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초청 단편
제2회 판타지 갤러리 단편 대회 출품작
모래폭풍
by Blues
주술사가 말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벌써 바람 속에는 비릿한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사내는 어느새 흐려지기 시작한 하늘과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의 황량한 마을을 잠시 돌아보다가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왔다. 창문과 문을 아무리 막아보아도 온 집안에는 황색 먼지들이 잔뜩 쌓였다. 귓바퀴를 문지르면 누런 먼지가 잔뜩 묻어나오고 입안에서는 항상 모래들이 서걱거렸다. 사내가 침대위에 털썩 걸터앉자 그 반동에 의해 자욱하게 내려앉았던 모래 먼지들이 피어올랐다. 머리칼을 움켜잡자 거칠고 뻣뻣해진 가닥들 사이로 역시 모래들이 만져졌다. 언제 머리를 감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이지만, 오히려 모래들 덕분에 더러운 머릿기름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긋지긋한 모래먼지도 이런 경우에는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자 사내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사내는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모래 바람을 막아줄 보호경과 얼굴막이를 걸치고, 나무갈고리들을 뒤춤에 매달았다. 산탄총에도 탄약을 쟁인 후 어깨에 걸어 매었다. 사내는 마지막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거무스름한 칼을 꺼내어 들더니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칼을 구할 길이 없어 여물을 썰 때 쓰는 작두날을 하나 떼어 만든 투박한 것이었지만, 오랜 기간 벼려왔기에 그 날만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손가락으로 칼날의 날카로움을 가늠하면서 사내는 지난 일을 생각했다.
모래치. 모래 귀신이라고도 부르는 그 녀석을 처음 본 것은 2년 전이었다. 당시 사내는 어린 아들을 품에 담은 채로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 깊이 박아둔 쇠말뚝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어린 아들은 사막을 걷다 갑작스럽게 만나게 된 먼지 폭풍으로 인해 온통 겁에 질려 있었다. 아직도 사내는 품안에 느껴지던 아들의 떨리는 몸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의 떨림이 멈춘 것은 모래 바람이 그들을 한창 덮고 있을 때였다. 그와 함께 아프도록 자신의 팔을 움켜쥐고 있던 아들의 손아귀 힘이 약해졌다. 사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래 폭풍 속에서도 아들의 눈이 경악과 공포로 동그랗게 부릅떠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아들의 눈을 따라 시선을 옮기려는 순간 거무스름하고 기다란 무언가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덮쳐오더니 아이의 다리를 덥석 휘감았다. 사납게 살을 할퀴는 모래바람에 고개를 내밀수도,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무서운 힘에 의해 아들의 몸이 자신의 품을 벗어나 위로 딸려 올라가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사내에겐 다시 붙들 겨를도 없었다. 당황하여 잠시 멈칫거렸던 그 짧은 순간에 아들은 어두컴컴한 모래바람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놀란 사내는 모래가 입으로 들어오든 말든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매서운 모래바람을 견디지 못한 사내가 가슴팍으로 다시 고개를 묻던 순간,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겨드랑이 밑으로 보게 되었다. 모래 바람 속에 떠있는 거대한 원통형의 황갈색 생물이 아들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머리가 어찔해지면서 온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사내는 고함을 지르며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모래 속에 반쯤 묻혀 기절해 있던 그를 지나가던 마을 사람이 발견해 구해 온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눈을 떴을 때 망연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던 아내의 모습만이 그 이후로 기억날 뿐이다. 아들을 잃고 돌아온 그에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도, 책망도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지내고 사내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자 아내는 어딘가로 떠나 버렸다. 결국 사내도 얼마 후 집을 나섰다.
과거의 회상에 잠겨있던 사내는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으로 인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날카로운 칼날에 손을 대고 있다가 베이고 만 것이었다. 사내는 대충 이불자락을 뜯어 손가락 끝을 처매고는 집 밖으로 나섰다.
저 멀리 파도와 같은 모래 바람이 덮쳐 오는 것이 보였다. 과연 흙바람 마을의 주술사의 말 대로였다. 사내는 미리 박아둔 말뚝을 흔들며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하고는 그 끝에 나무 갈고리와 연결된 끈들을 잡아매었다. 갈고리의 끈을 모두 묶고는 모래바람이 다가온 정도를 다시 살폈다.
멀리서 볼 때는 느린 것 같더니, 가까워질수록 그 속도는 점점 급해졌다. 황색의 구름이 버려진 마을의 어귀에 닿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사내의 주위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삽시간에 몇 걸음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어두컴컴해 졌다. 아들을 잃던 그날과 같았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앙다물기 시작했다.
정신마저 도려낼 것 같은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사내는 미리 말뚝에 매달아 놓았던 개를 바라보았다. 개는 무시무시한 모래 바람 안에서 겁에 질려 울부짖고 있었지만, 지금 사내의 마음속에는 개에 대한 동정심 따위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주술사가 가르쳐 준 대로 사내는 칼을 들어 개의 뒷다리를 살짝 째었다. 개의 애처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난 뒤 바닥에 바싹 몸을 붙이고는 모래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돌연 말뚝에 매달린 쇠사슬들이 절그렁 소리를 내며 급격히 당겨졌다. 긴가민가하는 사내의 귀로 모래바람의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어렴풋이 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내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갈고리 중 하나만이라도 걸리기를 바라며 아까부터 손에 들고 있던 나무 갈고리들을 바람 속으로 뿌렸다. 단단하지만 가벼운 거거나무로 만든 갈고리들은 세찬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세찬 바람을 타고 검은색의 걸쭉한 액체가 날아오더니 사내의 보호안경에 철썩 달라붙었다. 사내는 안경에 묻은 액체를 닦아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가까워 질수록 거대한 무언가의 윤곽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사내는 검은 반점이 있는 황갈색의 거대한 원통형의 생물체가 입에는 쇠사슬을 물고, 몸뚱이에는 갈고리가 두 개가 걸린 채로 공중에 떠 있는 장면을 확인했다. 2년 만에 모래치를 다시 만난 사내의 몸은 흥분과 긴장으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흙바람 마을의 주술사에게 이미 들었던 사실이었지만, 정말 모래치에겐 눈이란 것이 없었다. 대신 입 주위에 눈과 손 역할을 하는 촉수들이 기다랗게 뻗어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징그럽게 꿈틀대는 촉수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세찬 바람과 어두운 시야 때문에 조준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어차피 산탄총이었다. 비산한 총탄들이 모래치의 입가를 찢자 열개의 촉수들 중에 세 개가 잘려서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사내는 두 번째 발사를 위해 다시 총을 겨누었다. 사내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모래치의 촉수 두개가 날아오더니 사내의 손에서 총을 앗아가 버렸다. 탐욕스러운 습성대로 모래치는 가져간 총을 자신의 입에 쳐 넣었다.
총을 빼앗긴 사내는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빨을 갈아 붙이더니 칼을 뽑아들었다. 촉수를 모두 제거하기 전에는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던 주술사의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돌볼 계제가 아니었다. 이미 모래치에게 걸려 있는 갈고리 중 하나가 살이 뜯겨나가면서 벗겨졌다. 남은 하나마저 벗겨진다면 모래치는 풀려나 다시 자유롭게 모래 바람 속을 유영하게 될 것이었다. 위험해지는 것도 위험해지는 것이려니와, 행여 모래치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이대로 녀석을 보낼 수는 없었다.
모래치는 칼을 빼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내를 향해 일제히 촉수를 뻗었다. 아무리 손이 빠르다고 해도 일곱 개나 되는 촉수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는 없었다. 비록 사내가 힘껏 칼을 휘두른 끝에 두 개의 촉수를 잘라 내기는 하였지만, 남은 촉수 중 하나가 사내의 왼팔을 감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서슬에 사내는 그만 칼마저 놓치고 말았다.
뜨거운 입김과 격한 상황에서 흘러내린 침이 얼굴막이의 입부분이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촉수에 매달린 사내는 그 축축한 얼굴막이 사이로 거친 숨을 내쉬며 모래치를 내려 보았다. 모래치의 흉칙한 입이 다시 한 번 크게 벌려지자 촉수가 사내를 그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모래치의 입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해 버둥거렸다. 아직 자유로운 오른손으로 모래지의 콧잔등을 붙잡고 버틴 끝에 간신히 몸은 빼낼 수 있었지만, 촉수에 매달린 왼팔은 어쩔 수 없이 모래치의 입으로 딸려 들어가고 말았다. 무언가 자신의 입에 들어오자 모래치는 본능에 따라 입을 다물었다.
콰직!
어깨까지 모래치의 입에 물린 사내는 팔뼈가 부러지는 극심한 고통에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떡 벌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내는 모래치의 입속에 들은 자신의 왼손에 무언가 익숙한 느낌의 물건이 닿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쇠사슬에 매달려 아직 뱃속으로 딸려 들어가지 못한 개의 시체에 엉킨 자신의 총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내는 총을 움켜잡았다. 부러진 팔로 힘을 쓰기는 어려웠지만 안간힘을 써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된 총탄은 모래치의 뱃속을 뚫고 들어가더니 공기주머니를 터뜨렸다. 그 공기주머니야말로 모래치가 땅위에서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부레와 같은 것이었다.
공기주머니에 들어 있던 가스가 새어나가자 모래치는 바닥으로 털썩 내려앉았다. 중상을 입은 모래치의 입이 헐거워지고서야 사내는 왼팔을 빼낼 수 있었다. 부러진 팔로 인해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사내는 자신의 칼을 찾아 어두컴컴한 모래바람 속을 더듬어갔다. 이윽고 손끝에 작두칼 손잡이의 냉기가 느껴졌다. 사내는 칼을 움켜쥐고 모래치에게로 돌아가서는 아직도 움직거리는 촉수들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날카로운 칼날이 오르내릴 때 마다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떨어져 나갔다. 사내는 숨을 몰아쉬며 모래치의 배 밑으로 다가가더니 그 불룩한 배에 칼을 꼽고는 힘을 주어 일자로 내리 그었다. 모래치의 뱃구레가 터지면서 그 안에 가득 들어차있던 징그러운 내장들이 밀려나왔다. 사내가 갈라진 틈에 손과 발을 밀어 놓고 위아래로 힘껏 벌리자, 급기야 위장으로 보이는 허연 주머니가 쏟아져 나왔다. 사내는 모래치의 위장마저 가르더니 그 안에서 나온 것들을 미친 듯이 헤집기 시작했다.
모래치의 거대한 위장에서는 갖가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내는 소화가 덜 된 역겨운 동물의 시신들과 갖은 쓰레기들을 헤치면서 무언가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사내가 찾는 것은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내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도, 뒤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을 다 헤집었지만, 사내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덧 사내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보호안경이 뿌옇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아직 모래바람이 거세었지만 사내는 안경을 벗어던지더니 모래치의 머리께로 달려갔다.
“이 개자식아! 내 아들 내놓으란 말이다.”
사내는 아직도 살아 촉수와 입을 움직거리는 모래치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모래치의 살이 갈라지며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고 뼈가 부서지며 뇌수가 튀어나왔지만, 사내의 칼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사내는 칼을 내던지더니 헐떡이며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실눈을 떠 하늘을 올려보았지만 모래 먼지가 온통 세상을 뒤덮은 탓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사내의 목울대가 급하게 벌컥거리더니, 꽉 다문 입술을 헤집고 참고 참았던 울음이 밀려나왔다. 결국 사내는 팔을 들어 눈을 가리더니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