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d Tale (바람 동화) 1-2

마을로 돌아온 소녀는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틀이 넘게 고열에 시달리는 그녀의 곁을 할머니가 지켰다.
그리고 소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식을 찾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사내들 무리의 길잡이는 밀려드는 어둠 속에도, 도망쳐 자신의 생을 보존하려 하기 보단 끝까지 싸워 딸을 되찾길 원했을 것이다.
그가 바로 자신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녀는 그 즉시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 다시 산으로 돌아가려 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물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인다. 소녀는 자신을 구해준 마녀의 몸종을 애타게 찾았다.
바람, 분다. 세상이 흔들린다.
……길잡이 일은 여자인 네게 어울리지 않아, 제이엘… 언제 철이 들려는지……
술 냄새 나는 아빠의 목소리. 얼굴을 쓰다듬던 따뜻한 온기. 잠 든 척 하고 있던 소녀는 느끼고 있었는데.
소녀의 아비는 절름발이였다.
산을 타다 아내를 잃고, 산을 등져 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고독한 사내였다.
바람이 분다. 세상이 휘몰아친다.
…왜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오열하던 소녀는 불어오는 바람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은색 눈!
삭풍이 대답하듯 소녀의 작은 몸을 후려쳤다. 잠옷이 휘날린다. 두 손을 모으고 웅크린 소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알갱이 되어 날아간다.
은색 눈!
…우리 아빠도 데려와줘…
얼어가는 몸짓 속에 눈물은 계속 해서 솟아났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그 너머를 둘러싼 얼어붙은 협곡과 첨봉, 첨봉들.
…은색…
뒤따라온 사내들이 두터운 망토로 소녀를 감쌌다. 다시 정신을 잃은 소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번쩍 안아 든 사내는 두터운 흰 눈썹을 꿈틀거리며, 소녀가 바라보고 있던 저 북쪽 끝을 노려봤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눈과 바람밖에는…
안심해라. 제이엘… 네 아빠는 내가 찾아서 데려오겠다…

북쪽의 성스러운 산이 보고 싶구나, 단…
깊은 상처를 입은 가련한 소년이었던
너와 내가 만난 바로 그곳 말이다…
-셰르파 라호트-



늙은 사내는 돌아섰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을로 향한다. 뒤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설원에 긴 호선이 그려진다.
마을까지 이어진 어지러운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그들을 둘러싼 협곡과 첨봉, 첨봉들…

멀어진다. 세상이…





하나의 대륙
두 개의 달
여섯 개의 봉인
일곱 개의 신전
그리고 하나의 별
……이것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이다……






눈 위에 쓰러진 소년을 깨운 건 그의 안에 잠자고 있던 어둠의 존재였습니다. 가슴의 피는 멎어있었고, 어둠은 소년이 얼어 죽지 않도록 그를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온 소년은 거칠게 뿌리쳤습니다. 각혈과 함께.
소년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어둠은 어둠 속에서 음산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바늘에 찔려 영원한 잠에 빠진 공주를 아느냐고, 네가 꼭 그 짝이라고 어둠은 소년을 비웃었습니다.
알 수 없는 오한에, 소년의 은색 눈이 얼어붙었습니다.
네가 잠들면,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내가 다 마셔버릴 수 있다고 어둠은 조용히 악몽처럼 말했습니다.
‘기억해라. 별의 꼭두각시가 네 몸에 붙여놓은 부적도 날 완전히 막진 못한다는 것을…’
어둠이 사라졌지만, 소년은 한참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캄캄한 산맥을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동사하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건지, 저 앞은 어디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들의 운명이 혼자 살아남은 자신의 다음 삶을 결정지은 거라고, 언젠가 새벽의 공주는 말했습니다. 어둠으로 대변되는 일족의 가장 찬란했던 시대가 빛에 의해 몰락된 슬픔의 도래기에 혼자 살아남았기에 그녀의 이름은 새벽(Rahwinia)이었습니다.
슬픈 누명을 쓰고 땅 속으로 숨어든 소년의 도피처가 공주에겐 유배지였습니다. 끝도 알 수 없는 미로의 탑을 벗어나기 위해 소년은 공주의 손을 잡고 지금처럼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이 탑의 꼭대기엔 마왕이 산다고,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나도 모른다고 그때 새벽의 공주는 말했습니다. 그때, 소년은 공주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발로 밟는 곳마다 생의 이유가 빠르게 무너져가는 캄캄한 복도의 끝자락에 삼켜지기 전에 소년은 공주의 손을 잡아끌며 악착같이 그곳을 벗어나려하는 자신의 모습이 경멸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돌아오지 않는 영원과 헝클어진 시간들은 어둠의 탑 곳곳에 숨어 소년의 발목을 움켜잡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던 시절. 눈 덮인 정원에서 너를 처음 만났다. 어딘가에서 주워온 강아지를 내게서 빼앗으며 이 아기도 불에 구워먹을 셈이냐고 너는 화가 나서 물었다.
그 이후로, 항상 자기 몫의 빵을 나에게 나눠줬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숲의 아가씨들은 소중한 친구를 ‘마루’라고 부른다며 너는 강아지에게 이름을 지어주곤 나에게 선물했다.
‘나, 오빠를 좋아해……’
자신을 대신해 죽은 소녀의 마지막 모습을 뿌리치며 소년이 앞으로 서둘러 나아갈 때, 이끌려 가는 공주의 얼굴엔 작은 빗방울 같은 눈물 몇 개가 바깥의 바람을 타고 날아와 톡톡 부딪혔습니다.
살아야할 자는 죽고 죽어야할 자는 사는 모순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어야할 자는 다시 살아남기 위해 또 바람을 찾아 미로의 땅을 달리고 있습니다.
가슴의 붉은 상처자국을 쥐어뜯으며, 소년은 동이 터오는 산맥의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소년은 눈물에 젖어있었습니다. 공주의 병에 쓸 약초를 캐기 위해 야수족들의 영토로 몰래 침범한 심마니들이 멀리서 소년을 발견하곤 땅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발자국 위에 피어나 꽁꽁 얼어붙어있는 정체불명의 꽃들을 살펴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심마니들이 목격한 그 검은 머리의 소년은 바람마을의 길잡이와 코볼트 아파치들이 숭배하는 성스러운 산을 향해 울면서 뛰어가고 있었습니다.


Wind Tale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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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주신 만큼 내용이 길질 못해서 죄송하군요;
바람의 인도자 외전 Wind Tale 은 여기까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본편 내용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은 듯해요. 그리고 외전이라고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해보려하니 생각이 많아서 더 지연되는 것 같네요.
Wind Tale 2부 부터는 다음 기회에 또 짬을 내서 올리도록 할께요.
선호작 수가 갑자기 많이 올라서 깜짝 놀랐네요.
추천해주신 시월 님 감사합니다. 그 기대에 보답하려면 제가 빨랑빨랑 작업해야할 텐데 면목 없군요;

그럼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