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깔려 일하는 과학자란 참 고달픈 직업이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물론 난 과학자가 아니니까 얼마나 힘든지 자세히는 모른다.

“내가 거짓말 하는 거 봤나?”

하지만 적어도 과학자의 조수로써, 그게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명확히 알 수 있지.

“잘 들어. 요즘 우리 회사는 꼴이 말이 아냐. 주식은 하락세를 타다 못해 회생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소비자들 사이에서의 인식도 최악이야. 거기다가 일개미 놈들은 월급 인상이니 뭐니 요구가 너무 많다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정말….”

요로코롬 진지하게 헛소리를 늘어놓는 재주꾼의 비위를 맞춰줘야 하거든.
여기 이 말더듬이가 바로 우리의 최고위 상사란 작자다.

“파산이요?”
“그래, 파산!”

각도기로 잰 듯, 깍듯하게 허리를 굽실거리며 장단을 맞춰주시는 박사님.
언제 봐도 비위 하난 끝내주게 좋으신 분이다.

“이러다간 우리 회사는 끝이야. 이대로는 안 돼. 타개책이 필요하다고. 알아? 새로운 것. 기발한 것. 신상품으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어야만 해.”
“그, 그렇죠.”

저렇게 정신없이 싸돌아다니며 말을 싸지르는데도, 곧게 뻗은 정장엔 주름 하나 없다는 게 참 신기라면 신기라고 할 정도로 신기하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 지금까지 아무도 만들지 못한 것.”

사장은 ‘잘 알았느냐?’ 라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마주친다.

“그게 바로 타임머신이야.”

타임머신.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오는 기계로,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다.
타임 코스모스, 타임 리퍼 등의 아종이 있다.

저 인간도 참.
오늘도 헛된 망상으로 박사님을 괴롭힐 작정인가 보다.

말로는 뭘 못하리?
입만 나불대는 걸로 만사가 해결된다면, 난 이미 신세계의 신이 되었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요, 사장님. 시간여행이란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해?”

아, 불쌍한 박사님.
이 사람 앞에선 저런 주옥같은 설명조차 한낱 개 짖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는 건 미리부터 학습하셨을 거다.

“그건 시간이란 일종의 좌표 값이 저장된단 가설을 믿는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문으로….”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셨겠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더 망상을 품을지 모르니까.

“그만! 그만! 자네의 불가능 논리 따윈 집어쳐!”

그래도 보통은 이 정도에서 끝나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니,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자네는 무슨 신이라도 되나? 그럼 좋은 해결책이라도 내놓게!”
“아니, 그게….”
“이봐, 자네가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만큼이나 열을 올리는 걸 보면, 정말 이 회사가 망할 때가 되긴 했나보다.
하긴, 사장의 얼굴이 저렇게 땀으로 젖은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이번 일엔 회사의 사활이 달려있어. 이게 마지막 도박이라고. 잘되면 모두 부자 되는 거고, 못하면 다 같이 망하는 거야. 모두가 길바닥 인생으로 전락할 뿐이라고! 이제 이해가 되나?!”
“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박사님.
정말 애처롭단 생각이 드는 광경이었다.

“자, 이게 우리의 마지막 자금일세.”
“이게 다, 말입니까?”
“그래.”

사장이 탁자 위에 올린 가방을 열자, 눈으론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달러화들이 보였다.
일, 십, 백, 천…, 이게 다 얼마야?
하지만 박사님은 조금 실망한 눈치다.

“그러니까, 이게 회사의 마지막 지원금이란 거죠?”
“미안하네. 이 100만 달러가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일세.”

사상 초유의 프로젝트에 고작 100만 달러의 연구비라니….
일반적인 프로젝트라면 몰라도 저런 현실성 낮은 요구를 하는 대가론 한참 모자라다.
박사님도 도저히 입을 다물지 못하신다.
연구소를 떠나 기업으로 들어온 이유가 부족함이 없는 연구비 때문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거라 생각하진 못하셨겠지.
그런 우리에게서 도망치려는지 사장은 황급히 일어났다.
우리가 한동안 정신 차리기 힘들 신선한 충격을 남기고, 유유히 사내 연구실을 떠나갔다.

“기한은 2주일일세.”

정말이지, 평소에도 사장에 대한 감정이 좋진 않았다만,
오늘만큼 저 또라이를 저주했던 적도 없는 거 같다.



“이거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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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명 - 힙노 타입머신
연구인원 - 조수를 포함해 8명
연구비 - 100만 달러
기간 - 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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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
“정신에 관여한단 의미입니다.”
“그걸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단 소린가?”
“네.”

뻔할 뻔자인 명목상의 계획서.
저기에서 새로 적을만한 건 오직 이름뿐이었다.
사장에게서 그 막무가내 계획을 하달받은지 5시간도 안 되어 제출된 박사님의 계획서다.
저 얼간이는 그걸 제대로 읽지도 않았을 게 뻔하지만.

아무도 믿지 못할 거다.
정말로 저런 처절한 환경에서 이런 꿈같은 계획을,
그것도 고작 8명이 단 2주일 만에 현실로 이뤄 내다니…….

덕분에 박사님과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고,
우릴 제외한 연구원들은 죄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은 그걸 갚고도 엄청나게 남는 일이다.

시간 이동이라니.
과학계에 일획을 그을 위대한 업적이 아닌가?
영화에서만 보던 실로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

완성된 기계를 눈앞에 둔 사장은 정말 복권에 당첨된 사람 같았다.
한 10분 동안은 바보처럼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던 거 같다.

“역시, 난 자네가 해낼 줄 알았네.”
“과찬이십니다.”

함박웃음을 머금고 박사님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장이 썩 불쾌했다.
저래놓고 뒤에선 어떻게 하면 성과급을 덜 줄까 고민하겠지.
간사한 인간.

“이게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가는 기계란 말이지?”
“그렇죠. 한번 시승해보시겠습니까?”

박사님의 자신 넘치는 권유에 사장은 대단히 만족한 듯하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그럼 난 인류 최초로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건가? 하핫!”

박사님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사장의 대답을 피하며, 그의 기름진 머리통에 헬멧을 덮었다.

“응? 이건 뭔가? 꼭 라면 라이더 같구만.”
“…이건, 그러니까…, 귀환 장치, 귀환 장치입니다. 지금이 언제인지를 기록해두는 겁니다. 이게 있어야 과거나 미래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 있는 겁니다.”
“오오, 그래. 왕복 티켓이란 소리군?”

회사가 되살아난단 기대에 잔뜩 들뜬 심정이야 십분 이해한다만,
저 인간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자기가 모르모트가 되었다는 걸?
물론 조그만 쥐 몇 마리 정도로 사전에 실험하긴 했지만, 그래도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갈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법인데…….

“그럼 과거 여행 한번 다녀오시렵니까?”
“그거 좋지. 시대는 그래, 백악기가 좋겠군. 난 티렉스를 보고 싶으니 말야.”

에이, 아무렴 어떠냐?
자기가 좋다는데.
저 싫으면 평양 감사도 그만이라지.

“예, 백악기로 하겠습니다. 단지…,”
“단지?”
“한 가지 명심하셔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뭔가?”
“사장님이 어떤 경험을 하시든, 그게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어느 누구도 그걸 눈치 채지 못할 겁니다. 아무리 설명하신다 한들 이해하지 못하겠죠.”
“영화 센드 백 투 더 퓨처 말인가?”
“잘 아시는군요.”
“알았네. 그럼 어서 시작하게.”

저리 건성건성 대답하는 꼴을 보면 좀 시답잖기도 한데, 별로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르지.
과거의 내가 바뀐다면 현재의 나도 바뀌겠지만, 난 그걸 인지할 리가 없으니까.
물론 저 띨띨이 때문에 변화가 생긴다는 게 좀 억울하긴 하다만.

“그럼 갑니다, 셋, 둘, 하나. 고!”

옛날 만화에서나 볼 줄 알았던 버튼을 누르시는 박사님의 손길엔 한 치의 주저도 없었다.
그만큼 이번 시험운행이 안전하리라 믿으셨던 걸지도 모르지.

“우오오오오오!”

사장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부들거리는 모습을 보면, 기계는 돌아가는 것 같다.
아직 사장이 현재를 떠나지 못한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박사님의 느긋한 태도를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조수인 내가 박사님의 뜻을 알겠어?
그런 심정으로 기다려보기로 했다.
사실 지금까지 박사님 말대로 해서 손해 본 일은 별로 없으니까.


5분,
10분,
20분이 지나도 사장은 의자에서 덜덜거릴 뿐이다.

“저, 박사님,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요?”
“걱정 말게. 예정대로 잘 흘러가고 있으니.”
“하지만 20분째 저러고만 있잖아요. 과거로는 언제 떠나는 거죠?”
“지금.”

박사님의 대답은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야 난 그 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도 지금 한순간이지.”

박사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계의 진동이 멈췄다.
사장은 지금 한순간 과거로 떠났다가, 이 순간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의 머리에서 땀에 젖은 헬멧을 벗겨내며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세요?”
“아니. 아니지. 괜찮지 못해.”

실험은 실패인가?
이 인간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
어디 머리에라도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긴급번호를 호출할까 싶었다.

“당연히 괜찮지 못하지. 난 백악기에서 30년을 살았네.”

30년이라고?
시간의 틈을 빌리면, 우리의 찰나가 그에겐 30년이란 세월이 된단 말인가?
이건 무슨 시공간의 방도 아니고…….

“인류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머나먼 과거, 백악기. 그곳에서 난, 공룡의 모든 것을 보았네.”

어찌됐건 일단 제정신이긴 한 거 같으니 안심이다.
실험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사람이 있단 소문이 퍼지면 그날로 연구원 생활은 끝이잖아.

“트리케라톱스 뿔이 몇 갠지 아나? 3개라네. 원래 1개였는데, 내가 2개 더 달아줬지. 프테라노돈은 뭐 먹고 살았게? 물고기를 먹고 살았지. 풀 뜯어먹는 모습이 불쌍해서 물고기를 잡아줬더니 좋아하더군.”

아니, 아직은 모르겠다.
이런 당연한 사실들이 꼭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처럼 말하고 앉았다.
그럼 언젠 트리케라톱스 뿔이 1개였고, 익룡이 풀 뜯어먹고 살았단 소리야?
싱거운 사람을 다 봤다.

“아, 그래. 자네들은 알 수 없다고 그랬지?”
“그렇죠. 저희들은 알 수 없습니다.”

꼭 저 미치광이의 말이 맞는다는 듯이 맞장구치는 박사님.
아무리 상관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아부할 필요는 없을 텐데….

“하하하하, 고맙네. 자네들이 이 회사를 살렸어. 자네들은 영웅이야!”
“영웅은요. 사장님이야말로 과학의 동반자시죠.”

그렇게 부추겨 세우는 사장과 적당히 아부하는 박사님의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마치 둘 사이에 거울이라도 마주세운 듯이…….



그러고 보면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다.
희대의 연구가 성공한 날인 동시에, 희대의 실험 또한 성공했으며, 평소엔 보기 힘든 이상한 광경만 골라 목격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 기쁜 날 어찌 그냥들 보내겠냐고 손을 잡아끌던 사장의 모습도 보기 힘든 것이었지만, 공짜 술을 마다하는 박사님의 모습 또한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그럼 들어가보게.”
“편히 쉬십시오.”

사장에게 손을 흔들고 우리의 원룸으로 귀가하는 길에, 문득 박사님의 등을 응시했다.

“박사님, 사장님은 정말로 과거를 보고 오신 건가요?”
“내가, 타임머신이란 말을 꺼낸 적이 있던가?”
“네?”
“난 타임머신을 만든 적이 없네.”

그 대답은 의외였으되, 난 놀라지 않았다.
오늘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만든 기계는 뭡니까? 힙노 타임머신이요.”
“띄어쓰기 실수라네. 사실은 힙노타입 머신이지.”
“타입 머신? 타임머신이 아니라 타입이요? 설마, 최면을 거는 유형의 기계란 뜻입니까?”

박사님은 그 대답 대신 맞질문을 던지셨다.

“자넨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믿나?”
“네? 네, 아뇨. 아닐 거 같네요.”

솔직히 털어놓자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2주 전 박사님의 대답은 그러하지 않았던가?

“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네. 이 세상은 흘러가는 강물 같은 거야. 분자 하나하나가 모여 흘러가되, 그 물줄기가 너무 거세기 때문에 분자 한둘 모은 정도론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지.”
“분자 둘이 하나를 떠받치고, 넷이 둘을 떠받친다면 조금이라도 거스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무의미해. 전체를 되돌리지 않는다면 이미 과거라 부를 수 없지. 그것 또한 예정된 현재에 불과한 거라네.”

하지만 세상 전체를 되돌린다면 나 스스로 또한 과거로 되돌아간단 의미가 아닌가?
나로선 납득하기 힘든 상상인데, 최소한 힙노 타임머신이 없다는 건 확실하군.

“우리가 만든 게 힙노 타임머신이 아니라 힙노타입 머신이라면…,”
“말 그대로 세뇌기계의 한 종류에 불과하지. 자재비 다 합쳐서 1만 달러도 안 나오는 싸구려 세뇌기계.”

그건 몇 년 전에 개발된 기계로 맘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놈이다.
초기엔 가격이 상당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보다시피 상용화가 됐지.

“사장님을 속인 거군요.”
“계획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제놈의 잘못이지.”

사장의 평소 행동을 보면 할 말은 없지….
계획서에 욕이나 주구장창 써놔도 모를 인간이니깐.

“게다가 뭐, 사장도 우릴 멋대로 착취했으니까. 피장파장이지.”

오, 맙소사.
설마 근면성실하기로 유명하신 박사님이 사기를 칠거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거다.
사장은 그야말로 끝까지 부려먹으려다 뒤통수 맞은 격이겠군.

“하지만 박사님, 만약 사장님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고르셨다면요?”
“문제없어. 과거를 골랐던 걸로 세뇌시키면 그만이지.”

어찌 되든 사장은 물먹을 수밖에 없었단 소리다.
이쯤 되면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이미 특허가 난 세뇌 기계를 특허청에 신고했다가 망신만 당하겠지.
평소에 우릴 그렇게 못살게 굴던 사람임에도 조금은 측은한 맘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빨리 안 오고 뭐해? 오늘은 호화롭게 한상 차려보자고.”
“아, 예. 갑니다.”

나를 이끄는 박사님의 목소리에 뭘 먹을지에 대한 진지하지 않은 토론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내일은 지구본을 좀 돌려보는 게 좋겠군.”
“망명하시려고요?”
“범법도 아닌데 뭐가 겁나서? 그냥 돈도 생겼겠다 여행이나 가보자는 요량이지.”

굳이 따지자면 범법은 아니지….
최소한의 양심과 한 인간에 대한 감정이 티격태격할 뿐이다.

“자넨 어디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나?”
“글쎄요. 필리핀? 예전부터 가보고 싶긴 했어요.”
“아, 거긴 치안이 좀 별론 거 같아. 자네, 죽순 먹고 싶지 않나? 가는 김에 팬더도 보고.”
“인조 죽순이나 팬더 인형이 아니라면 좋겠네요.”

한명이 제안하면, 다른 한명이 거절하고.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내일 우리가 어디 있을진 명탐정도 모를걸?
적어도 출근시간에 맞춰 허둥지둥 넥타이를 매는 모습은 보지 못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