 했다는 거야?”
아이지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사고가 있어서 아빠의 형제들도 모조리 죽었거든. 그런 마당에 아빠마저 죽으면 더 이상 우리 가문의 지식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지는 거 아냐? 지식을 이어받을 사람을 빨리 마련해 두어야 했지. 아아, 끔찍한 짓이니 뭐니 하면서 인상 찌푸리지 마. 다른 집안의 가풍은 조금 거슬리더라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하하.”
마로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아이지의 기묘한 가족의 이야기를 듣자 르로이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돌봐줄 사람도 없을 텐데. 여기서 이런 한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한시바삐, 빨리 베르가마로 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마로는 아이지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물어볼게. 이 칼레 시에서 나가 베르가마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지는 유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마로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도 베르가마에 볼 일이 있나?”
“아니, 전혀 없어. 하지만 네가 거기로 가겠다며?”
아이지는 재미있다는 듯 빙글 빙글 웃으며 말했지만, 마로는 몹시 놀라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무슨 소리야? 나를 따라 오겠다는 말이야?”
아이지의 대답은 서슴없었다.
“그래.”
“네가 왜 나를 따라와?”
충분히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높아진 마로의 목소리는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지는 도리어 웃을 뿐이었다.
“네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거든.”
“뭐?”
마로가 당황한 나머지 무어라고 대꾸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네. 그럴 바엔 방해받지 말고 편하게 말을 해야겠지?”
아이지는 바닥에서 잡초를 몇 움큼 뜯어 입에 넣고는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숲 여기저기에다가 짓이겨진 잡초 덩어리를 뱉어내더니 사방에 늘어진 버드나무가지를 이리저리 휘고 꺾으며 무어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이 주변에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내가 길을 닫아 놓았으니까, 우연히 근처에 왔다가도 저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지. 이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잠깐 다리도 쉴 겸 이리 앉아. 이야기나 잠깐 하자고.”
“난 빨리 베르가마로 가야 해. 이렇게 머뭇거릴 틈 없어.”
“흥, 길도 모르고 앞도 못 보는 네가 어떻게 간다는 거지? 설령 길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해도 마차라도 빌릴 재간이 있어? 그럼 걷는 수밖에 없겠지. 그럼 걸어서는 베르가마까지 며칠이나 걸릴까? 걱정하지 마. 내가 내일 저녁까지 너를 베르가마로 데려가 줄 테니까, 그러니 괜한 허풍 부리지 말고 일단 앉아 봐. 너와도 관련이 있는 중요한 이야기야.”
아이지가 팔을 잡아끌자 결국 마로도 주춤 주춤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너, 처음 내 목소리를 들을 때나 내 몸에 닿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
순간 마로는 목덜미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아이지는 발뺌하는 마로를 보며 다시 웃었다.
“하하, 시치미 떼지 않아도 돼. 그건 당연한 거니까. 아니 넌 오히려 이 세상의 어떤 인간보다 나에게 무심하다고 말할 수 있어.
넌 왜 앙가레즈가 광적으로 나한테 집착하는지 궁금해 한 적 없어? 또 병사들이 나를 보면 재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 이건 그저 내가 예쁘기 때문일까? 물론 나 스스로도 내 외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정신을 나가게 만들 정도는 아니야. 옛날이야기에서는 보자마자 넋이 나갈 정도의 미녀를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그건 지극히 당연한 거야.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미의 기준도 다르거든. 사랑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정 앞에서 판단력이 흔들린다는 정도지, 앙가레즈처럼 완전한 미친놈이 된다는 말은 아니야.“
어느새 마로는 아이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마로를 보던 아이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앙가레즈가 앞이 보이지 않는 자들만 모아서 귀까지 멀게 하고 내 시중을 들게 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사실 새장 속에 처음 갇혔을 때, 내가 하인 녀석들을 홀려서 앙가레즈를 죽이려고 했거든. 그런데 앙가레즈란 녀석은 언제 그런 체술을 익혔는지, 칼을 들고 덤벼드는 하인 세 명을 단숨에 제압하더라고. 그 때부터 앙가레즈가 하인들이 나한테 넘어가지 않도록 눈멀고 귀먹은 자로 바꾸었던 거야. 지금은 정신이 나가긴 했지만, 수완이 뛰어난 작자였으니까.”
여기까지 말한 아이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별안간 마로에게 질문을 했다.
“넌 신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해?”
“뭐?”
“넌 신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머리 속에서 너무도 똑똑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결코 기시감이 아니었다.
‘그래. 두벡!’
마로는 그제야 그것이 동굴 속에서 두벡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로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두벡에게 들은 말을 되풀이 했다.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불멸이다.”
막상 마로가 대답하자 아이지는 놀랐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호. 너도 무언가 좀 아는 것이 있구나? 그래, 하나는 맞았어. 불멸이야 말로 신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지. 그리고 또?”
“또라니?”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또 뭐가 있나고.”
마로가 그런 것을 알리가 없었다.
“난 몰라. 아까 했던 이야기도 나에게 불멸의 능력을 전달해 준 사람에게 들었던 거야.”
“그래? 하긴 나도 네게 힘을 전해 준 사람의 이름이 궁금했어. 그게 누구지?”
“흠, 성이 뭐였는지는 잊어버렸는데, 하여튼 이름은 두벡이었어.”
순간 아이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면서 눈이 예사롭지 않게 번뜩였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마로로서는 그런 아이지의 변화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번 네가 힘을 받게 된 이야기를 해 줄래?”
마로는 아이지에게 보석 광산 밑의 지저 호수에서 두벡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지는 눈을 빛내면서 유심히 들었다. 마로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지는 웃는 것인지 찌푸린 것인지 모를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기묘하게 이어지네. 그럼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신이 어떤 것일까?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정말 신이 있기는 한 걸까?”
마로가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지 역시 마로에게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봄 직한 질문이지. 동시에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야.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에서 머리를 내저으며 포기하고는 속된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의심이 생기는 것은 신앙이 부족한 까닭이라고 여겨 더욱 열심히 신을 믿거나 하겠지. 하지만 그 옛날 뛰어난 마법사이자 신관이었던 보든이란 자는 조금 달랐어. 그는 자신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과는 달리 신을 대면할 자격이 있다고 여겼지. 결국 신에게 응답을 받기 위해 고되고 절실한 기도와 수행을 했어. 물론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나도 신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
아이지는 마로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결국 보든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글쎄? 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하하, 넌 언제나 순진하고 뻔한 대답을 하는데, 그것이 묘하게 재미있단 말이야.”
아이지의 말에 마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순진하다는 말은 베르가마에 있을 때만 해도 전혀 듣지 못하던 말이었다.
“사실 상식적인 경우라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야. 네 말처럼 신앙을 팽개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겨 더욱 열심히 신을 믿는 것. 하지만 보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어. 자기만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신의 응답이 없자 길길이 화를 내기 시작했지.
그도 엉뚱하지만 나름대로 논리는 가지고 있었어. 신이 있다고 하면 신이 혼신을 기울인 자신의 정성에 답하지 않는 것이니 화가 나는 것이고, 신이 없다고 하면 평생을 속아서 헛수고를 한 셈이니 역시 화가 나는 것이지. 한 마디로 신이 있건 없건 자신은 화를 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야. 참 웃기는 사람이지?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야. 그는 길길이 날뛰면서도 자신의 울분을 삭일 방법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고 결국 해답을 하나 찾았지. 넌 그 해답이 뭔지 알겠어?”
“뭔데?”
“자신이 직접 신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야. 그럼 신을 있다는 것도 증명할 수 있고, 갖은 고생을 하며 신의 응답을 기다릴 필요도 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겼던 거지.”
기가 막힌 마로가 혀를 차자 아이지도 그에 수긍했다.
“넌 지금 보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그래, 어쩌면 보든은 미쳤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에게는 광기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 지혜는 부족하지만 지능은 뛰어난 사람이었거든. 사실 광인과 천재는 비슷한 거야. 둘 다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곳을 볼 수 있지. 사람들이 허황하다 못해 미쳤다고 여기던 공상을 천재가 현실에서 이루어낸 예는 적지 않아. 마찬가지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던 보든은 정말 자신을 신으로 만들었어.”
마로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자신을 신으로 만들다니?”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아무도 몰라. 다만 보든이 신성의 요소들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하나씩 자신의 몸에 깃들게 하였다는 것만 알 뿐이야. 자, 그럼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제 이 정도 대답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불멸의 힘.”
“그래,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하지만 그건 이미 대답한 거야.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순간 마로의 머릿속에서 두벡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글쎄. 폭풍을 일으키고, 번개를 내리는 것?”
“그런 것은 보든이 생각하던 신성의 본질이 아니야. 보통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마법사나 학자들이라면 그런 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일어나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 현상일 뿐임을 잘 알아. 아니, 꼭 마법사들을 들어 말하지 않더라도, 보든이 살아 있던 당시의 신관들 역시 신은 번개를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번개가 일어날 수 있는 이 세계를 마련한 존재라고 말했었어.
보든은 신성을 인간이 바라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힘이라 생각했어. 번개 따위와는 달리 자연의 인과법칙에서 벗어난 힘이라고 생각한 거지. 난 신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에 보든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고 싶지 않아.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든이 자신의 기준 아래 신성의 요소를 세분화한 다음, 그것들이 모두 자신의 몸에서 이루어지도록 했다는 거야. 그렇게 신이 된 보든은 왕국의 왕을 죽인 후에 사람들 앞에서 신, 즉 자신이 인간의 곁에 머물면서 직접 모두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했어. 이것이 지금 대륙의 교단의 시작이지. 현재 신관들과 경전이 말하는 ‘열흘 간의 강림’이 바로 이거거든.”
마로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아이지는 어떤 설명도 부연하지 않고 그저 피식 웃어버릴 뿐이었다.
아이지의 말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대륙의 모든 사람이 그토록 떠받드는 신이 원래 한 명의 미치광이일 뿐이었다니, 현재 대륙을 지배하는 교단의 교리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물론 마로는 신앙의 깊이를 논할 것도 없는 불신자였지만, 대륙의 모든 사람은 교회를 나가든 나가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종교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걸쳐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이자 최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의식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륙에는 불신자는 있어도 무신론자는 없는 셈이었다.
마로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신을 신답게 만드는 요소들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뭔데?”
“그건 나도 완전히는 몰라.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네 개밖에 안 돼. 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그나마도 네 가지 중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이야. 그 자세한 이야기는 있다가 할 테니 내 이야기를 마저 들어봐.”
아이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현재 대륙의 교단에서는 신이 현신하여 열흘간의 교화를 마치고 일식이 있던 날, 하늘로 돌아갔다고 말하지? 뭐 보든을 신으로서 열렬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달리 보든은 사실 자살했어.”
“자살?”
“그래, 자살. 그가 왜 자살했는지는 나도 몰라. 무슨 까닭인지 신으로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열흘 만에 자신의 권능을 떼어 세상에 모두 흩어 놓고는 자기 육신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렸어.”
아이지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두해 있는 마로를 보며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이제 내 앞에서 사람들이 쩔쩔매던 이유를 알겠어?”
순간 마로는 머리에 무언가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그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힘과 같이……?”
아이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마로의 말을 받았다.
“그래. 너와 나는 보든이 남긴 신성 중에 한 조각씩 가지고 있는 거야. 넌 죽음을 이기는 불멸의 권능을, 난 저항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1.
백향목의 마녀, 이븐 아이지는 온 몸에 치명적인 독들을 잔뜩 지니고 있었다. 앙가레즈의 저택을 나오면서 그녀와 마주친 사람이나 경비견들은 갖가지 극독에 중독되어 각각 다른 처참한 방법으로 죽어갔다. 독을 퍼뜨리는 수법 역시 기상천외한 것이어서 옆에 있던 마로조차 상대가 왜 죽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지는 저택을 탈출하려는 방편으로 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독살할 수 있는가 실험하며 즐기고 있었다.
문을 지키던 사병들이 녹아내린 위장 조각들을 토하며 죽어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저택을 빠져나왔을 때 마로는 결국 아이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따로 주머니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독들을 몸에 품고 있던 거야? 그러면서 너는 중독되지도 않나?”
아이지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며 말했다.
“독사가 자기 독에 죽는 것 봤어?”
마로는 수많은 사람을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고도 명랑한 아이지야말로 정말 독사같은 여자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지 같이 무서운 능력을 가진 여자가 옆에 있기에 자신이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토록 경비가 삼엄한 앙가레즈의 저택을 나오면서도 전전긍긍 몸을 감추거나, 허겁지겁 뛰는 일이 없었다. 그저 산책이나 하듯 여유롭게 걸을 뿐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둘은 어느새 저택 앞의 작은 숲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갑자기 서늘해진 바람을 느끼며 마로는 아이지에게 물었다.
“이봐, 여기가 어디지?”
“여기? 앙가레즈의 집 근처의 숲인데?”
“아니 그런 것 말고. 이 지역이 어디냐고.”
“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왔구나. 여긴 칼레의 성안이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성 동편의 부유층 거주지이지.”
“너 혹시 이 근방의 지리 좀 알고 있어?”
“하하, 물론 잘 알지. 대륙 안에서 내가 모르는 길은 거의 없어. 너야 잘 몰라서 물은 말이겠지만, 대륙의 내로라하는 학자들도 백향목의 마녀에게 여러 가지를 물으러 오곤 해. 난 대륙의 누구보다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거든. 물론 내가 모르는 것 한두 가지를 아는 이도 있겠지만, 그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지식의 양으로만 따지면 나를 능가할 사람은 없을걸?”
“아니, 네 나이가 몇 인데?”
“열 아홉.”
마로는 어이가 없었으나,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지는 마로의 표정을 본 것만으로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하, 내 말을 믿지 못하는구나? 하긴 보잘 것 없는 상식으로 더 넓은 세상을 처음 마주치면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
순간 아이지의 손이 불쑥 자신의 손을 잡아끌었다. 잔혹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과는 달리 너무도 보드랍고 따뜻한 손이라서 마로는 오히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새장 속에서 아이지의 몸을 만졌을 때와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명치를 아리게 하는 것만 같던 그 느낌은 이내 사그라졌다. 아이지는 마로의 표정이 금세 침착해지는 것을 보면서 살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아이지는 마로의 손을 끌어 자신의 뒤통수에 가져다 대었다.
“여기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자국, 느껴져?”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아이지의 머리칼 사이로 흉터처럼 살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것이 느껴졌다.
“그래.”
“가시 거머리가 뚫은 자국이야.”
가시 거머리란 귀나 콧구멍을 통해 머릿속으로 기어 들어가서 뇌를 망가뜨리는 동물이었다. 르로이의 다리를 으스러뜨린 코끼리 역시 가시 거머리에 감염되었던 것이기에 마로 역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시 거머리를 숙주를 미치게 하는 징그러운 동물로나 알겠지만, 사실 가시 거머리는 그것보다 훨씬 훌륭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 우리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수법을 거친 가시 거머리는 사람의 뇌와 뇌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단 말이야.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난 가시 거머리를 통해 우리 아버지, 아니 내 조상들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머릿속에 이어 받았어. 물론 이건 매우 까다롭고 위험한 일이야. 준비과정도 복잡하고 어렵거니와,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무척 낮거든. 지식을 내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열에 아홉은 미치거나 죽어버리기 마련이지.”
여전히 상식이 방해하였지만, 마로는 아이지의 말을 믿으려 노력하였다. 마로 본인부터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신비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로는 진심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믿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로군. 자식의 목숨을 걸고 그런 위험한 일을 하다니. 그나마 운이 좋았던 모양이네. 단박에 성공했으니.”
아이지는 다시 또 웃었다.
“하하, 운이 좋기는? 오히려 평균보다 운이 나쁜 편이라고 해야지. 나는 열 두 남매 중에 막내니까.”
아이지의 말을 이해하기에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 섬뜩한 속뜻을 깨달은 마로는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럼 네 형제들은 그 괴상한 짓을 하다가 모두 죽었단 말이야?”
“뭐, 결과적으로는 그렇다고 해야겠지. 미쳐 버린 네 명도 결국 죽었으니.”
“아니, 그럼 네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그 끔찍한 짓을 했다는 거야?”
아이지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사고가 있어서 아빠의 형제들도 모조리 죽었거든. 그런 마당에 아빠마저 죽으면 더 이상 우리 가문의 지식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지는 거 아냐? 지식을 이어받을 사람을 빨리 마련해 두어야 했지. 아아, 끔찍한 짓이니 뭐니 하면서 인상 찌푸리지 마. 다른 집안의 가풍은 조금 거슬리더라도 존중해 주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하하.”
마로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었다. 아이지의 기묘한 가족의 이야기를 듣자 르로이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돌봐줄 사람도 없을 텐데. 여기서 이런 한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다. 한시바삐, 빨리 베르가마로 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마로는 아이지에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물어볼게. 이 칼레 시에서 나가 베르가마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지는 유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마로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무슨 소리야? 너도 베르가마에 볼 일이 있나?”
“아니, 전혀 없어. 하지만 네가 거기로 가겠다며?”
아이지는 재미있다는 듯 빙글 빙글 웃으며 말했지만, 마로는 몹시 놀라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무슨 소리야? 나를 따라 오겠다는 말이야?”
아이지의 대답은 서슴없었다.
“그래.”
“네가 왜 나를 따라와?”
충분히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높아진 마로의 목소리는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지는 도리어 웃을 뿐이었다.
“네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거든.”
“뭐?”
마로가 당황한 나머지 무어라고 대꾸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지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네. 그럴 바엔 방해받지 말고 편하게 말을 해야겠지?”
아이지는 바닥에서 잡초를 몇 움큼 뜯어 입에 넣고는 질겅질겅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숲 여기저기에다가 짓이겨진 잡초 덩어리를 뱉어내더니 사방에 늘어진 버드나무가지를 이리저리 휘고 꺾으며 무어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이 주변에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 거야. 내가 길을 닫아 놓았으니까, 우연히 근처에 왔다가도 저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지. 이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잠깐 다리도 쉴 겸 이리 앉아. 이야기나 잠깐 하자고.”
“난 빨리 베르가마로 가야 해. 이렇게 머뭇거릴 틈 없어.”
“흥, 길도 모르고 앞도 못 보는 네가 어떻게 간다는 거지? 설령 길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해도 마차라도 빌릴 재간이 있어? 그럼 걷는 수밖에 없겠지. 그럼 걸어서는 베르가마까지 며칠이나 걸릴까? 걱정하지 마. 내가 내일 저녁까지 너를 베르가마로 데려가 줄 테니까, 그러니 괜한 허풍 부리지 말고 일단 앉아 봐. 너와도 관련이 있는 중요한 이야기야.”
아이지가 팔을 잡아끌자 결국 마로도 주춤 주춤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너, 처음 내 목소리를 들을 때나 내 몸에 닿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
순간 마로는 목덜미가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아이지는 발뺌하는 마로를 보며 다시 웃었다.
“하하, 시치미 떼지 않아도 돼. 그건 당연한 거니까. 아니 넌 오히려 이 세상의 어떤 인간보다 나에게 무심하다고 말할 수 있어.
넌 왜 앙가레즈가 광적으로 나한테 집착하는지 궁금해 한 적 없어? 또 병사들이 나를 보면 재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 이건 그저 내가 예쁘기 때문일까? 물론 나 스스로도 내 외모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정신을 나가게 만들 정도는 아니야. 옛날이야기에서는 보자마자 넋이 나갈 정도의 미녀를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그건 지극히 당연한 거야.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듯 미의 기준도 다르거든. 사랑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감정 앞에서 판단력이 흔들린다는 정도지, 앙가레즈처럼 완전한 미친놈이 된다는 말은 아니야.“
어느새 마로는 아이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마로를 보던 아이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앙가레즈가 앞이 보이지 않는 자들만 모아서 귀까지 멀게 하고 내 시중을 들게 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사실 새장 속에 처음 갇혔을 때, 내가 하인 녀석들을 홀려서 앙가레즈를 죽이려고 했거든. 그런데 앙가레즈란 녀석은 언제 그런 체술을 익혔는지, 칼을 들고 덤벼드는 하인 세 명을 단숨에 제압하더라고. 그 때부터 앙가레즈가 하인들이 나한테 넘어가지 않도록 눈멀고 귀먹은 자로 바꾸었던 거야. 지금은 정신이 나가긴 했지만, 수완이 뛰어난 작자였으니까.”
여기까지 말한 아이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별안간 마로에게 질문을 했다.
“넌 신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해?”
“뭐?”
“넌 신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머리 속에서 너무도 똑똑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결코 기시감이 아니었다.
‘그래. 두벡!’
마로는 그제야 그것이 동굴 속에서 두벡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로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두벡에게 들은 말을 되풀이 했다.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불멸이다.”
막상 마로가 대답하자 아이지는 놀랐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오호. 너도 무언가 좀 아는 것이 있구나? 그래, 하나는 맞았어. 불멸이야 말로 신의 가장 중요한 능력이지. 그리고 또?”
“또라니?”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또 뭐가 있나고.”
마로가 그런 것을 알리가 없었다.
“난 몰라. 아까 했던 이야기도 나에게 불멸의 능력을 전달해 준 사람에게 들었던 거야.”
“그래? 하긴 나도 네게 힘을 전해 준 사람의 이름이 궁금했어. 그게 누구지?”
“흠, 성이 뭐였는지는 잊어버렸는데, 하여튼 이름은 두벡이었어.”
순간 아이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면서 눈이 예사롭지 않게 번뜩였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마로로서는 그런 아이지의 변화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번 네가 힘을 받게 된 이야기를 해 줄래?”
마로는 아이지에게 보석 광산 밑의 지저 호수에서 두벡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하였다. 아이지는 눈을 빛내면서 유심히 들었다. 마로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지는 웃는 것인지 찌푸린 것인지 모를 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구나. 기묘하게 이어지네. 그럼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신이 어떤 것일까?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정말 신이 있기는 한 걸까?”
마로가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이지 역시 마로에게 대답을 기대하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봄 직한 질문이지. 동시에 누구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야.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에서 머리를 내저으며 포기하고는 속된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의심이 생기는 것은 신앙이 부족한 까닭이라고 여겨 더욱 열심히 신을 믿거나 하겠지. 하지만 그 옛날 뛰어난 마법사이자 신관이었던 보든이란 자는 조금 달랐어. 그는 자신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과는 달리 신을 대면할 자격이 있다고 여겼지. 결국 신에게 응답을 받기 위해 고되고 절실한 기도와 수행을 했어. 물론 십년이 지나고, 이십년이 지나도 신에게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
아이지는 마로에게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결국 보든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글쎄? 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하하, 넌 언제나 순진하고 뻔한 대답을 하는데, 그것이 묘하게 재미있단 말이야.”
아이지의 말에 마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순진하다는 말은 베르가마에 있을 때만 해도 전혀 듣지 못하던 말이었다.
“사실 상식적인 경우라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야. 네 말처럼 신앙을 팽개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겨 더욱 열심히 신을 믿는 것. 하지만 보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어. 자기만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신의 응답이 없자 길길이 화를 내기 시작했지.
그도 엉뚱하지만 나름대로 논리는 가지고 있었어. 신이 있다고 하면 신이 혼신을 기울인 자신의 정성에 답하지 않는 것이니 화가 나는 것이고, 신이 없다고 하면 평생을 속아서 헛수고를 한 셈이니 역시 화가 나는 것이지. 한 마디로 신이 있건 없건 자신은 화를 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야. 참 웃기는 사람이지?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야. 그는 길길이 날뛰면서도 자신의 울분을 삭일 방법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고 결국 해답을 하나 찾았지. 넌 그 해답이 뭔지 알겠어?”
“뭔데?”
“자신이 직접 신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거야. 그럼 신을 있다는 것도 증명할 수 있고, 갖은 고생을 하며 신의 응답을 기다릴 필요도 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겼던 거지.”
기가 막힌 마로가 혀를 차자 아이지도 그에 수긍했다.
“넌 지금 보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그래, 어쩌면 보든은 미쳤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에게는 광기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 지혜는 부족하지만 지능은 뛰어난 사람이었거든. 사실 광인과 천재는 비슷한 거야. 둘 다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곳을 볼 수 있지. 사람들이 허황하다 못해 미쳤다고 여기던 공상을 천재가 현실에서 이루어낸 예는 적지 않아. 마찬가지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던 보든은 정말 자신을 신으로 만들었어.”
마로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자신을 신으로 만들다니?”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아무도 몰라. 다만 보든이 신성의 요소들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하나씩 자신의 몸에 깃들게 하였다는 것만 알 뿐이야. 자, 그럼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제 이 정도 대답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불멸의 힘.”
“그래,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 하지만 그건 이미 대답한 거야.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순간 마로의 머릿속에서 두벡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글쎄. 폭풍을 일으키고, 번개를 내리는 것?”
“그런 것은 보든이 생각하던 신성의 본질이 아니야. 보통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마법사나 학자들이라면 그런 것은 신의 권능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일어나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 현상일 뿐임을 잘 알아. 아니, 꼭 마법사들을 들어 말하지 않더라도, 보든이 살아 있던 당시의 신관들 역시 신은 번개를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번개가 일어날 수 있는 이 세계를 마련한 존재라고 말했었어.
보든은 신성을 인간이 바라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힘이라 생각했어. 번개 따위와는 달리 자연의 인과법칙에서 벗어난 힘이라고 생각한 거지. 난 신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에 보든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는 따지고 싶지 않아.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든이 자신의 기준 아래 신성의 요소를 세분화한 다음, 그것들이 모두 자신의 몸에서 이루어지도록 했다는 거야. 그렇게 신이 된 보든은 왕국의 왕을 죽인 후에 사람들 앞에서 신, 즉 자신이 인간의 곁에 머물면서 직접 모두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했어. 이것이 지금 대륙의 교단의 시작이지. 현재 신관들과 경전이 말하는 ‘열흘 간의 강림’이 바로 이거거든.”
마로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아이지는 어떤 설명도 부연하지 않고 그저 피식 웃어버릴 뿐이었다.
아이지의 말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대륙의 모든 사람이 그토록 떠받드는 신이 원래 한 명의 미치광이일 뿐이었다니, 현재 대륙을 지배하는 교단의 교리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물론 마로는 신앙의 깊이를 논할 것도 없는 불신자였지만, 대륙의 모든 사람은 교회를 나가든 나가지 않든 무의식적으로 종교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걸쳐 사회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이자 최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의식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륙에는 불신자는 있어도 무신론자는 없는 셈이었다.
마로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신을 신답게 만드는 요소들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뭔데?”
“그건 나도 완전히는 몰라.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네 개밖에 안 돼. 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그나마도 네 가지 중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단 두 가지뿐이야. 그 자세한 이야기는 있다가 할 테니 내 이야기를 마저 들어봐.”
아이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현재 대륙의 교단에서는 신이 현신하여 열흘간의 교화를 마치고 일식이 있던 날, 하늘로 돌아갔다고 말하지? 뭐 보든을 신으로서 열렬히 믿고 있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달리 보든은 사실 자살했어.”
“자살?”
“그래, 자살. 그가 왜 자살했는지는 나도 몰라. 무슨 까닭인지 신으로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열흘 만에 자신의 권능을 떼어 세상에 모두 흩어 놓고는 자기 육신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렸어.”
아이지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두해 있는 마로를 보며 빙긋 웃었다.
”자, 그럼 이제 내 앞에서 사람들이 쩔쩔매던 이유를 알겠어?”
순간 마로는 머리에 무언가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그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힘과 같이……?”
아이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마로의 말을 받았다.
“그래. 너와 나는 보든이 남긴 신성 중에 한 조각씩 가지고 있는 거야. 넌 죽음을 이기는 불멸의 권능을, 난 저항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