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판타지 갤러리 단편 대회 입상작

먼지벌레

by 간지에효환

 

 *

 약속시간이 5분정도 지났을 무렵 동생이 탄 택시가 도착했다. 동생이 내리기 직전, 나는 약간 긴장해서, 다시 한 번 동생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희미한 이미지와 오래된 추억 몇 가지가 떠오를 뿐이었다.

 동생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난 이후, 나는 동생과 단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맞댄 적이 없다. 거의 10년이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이다. 5년 전에 크게 싸운 뒤로는 그나마 가끔 하던 연락조차 끊겼다. 아버지의 유언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연이 아니고서야 죽을 때까지 만날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싸운 것 때문에 의가 상한 것도 있겠지만 이 아이는 도대체 얼마나 바쁜 건지 제 언니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렸을 땐 그렇게나 사이가 좋았는데.

 오랜만의 만남에 긴장한 나머지, 어쩔 줄을 모른 채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멋진 제복을 차려입은 기사의 도어 서비스를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여자를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제가 누구야, 하고.

 내 기억 속에서 저 아이는 저렇지 않았다. 거기서 저 아이는 산 속 깊숙한 곳에서 솟고 있는 맑은 샘물 같은 아이였다. 퐁퐁퐁 하고 말이다.

 어렸을 적, 저 아이는 세상 온갖 것에 이름을 붙여주고는 진심으로, 정말로 진심으로 대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붙이는 보기 드문 감수성의 아이였다. 내가 컴퓨터 게임과 스노보드에 빠져 있을 때, 그 아이는 뒷산에서 혼자 제가 이름 붙인 온갖 것들과 얘기하며 놀곤 했다. 가끔 그 아이와 어울리게 될 치면 나는 난해한 일인극의 관객이 되어야만 했다. 나름 귀여워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건대, 그 아이의 재간에 따라가 줄 수 있는 사람은 온 세상을 뒤져봐도 작고하신 누님 정도 밖에 없을 것이다.

 결코 그 아이가 멍청하거나 늦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애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치 똑똑한 아이였다. 중학교 때 쓴 논문이 주목을 받아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외국,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그 어디의 머시라는 대학으로 유학을 가버리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별로 유명한 대학은 아니었지만, 기억 나는 한, 인지 과학에 한해서는 일류인 대학이라고 했다.
 그땐 내가 한창 삼수니 머니 입시문제로 고생할 때여서 그 일로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었다. 8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이 나보다 대학을 먼저 들어갈 줄이야. 그것도 나는 꿈도 꾸지 못하는 명문으로. 
 하지만 그것도 이젠 다 추억이다. 나이 삼십을 넘은 지금에 와서 남은 그 애의 이미지는 책에서 막 뛰쳐나온 앤 셜리의 그것이었다.
 하긴 앤도 공부는 잘했지.

 그런데,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이게 다 뭔가. 우리 팀장 녀석이 기어코 쫒아온 게 아닌가 할 정도의 기세 좋은 커리어 우먼 아니신가. 저 아이가 저렇게 짧고 불편해 보이는 치마를 입고, 굽이 10센티는 되 보이는 구두에, 거기에 가슴에는 족히 일천불은 나갈듯한 브로치를 달고 나타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저렇게 짙은 화장이라니! 저 아이가 화장을 할 것이란 생각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청나게 실망하며, 그렇게 지겹게 싸웠음에도 아직 이 애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옷차림이 그게 뭐냐.”
 내가 말했다.

 “뭐가.”
 그 애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 아인 에르메스 핸드백에서 고급스런 문양이 들어간 케이스를 꺼냈다. 나는 그때까지, 아이가 그 케이스를 나에게 선물 하려는 것인 줄 알았다. 심지어 거기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다시 핸드백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일 때까지도 말이다.
 불을 붙이곤, 그 애가 말했다.
 
 “빌어먹을 택시가 금연이라. 안에서 필 수도 없으니 한 대 피고 들어가자.” 하곤 라이터를 내밀며 “오빠도 필래?” 하고 말했다.
 “....아니. 난 끊었어.”
 내가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사실, 난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그래?”
 동생은 라이터를 다시 핸드백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현관의 테라스에 기댄 채 천천히 담배를 태웠다.

 나는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지 묻고 싶었다. 지금 그 꼴은 다 무엇이며, 담배는 언제부터 피웠는지, 건강은 어떤지, 혼자 사는데 집안 꼴은 어떤지.

 하지만 그러다 보면 결국 나는 그 때 누님의 장례식에는 왜 나오지 않았는지, 그때 아이는 왜 맡지 않았는지. 그런 것을 묻고 말 것이다. 대화는 그렇게 흘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우린 5년 전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법정으로 가기 일보 직전이었던 그때 말이다. 나는 여기서 그 때의 일을 반복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들어가자.”
 구두 뒷굽으로 담배를 비벼 끄며, 동생이 말했다. 

 “아.”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머니에서 변호사에게 받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엄청난 먼지가 피어올랐다. 육개월간 쌓인 먼지였다. 우리는 물러서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우리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먼지뿐이었다. 아버지의 집은 대단히 넓었지만 거기엔 온통 먼지뿐이었다. 다리앤 행성의 먼지 벌레들이 모든 것을 갉아 먹고 만 것이다.

 아버지는 반평생을 먼지 벌레를 연구하는데 받치셨다. 그 벌레들은 죽어 있는 것이라면 이빨이 들어가는 한 마지막 한 톨까지 갉아 먹는 지독한 벌레들이었다. 이들은 자기들이 먹은 것을 미세한 먼지로 만들어 배출했는데 처음 발견 됐을 때는 이 점 때문에 꽤 주목을 받았었다. 유해 폐기물의 처리 등에 이용 될 것으로 기대 됐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그때, 텐시사의 연구원으로서, 이 행성에 자리 잡으셨다.

 그러나 십 수 년을 연구해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 외에도 이 벌레들은 수미크론에서 수십 아미크론까지, 다양한 크기의 미세 분진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의 관리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을 가하려 해도 이 행성의 생물들은 지구의 dna 체계와는 전혀 다른, 6개의 염기 서열을 가진 mna 라고 불리 우는 체계로 진화했기 때문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분간 상업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지자, 대부분의 회사들은 철수 했지만 아버지는 남으셨다. 회사를 그만 두신 것이다. 연구소는 폐쇄 됐지만 연구원들의 숙소로 쓰던 건물을 헐값에 인수해 몇 명의 사용인과 함께 그곳에서 지내셨다.
 그 십 몇 년간 벌레들에게 정이라도 든 것이었을까. 아버지는 오직 벌레만을 돌보셨다. 하긴 달리 정 붙일 때도 없으셨을 것이다. 외지에서의 오랜 연구 생활로 아내에겐 이혼당하고 틈틈이 만든 아이들은 얼굴도 몇 번 보지 못한 사이에 장성해 버렸으니 말이다.

 어쨌건 아버지는 mna의 체계를 밝히는데 주력한 현지의 생물학 포럼과도 별개로, 벌레만을, 그것도 리네식으로 연구하셨다. 아버지는 원래 생화학이 전공이었지만, 독학으로 분류학을 공부해서 벌레들을 위해 새로운 알파 분류법 개발하셨다. 그리고 남은 여생동안 열심히 벌레들의 등껍질을 들춰보며 수천 종의 먼지 벌레들을 발견해 내신 것이다.
 비록 아무도 관심은 없었지만.
 딱정벌레와는 달리, 먼지벌레들은 하나도 예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죽을 때까지도 이곳에서였다.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였지만 분진 탓에 폐가 나빠져 그것이 심장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유언은 짧았다. 자신이 죽으면 그대로 그 자리에 놓아두고 연구실의 벌레들을 풀어 놓을 것. 그리고 시신이 먼지가 되면 그것을 셋이서, 혹시라도 아내가 와준다면 넷이서 가져가 달라는 것, 그것뿐이었다
 유언에는 나와 동생, 그리고 누님도 있었다. 누님이 돌아가신지 오년이 넘었으니 아버지는 이런 결정을 오래전부터 하신 것 같았다.

 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아직도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우리 둘뿐이었다. 나와 내 동생 루시엔.

 각자 시간이 나는 대로 들리는 편이 편했겠지만, 인상 좋게 생긴 늙은 변호사가 의외로 까다롭게 굴었다. 문맥을 볼 때 고인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시신을 수습해 주길 바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셋이서, 넷이서, 와 같은 말을 볼 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어찌 돼도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누님의 장례식 때마저 코배기도 안 보인 루시가 순순히 승낙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의외였다. 시간이 나면, 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루시가 간신히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을 땐,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육 개월이 지난 후였다.

 “가자. 시간 없어.”
 루시의 말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먼지는 가라앉아 있었다. 루시와 나는 벌레들이 싫어하는 스프레이를 몸에 뿌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로비에는 하얀 먼지가 빛바랜 양탄자처럼 깔려있었다.

 “빌어먹을 먼지.”
 걸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먼지에, 루시가 콜록 거리며 말했다.

 “좀 살살 걷는 게 좋겠다.”
 내가 말했다.

 “어둡네.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캄캄하겠어. 전기는 들어올까?”
 루시가 로비 안쪽으로 뻗은 긴 복도를 보며 말했다.

 “그것도 걱정이군. 손전등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그 참견 쟁이 변호사가 전기세를 내놓지 않았을라나.”
 “설마.”
 
 나는 설마하면서도 전열 스위치를 찾아 벽을 더듬었다. 하지만 찾은 것은 벽에 난 네모난 모양의 구멍뿐이었다.
 “루시, 이것 좀 봐. 스위치를 다 파먹은 모양이야.”
 “이 정도면 전등 같은 것도 다 먹어버렸겠는데. 음, 그런데 왜 벽은 멀쩡하지?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하군.”
 “벽이야 벌레들 못 먹는 재질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두운 복도를 쳐다봤다. 어둡긴 했지만 바닥이 평평하니 조심한다면 걷지도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일단 가자.” 내가 말했다.

 막 나아가려는 나를 루시가 붙잡었다. 핸드백에서 열쇠 두개를 꺼내더니 하나를 나에게 준다. 과연, 열쇠고리에 조그마한 플래시가 달려 있었다.

 “너 차 좋은 거 탄다.”
 열쇠고리에 붙은 로고와 모델명을 본 내가 감탄했다.

 “버니까.”
 “.......”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복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루시가 시계를 한 번 본다. 그것을 본 내가 물었다.

 “무슨 약속이라도 있... 설마, 오늘 배를 탈 생각이냐?”
 “당연하지.”

 루시가 대답했다. 나는 내 시계를 봤다. 배 시간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차 시간 까지 한다면 여기서 한 시간도 채 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담배는 왜 피웠담. 아니, 그 전에 대체 여기는 왜 온 거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라도 좀...”
 “나중에. 일단 걷자.”

 그 말에, 내 머릿속은 이 모든 것을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이젠 이건 그저 일일 뿐이었다.

 플래시를 켰다. 생각보다 빛이 밝아서 복도를 걷는 데는 아무 문제도 없을 것 같았다. 루시까지 플래시를 켜니 오히려 지나치게 밝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거슬릴 정도로 밝은 빛에 얼굴을 찡그리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왕복에 6일이 걸리고 어정쩡한 배 시간 탓에 삼일을 체류할 수밖에 했다. 나도 노는 몸은 아니었고, 어떤가 하면 오히려 급한 일을 미루고 간신히 휴가를 낸 처지였고, 게다가 행성 간 여행에 드는 엄청난 타임 채널링 요금 때문에 당장 이번 달 헬레나에게 붙여 줘야 할 양육비를 융자받아 형편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또 팀장에게 갖은 말을 들어가며 휴가 신청서를 냈을 때 기대 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뭘 기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와 루시는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나는 지금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밀린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아흐레라.. 아흐레라...

 “어딘지 아는 거야?”
 루시가 말했다.

 “뭐... 윽.”
 루시의 물음에 무심코 뒤돌아 보다, 플래시 불빛에 눈을 감았다. 루시가 내 표정을 봤는지, 불을 끄며 말했다.

 “어딘지 아냐고.”
 “무슨 얘기야?”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버지 방말이야.”
 “아...”

 나는 그제야 사고를 이곳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변호사가 일러준 방 번호를 체크했다.

 “154호.”
 “154호라고? 일층에만 방이 50개가 넘는 다는 말이야?”
 
 다리앤 행성에서는 개발공사의 허가와 소정의 등록비 정도로 토지가 불하되기 때문에 높이 쌓을 필요가 없었다. 방이 많이 필요하면 옆으로 늘리는 쪽이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다. 아버지의 기사를 스크랩해 온 덕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진 못했다.

 “글쎄다. 가보면 알겠지.”

 내 말에, 루시는 말없이 손목을 들어 시계를 들여다본다. 그 모습에 짜증이 난 나는 루시에게 보조를 맞춰 걷던 것을 그만둔다. 기계적으로 방문에 플래시를 비춰보며 54호를 찾는다. 하지만 하얀 문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이런... 문패가 먹혔군.” 방문은 벌레들이 먹을 수 없는 재질로 되어 있었지만 방의 문패는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몇몇 문에선 문패가 있었던 듯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거, 혹시 방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야? 54호라고 했던가? 다른 말은 없었어?” 루시가 말했다.
 “없었어. 일일이 열어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겠는걸.”
 “무슨 소리야. 아빠는 먼지가 됐을 거라고. 이 먼지 구덕이에서 그걸 어떻게 확인 하겠다는 거야.”
 “뭔가 표시를 해 놨겠지.”

 내 말엔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 그 말은 순전히 루시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 이건 또 무슨 헛수고람.” 루시가 말했다. 그리고 또 다시 시계를 보더니 “조금 있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넌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 거냐.”
 결국, 나는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일.”
 “대체 무슨 일.”
 “말 했잖아. 연구에 학회, 세미나, 강연. 나는 하루에 4시간도 제대로 못 자. 난 여기 정말로 힘들게 온 거야.”
 마치 자기만 힘들다는 투의 말에, 나는 정말로 화가 나고 말았다.

 “그놈의 돈. 그게 가족보다도 중요한 거냐?”
 “난 그런 말 한마디도 한 적 없어.”
 그 말엔, 우리 고고하신 루시양도 화가 나신듯 언성을 높였다.

 “다름없지! 넌 네 언니의 장례식 때도 안 나왔어! 학회니 강연이니, 그 게다 머냐고. 다 돈 때문이잖아!”

 “또 그 얘기다. 미안하다고 말 했잖아! 몇 번이나!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그리고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난 돈 때문이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어.”

 “그럼? 돈이 아니면? 나중에 학장 출마라도 해 보실 생각인가? 난 네가 그렇게 목매달 듯 사는 이유를 모르겠구나. 어차피 네 연구비는 그 사이비 종교에서 다 대줄텐데 말이다.”
 “됐어. 이건 전부 다 지겹도록 반복했던 얘기야. 한 번, 두 번, 세 번. 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말하는 걸 싫어 해. 이런 건 소용없는 짓이라고. 오빤 이해 못해. 죽을 때까지.”

 5년 전과 같았다.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애당초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잊기엔, 5년이란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와 루시는 그대로 한참을 다퉜다. 새로운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전화와는 달리 화상을 꺼 버릴 수 없다는 점이,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때면 수화기를 던져 버릴 수 없다는 점이 달랐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어쩌면 나는 여기서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여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것이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일지라도 말이다. 
 
 “그럼 아이는?”

 내가 말했다. 이 말에, 루시는 옛날처럼 통화기가 부서지도록 비명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나를 똑바로 처다 볼 뿐이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봤다. 그 아이는 내 눈을 보고 있었으므로, 나는 거기서 내 눈을 봐야만 했다. 그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머리가 새하얘져서는 말했다.

 “못 알아들어? 네 언니 애는 왜 버렸냐고!”

 루시는 그 잔인한 말을 끝까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다 들어내곤,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곤 돌아서서 울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5년 전의 일을 반복했던 탓일까, 예전의 그 두통이 다시 도지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나치게 밝은 열쇠고리의 빛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나는 열쇠고리의 버튼을 눌러 불을 껐다. 복도는 완전히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모든 게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금 쉬고 싶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먼지가 피어오르는 바람 빠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기침을 하다 눈에 먼지가 들어간 탓에 눈물을 빼고 말았다.
 그 눈물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리를 감싸 쥔 채, 나는 조용히 울었다.

 

 **

 “갈래.”
 어둠속에서 시간 감각이 무디어질 무렵, 루시가 말했다.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이면, 열쇠, 돌려줘.”
 “아. 바쁘셨지.” 내가 말했다.

 “그래 바빠. 그러니까 어서.”
 루시가 말했다. 나는 아, 이게 마지막이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마 루시도 별반 다름없는 생각일 것이다. 애초부터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거나 말이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문득, 루시의 눈을 떠올렸다. 내 눈을 노려 보던 그 눈 말이다. 그 눈을 생각하며 나는 마지막으로 적어도 내가 노력은 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말했다. “예전에 네가 하는 일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 도대체 뭘 하느라 그렇게 바쁜가 하고 말이야. 나는 잠시 말을 멈췄지만 루시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마, 네 언니 장례식 직후였을 거야. 그리고 네 언니의 남편이란 사람이 그렇게 엄청난 골칫덩이인지 알게 되기 전이었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네가 엄청나게 바쁜가 보다 했으니까. 그냥 순수한 호기심이었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었는데, 책 제목이 아마 자연의 분절성이었던가? 그랬을 거야.”

 “불이나 켜.”

 “네 얼굴을 보고 후려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래. 그냥 들어. 아마 내가 너한테 하는 마지막 얘기일 테니까.”
 루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이야기를 계속한다.

 “아마 그런 두꺼운 책을 읽은 건 내 평생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야.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고.”

 “그 양반이 책은 재밌게 쓰지.” 루시가 중얼거렸다.

 “그래 재밌었어. 나는 거기서 네가 매번 말했던 정령 인지학이란 게 뭔지 드디어 이해했지. 정령으로 강과 바다를, 모래와 돌멩이를, 밝음과 어둠을, 구분하겠다고? 나는 정말 너다운 생각이라고 생각했어. 너 다운 생각이라고 말이야.”

 만약 그 이후 있었던 잇따랐던 악몽 같은 사건들만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그때의 독후감을 생각하며 조금쯤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후 법원은 그 누님의 남편에게 아이를 키울 없음을 결정했고 어머니는 법적으로 이미 누님과 타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누님의 아이는 나와 루시 둘 중 한명이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나는 헬레나와 이혼 소송에 휘말려 있었는데 만약 누님의 아이를 맡게 되면 당시의 내 수입으로선 도저히 내 아들의 양육권을 따 낼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처지에서, 나는 루시가 누님의 아이를 맡아주길 바랬지만.... 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부서지는 것 같다. 나는 루시가 제 언니의 아이를 거부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나는 당혹과 실망, 그리고 분노 때문에 단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거의 파산 직전에 몰릴 때 까지 변호사 비용과 행성 간 전화 요금을 지불해가며, 루시와 싸웠다. 그건 정말 지긋지긋하고도 처참한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결국 아이는 고아원으로 가고 말았다. 루시의 후원자였던 어떤 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이었는데, 최상급의 시설이라느니 어쩌니 하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나는 사실상 루시가 아이를 고아원에 처박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는 헬레나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의 내 심정으론 그 모든 것이 루시 탓이었다. 심지어 누님이 돌아가신 것 까지 루시의 탓으로 생각되었다. 루시의 입장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 루시를 죽일 듯이 증오했다. 낮에는 두통,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게 될 때까지 수면제와 진통제를 백통은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아이는 이미 누군가에게로 입양된 후였다.

 “열심히 읽었는데 미안하지만, 그 책의 그 부분은 그 양반이 날 엿 먹이려고 쓴 부분이야.”

 어둠 속에서, 루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참에 다 말해 볼까? 오빤 오직 오빠의 문제만 생각하지.”
 “핫, 한 번 들어나 보자.”

 헛웃음을 뱉으며, 내가 말했다.
 루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우연이겠지만 말이야, 그 망할 장례식 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어. 우연이겠지만 말이야. 나는 그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기로 돼 있었다고.”
 “알고 있어. 미루면 되잖아. 어차피 네 논문이니까.”
 “이미 논문 내용이 다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 그리고 그냥 닥치고 들어. 이제부턴 처음 듣는 이야길 테니까.”
 “흥.”

 “...레오폴드라고 알아? 아까 그 책의 작자라는 자식이지. 아무튼 그 자식이 말이야, 내 이론이 그 자식 이론을 먹는 부분이 많아서 그랬는지, 그냥 내가 싫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여간 그 자식은 내 이론 싫어했어. 나를 증오했다고. 그것 뿐이면 아무 문제도 없지. 그러데 그 자식은 학계의 원로에 공중파에 나올 만큼 저명한 대중강사에, 베스트셀러 교양서의 저자였지. 한마디로 이 판의 큰 손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 놈이 내 이론을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그 놈은 자기가 가진 모든 채널로 내 이론을 망치려 들었지. 내 이론의 알려진 부분만으로 이론 전체를 쓰레기로 몰아갔고 그 중 몇 가지는 정말 명적이어서 내가 당장 그걸 해명하지 않으면 내 이론은 그대로 묻혀버릴 상황이었어. 태어나기도 전에 말이야. 그 자식의 말에 따르면 내 이론은 아예 인지 과학이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내가 연단에 섰을 때 어땠는지 알아? 그 자식이 얼마나 사전 작업을 해놨는지 나는 지동설을 외치던 갈릴레이보다 더 두들겨 맞았어. 갈릴레이 자식은 빽이라도 있었지, 나는 그냥 마냥 두들겨 맞았다고. 모두가 가뜩이나 복잡한 이 판에 카테고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걸 싫어했어. 엔지니어링 같은 내 이론도 싫어했고 내 돈줄도 싫어했고, 내 말투는 더 싫어했지.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 그 놈들은 날 증오했어. 그 당시 분위기로는 증오했다는 말만큼 어울리는 게 없지. 그 자식들은 날 원수 보듯이 했다고. 상상할 수 있겠어? 수 백 명 내뿜는 지적 적의의 한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 말이야.”

 나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았어. 이례적으로 일주일 내내 연단에 올라갔고 그럭저럭 이론을 지켜 낼 수 있었지..”
 “...그럼 끝난 거 아냐.”

 “천만에! 그때부터가 문제였지. 이론은 지켰지만, 내 적을 두 배로 늘렸거든.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때 난 거의 제정신이 아니어서 마지막 며칠은 각성제를 먹지 않고는 제대로 서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그 상태에서, 그들의 말도 안 돼는 질문에, 그 뱅뱅 도는 듯한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야 했단 말이야. 사실 그들은 내 이론을 제대로 검토할 수도 없었어. 거기 나오는 최신 수학들을 익히려면 최소한 6개월은 수강해야 했거든. 그것도 내 강의를 말이야. 아님 희귀 강의를 수강하기 위해 한 2,3년 이 대학 저 대학을 떠돌아 다녀야 했겠지. 하핫, 당연히 그런 놈은 없었어. 그러니까 그놈들이 날리는 질문은 전부 엉터리였어. 그 자식들은 내 이론의 세부에 손도 대지 못했지. 나는 일주일 내내 비웃는 투로 놈들을 상대했어. 반쯤 돈 상태에서 말이야. 그 자식들 표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

 어둠 너머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꼭 실성한 것 같은 소리였다. 소리는 곧 잣아 들었지만 그 음산한 느낌은 한참이나 거기 남아 있었다.

 “적어도 그땐 내가 승리 한 줄 알았어. 하지만 그게 아니었지. 오히려 반감만 샀으니까. 게다가 공격을 지연 시켜준 수학이, 오히려 나를 쳤던 거야. 내 강의에 오는 놈들은 죄다 철학과 놈들뿐이거든. 학회에서건 대학에서건 내 이론에 관심 있는 사람 중 내 강의를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한마디로 이론엔 나 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때 막 학위를 딴 스무 몇 살짜리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어. 내가 혀를 잘못 놀린 탓에 적은 두 배로 늘었는데 이쪽엔 나 혼자였다고! 그러니까 모든 걸 나 혼자 전부 다 해야 했다고. 알아듣겠어? 그 집요한 레오플드 자식 때문에, 내 이론은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꽃이나 다름없었어. 나는 24시간 내 이론에 물을 줘야 했다고. 그런데 대체 아이를 언제 돌보겠어? 차라리 고아원이 낫지.”

 “그건 미친 생각이야. 개집에서 길러도 아이는 집에서 기르는 게 나아. 넌 일 때문에 돌아버린 게 틀림없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그럼 한 번 묻겠는데, 네 이론이란 게 그렇게 중요한 거냐? 가족보다도?”
 “....그래.”
 “그 웃기는 정령들이 가족보다 더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그 웃기는 정령 얘기는 그 자식이 날 엿 먹이려고 수작 부린 거라고. 제길, 처음에 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그건 그저 위상 스펙트럼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야. 내가 처음 그 골칫거리들을 발견했을 때.... ”

 루시가 다시 말을 멈췄다. 한참이나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채 몽롱하니 숨만 할딱거리던 루시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땐, 그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상기된 상태였다.

 “그걸 발견 했을 땐 말이야... 그땐..” 루시는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16살 이었구나.”
 타박타박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일어선 루시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칠판 앞에 서서, 그냥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이것저것 끄적이면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쓸만한 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지. 그런데 갑자기 불이 나가 버리는 거야. 갑자기 깜깜해지고, 그리고 채 놀라기도 전에 1초도 되지 않아 다시 불이 들어왔는데.... 아니.. 아니야. 그래! 그걸 본 적 있어? 밝음과 어두움의 사이 말이야. 그 선. 거기에 선이 있었던 거야. 그 선을 본 적 있어? 경계를 본 적이 있냐는 거야. 나는 그때 그걸 봤어. 아니, 그걸 본 게 아니라, 깨달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어쨌든 그걸 본거야. 그게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고! 나는 순식간에 흑판을 채워갔지. 몇 시간 동안이나 쓰고 지우고 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정리 했어. 간단한 거야. 여길 봐. 잘 보라고! 여기가 세상의 경계야!”

 복도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넘치듯이.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그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고 다시 그 아이의 일인 극을 보고 있는 것 만 같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또 한편으론, 여전히 나는 이 아이가 제가 믿고 있는 것을 똑바로 말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 만은 알 수 있었다.
 울림이 잦아들었다.

 “그래.. 그때, 걔네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게 내 머릿속에 들어 왔을 때 말이야. 그건 정말 아름다웠어. 나는 꼭, 그게 정령의 편린이라고....”

 말을 마치지 못하고, 루시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믿었어. 믿었다고.
 그렇게 되네이며.

 지금 나는 저 애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5년 전의 일을 잊을 수 없지만, 당장은 그것을 미뤄두고 지금은 저 애의 옆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이 어두운 복도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불을 키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이 모든 것이 정말로 끝나 버릴 것만 같았다. 불빛이 그 애를 비추는 순간 저기서 울고 있던 아이는 사리지고, 자신의 이론을 위해 제 언니의 아이까지 고아원에 넘겨버린 루시엔 세리어드란 여자만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어둠을 응시하며 기다릴 뿐,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훌적이는 소리가 그치고, 얼마가 지났다. 어디선가 그 애가 말했다.

 “오빠.”
 “응.”
 “난 언니를 사랑했어. 그것만은 알아줘.”
 “...알아.”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이제 어떡할 거냐.”
 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출발해도 배 시간엔 댈 수 없을 테니까... 아빠 방이나 찾아봐야지.”
 “그래.” 나는 일어섰다. “불 킨다.”
 “잠깐.”
 루시가 말했다. 나는 잠깐 기다렸다. 5분정도 기다리자 그 애는 “이제 켜도 돼.” 하고 말했다.

 불을 켰다. 복도 저 편에 루시가 있었다. 눈물 탓에 망가진 화장을 지운 것일까.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그 애의 얼굴에서 화장기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어쨌든 이편이 보기는 나았다. 나는 한마디 하려다 그만 두었다.

 우리는 먼저 그 애의 집 열쇠를 찾았다. 내 뺨을 한대 올려붙일 때 떨어뜨렸던 거라나.

 우리는 그다지 해매지 않고 아버지의 방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 새로 달아 놓았는 문에는 ‘J.D. 세이어드의 방’ 이라는 문패가 달려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문을 열었다.

 방은 깨끗이 청소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방 한 가운데에는 뚜껑뿐인 스노우 돔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눈과 눈사람 대신 소복히 쌓인 먼지와 사진 액자, 그리고 조그마한 편지가 들어있다.

 돔의 덮개를 들어냈다. 먼지가 조금 흩날렸다.

 메모는 사용인들이 해 놓은 것이었다. 아버지 명복, 그리고 생전의 은혜에 대한 감사, 그리고 자손들에게 축복을 비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나는 편지를 접어 수첩 사이에 끼워 넣고는 안주머니에 넣었다.

 사진은 참으로 드문, 우리 가족이 모두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루시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됐을 때의 사진으로 직후,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하셨다.

“이 사진, 내가 가져도 되지?”
 루시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는 사진을 핸드백에 넣고는 조그마한 함을 하나 꺼냈다. 거기에 먼지를 담는다. 그것을 다 지켜보고 나서, 나는 주머니에서 팬던트를 꺼냈다. 거기에 달리 조그마한 나사를 풀어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먼지를 넣었다.

 우리는 몇 분간 그 방에 있었다. 루시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었고, 나는 천천히 방안을 걸었다. 어머니가 여기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을 나온 우리는 온 길을 되돌아갔다. 저 안에서 몇 년은 보낸 것 같은데, 나와 보니 아직도 한 낯이었다. 루시는 곧바로 자신의 핸드폰으로 택시를 불렀다. 배를 전세 내 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나도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 연락해 택시를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루시는 그 멋진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꼬나물었다.

 “오빠, 담배 끊었다는 거 거짓말이지?”
  불을 붙이며, 루시가 말했다.
 “무슨 소리냐.”
 “피운 적 없잖아.”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시선을 피했고 루시는 가볍게 웃었다.

 루시가 부른 택시가 먼저 도착했다. 루시가 테라스의 난간에 담배를 비벼 껐다. 올적과 마찬가지로, 제복을 입은 기사가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루시는 기사에게 가볍게 눈인사 하고는 택시에 타려다 멈춰 섰다.

 뒤돌아 본 아이는 문득 생각 난 것처럼 말했다.
 
 “또 봐. 오빠.”
 그래서


 “그래.” 하고, 나는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