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어느새 달이 구름 사이로 숨었고 마을 가득 울리던 노랫소리도 뚝 그쳐 있었다. 좁은 골목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꽉 메우고 있는데 조용하기가 마치 무덤 같았다.

“놈이 어둠을 쫙 깔아놨군. 똑똑한데.”

나라기가 쯧쯧 혀를 차며 툴툴댔다.

“어두운 이유가 마법사 왕이 마법을 부렸기 때문이에요?”
“응. 오늘은 밝은 달밤이었어. 구름을 불러서 달을 가리고 어둠을 내리게 한 것이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구름까지 마음대로 부리는 마법사와 싸워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마법사 왕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도 싸워야 한다. 마을의 크기를 가늠해볼 때 백 사람쯤은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셋뿐이다. 하나는 여자애인데다가 기절해있고, 하나는 사내애지만 칼싸움이 처음인 초짜이며, 하나는 낯설고 괴상한 검객이었다.

“불안해?”

언제부터인지 말없이 머리만 굴리고 있었는데 나라기가 툭 말을 걸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아뇨.”

시침 뚝 떼고 눈에 힘을 주었지만 심장이 미친놈처럼 펄펄 날뛰고 있었다. 어찌나 쿵쿵대는지 소리가 나라기 귀에 들리겠다 싶었다.

“마법사 왕은 아주 강력한 악마야. 그 강력한 악마도 요전에 크게 당한 일이 있어서 옛날보다 많이 약해졌겠지만 놈의 힘은 여전히 강해서 능히 나를 죽일 만하지. 머리부터 발까지 죽음의 철갑을 입었는데 지옥의 대장장이가 망치질했어. 가히 천 년을 가는 물건이야. 그 검은 갑옷 하나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피가 들었을까 감히 상상도 못하지. 오랜 저주가 깃들어 있어서 예사 칼과 창으로는 결코 뚫지 못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 부러져 버릴 것이야.”

나라기가 말을 끊고 내 반응을 살폈지만 잠자코 입 다물고 있었다. 말이 없으면 나라기가 스스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을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내가 말했지만 죽음의 철갑은 예사 칼로는 흠집 하나 내지 못해. 인간이 만든 칼이라면 부딪혀 세상에 부러지지 않을 칼이 몇이나 될까. 아마 열 자루를 넘지 않을걸.”

이야기가 이쯤 되면 둔한 나도 속뜻을 대충 눈치 채기 마련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기꺼이 나라기의 장단을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무서운 갑옷이군요. 당신은 마법사 왕을 무슨 수로 죽일 생각이지요?”

장단을 맞추어 주기를 속으로 얼마나 바랐을까. 좀 우스웠지만 워낙에 간 떨리는 일에 말려들어서인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하여간에 과연 나라기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떠들었다.

“바로 내 칼이 그 무서운 철갑을 파괴할 수 있는 녀석이지. 동방에서 ‘벼락망치’로 불리우는 대장장이가 보름 동안 밤낮으로 만든 칼이야. 칼의 이름은 가티노올이라고 해.”
“가티노올?”

동방의 말은 희한하기도 하구나. 나라기는 자신을 동방에서 온 검객이라고 소개했다. 동방이라고 하면 나라 하나뿐이다. 동방에는 렌 제국이 있었다. 제국과 맞서기 위해서 세 왕국은 강철동맹을 맺었고 ‘침묵의 마법사’ 테라가 활약했을 때에는 강철동맹이 제국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었다.
하지만 당대 렌 제국에서 불세출의 영웅이 탄생한 뒤로는 강철동맹이 밀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사나이는 온갖 살벌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본래 철혈(鐵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철혈은 그가 제국에서 받은 새로운 이름이었다.

“말이 없구나.”

칼 자랑을 했는데도 내가 맞장구를 치지 않자 나라기는 좀 풀이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좋아요. 마법사 왕은 당신이 죽인다고 쳐요. 하지만 적이 백 사람이나 더 있어요.”

나라기가 별안간 낄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한껏 걱정이 되어 말했는데 나라기는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쪽이 기분이 상했다. 내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찰 때까지 나라기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야, 나는 칼을 들었어. 말했지. 나는 가티노올을 들면 천하무적이야. 백이 아니라 천이 덤벼들어도 한칼이라고.”

그렇게 나는 나라기의 자신감과 자부심이 가히 듣는 사람 기절할 정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막 나라기에게 뭐라도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할 때쯤 어두운 골목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골목 저편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있었다.

“술이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 가티노올도 춤을 잘 추는데.”

나라기가 쩝 입맛을 다셨다. 골목 저편의 다섯 사람은 모두 칼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슬금슬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라기는 그때까지 여유를 부려서 사람 속을 까맣게 태우더니 이윽고 다섯 검객처럼 칼을 꺼냈다.
칼집에서 쓱 빠져나온 가티노올은 아주 예리해 보이는 칼이었다. 컴컴하게 어두운데도 가티노올은 번쩍번쩍 빛이 나는 듯싶었다.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조심해요.”
“나한테 하는 말이야? 저기 불쌍한 친구들한테나 해.”

바로 그때 다섯 검객이 악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나라기는 코웃음을 치더니 훌쩍 앞으로 뛰었다. 내가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다섯 검객은 덤벼든 순서대로 피를 뿌리며 나자빠졌다.
나는 나라기처럼 칼을 마음대로 쓰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나라기의 칼은 너무 빨라서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다섯 검객이 모두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어딘가 베여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한칼이란 말 그대로 칼부림 하나에 목숨 하나씩 거둔 것인데 솜씨가 어떤 경지인지 나로서는 가늠조차 할 수가 없었다.

“일당백(一當百)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지.”

인정하기 싫었지만 가티노올을 다시 칼집에 갈무리하며 으스대는 나라기의 모습이 더는 꼴사납게 보이지 않았다.

*

어느새 땀으로 등이 흠뻑 젖었고 다리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소녀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내 축축한 등에 얼굴을 박고 있는데 나라기를 따라 한참을 달리기만 하고 있었다. 나라기는 과연 사람이 맞는지 훌훌 날아갈 듯 뛰었고 나는 간신히 놓치지 않을 정도로 뛰쫓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다 숨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을 때 드디어 나라기가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살았다 싶었는데 나라기는 벽을 치며 이를 갈았다.

“젠장! 우리는 미로에 갇혔어!”

나는 헉헉헉 숨을 몰아쉬다가 겨우 대꾸했다.

“우리가 미로에서 헤매고 있다고요?”
“그래! 우리는 똑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어!”

나라기는 손가락을 확 뻗쳐 골목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돌벽에 길게 엇갈려 그어진 흠집이 있었다. 골목이 하도 거미줄같이 구불구불 복잡하여 길을 헤매지 않도록 표시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달리면서 저 표시를 일곱 번이나 보았다.

“그럼 뒤쪽으로 돌아가요.”
“어떻게 해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결국은 이 자리로 되돌아올 거야. 마법사 왕의 마법이지. 우리는 완전히 갇혔어.”

기가 막혀서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몸에서 힘이 쭈욱 빠졌고 다리는 돌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우리를 구해준다면서 이런 일은 상상도 못했나 보죠?”

내 비난에 나라기도 발을 쾅 구르며 화를 냈다.

“난 검객이야! 이런 마법에는 어쩌지 못해!”

하! 나는 마음속에 있던 말들을 한바탕 퍼부었고 나라기도 그것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나라기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도 벌떡 일어서서 막 드잡이질이 벌어지려던 순간, 갑자기 나라기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쉿 소리를 냈다.

“들어봐.”

그러고는 눈을 감기에 나도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너무나 짙어 소리마저 죽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얼마간 참다가 결국 말을 꺼내고 말았다.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그러나 나라기는 눈을 번쩍이며 속삭였다.

“쉿. 잠자코 있어.”

나는 또 속으로 욕을 지분거렸는데 나라기 얼굴이 하도 딱딱하게 굳었기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죽음 같은 어둠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지나자 저 어딘가에서 스르르 옷자락 끌리는 소리와 으으으 하는 울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우리는 구석에 있었고 오른쪽 왼쪽에 골목길이 있었다. 어느 쪽으로 도망쳐야 할까? 어느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라기가 욕을 뱉었고 가티노올이 칼집에서 나왔다.

“벽을 등져라.”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
“어디로 가든 똑같아. 여기는 미로야. 벽을 등지고 칼을 들어.”

나는 나라기가 시키는 대로 골목 구석에 소녀의 몸을 기대 놓고 앞에서 칼을 뽑았다. 나라기도 슬쩍슬쩍 주위를 둘러보면서 빙빙 돌았다.
이윽고 골목 저편에서 낯선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으으 울음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한둘이 아니라 열댓 놈은 되어 보였다.
놈들은 분명 사람 모습이었지만 눈에서 빨갛게 빛을 뿜고 짐승의 이빨과 손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놈들이 한쪽 골목이 아니라 두 골목을 가득 채우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는 저들을 모두 죽이기 전에는 빠져나가지 못할 궁지에 몰렸다고 할 수 있었다.
괴물들은 느릿느릿 걸어오다 갑자기 덤벼들었다.
엄청나게 빨랐다. 괴물들은 벽과 벽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이쪽으로 오는데 깜짝 놀라서인지 눈으로 쫓기조차 힘이 들었다.
나라기의 칼이 무섭게 춤을 추었고 피와 살점이 둥실둥실 떴다. 한바탕 비명과 울음소리가 골목을 타고 메아리가 되어 울린 뒤에는 피투성이 시체들이 바닥에 널리게 되었다.

“마법사 왕을 만나기 전에 우리 다 죽겠군.”

나라기가 손등으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았다. 나는 무어라 말도 못하고 구석에서 칼만 만지작거렸다.
땅바닥에는 몸이 두 동강이 났는데도 우으으 신음하는 괴물이 있었다. 나라기가 발로 그 머리를 콱 짓밟았고 머리는 꿈에도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확실히 나라기의 검술 실력은 놀라워서 오른쪽 골목길에는 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왼쪽 골목길에 아직 몇 놈이 남아 서성거릴 뿐이었다.

“비켜라!”

나라기는 앞으로 훌쩍 나서더니 저편 산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과연 괴물들은 나라기에게 겁을 먹었는지 골목 안 멀찍이서 더 다가오지 못하고 으으으 울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놈들이 망설이기만 할 뿐 물러서지 않자 나라기는 골목 안까지 들어가더니 가티노올을 들어 벽을 후려쳤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번쩍했다. 나라기는 그렇게 벽을 칼로 쨍쨍 후려치면서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비켜라!”

아마 나도 나라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면 내빼지 않고서는 못 배겼을 거 같다. 칼을 든 나라기의 기세는 실로 무시무시하여 땅이 울리는 듯하였다. 나라기가 칼로 위협할 때마다 괴물들이 치를 떨며 물러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쭈뼛거리던 괴물들은 세 번째 비켜라! 소리를 지르자 무서운 속도로 꽁무니를 뺐다. 아무래도 덤벼들 때보다 더 빠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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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