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서커스에 대한 추억이 없을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제 겨우 20대 초반에 불과한 내가 요즘 애들이라며 세대를 나누는 것도 우스운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요즘 꼬마애들이 서커스를 구경해본 적이 있을까. 커다란 천막에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만 있으면 그걸로 영화는 필요 없었다. 동물원에서 갇힌 모습으로나 볼 수 있는 동물들이 그곳에서는 조련사의 채찍과 함께 불꽃을 넘나들며, 공을 부리며 생동감 넘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어여쁜 누나들의 체조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몸놀림이 있었다. 어릴 적의 나는 어떤 효과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하게 살아있는 서커스를 보며 추억을 키웠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친구의 딸을 데리고 굉장히 곤혹스러운 추억을 만들어야만 했다. 아파트 단지를 안으며 일산 변두리에서 열린 서커스에 친구의 부탁으로 그 녀석의 딸을 데리고 와줬건만, 그 아이와 나, 둘이서 보게 된 서커스는 확실히 놀랄 노 자로 이루어진 서커스였다. 어릴 적에 살아 움직이는,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이국의 동물들을 보며 감탄했다는 사실을 얘기했던가? 그러한 감동을 어쩌면, 어쩌면 이 서커스에서 친구의 딸 또한 얻어갈 수 있을지 몰랐다. 만약에 그 동물들이 내 친구 딸의 기호에 맞는다면 말이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높이 솟은 서양모를 쓰고 나온 땅딸막한 키의 사회자가 자기 소개를 했다. 펭귄맨. 그의 인사로 장내에 그 농담을 이해한 이십대 이상 관객들의 웃음이 번졌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친구의 딸아이는 그게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 남자의 외형이 펭귄을 닮았다는 사실에 웃어 보였다. 그는 이어서 그의 옷깃 안에서부터 그의 키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날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끝이 동그랗게 휜 지팡이였다. 사회자, 펭귄맨은 지팡이의 곧게 뻗은 부분을 그의 입에 붙이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것부터가 서커스의 시작이었던 것일까? 사회자의 아기 다리마냥 짧았던 다리가 길어져 그의 크는 어느 새 3미터를 훌쩍 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기이한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박수를 잇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그것이 속임수가 아님을 강조하고 또 강조 한 뒤 막의 뒤로 사라졌다. 그는 장난스레 막 뒤에서 얼굴만 내밀며 "아, 제가 관객 여러분을 웃겨드릴 다음 신사 분들을 소개드리지 않았군요"라고 말했지만, 결국 소개하지 않은 채 쏙 들어가버렸다.

 친구의 딸아이는 그 남자의 키가 커질 ㄸㅒ만해도 눈이 휘둥그레져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재밌다고 박수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어째선지 그 아이도 나와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나 자신이 즐겼던 것을 나누게 됐다는 사실에 연결고리 같은 것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친구 녀석한테서가 아니라 나한테서 용돈을 달라고 하면 곤란하겠지만, 같이 서커스에 오는 것 정도라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첫번째 공연이 시작되는 북소리가 울렸다. 막 뒤로부터 누군가의 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의 딸, 진아는 그 모습을 침 넘어가는 것도 잊은 채 조용히, 그저 죽은듯 조용히 바라봤다. 갓 초등학교 입학한 진아에게 이런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응시한다는 표현이 훨씬 적합할 것이었다. 그야말로 시선으로 뚫어져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왔다.

 "뿌우우──."

 '코끼리?'

 분명 막 뒤에서 나온 것은 사람의 것과 비슷하게 생긴 손이었는데 그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코끼리의 소리였다. 비교적 앞좌석에 앉아 있어서 그 소리가 막에서 나온 손의 바로 뒤에서 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기에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장막 안에서 잘못 들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넘겨 짚었다. 아마 힘 센 코끼리라 소리가 그만큼 가까이에서 느껴졌던 것 뿐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커스의 중앙에는 사람 같이 생긴 코끼리, 혹은 코끼리처럼 생긴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가면이나 특수 분장일 거라 생각했고, 그 생각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 정교했다. 이름 없는 천막 서커스에서 아무리 분장을 잘 한다한들 마치 사실 같이, 혹은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실재감을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선 코끼리 인간의 키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마치 펭귄맨의 배다른 형제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땅딸막한 키였지만, 160센치미터 정도로 보이는 키는 진아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특수분장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깜쪽 같은 피부 질감. 그것의 피부는 바닷가 바위에서나 볼 수 있는 녹조류의 색이었다. 마치 바다 너머에서부터 파도를 타고 석암에 들러붙은 이끼들의 종자마냥 기분 나쁜 색이었던지라, 코끼리만 보면 좋아라 와─ 와─ 외치는 진아도 입을 다물고 질색했다.

 마치 프릭크 서커스를 떠올리는 기괴한 풍경에 서커스에 즐기러 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채 굳어버렸을 즈음, 막 뒤에서 한 명, 아니 한 마리의 코끼리 인간이 더 나왔다.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싸구려 천막 서커스에서 쓸 수 있을 법한 분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이것은 큰 방송사에서 벌이는 깜짝쇼이거나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설령 미국의 큰 방송이라 하더라도 저런 사실감을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펜스 너머로 바라보는 코끼리 인간의 피부는 말 그대로 숨쉬고 있었다. 주름 하나하나가 숨결에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 기괴한 진녹색 얼굴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털들 또한 있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못 알아봤지만 그것들이 점점 더 펜스 근처로 오면서 나는 그것들의 신체 구조를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코끼리의 것과 같이 거대한 얼굴은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목이 지탱하고 있었다. 그 목 역시 옆으로 거대한 몸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는데, 그 몸 탓에 짧은 팔과 다리는 자유롭지 못했다. 꼬리는 계속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것은 무의식적인 움직임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기괴했던 것은 바로 그것들의 코와 손이었다. 손은 앞서 기술했듯 인간의 것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까이서 보자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녹색 피부만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총 네 개의, 사람으로 치자면 엄지가 없는 것과 같은 모습의 손가락들을 지니고 있었는데, 각각의 손가락들은 거진 보통 사람들의 손바닥 길이로 뻗어 있어, 상대적으로 앙상하게 뼈만 남아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네 쌍의 손가락들은 마치 문어의 촉수, 혹은 그것과 닮은 무언가를 연상시켰다.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정상적인 사고의 성인들과는 물론, 여덟 살짜리 여아와 보기에는 더더욱 마땅한 풍경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진아는 내 팔꿈치에 매달렸고, 나 또한 진아를 품에 안아 주었다. 그러나 우리 둘 모두 그 기괴한, 확실히 동물원에서는 볼 수 없을 법한 괴물들로부터 눈을 떼지는 못 했다. 그것은 어쩌면 어떤 마력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흔히들 히틀러 같은 괴물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왜 괴물 같은 사람에게만 사람들을 휘어잡는 마력이 있겠는가.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부적절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다만 아이들을 안은 채 조용히 침묵을 굳게 지키고 있는 부모들을 눈치챈 뒤, 이 사람과 같은 이족 보행의 괴물들에게 역시 그러한 마력이 있을 것이라는 거에 대해 일말의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그러나 괴물들에게는, 그것들의 흉포해 보이는 검붉은 눈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위협 하나 없었다. 그것들은 더 이상 펜스로 다가오지도 않았고, 다만 서커스 중앙에 서서 관객들을 한 번 훑어본 후 서로를 마주 바라봤다. ─아, 그러고 보니 까먹은 기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코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할 서술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주한 그들은 이윽고 그들의 코를 하늘로 들어올린 뒤 구부려 서로의 머리로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번개마냥 빠른 속도로 서로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것은 흡착되어 점점 옆으로 팽창되기 시작했다. 두개골의 위에 해당할까, 상대의 머리 일정 부분을 차지한 코는 이윽고 도저히 원인을 추측조차 할 수 없는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분명한 것은 그것이 마치 무언가가 갈리는, 혹은 부서지는 소리 같다는 것이었다.

 으드득──, 으드득──.

 곧 그것들의 코는 튀어오르듯 하늘을 향해, 그리고 그들의 뒤를 향해 날았다. 그것들은 맥없이 코끼리 인간들의 어깨에 떨어지며 핏덩어리들을 흘렸다. 코끼리 인간들의 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피는 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코가 붙어 있던 상대방의 머리 부분에서 나온 것이었다. 쉽게 말해 코끼리 인간들은 코를 이용해 상대방의 머리를 힘으로 부숴버린 것이었다. 코끼리 인간들의 머리는 뇌째로 파괴됐고, 코끼리 인간들도 몸을 절다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들의 코 역시 바닥에 축 늘어졌는데, 그 때 나는 그들의 코 안에 있는 무수히 많은 가시 혹은 이빨들을 볼 수 있었다.

 진아는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듯 마치 천식 환자 같이 숨을 들이쉬어야 했다. 진아를 위해서 분명 서커스 바깥으로 나가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천막을 벗어 달아나야 했다. 하지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것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서커스 천막 안의 아이들은 모두 겁에 질려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있었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감싸 안아줄 뿐, 무언가의 이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달아나지 못하고 있었다.

 막 안에서부터 바람 같은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결코 빠르지 않았지만, 그것이 얼굴을 스쳐지나 갈 때는 그야말로 칼바람과 같이 느껴졌다. 그것이 막에서 나올 때는 마치 심연의 열기를 등에 업은 듯한 뜨거운 바람으로 느껴졌지만, 그것이 등줄기를 쓰다듬으며 지나갈 때는 생기 없는 추위가 되었다. 바람과 함께 막 뒤에서부터 등장한 것은 펭귄맨, 사회자의 기다란 다리들이었다. 그것들은 같은 때에 같이 나와 코끼리 인간들의 시체들을 끌고 막 안으로 들어갔다.

 두 다리가 한 번에 공중에 떠 있던 것이었다!

 나는 그쯤에서 어떤 거대한 거미 같은 모습의 사회자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공포는 사실이었을까? 다만 내가 알 수 있던 것은 막 뒤에서부터의 바람이 더욱 강해지며 그 안의 어둠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 뿐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진아의 목소리였다.

 '진아는, 진아는 어떻게 됐지?'

 나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그곳은 서커스 천막 안이었다. 안에 관객들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고, 다만 펭귄맨을 닮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사회자와 몇몇 광대들이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 몇몇은 나를 바라보며 수근덕대고 있었다. 이내 서커스 도중에 내가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들이 내 무례를 얘기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안해졌다.

 진아의 손을 잡고서 천막 밖으로 나왔다. 점심을 먹고 들어왔었는데 어느새 오후였다. 진아를 집에 데려다 주고서는 나 역시 집으로 향했다. 그 길 위에는 아마 몇일이고 더 머무르고 있을 서커스 천막이 있었다. 나는 잠시 차를 편의점 앞에다 세워두고 맥주를 사 마시며 그 붉은 빛 천막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정말 꿈이었을까? 막의 뒤에서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꿈틀거리며 나오는 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서커스의 재미였다. 막 뒤에서 누가 나올까, 뭐가 나올까. 하지만 그것은 내 꿈 속에서 엄연히 공포로서 그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내 어릴 적 기억은 단지 순진무구했던 시선으로 채워져 있던 것일는지도 모른다. 미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다만 신기하게 바라보며 즐길 뿐.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 모두가 두려워진 것일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란 그 얼마나 기괴한 것들 뿐인가! 그러나 어쩌면,

 어쩌면 막 뒤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어둠의 실체는 사실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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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글 판번한엽대(..)에 냈었던 글입니다. :D
나중에 판과대 끝나서 퀴곤님의 평도 들어보고 싶으면 여기다 올리면 되는 건가요? u ///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