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열에 들뜬 듯 몽롱한 정신 안에서도 걸쭉한 가래라도 걸린 듯 목이 답답하고 거북스러웠다. 숨을 쉬기가 쉽지 않아 차라리 목을 막고 있는 덩어리를 삼켜려고 했지만,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참다 못한 마로는 벌떡 일어나며 목안에 걸린 것을 내뱉었다.

“퉤엣!”

비릿한 냄새를 내는 핏덩이가 마로의 목에서 튀어나갔다. 잠시 후 가까이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군. 하하하. 그래, 일어났어. 하하하, 잘했어. 잘했어. 그래 너는 누구지? 어디서 왔, 크흑.”

목소리는 발작적으로 웃어젖히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퍼부어 대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이내 신음소리를 내며 웃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마로는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문득 자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리둥절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공기 중에는 석회석 특유의 매캐한 느낌이 감돌았고, 멀리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소리 사이로 누군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도 들렸다.

마로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하지만 바닥에는 뾰족한 돌이 여기저기 자라 있던 데다 경사까지 져 있어서, 곧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동시에 뾰족한 돌이 허벅지의 살갗을 찢어놓았다.

“아앗!”

넘어진 마로는 비명을 지르며 허벅지에 손을 대었다. 통증과 함께 벌어진 상처에서 끈적한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통증이 줄어들더니 손 밑에서 묘한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다친 곳을 문질러 보던 마로는 너무 놀라 입이 절로 벌어졌다.

“세, 세상에…….”

그 때 바로 앞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큭, 신기하지? 신기할 거야. 다들 처음엔 신기해 하지. 내가 말했잖아. 널 구해줄 수 있다고. 믿지 않았겠지. 으으, 젠장, 젠장! 이 빌어먹을 몸뚱이 같으니라고. 으아악!”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하던 사내는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로가 있는 곳은 꽤나 넓은 곳 인듯, 사내의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메아리 치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던 사내는 다시 이를 악물며 웃었다.

“흐흐, 하긴 이런 개 같은 상황도 이젠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하하.”

사내의 웃음에는 분노와 즐거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마로는 그제야 한 마디 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난 분명히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사내는 무언가를 꾹 참는 듯한 웃음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그래, 넌 떨어졌지. 장난꾸러기가 싫증나서 내던진 인형처럼, 온 몸의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박살났어. 하지만 다시 살아났어. 내가 널 구해준 거야. 그리고 넌 날 도와줘야지.”

사내의 말은 두서가 없고 산만해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무슨 말이요?”

“하하, 난 두벡이야. 두벡 폴리도리. 들어본 적 없나? 혹시 날 모르나?”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이야.”

“당연하지, 그렇겠지. 난 이곳에 엄청나게 오래있었으니까. 너같은 꼬마가 날 알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내가 얼마나 이곳에 있었지? 몇 년? 몇 십년? 몇 백년? 설마 몇 천년은 아니겠지.”

확실히 두벡이란 사내는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혼자 횡설수설하던 두벡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다급하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그럼 되겠군! 이봐 꼬마! 지금의 황제가 누구야? 황제 이름이 뭐야?”

마로는 두벡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드로 기드 렙……”

마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벡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뭐라고? 그 개자식이 기어이 황제가 되었단 말이냐? 으아아!”

한참을 소리 지르던 두벡은 급기야 요란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몸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뱉어내기라도 할 듯 요란하게 기침을 하던 두벡은 어느순간 거짓말처럼 기침을 그치더니 숨소리도 없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괜찮냐고? 괜찮냐고? 너 같으면 괜찮겠어? 너에게 내 꼴을 보여주어야겠군.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바닥을 더듬으면서 가 봐.”

“왜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난 네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다.”

마로는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의 자세한 전말을 알기 위해선 오로지 그 두벡에게 기대야 했기에 일단은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마로는 바닥을 더듬으며 천천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사방에는 죽순처럼 울퉁불퉁한 돌들이 솟아 있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지를 땅에 붙이고 기는 것이라 아까처럼 넘어질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기어가니 무언가 단단한 것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손 끝에 부딪혔다. 뭔가 싶어 들어보니 그것은 작은 유리병이었다.

그 괴이한 두벡도 소리를 들었는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그거야! 그 안에 보면 작은 돌이 있거든? 그걸 꺼낸 후 땅에 내던져 깨뜨려 봐.”

마로는 두벡의 말대로 유리병을 기울여 돌을 꺼낸 후 땅에 힘껏 내던졌다. 돌은 오히려 유리에 가까운 소리를 내면서 깨지더니 초록색의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두벡은 다시 소리를 질렀다.

“눈부시군! 눈부셔! 하지만 난 눈을 감지 않을 거야. 얼마만에 보는 빛인데. 꼬마. 자 이제 보이나? 내가 어떤 꼴인지? 봐. 왜 안 보고 있어? 보라고. 뒤돌아서 나를 보라고. 킥킥.”

두벡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마로로서는 빛이 보인다고 해도 두벡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로는 뒤돌아서며 소리쳤다.

“난 아무것도 못봐요. 눈이 도려졌으니까.”

두벡은 놀란 모양이었다.

“뭐야? 이상하군. 왜 눈은 낫지 않았지? 이봐 가까이 와 봐. 가까이. 더 가까이.”

마로는 엉거주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마로의 눈을 살핀 두벡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이미 아물어 버린 눈이로군.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미 그 눈은 죽음의 상처에서 벗어났으니까.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처만 고칠 수 있는 법이거든. 그 옛날 레르케라는 유명한 시인은 장미 가시에 찔렸을 뿐인데, 죽고 말았지. 그런 건 치료할 수 있어. 하지만 이미 아문 상처는 죽음으로의 가능성이 닫혀있는 셈이니까, 치료할 수 없지. 아무렴…….”

끝없이 이어지는 두벡의 횡설수설에 마로는 마침내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좀 알아듣게 제대로 말해 봐요!”

갑작스러운 마로의 신경질에 두벡도 놀랐던 모양이다. 말이 없이 가만히 있던 그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맞아. 네 말이 맞아. 너는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 모를거야. 사실 하도 오랜만에 이야기하는 것이라,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군.”

같은 말을 반복하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몹시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떠들던 그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차분하다 못해 지성적이면서도 친절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자, 조금만 가까이 와 봐. 두 걸음 정도면 되겠군. 그래 그래. 손을 내밀어봐.”

두벡의 인도에 따라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던 마로는 갑자기 손끝에 닿은 사람의 거죽에 깜짝 놀라 손을 움츠렸다.

“괜찮아. 그건 내 배야. 더 만져 보라고.”

마로는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두벡의 말을 따르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마로는 다시 손을 내밀어 두벡의 배를 만지기 시작했다.

거친 살갗을 따라 가던 마로의 손은 배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단단한 것에 부딪히고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라 손을 움츠렸다. 갑자기 두벡은 힘없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 놀랐나?”

“도, 도대체 이게…….”

“바위야. 뾰족한 바위지. 내 배를 뚫고 나온 바위. 내 몸뚱아리는 이렇게 바위에 뚫린 채 공중에 매달려 있는 셈이지.”

두벡의 설명에 마로는 기가 막혔다.

“그게 말이 됩니까?”

“못 믿겠으면 다시 만져 보라고.”

마로는 모질게 마음을 먹고 손을 내밀어 두벡의 배 주변을 만져 보았다. 하지만 두벡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배 한 가운데에 뾰족한 돌이 튀어 나와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러고도 살아있는 거요?”

“그럼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진 넌 지금 어떻게 살아 있는 건가?”

“내가 가장 묻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거요.”

“흐흐. 아니 그 전에 내 몸을 여기서 뽑는 것이 먼저야. 그후에 설명해주지. 크큭.”

두벡은 다시 무언가를 참는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제야 마로는 두벡이 왜 그렇게 웃는지 알 수 있었다.

“혹시 이 상처 때문에 많이 아픈가요?”

“아프냐고? 아프냐고?”

두벡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프지! 아주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파! 내 입술과 혀를 잘근 잘근 씹어서 삼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파! 팔다리만 붙어 있다면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로 아파!”

마로는 두벡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팔다리도 없다구요?”

마로는 다시 손을 더듬어 두벡의 어깨와 골반 부근을 만져 보았다. 두 곳 모두 무엇에 잡아 뜯기기라도 한 듯 너덜너덜한 상처를 끝으로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한 마디로 두벡은 돌에 배를 뚫리고 팔다리가 쥐어 뜯긴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 참혹한 상태에 마로는 기가 질려 말이 나오질 않았다.

“세, 세상에.”

“그래, 놀랄 만도 하지. 하지만 난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어. 아니 죽지 못한다고 해야 정확하겠지. 난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를 오랜 시간 동안 이 지긋지긋한 암흑 속에서 이런 상태로 있었어. 넌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맞아. 내가 생각해도 난 계속 미쳐가는 것 같아. 하지만 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미치지 않을 수 있겠어?”

마로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벡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나를 이 지긋지긋한 바위에서 뽑아달라고. 어서!”

마로는 머뭇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손을 내밀어 더듬자 두벡의 몸이 원뿔 모양의 바위 기둥에 꼽혀 반쯤 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뽑아야 할지는 알겠지?”

마로는 바위 기둥을 더듬으며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고는 어깨로 두벡의 몸 아래로 들이밀었다. 동시에 팔로 두벡의 허리를 감은 마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제 올립니다.”

“그래, 걱정말고 힘껏 밀어 올리라고.”

마로는 천천히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두벡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동굴안에 무섭게 메아리쳤다.

“으아아악!”

깜짝 놀란 마로는 다리를 펴는 것을 멈추었다. 하지만 두벡은 오히려 그런 마로를 보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멈추지 마. 천천히 할 것도 없어. 그냥 단숨에 밀어 올려! 그게 더 나으니까!”

두벡의 말을 들은 마로는 마음을 굳게 먹고 힘껏 몸을 밀어올렸다. 그 순간 비명소리와 함께 두벡의 몸이 바위 기둥에서 뽑혀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으으윽!”

두벡의 신음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마로는 황급히 바닥을 더듬어 두벡의 몸을 움켜 잡았다.

“괜찮아요?”

“크크큭, 괜찮아. 괜찮아. 벌써 배의 상처가 아물고 있어.”

두벡은 통증으로 괴로워 하면서도 무엇이 좋은지 킥킥거렸다. 무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마로로서는 두벡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두벡이 다시 말했다. 아까보다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였다.

“세상에 이렇게 후련할 수가. 하하하”

마로는 기가 막혔다.

“정말 배의 상처가 아문거요?”

“만져 보라고. 창녀의 엉덩이와 달리 돈 내란 말 하지 않으니 얼마든지 만져 보라고. 하하하.”

두벡은 유쾌하게 웃었다. 마로는 조심스럽게 두벡의 배를 만져 보았다. 정말 바위 기둥이 솟아 있던 자리는 말끔하게 아물어 있었다. 기가 막힌 마로가 중얼거렸다.

“세상에…….”

두벡이 웃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아.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저녁이면 서쪽으로 지는데, 왜 다음 날 아침에는 동쪽에서 뜨는 것일까? 밤새도록 땅 밑을 달려 동쪽으로 옮겨가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태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태양 뿐 만 아니라, 달은? 땅은? 바다는? 산은? 그리고 인간까지, 모두 어떻게 생겨난 거야? 이 모든 질문은 오직 한 마디의 말로 돌아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지.“

어찌보면 신학 강의에 가까운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왠지 두벡의 말에는 듣는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도 진지하고 절실하였다.

“그럼 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마로 온지.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갑작스러운 두벡의 질문에 마로는 말문이 막혔다. 초급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간신히 읽고 쓰는 것이 고작인 마로가 그런 어려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두벡도 똑똑한 대답을 듣고자 질문을 한 것은 아닌 듯 오래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번개를 내리고 파도를 일으키는 것? 아니야. 그런 것 보다 훨씬 근본적인 것. 어찌보면 너무 명백하다 못해 단순하기까지 한 것이 있어. 그건 바로 불멸이야. 신을 신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불멸이라고.”

마로는 두벡의 말을 듣자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 뜻을 명확히 이해한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부터인가 알 수 없는 느낌이 목줄기를 타고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의 능력이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는 거야. 세상에는 이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몇 있어. 어떤 사람들은 신이 죽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신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조각내어서 인간 세상에 흩뿌렸다고도 말해. 뭐가 맞는 말인지는 나도 몰라. 난 한림원의 학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고 신전에서 머리를 조아렸지만, 솔직히 한 순간도 신을 믿어 본 적은 없거든. 솔직히 아까 내가 읊어댄 신 타령도 그저 보고 옮긴 말일 뿐, 난 정말 이 능력이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알지 못해. 그저 내가 아는 것은 생명체를 불멸로 만드는 능력이 사람 사이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야. 나는 오랜 연구 끝에 그것을 알아냈고, 마침내 그 능력을 찾아 내 몸으로 붙잡아 두는 것에 성공했지.”

두벡은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결국 나는 세상의 모든 죽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어.”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자신이 되살아난 것이나, 두벡이 기묘한 상처를 입고도 살아있는 것을 생각하면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마로는 자신과 함께 떨어진 작업반장을 생각하였다.

“혹시 나와 여기에 함께 떨어진 다른 사람도 되살렸나요?”

“뭐? 너 말고 떨어진 녀석이 하나 더 있었나?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면 떨어지는 소리가 더 났던 것 같기도 하군.”

“왜 나만 살린 거죠?”

두벡은 이를 악물고 웃기 시작했다.

“내가 너만 특별히 예뻐해서 살려주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너 말고도 한 녀석이 더 떨어졌다면 그 녀석은 이미 떨어지기 전부터 죽어 있었어. 나라고 해도 이미 죽은 것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해. 앞으로 닥쳐올 죽음의 소지를 미리 가로채어서, 아하, 가로챈다는 표현이 참 멋지군, 그래 죽음의 가능성을 가로채어서 미루어 두는 것뿐이야. 때문에 되살리려거든 어떻게라도 목숨은 붙어 있어야 해. 여기에 떨어져 있을 때는 너만 살아 있었어. 물론 죽기 직전이긴 했지만……. 하하, 이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이 많군.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데, 이제 와서 몇 시간을 더 못 기다리겠나? 흐흐.”

두벡은 낄낄거리며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하더니 이내 어조를 진지하게 바꾸어 말했다.

“잘 들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너에게 큰 손해가 될 것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듣고 싶어 해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 따위 숨기고 떠나도 나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타나 준 네 녀셕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그러는 것이니 잘 새겨두도록 해라.”

마로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일단 두벡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선 그의 말을 듣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 불멸이란 것은 이야기했지? 나는 어떤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아. 목이 잘리건 심장이 꿰뚫리건 절대 죽지 않아. 심지어 내 몸을 모두 태워 재로 만든다고 해도 난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어떤 상처에서도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나를 보면 알겠지만, 아차, 너는 볼 수가 없지? 어쨌든 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가 있어. 물론 너무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몸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 특히 머리의 경우에 말이다, 그런 경우에는 잠시 의식을 잃을 수는 있을 거야. 몸을 해치는 독도 해독되기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은 작용을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항상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어. 아주 강력한 힘이지.

그 뿐이 아니야. 내가 너에게 한 것처럼 다른 생명체가 겪을 죽음도 빼앗아 올 수가 있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죽음의 가능성을 빼앗아 내가 간직한다고 할까? 그렇게 살아난 인간은 그 주인인 나만큼 강력하진 못해도 어느정도 불사성을 획득할 수 있지. 난 그런 사람들을 불사자라고 말해.

물론 내가 되살린 이에게 죽음을 다시 되돌려 주는 것도 가능해. 한 마디로 다른 사람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이야. 이것이야 말로 신의 권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생각보다 완전한 힘은 아니야. 이렇게 상대방의 죽음을 뺐고 되돌리는 것에도 어느 정도 제약이 있거든.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야 하는데, 그 적당한 거리는 생명력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이 불멸의 힘을 갖고 있는 이는 주변의 모든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 게다가…….“

두벡의 이야기는 장황하게 이어졌다. 결국 마로는 견디지 못하여 도중에 끊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아, 잠시 만요. 도대체 이게 다 무슨 말입니까? 아, 아니 그보다도, 제가 왜 이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겁니까?”

두벡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지금의 내 능력을 네가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이지.”

“네?”

“어수룩한 녀석이로구나. 네가 나의 불멸의 힘을 넘겨 받아야 한단 말이다.”

마로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런 마로의 얼굴을 보더니 두벡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땅 속 깊은 곳의 지하 폭포 부근이야. 출구 따윈 없는 곳이지. 있었지만, 오래전 산 한 편을 붕괴시키면서 사라졌어. 넌 여기서 어떻게 나갈 테냐? 혹시 나와 함께 이 어둡고 습한 곳에서 말동무나 하면서 머무를 생각인가? 그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 동안?”

마로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이라뇨?”

참다못한 두벡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아까 내가 한 이야기를 어떻게 들은 거야? 내가 다시 살린 너는 내가 그 죽음을 되돌려 주지 않는 한 다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마로는 당황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마로를 보던 두벡은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좋아, 좋아,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시켜 보자고. 넌 이름이 어떻게 되지?”

“마로 온지입니다.”

마로는 두벡을 대하면서 알 수 없는 경외심을 느꼈다.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로는 두벡에게 경어를 공손하게 갖추어 말하고 있었다.

“그래, 평범한 이름이로군. 내 이름도 그래. 아주 평범한 이름이지. 하지만, 내 삶은 그렇지 못했어. 내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 허황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미 너나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까 끝까지 들어 보라고. 허어, 막상 죽을 때가 가까워 오니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군. 모든 것이 끝나가는 지금 고통을 참는 것도 오히려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의 작은 유희가 되겠지.”

시간이 지날 수록 두벡은 조금씩 안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난삽하고 종잡을 수 없던 그의 말들은 점차 차분하고 조리있게 변해가고 있었다.

“아까 지금의 황제가 아드로라고 했지? 바로 아드로 그 개자식이 날 이곳에 가둔 거야. 혹시나 내가 자기의 목숨을 다시 거두어 갈까봐서 말이지. 아니 정확히 말해선 죽음을 다시 되돌려 줄까 걱정해서라고 해야겠군.”

“죽음이요?”

“그래, 죽음. 지금 아드로는 몇 살이나 되었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이미 100살이 넘었다고들 해요.”

두벡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100살이 넘었다고? 그럼 내가 이 곳에 갇힌지도 벌써 5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인가? 기가 막히는 군. 아드로는 어떻게 황제가 되었느냐?”

그에 대해선 베르가마의 시민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전 황제가 폭정을 해서 관리들과 학자들이 반정을 일으켰다더군요.”

“결국 그 반정이 성공했구나. 그럼 지금의 사람들은 아드로가 황제의 일가라고 하기도 어려운 보잘 것 없는 찌꺼기였다는 것도 알고 있느냐?”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저도 학교 공부를 많이 한 것이 아니라서, 역사에 대해선 잘 몰라요.”

두벡은 나직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나 역시 그 반정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아니 참여 정도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핵심 인물이었어. 너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지? 나는 원래 대학 한림원의 학자였다. 그 당시의 난 이 불멸의 힘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힘을 실제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였고 따라서 그 힘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확실하게 몰랐어. 내가 가진 불멸의 힘을 이용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

너도 아는 것 같으니 전 황제 라샤의 미친 짓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 당시 반정을 계획하던 우리들은 멍청이 한 명이 나라를 망쳐놓는 정치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지혜로운 학자와 대신들의 권력을 강화하여 신권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꾸려가고자 했지. 그러기 위해선 허수아비 황제가 가장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는 황제의 일가 중에 가장 어수룩하고 초라한 인물을 찾았지. 그 자가 바로 지금의 황제 아드로야. 우리가 멍청했던 거지. 우린 아드로란 인간이 얼마나 교활하게 속내를 잘 숨기는 작자인지를 몰랐으니까. 흐흐.“

두벡은 자조적으로 웃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쨌든 이렇게 반정의 준비를 착착 해나가고 있었는데, 우리 말고도 다른 황족을 황제로 세우려던 세력이 있었어. 그 세력에서 암살자를 보내어 아드로를 죽이려고 했어. 내가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달려갔지만, 내가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아드로는 칼에 목이 반쯤 잘려서 죽기 직전이었어. 그 상황에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었겠나? 난 당연히 아드로를 되살렸지.”

그제야 마로는 황제의 불가사의한 장수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놀란 그에게 나의 능력을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너무 지나치게 떠벌렸어. 내가 그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도 말한 거야. 내가 그의 목숨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가 순순히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멍청이, 멍청이!

며칠 후 나는 아드로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사들이 내 몸을 단단히 결박해 놓은 후였지. 뭐 그 다음은 너도 알다시피 이 꼴이 된 거야. 사지를 찢고는 이곳에 이렇게 버려 두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 내가 아드로의 곁에 다가갈 수 없으면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나는 내 능력을 너무 믿었던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않을 테니, 두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 죽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만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긴 거야. 정말 멍청해. 얼간이야! 흐흐흐”

마로는 그제야 일의 전말을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계의 뒷면에는 생각지도 못한 신비와 음모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두벡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이제 난 할 이야기를 다 했어. 이제 네가 할 일만 남았다. 넌 내가 가진 불멸의 힘을 가져가거라. 나를 죽게 해 주면 나는 너에게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일러주겠다.”

“아저씨를 죽게 해달라고요?”

“그래. 지금 내 꼴을 생각해 봐. 팔다리를 뜯기고 몸은 바위로 꿰뚫렸었어. 뜯긴 팔다리는 뜨거운 납물 속에 녹여 굳인 후 먼 곳으로 보내어졌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죽지 못하고 있어. 보통 사람 같으면 금방 끝낼 고통을 난 이 어두운 곳에서 홀로 50년을 버텨왔단 말이다. 지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이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망각 속으로 안식을 취하러 가는 것이야. 그 오랜 시간동안 이 어둡고 깊은 곳에 계속 기다려 왔어. 내 불사성을 가져가고 나에게 휴식을 안겨줄 사람, 바로 너 말이다.”

이제 마로는 두벡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선뜻 응낙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망설임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망설이는 마로를 본 두벡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이건 엄청난 힘이야. 나는 그저 어리석고 재수가 없던 경우이고, 잘 생각해서 쓴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누릴 수가 있어.”

하지만 마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기다리다 못한 두벡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거절한다면 난 너에게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을 뿐더러, 절대 죽음을 되돌려 주지 않겠다. 그렇게 되면 아까도 말했듯이 이곳에서 영원의 시간동안 나와 함께 지내는 수밖에 없어.”

협박이라기보다 애원에 가까운 말이었다. 이윽고 마로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죠?”

두벡은 만족스러운 듯 큰 소리로 웃더니 말했다.

“별거 아냐. 나를 위해 시를 한 구절 지어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