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외진 곳의 라이브 바=

밤시간이 되면 사람은 돌아다니지 않고, 오직 불이 켜진 조명 아래에 하루 일에 지친 노동자들이 모여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나가는 그런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일상이다. 골든 브릿지, 케이블 카, 러시안힐같은 관광지만이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관광객들을 맞이하다가 지쳐버리는 웨이트리스, 쉬는 날 없이 해산물을 공급해야하는 트럭운전사, 배 만드는 거라면 지긋지긋한 소규모 조선업 노동자도 있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환경미화원, 우체부, 경찰 아저씨…

그런 사람들이 힘들고 지치면 어디로 가게 될지는 뻔한 것 아닌가? 관광객들은 클럽에 모이겠지만, 이런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다른 곳의 사람들과 다를바 없다. 기분 좋게 마시는 것도 아닌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술을 마시러 온 사람들끼리 모이는 이런 후줄근한 바에서 철지난 주크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우울한 선율에 맞춰 싸구려 술을 홀짝 해야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한참 술을 마시고 있다보면 가수를 꿈꾸는 이 바의 웨이트리스가 중앙 무대로 올라와서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부르곤 한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든 당신에게 아내는 항상 잔소리를 해대지만 자기는 이해해준다는 노래였다. 컨츄리 음악은 이런 식으로 사회적 약자, 육체 노동자들을 달래는 그런 힘이 있어서 좋았지만, 그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감미로운 멜로디라도, 아름다운 목소리라도, 부드러운 가사라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웬일로 오늘은 웨이트리스가 중앙 무대 의자에 앉아서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같은 익숙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노래는 사람이 죽는 이야기, 우울한 이야기, 달밤에 사라져간 거물을 노래하였다.

자기가 직접 만든 노래도 아니었고, 그렇게 분위기에 맞는 노래도 아니었지만 그날은 많은 사람들이 따라불러 주었고, 노래가 끝났을 때도 손님들은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다. 남의 노래를 불러서 받은 환호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호응을 받은 웨이트리스는 그날 밤 기분이 좋았다.

새벽에 집에 돌아갈 때 괴한을 만나기 전까지는…

새벽녘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기타 하나 등에 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날 따라 바람은 왜 그렇게 추웠고, 달은 왜 그렇게 밝았는지… 되도록이면 무섭지 않게 불 밝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불 밝은 곳도 그다지 안심이 되지 않던 차에 가로등의 빛이 닿지는 않지만 달빛이 닿은 그림자 속에서 총을 든 사람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무슨 일일까? 돈을 달라는 거라면 지갑의 것을 모두 줄 수도 있었다. 기타만 상하지 않는다면 저항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진정하고 두 손을 들고 상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거리를 두던 차에 갑자기

‘탕!’

그림자 속의 괴한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고, 그녀가 정신이 붙어 있는 동안 총소리가 몇 번이 났는지 세면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여섯 번의 총성이 난 후 괴한은 자리를 떠났고, 상처를 감싼 손에 끝도없이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낀 그녀는 누운 채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끝도없이 아팠지만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자기의 최고의 순간이 떠 올랐다.

남의 노래로 갈채를 받았던 순간.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 것이 창피한 일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처음으로 관객들과 하나가 되었던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부른 노랫말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the last that ever she saw him
carried away by a.... MOONLGHT 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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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광등이 번쩍 번쩍한 오클랜드 105 번가 여명이 막 밝아오는 차에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이 덜 깨야 할 얼굴이 추워서 얼어붙어가고 있다. 정말 새벽 5 시에 죽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죽는 건지.

안그래도 밤에는 사람이 팍 줄어 신문배달부들도 차를 탄 상태에서 신문만 던지는 동네에서 새벽에 무슨 생각으로 돌아다녔는지, 권총 살인 사건이 일어나버렸다. 현장을 지키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이 거리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해가 뜨려는지 점점 파랗게 밝아지는 하늘하며, 슬슬 아침운동 차 두 셋이 모여서 조깅을 하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은 곧 구경꾼으로 바뀌기 마련이었고, 길거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때문에 가십기자들도 모여들곤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거리야. 사람들 다 ㅉㅗㅈ아내고 현장 보존해. 피해자는?”

일단 인파를 헤치고 사고 현장에 다가오자 이미 카트 위에 올라있는 바디백에 바닥에 흥건한 혈흔이 먼저 눈에 띄었다.

“올리비아 샌튼, 27 세. 여기에서 한 블록 떨어진 로그 캐빈이라는 바에서 일하는 처자 입니다.”

나의 부관인 짐 레이, 33 세. 그다지 똑똑하다기보다는 일을 성실히 하는 친구로 인식되고 있다. 아마 이 친구도 나처럼 10 년이 흐르면 반장을 달게 되겠지만 그 건 칭찬이 아니라 욕에 가까운 거지. 이 나이에 아직까지 반장이라니.

“사인은 어떻게 되나?”
“총을 맞았어요. 모두 여섯발이었죠.”
“탄환은 회수되었고?”
“최대한 찾아보고 있습니다.”
“탄피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수거해 갔거나 회전 탄창식 권총인 것같습니다.”
“여섯발이라… 아마 그렇겠지.”

정말이지 악취미다.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 여자를 죽인 걸까? 그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알아봐야할 일이다. 하지만 왜인지 묘한 느낌이다.

105 번가(hundred and five)… 6 번 피격 (shot 6 times), 그리고 새벽 네시(4 A.M.) 마치 이 건 짜 놓은 것같은 느낌이다.

“혹시… 자네 옛날 노래 좀 아나?”
“옛날 노래요? 갑자기 웬?”
“그녀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달빛 속에서 사라져갔네…”
(the last that ever she saw him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마지막에도 걱정하며 경고했지, 그는 달빛 속으로 사라져갔네.”
(he passed on worried and warning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자네도 이 노래 아나?”
“네. 어제 들었는 걸요.”
“그래? 섬뜩한 걸. 어디서 들었나?”
“어제 로그 캐빈에서 피해자가 무대에서 부른 노래입니다.”

세상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이 상황이랑 딱 맞아 떨어지는 노래가 떠 올랐는데. 그 노래를 피해자가 죽기전에 무대에서 불렀다고? 점점 괴담이 되어가는데.

“자넨 그 걸 어떻게 알았나?”
“저희 집이 이 근처거든요.”
“자네… 매그넘… 6 발 짜리지?”
“…… 지금 절 의심하는 겁니까? 그러는 팀장님도….”

미안하지만 내 총은 글록이라네 가슴 아래에 차 둔 권총을 살짝 그에게 보여주자 살짝 기분이 상한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농담이니까 신경쓰지 마. …… 그런데 새벽 네시에 어디 있었나?”
“팀장님! 집에 있었습니다! 됐어요?”
“그 걸 증명해줄 사람이 있나?”
“으이구!!!!!”

결국 나의 부관이 날 버리고 도망간다. 잡아야 하나?

“워락, 자네가 나왔나?”

안면이 있는 감식조 경사가 보인다. 뭔가 있나 알아봐야지

“아이쿠, 이거 혈액 샘플 갔다놔야하는데.”

아는 척을 하는데 왜 도망가는데?

“이봐, 이봐, 나 좀 봐달라고. 워락! 워락! 에이드리아안, 에이드리안!”

에이드리안은 먹혔나보다. 마치 록키의 한 장면처럼 목소리를 이상하게 내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서서 나에게 다가오는 그는 뭐라고 따질 것처럼 하고 다가오더니 분노를 한웅큼 삼키고 최대한 냉정하게 말했다.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 무슨 일입니까?”
“뭐 나온 게 있나?”
“나온 게 있겠습니까? 깔끔한 권총 살인입니다. 목격자도 없고, 흘린 단서도 없고, 피해자가 쓰러져 있고, 피가 흘렀고, 범인은 그냥 사라졌죠.”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겠군. 그럼 감식조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없다 이 건가?”
“피해자 시신에서 탄환이 나오면 탄조흔 검사 해봐야죠.”
“글세. 여긴 뒷골목이잖아. 총주 추적해봐야 딴 놈한테 팔았겠지.”
“그럼 조져야죠.”
“그러니 딱히 이 현장은 보존할 필요 없다 이거지?”
“네, 저흰 철수할 거에요.”
“알았어. 뒷정리는 내가 할테니까 들어가.”

하여튼 귀여운 친구다. 불만이 많은지 얼굴이 부어오르는 게 귀엽다. 아랫사람들 괴롭히는 게 재밌으면 안되는데 말이지.

“자, 현장 철거하고, 들어가서 마저 자야지. 폴리스 라인 걷고 해산들 해요.”

박수를 짝짝 치면서 상황 종료를 알리자 감식조는 물론, 현장 보존을 위해 입초를 서던 유니폼 경관들도 폴리스 라인을 걷고 차에 들어가 이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렇게 분주하던 살인사건 현장에 경찰들이 빠져나가고나니 정말 사람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경찰들이 빠지니 기자들도 빠지고, 구경꾼들도 빠지고, 그래봐야 현장에 남은 것은 흥건한 혈흔 뿐이었으니 볼 것도 없긴 하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뭐하냐?”

그렇게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면 허무함 속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면 딱 좋은데… 왜 저 녀석이 여기 버팅기고 서있는 거야?

“살인사건 났다잖아요.”
“그래, 술집 아가씨가 하나 죽었지. 그런데 너 여기 왜 있냐니까?”

여기 네가 왜 있어?

“조사해야죠.”
“그러니까 네가 조사를 왜 해?”
“그야 경찰이니까….”
“잘 들어. 난 샌프란시스코 경찰이고, 넌!!!!”

FBI 미결과에서 파일이랑 씨름하는 연구직 너드(Nerd)란 말이야!

새벽의 살인현장을 다 치우고 나니까 결국 이 거리에 남은 거라고는 이 도시의 평화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사회정의를 세우는 샌프란시스코 경찰과 FBI 나부랭이 소피 마리아 이렇게 둘 뿐이 되어버렸다.





=샌프란시스코 경찰 본부=

간만의 살인 사건 덕분에 또 강력반은 발칵 뒤집어졌다. 아무리 새벽이라고 해도 길거리 한 가운데에서의 총격이라니, 관광도시로써는 치명적인 사건이니 시장에서부터 경찰서장까지 줄줄이 내리 까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침 회의를 다녀온 그린 경감의 얼굴도 그다지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요? 서장님이 못 살게 굴어요?”
“아침부터 재수없게 귀신 면상 들이대지말고 너도 일하러 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원래 관할이 겹치는 기관끼리는 그다지 사이가 안 좋아지기 마련이지만 그린 경감과 나는 인연이 있는 편이다. 내가 보조 순찰대원을 하고 있을 때, 내 뒤를 봐준 경찰 아저씨였고, 이 지역사회의 일꾼이 되어서 자신의 충실한 부하가 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기대를 배신하고 FBI로 날아가버렸으니 그가 날 싫어하는 것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해해주는 것도 아니다.

일단 나도 FBI니까 그 곳에서 일할 것이 있긴 하지만 원체 할일 없는 부서라서 심심한 것도 있고…

“오늘 월차 냈어요.”
“어디 아파?”
“그날이거든요.”
“………… 미치겠구먼. 2 층 화장실은 덤보롤 휴지에, 생리 중인 FBI라니. 그래서? 하프 두장 주랴?”
“필요 없어요.”

솔직히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라 조금은 더 실질적인 사건이다. 지난 번에 살짝 맛을 본 현장의 느낌이 괜찮아서 나도 현장직으로 옮겨졌으면 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부서도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일이 십년에 한번 될까? 왜 그렇게 데이브가 현장에 집착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런 변덕 때문에 월차를 썼다고 그린 경감에게는 차마 말을 못하고 있었다.

“따라와.”
“어디가는데요?”
“니가 보고 싶은 거.”
“네?”
“시체 말이야 시체!”

내가 보고 싶은 시체? 무슨 소린가 하고 2 초 정도 머리를 굴리다가 엄마인가? 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 결국 그가 조사에 참여하게 해준다는 소리라는 걸 깨닫고는 내 얼굴이 확 펴졌다.

“경감님… 경감님은 입 꾹 다물고 그렇게 쿨하게 나오면 정말 멋진 거 알아요?”
“내가 좀 멋져.”
“입 다물라니까요.”

결국 이 것을 마지막 대화로 하여 지하실로 내려갈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턱턱 걸어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층에 다다랐을 때. 지상과는 달리 약한 조명 덕분에 약간 어두운 복도에 유난히 유리창 너머로 번쩍 번쩍 거리는 방이 눈에 띄었다. 아마 지난번에 내려왔을 때엔 뭔가 꽝 터지는 방이었더랬지? 이번에는 경감님도 신경 안 쓰는지 애써 모르는 척하는지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검시실로 들어갔다.

“샘, 뭔가 나온 거 있나?”

문을 열자마자 뭐가 있는지 찾는 그린 경감을 멀뚱히 쳐다보는 수염 늙은이는 시체 앞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바트 톰슨 인형 나왔다네.”

그는 샛노란 사람 모양의 인형을 흔들어 보이더니 햄버거를 마저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시체 앞에서 식사를 하세요? 그 것도… 해피밀을요?”

장난감을 받을 걸 보니 어린이 세트인 것같다.

“자네도 나이가 좀 더 들면 빅맥같은 쓰레기를 왜 만들었나 싶을 거야.”

요즘 들어서 못 알아듣는 소리가 많아져서 큰일 났다.

“이제 많이 못 먹는다는 소리야.”

그린 경감의 귀뜸을 듣자 이해가 바로 되었다. 하긴 다이어트 용도로 어린이 버거를 먹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글세… 다이어트를 할 생각이라면 기름기 많은 메가 사이즈 미에 나옴직한 버거를 먹지 않아야 정상 아닌가?

“손주 갖다 줄 장난감도 생기고 좋잖은가?”

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핑계는 거짓말이다. 그는 톰슨 DVD를 시즌 별로 소장하고 있는 너드일거라 확신한다. 요즘 애들은 톰슨을 별로 안 좋아하고 나루터같은 일본 만화 영화만 본다. 정말로 애들을 위해서 였다면 해피밀 인형으로 최근 광고하고 있는 바스켓 몬스터를 받아왔어야했다.

“천천히 드세요. 카르테 좀 볼게요.”

노의사의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가 계속 앉아있게 권했지만 그래도 상황은 궁금했던 터라 부검대 위에 놓여 있는 카르테를 잡으려 했는데 갑자기 손등을 딱하고 내리치는 노의사의 방해 덕분에 빨개진 손등을 입으로 가져가야만 했다.

“남의 임무를 가로채지 말게. 하얀 수염을 기른 늙은이가 음침한 곳에서 시체와 함께 과학을 논한다면 그다지 유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야지.”
“괴팍하다는 뜻이야.”
“알고 있어요.”

노의사, 그러니까 전에 소개 받기로는 샘 레이 박사랬지? 입에 남은 것을 꾸역 꾸역 넘기더니 콜라 한 모금을 마신 후에야 한숨을 돌린 의사 선생님이 직접 카르테를 들고 일어나더니 부검대를 놓고 시신 너머로 이동하였다.

“끄억… 먼저 폭행 당한 흔적이 전혀 없어. 이 사람을 괴롭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거지.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에는 총을 너무 많이 쐈어. 고의적인 살인이지.”
“그 건 우리도 알 거든 우리가 모를 만한 걸 말해줘.”

나름 시신을 통해서 여러 가지 알아내려고 노력해 본 모양이지만 그린 경감이 원하는 것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총격을 맞은 부위가 하복부, 즉 성기와 가까운 부분이야. 하지만 여성혐오라든지 성범죄는 아닌 게 전혀 접촉도 아니었고, 힘으로 누른 흔적도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칼 좀 대 봤는데 보고서에는 이렇게 써 놨지.”

그렇게 말하면서 의사 선생은 카르테를 그린 경감에게 넘겨주었고, 그 걸 읽은 경감은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냥 말로 해도 되는 거잖아? 그 건 그렇고 정말 죽일 놈이네….”
“입에 담기도 싫었으니까.”

옆에서 듣는 사람 궁금하게 이 사람들 왜 이래!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임신 중이었대.”
“아마 살인범이 노린 건 이 아가씨보다는 이제 막 생명을 받은 10 주 가량이 지난 태아가 목표였나 보네. 아마 총탄을 여섯발이나 쏜 것은 자기가 가진 총탄을 모두 사용했던 거겠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죽인다고?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옛날 같았으면 테러리스트 인질범들도 임산부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아 그래, 탄환은 적출했나?”
“칼을 대자마자 탄환부터 빼놨지. 탄력있는 자궁 덕분에 관통하지 못했던 모양이야. 아니면 거리가 좀 있는 상태였든지, 옷에서 화약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거리가 최소 2 미터 이상의 거리였을테야.”

콩알같은 납탄이 들은 샬레를 들어서 경감에게 건네준 박사는 시신의 찢어진 뱃속을 더 뒤지기 시작했다.

“태아의 유체는 심히 변형되었지만, DNA 샘플은 손상없이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는 여자의 자궁 속에서 피로 얼룩진 살덩어리를 핀셋으로 집어 내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착상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야. 사람의 모양을 갖추지도 못했군.”

그나마 그 것도 탄에 맞은 듯 거의 너덜 너덜 거렸다. 저 게 사람으로 성장했어야 한 거라고 생각하면 목 잘린 시체 앞에서도 당당했던 나조차 구역질이 올라올 것같았다. 그에 비해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의사 선생은 콜라를 마셔서 그런지 트림을 끄윽 끄윽 하고 있다.

태아의 유체를 샬레에 넣고 봉한 후 그 위에 견출지로 피해자의 태아 유체라고 쓰고 ‘DNA 검사 필요’ 라고 적은 후 그린 경감의 손 위에 올려 놓았다. 결국 그린 경감은 한 손에는 카르테, 또 한 손에는 탄환과 태아의 DNA 샘플을 들게 되었다.

“이제 가도 되나?”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는데 말이지.”
“뭔데?”
“이 자식 꼭 잡아.”

경감은 대답 대신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하고 뒤로 돌아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박사가 날 불러 세웠다.

“거기 FBI 아가씨.”
“에? 네?”
“…… 아무 것도 아니네. 몸조리 잘 하게나.”

싱겁기는, 괜히 사람 붙들어 놓고 있어.

“그럼, 이 아가씨와 데이트 하게 자리 좀 비켜달라고.”

안그래도 갈 생각이었는데 그는 우릴 ㅉㅗㅈ아내기라도 하는 듯 그렇게 말했고, 포르말린 냄새가 몸에 배일 것같은 숨막히는 장소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기에 그린 경감보다 한걸음 먼저 앞서가 검시실의 문을 열었다.

그렇게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그린 경감을 먼저 내보낸 후에 그 뒤를 따라 나오면서 그의 손에서 제일 감당하기 편한 카르테를 옮겨 받으며 걸었다. 그렇게 지하 통로에서 그 옆 방인 분석반으로 넘어갈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석반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지난번의 그 폭탄을 터뜨린 연구원에게 DNA 검사 및 총탄의 출처를 알아봐달라고 요청한 후 카르테를 두고 나왔다. 보아하니 여기가 분석실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말하는 것 없이 ‘사고나 치지 마’라고 그에게 경고를 준 후 그는 그냥 분석실을 나와버렸다.

그렇게 1 층까지 올라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난 한마디 하고 말았다.

“알았어요. 그냥 말 해요.”
“샘이 네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
“왜요?”
“지난 번 네가 죽인 녀석 있잖아.”

리우 이야기 하는 거구나. 그거 다 끝난 이야기 아닌가? 심문 받을 거 다 받았고, 정신과 상담도 받았으며, 총도 돌려받았다.

“그 때 시신의 부검을 샘이 맡았거든. 그러더니 너한테 아무 일도 없었냐고 하더라고.”
“왜요?”
“몰라, 말 안 해줘.”
“그래서 뭐라고 대답해줬는데요?”
“내가 뭐라고 대답했겠어? 그냥 멀쩡하다고 그랬지.”

시신의 부검을 맡았었다고? 혹시 뭔가 건진 거 아니었을까? …… 뭐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쪽에서 모르는 척하고 있다면 이 쪽은 그저 고마워 해야하는 걸까나? 아니면 입막음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럴수가… 내가 지금 입막음이라고 했나? 이 거 점점… 누군가를 닮아가는 것같다.


=샌프란시스코 경찰본부 2 층 강력팀=

샌프란시스코 경찰본부 2 층 강력반으로 돌아오자 슬슬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어물쩡 11 시가 되자 서류 업무가 바빠지기 시작했고, 이번 사건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모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점은 데이브가 먼저 팀장 사무실에 들어앉아서 그린 경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왔나?”
“죄송합니다. 경감님. 우리 소피아 요원이 항상 폐를 끼쳐서….”
“사과는 됐네. 하루 이틀 일도 아니니까.”

보자마자 데이브는 사과를 하고 시작하고 경감은 아무 일도 아니네 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것도 내가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사과를 왜 하고 그러세요!”
“그야 당신이 새벽부터 경감님을 쫓아 다녔으니까 그렇죠. 왜 출근을 안하고 여기 붙어 있는 거에요?”
“월차 냈다고요.”
“그러니까 월차는 왜 냈냐고요!”
“그야 살인사건이….”
“샌프란시스코 경찰이 맡을 살인 사건이잖아요.”
“하지만 저도 관심이 있다고요….”

계속해서 말이 오고가자 그린 경감은 ‘그만 그만’하고 우릴 말리고 들어왔고, 결국 자기 책상에 앉은 채로 한숨을 쉬며 ‘거기 앉지 그래?’하면서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거야. 마리아 요원은 이 사건에 어떻게든 개입하고 싶어하니까 끼워주겠어. 하지만 대신 곤란한 일을 하나 맡아줘.”
“곤란한 일이요?”
“언제나 하는 거 있잖아. 피해자 가족을 만나고, 사망 소식을 전한 후 알아낼 수 있는 걸 알아내 봐.”

그 정도라면 못할 것도 없다. 게다가 말 잘하는 데이브가 옆에 있다면 무엇보다 안심이다.

“잠깐만요. 안돼요. 지난 번에야 우리가 목격 증인 자격으로 소환 되었으니까 관계없지만 사실 그 건 월권 행위에 근무지 이탈이라고요.” “과연 그럴까? 아직 언론에는 흘리지 않았지만 이번 총격 사건은 한 노래 때문에 일어난 사이코 범죄인 것같아.”
“노래요?”
“이 노래지.”

그러더니 그린 경감은 방안의 자그마한 스피커에 아이팜 MP3 플레이어를 꽂고는 음악을 재생 시켰다. 자그마한 스피커라고는 믿기지 않는 출력으로 시끌시끌한 술집의 소리가 나더니 자라랑 하는 기타 조율이 들려왔다. 아마도 라이브 바에서 부르는 라이브 음악인 듯 싶었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든 아버지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The last that ever she saw him,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He passed on worried and warning,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지금 한가하게 노래 들을 때에요?” “쉿!”

우 이런, 한가하게 노래를 들어야 하는 순간인 모양이다. 그린 경감은 손가락을 세우면서 내 말을 제지했고,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음악의 가사와 배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Lost in a riddle that Saturday night, (토요일 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사라졌네)
Far away on the other side. (저멀리, 이 곳과는 다른 곳으로)
He was caught in the middle of a desperate fight
And she couldn't find how to push through.

The trees that whisper in the evening,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Sing a song of sorrow and grieving,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All she saw was a silhouette of a gun, (그녀는 총의 그림자 밖에 보지 못했고)
Far away on the other side.
He was shot six times by a man on the run (그는 도망치는 자에게 여섯 번 발사했다)
And she couldn't find how to push through. (그녀는 어찌할바 없었지)

I stay, I pray (난 그 자리에서, 난 기도를 했지)
See you in heaven far away. (저 멀리 천국에서 만날 거라고)
I stay, I pray
See you in heaven one day. (언젠가는 천국에서 만날 거라고)

Four a.m. in the morning, (새벽 4 시에)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달빛 너머로 사라져갔네)
I watched your vision forming,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Stars roll slowly in a silvery night,
Far away on the other side.
Will you come to terms with me this night,
But she couldn't find how to push through.

I stay, I pray
See you in heaven far away.
I stay, I pray
See you in heaven one day.

Caught in the middle of a hundred and five. (105 번가에서 일어났지)
The night was heavy and the air was alive, (짙은 밤 찬 공기 속에서)
But she couldn't find how to push through.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Carried away by a moonlight shadow.
Far away on the other side.
But she couldn't find how to push through.

Far away on the other side.


노래가 다 끝나버렸다. 음율은 아름답지만 가사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사람이 총맞아 죽는 이야기를 아버지들을 위해 바치다니, 하여튼 가수들의 머릿속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예술이라는 것은 진리를 찾기 위한 논리적 접근이 아닌 직관적 접근인데. 그 직관적 접근을 위해서 마약을 하는 종족들이 가수라는 족속들이다. 오염된 방법으로 진실을 얻어봐야 멀쩡한 상태에서는 다시 진실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될텐데 그저 순간의 쾌락에 빠져버린 얼간이들이다. 그런 녀석들의 음악이 유행했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아마도 그런지) 사회 자체가 마약에 빠져 있던 시대였던 것같다.

“노래 다 끝났나요?”
“이 다음 노래가 좋은데.”

Humidity's risin' (습도는 오르고)
Barometer's getting low (기압계는 낮아져)
According to all sources (모든 정보를 따르면)
The street's the place to go (거리로 나와야겠네)

“됐거든요!”

노래 들으러 온 거 아니니까! 일단 아이팜의 정지 버튼을 누르자 더 이상 음악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노래의 이 다음 부분은 나도 살짝 듣고 싶은 기분이 들긴 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뭡니까?”

그나마 정상적인 데이브가 그린 경감에게 묻자 그는 사건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피해자가 사망한 곳이 오클랜드 105 번가에 총을 여섯 번 맞고, 사망 추정 시간이 새벽 4 시라는 거지.”
“게다가 달이 밝은 밤이었고….”
“하지만 토요일은 아니잖아요.”
“일요일 새벽에 죽었으니 범인은 토요일 밤에 집에서 나왔겠지.”

상황이 노래와 맞아 떨어진다는 건 알겠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게 뭐 어쨌다는 거에요?”
“방금 들은 노래가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자기가 일하는 바에서 부른 노래야.”
“그럼 용의자는 그 바의 손님일 가능성이 크군요.”
“게다가 불특정 다수이기도 하지. 상황에 따라서는 관광객일 수도 있고….”
“그 경우에 관할이 겹치는 일이 생긴다면 FBI의 일이 된다 이 거군요.”

보통의 경우 관할이 겹쳐도 FBI에게 죽어도 안 넘겨주려 한 그린 경감과는 다른 모습이다.

“경감님, 혹시… 경찰서에 불만 있어요?”
“…… 몰라 그런 거! 하여튼 수사에 참가하려면 참가 하도록 해. 안그래도 공문이 떨어지긴 했으니까.”
“공문이요?”
“시장 명령으로 전 경력을 동원하라지 뭐야? 여자애 하나 죽은 걸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이라니….”
“갱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닌 소시민이 죽은 거예요. 그 것도 임신 중이었고요.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잖아요.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도 된다고요.”

내가 콱 쏘아붙이자 그린 경감은 끄응하고 불편한 표정을 하였다.

“그건 나도 안다고. 어쨌든 지금 당장 알아낼 수 있는 건 신원 확인 정도겠구먼.”
“그 건 이미 해왔습니다.”

데이브가 조사를 해왔다고? 가슴 포켓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몇페이지 훌훌 넘기더니 하나 하나 읊기 시작했다.

“올리비아 샌튼, 27 세, 헤븐즈 에버뉴의 XX 번지에 거주하고 있고, 가족은 양친이 모두 계시고, 동생이 하나 있군요. 직업은 라이브 바, 로그 캐빈에서 웨이트리스 겸 라이브 가수로 일하고 있고요.”
“…… 월권이라면서 잘도 조사해놨군요.”

내가 여기 있는 거 가지고 흉잡으며 사과할 때는 언제고.

“현장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아직 식지 않았나보죠.”

그러면서 그가 날 바라보는데 시선이 뜨겁다. 뭐지 이 느낌은?

“에흠 에흠! 그럼 이 쪽은 로그 캐빈인가 하는 곳으로 가볼테니까. FBI 쪽은 가족들을 중심으로 해서 원한 관계 및 대인관계를 캐보시구랴.”
“아, 네.”
“그럼, 나가보죠.”

데이브는 내 등을 떠 밀며 경감의 사무실을 빠져나왔고, 싱글 싱글 웃으며 경찰서에서 나와버렸다. 그리고 차문을 열어주는 기사도를 발휘하면서 나를 차에 태우고는 내게 말했다.

“아침 식사는 했어요?”
“아니요. 아직.”
“그럼 아침 겸 점심이나 하죠?”
“아 그 거… 아점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데이브 약간 조증처럼 보이는 거 알아요?”
“왜요?”
“아까 날 보면서 싱글싱글 거리는 것도 그렇고, 지금도 왜인지 기분 좋아보이기도 하고….”
“글세요, 왜 그럴까요? 맞춰봐요.”

지난 번에 그 일 이후로 데이브는 내가 뭐든지 다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럼 어디 맞춰볼까?

“여자랑 같이 살죠?”
“네 맞아요.”
“아내가 돌아왔나보죠? 아니 그 건 아니에요. 그랬다면 싱글싱글 거리는 게 아니라 툴툴 거렸겠죠. 새색시가 집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 맞죠?”
“네. 맞아요. 하지만 그 것만으로 데이브가 이렇게 조증환자처럼 굴리는 없겠고… 이혼을 했는데 위자료 청구가 안들어왔군요.”
“왜 그런 것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 좀 보라고요!”

운전하면서 계속 번쩍번쩍 거슬리는 걸 이제 아예 내 눈앞에 들이대고 흔들어 대는 데이브의 모습에 나도 싱글싱글 거리게 되었다.

“그래서 뭐래요? 결혼하겠대요?”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뭐 따로 잴 게 있겠어요? 10 년동안 내 자식 키워주고, 데이트 한번 안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난 이혼한 홀아비고요.”

그 번쩍거리던 것은 다름 아닌 반지였고, 누군가에게 프로포즈하고 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불쌍한 홀아비는 사건 수사는 잘할지 몰라도. 여자 마음은 너무 모른다.

“그래서 대답도 듣지 않고 반지 끼고 기분 내고 있는 거에요?”
“왜요? 소피아는 아닌 것같아요?”

그러니까 내 이름은 소피고, 성은 마리아라니까. 이 사람은 그 두개가 헷갈리는지 소피아라고 부른다.

“전 잘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 누군가가 저에게 반지를 선물한다면 그 여자분처럼 면전에서 거절은 못하겠지만…… 그보다 도대체 어쩌다가 여자 관계가 그렇게 복잡해지신 거에요?”
“음… 헤븐즈면 이 쪽으로 틀어야겠죠?”

말돌리고 있는게 눈에 훤히 보이는 구먼. 애가 열 살이면 십년 전이란 말이지… 젊은 시절의 철없는 불장난일까?

“네네, 어쨌든 잘 되면 좋겠네요.”

하지만 내가 한 대답에는 잘 될 리가 없잖아 이 속편한 양반아 라는 뜻이 더 강하게 실려 있었다.





=헤븐즈 에버뉴 XX 번지, 샌튼 가=


집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 주택가의 한 집이었다. 보도 블록에서 바로 정문이 있고, 정문이 곧 거실로 통하는 도시 주택이었다. 대충 주택의 형태만으로도 직업과 연봉이 계산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부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자식을 잃은 사람이며, 슬픔에 빠진 부모들이다.

“XX 번지, 샌튼… 여기 같네요.”

집의 포스트 박스를 체크하여 집을 확실히 하였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려 하자 데이브는 내 어깨를 잡아 당겼다.

“소피아. 잠깐만요. 사람들과 만나는 건 제게 맡겨주세요. 그러니까 소피아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네 무슨 소린지 알아요.”

이렇게 화장 두껍고 시커먼 여자는 신뢰감을 조성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전혀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모양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도 나름 고집이다.

<찌이이익> 소리가 나는 초인종을 누르자 눈물 범벅이 된 아주머니의 얼굴이 살짝 나오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것을 보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먼저 데이브가 들어가고, 그 뒤를 따라 들어가자 어딜가나 똑같이 맡아지는 냄새가 느껴졌다.

우릴 맞이하기 위해 테이블에 앉아 괴로워하는 아버지, 그래도 손님이 왔다고 대접을 하려하는 어머니…

“아니 됐습니다. 몇가지 여쭤보고 돌아가겠습니다.”

차라도 내오려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한 데이브는 그녀도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슬픔에 빠진 그들에게 최대한 고통을 덜 주고자 고민하는 눈치도 보였다.

“정말 일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입니다. 확실한 것은 따님은 죄없이 희생된 피해자이며, 저희 경찰들은 반드시 범인을 잡아서 처벌하겠습니다.”

이게 경찰이 해줄 수 있는 몇안되는 위로의 말이다. 저걸로 자식 잃은 슬픔이 코딱지만큼이라도 위로가 될까? 나도 경찰이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순 없다. 단지 그 것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대답일 뿐이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요? 우리 아이가 확실한가요?”

이런 이들에게 잔혹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엔 내가 가방을 뒤져서 사진을 한 장 꺼내 그들 앞에 꺼내 놓았다. 최대한 구겨지지 않게 수첩 사이에 끼워 놓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는 부검실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는 여성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딱히 외상이 없었기에 알아보는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에 찍은 사진입니다.”

그 사진을 그들에게 내밀자 자식의 죽음을 비로소 완벽하게 인식한 두 부모는 억장이 무너지는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도 울고, 아버지도 울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그런 겁니까. 내 잡아 죽여버리겠어!”

아버지 쪽은 흥분해서 주먹을 꼭 쥐었고, 어머니 쪽은 그런 남편의 한쪽 팔에 매달려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진정하세요. 이제부터 저희가 잡아서 반드시 처벌받게 하겠습니다.”
“어떤 놈인지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
“지금 수사 중입니다.”

목표를 잃은 분노가 어디로 튀어야 할지 모르는 피해자의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분노를 삭여 보았다. 아마 그의 생각같아서는 경찰들에게 쏘아 붙이고 싶은 거겠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수사 중이다 이거죠. 네… 네… 놈을 잡을 수 있다면 뭐든지 도와주겠소.”
“감사합니다. 소피아.”

일단 사람 달래는 건 다 나한테 시켜놓고 그 다음은 내 차례다 이거지. 하긴 정작 데이브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기껏해봐야 피해자 신원 정보 정도였겠지. 그럼 이쪽에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혹시 따님과 원한 관계가 있었던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요, 우리 애는 그러니까 술집에서 일하긴 했지만 사람들이 다들 좋아했었소,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천사와 같은 사람이었겠죠.”
“어디 돈이 급하게 필요했거나 그런 일은 없었나요?”
“아니요. 전혀요. 물론 풍족하진 않았지만 마땅히 욕심을 부릴 일도 없었어요.”

기타 하나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이건가. 하지만 이 사람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는지는 별도로 해야한다.

“남자 친구는 있었나요?”
“아니,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남자 친구가 있을 리가 없죠.”

피해자 아버지의 부정적인 답변에 어머니는 그 말을 다시 고쳤다.

“남자 친구가 있으면 술집에서 일할 수 없다고 사장이 그래서 전혀 남자와 교제를 할 수 없었어요.”
“…… 혹시… 따님이 임신 중이라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이 걸 물어도 되는 타이밍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거라서 일단 저질러버렸다. 그러자 두 부부는 충격을 받은 듯 잠시 얼어버렸지만 그 것이 그다지 큰 충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하였다.

“그렇군요. 올리비아에게 형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디 사는지는 아시나요?”
“혹시 마이크에게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냥 조사의 과정일 뿐입니다. 어디 사나요?”
“그 애는 집이 없수다. 무슨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의료원같은데에 들어갔으니까요.”
“의료원이요?”
“시설이예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해주고 약도 받아다 주는 곳이지요. 남편은 기껏 의대까지 나와서 취직은 안하고 그런 곳에서 봉사활동하는 게 못 마땅한가 봐요. 주소는 가르쳐드릴게요.”

피해자의 어머니는 내 수첩의 빈페이지에 대고 주소를 하나 적었다. 그런데 습관인지 주소를 두개나 적어버렸다. 하나의 주소의 이름에는 올리비아라고 적혀 있었고, 그 주소지는 피어 19 였다. 나머지 한 주소는 동생 마이크의 거주지였고, 오클랜드 XX 번지 무료진료소였다.

“따님은 함께 사시는 거 아니셨어요?”
“술집에서 일한다고 할 때 이이랑 싸워서 집을 나갔더랬어요…. 같이 살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게 내 잘 못이야!? 이 망할 년이 죽어가면서까지 사람 속을 뒤집어놓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또 엉엉 거리는 게 여기 더 있다가는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같아서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그 집을 나왔다.

유가족의 집은 정말이지 수사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인 것같다. 범인 쫓다가 총에 맞거나, 수도 없이 많은 서류를 뒤지는 것보다. 가족 잃은 사람에게 정보를 캐내는 것이 가장 몹쓸 짓이란 소리다. 하지만 그 것도 하지 않으면 그 나쁜 놈은 어떻게 잡지? 우린 옳은 일을 한 것이다. 저 두 사람을 질질 짜게 만들었어도, 나중에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후우… 살인사건은 이게 짜증나요.”
“저도 동감이에요.”

데이브는 집에서 나오자마자 이 집에서 얻은 정보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는 차를 향해 걸어가며 그에게 다음 목적지를 말해주었다.

“동생을 찾아가 봐야죠.”
“이젠 동생의 푸념도 들으라고요? 그보다 피해자의 집은 어때요?”
“안돼요. 부모와 자식관계는 태어날 때부터 하라는 거 안하고 하지 말라는 거 하는 관계라고요. 숨기는 게 있거나, 허풍을 떨었을 거예요. 그에 비해 형제 관계는 말 안해도 되는 거 말하고, 말할 것도 말하는 관계잖아요.”
“부모보단 더 많이 알고 있겠다 이 거군요. 그런데 소피아는 외동딸 아니었어요?”
“그게 문제예요? 게다가 피어 19는 베이 브리지까지 건너야 하니까 가까운데부터 가자고요.”
그러고보니 웃기는 일이네. 피어 19에서 오클랜드까지 와서 일을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일뿐더러… 돌아가는 길에 왜 차를 타지 않았던 거지?



=로그 캐빈 오후 1 시=

벌써 9 월이라 그런지 바람이 싸늘하네, 베이 브리지를 건너 오클랜드까지 넘어오는 건 짜증나는 일이다. 그 것도 아랫사람들 다 놔두고 직접 수사에 참여하게 되면 더더욱.

“그래도 열심히 일하시는 거 위에서 아시면 올해는 틀림없이 승진하실 수 있을 거예요.”

거기에 부관까지 따라오면 짜증의 삼요소는 완전히 갖춰진 셈이다. 오늘 아침 회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녀석은 모를 거다. 난 우리 직원들을 위해서 2 층 화장실에 고급 화장지를 놓아달라고 열심히 건의를 했는데 위에서는 날 병신 취급을 하고 있다. 올해도 승진은 물건너 갔다. 하다 못해 서장이 바뀌지 않는 동안은…

그래도 날 위해 운전을 해오며 수고한 부관이다. 그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일을 하지 말아야지.

“자네도 집이 이 근처랬지?”
“네…. 알리바이는 없지만 범인은 아닙니다.”
“알고 있어. 영장이 나오기 전까진 자네 체포 안하니까 걱정마. 그보다 자네 이 가게에 자주 오나?”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요. 술값도 적당하고, 저렴한 안주도 있고, 우울한 날이면 딱 좋죠.”
“요즘 자네 우울해?”
“글세요. 샤키와 코비가 화해하지 않는 이상은 평생 우울할 걸요.”

농구 이야기인가? 내가 아는 이야기는 최근 샤키 오닐이 마이애미를 떠나 피닉스로 넘어갔다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내가 모르는 세상 이야기다. 술집을 아침바람부터 찾아오려 했으니 문이 닫힌 가게 앞에 차를 세워두고 주인이 와서 술집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앉아있어야만 한다.

“식사 해야죠? 벌써 한시인데.”
“밥이 넘어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뒤에 햄버거 사다 놨어. 잠복 수사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전화라도 한통하고 찾아오는 건데. 괜히 시간만 잡아먹고 있군. 그리고 햄버거가 있다는 소리에 내 간식을 잡아먹는 부관도 있고.

“뭡니까? 어린이 세트예요? 나잇값 못하고…. 인형은 크러스티 더 크라운이군요.”

그러더니 인형을 자동차 앞에 떡하니 세워 놓았다. 스프링이 목에 달린 인형이라 움직일 때마다 고개를 흔들흔들 하는 인형이다.

“애들은 광대같은 거 무서워할텐데 말이야.”
“하지만 크러스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광대라는 설정인 걸요.”
“스프링필드의 아이들은 좋아하겠지만 샌프란스시코 아이들은 어떨까?”

일단 이 친구가 세워놓은 크러스티 인형의 머리를 톡 건드려서 머리가 덜덜덜 떠는 것을 보고 있긴 했지만 정말이지… 맥도월드 파트 타임 녀석 혼내주고 싶다.

“저기 오는 모양인데요.”
“로그 캐빈의 주인 오스왈드… 맞군.”

서에서 미리 준비해 온 사업자 등록증과 운전 면허 사진이 같이 첨부된 서류를 보고 녀석을 알아보았다.
그가 가게로 들어가자 우리도 차에서 내렸고 그에게 몇가지 물어보고 철수하면 되는 거다. 최악의 경우에 저 녀석이 범인이기라도 하면 싸움이 좀 나겠지만

가게의 문을 열자 짤랑 짤랑 하는 방울소리가 나면서 가게 안에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렸다. 아무도 없는 바는 정말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햇살이 들어오는 술집이라니, 너무나도 낯선 광경이었다. 하지만 처음보는 건 절대 아니었다. 승진하기 전 현장을 한참 뛸 때에는 자주 보던 광경이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아직 가게 시작 안합니다.”

대머리가 훌렁 까져 있고, 얕은 머리카락으로 겨우 대머리는 아니야라고 우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애처러워 보이는 이 사람이 로그캐빈의 주인 오스왈드 크루거. 전과는 없고, 깨끗한 사람이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입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시죠?”

바 너머에서 잔을 정리하던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자연스레 바텐더와 손님의 위치가 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부관이 먼저 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 곳에서 올리비아 샌튼 양이 일 했었나요?”
“네…네. 무슨 일이시죠? 경찰 맞아요?”
“네, 확실히 경찰 맞습니다.”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고 묻자 그는 뭔가 의심스러운지 우리의 정체를 거듭 물었다. 그런 그에게 안주머니에서 배지를 꺼내 보여주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네, 저희 직원 맞습니다.”
“그런데 경찰 말고도 올리비아를 찾는 사람이 있나보죠?”

그 질문에 바 주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생각이 정리가 되었는지 다시 대답을 하였다.

“형사 님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긴 법보다 더 빠른 것들이 많다고요.”
“예를 들면요?”
“…… 전 문제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아직 모르시는 모양인데 이미 문제는 터졌어요.”
“네?”

정말 모르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사진 하나를 보여줘야할 것같다. 오늘 아침에 찍은 피해자의 시신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싸늘한 모습이 되어버린 올리비아의 얼굴이었다.

“이게 도대체…”
“오늘 새벽에 이 곳에서 일하는 올리비아 양이 피살 당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이봐요. 이 아이 일은 안됐지만 저흰 정말 상관없어요.”
“상관있는지 없는지는 조사 해봐야 알겠죠.”
“왜 그러세요. 원하는 게 뭐예요?”
“협조 좀 해주셔야죠. 올리비아 양이 누구에게 딱히 살해 당할만한 이유가 있나요?”

이 질문에는 다들 한결같이 아니요라도 대답하겠지.

“아니요. 착한 애였어요. 노래가 부르고 싶어서 여기서 일하는 애였고, 사실 재능은 있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죽었답니까? 아니 어떻게요? 누가요?”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고, 아무 것도 몰라요. 혹시 최근 수상한 점 없었나요?”
“이봐요.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면 저에게도 뭔가 오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돈을 달라는 거요?”
“아니요! 저도 사람이고, 그 아이와 친구라면 친구인 사람이올시다. 친구가 죽었는데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아야합니까?”
“친구가 죽었으니 그 한을 좀 풀게 수상한 거 있었으면 좀 말해달라는 거요. 혹시 남자 친구라든지, 추근덕거린 사람이라든지… 혹시 없어요?”
“글세요… 최근 올리비아에게 접근한 녀석이 있긴 있었어요.”
“혹시 이름은?”
“매키인가? 그랬어요. 어차피 술집에 오는 사람이잖아요. 웬만큼 친해지지 않아서는 미스터 내지는 씨뇨르라고요.”
“어디서 뭐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있어요? 하다 못해 인상착의라든지.”
“옷은 매번 말끔하게 차려 입고 있었어요. 붉은 머리에… 키는 저보다 좀 작고….”
“당신보다 작다고요? 당신 키가 얼만데요?”
“5.35피트요. 네 작은 키라는 건 인정합니다.”

5.35 피트 (163센치미터)에 대머리 아저씨라… 손에 반지도 없는 걸 보아하니 아직 총각이로구만, 설마 혹시라는 가능성을 둔다면 이 친구가 올리비아를 임신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군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도움이 더 필요하면 다시 오죠.”
“기왕이면 업무 중에는 오지 않으셨으면 하네요.”
“약속 드리죠. 그런데… 잠깐만 움직이지 말아봐요.”

잠시 그의 움직임을 막을 필요를 느꼈다. 마치 허공을 응시하는 것처럼 하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왜요? 어깨에 벌레라도 붙었어요?”

어깨의 벌레를 잡아주려는 줄 아는 그는 정말로 움직임을 멈췄고, 그 타이밍에 난 그의 머리카락 하나를 잡고 주욱 답아 당겼다.

“아 따거! 뭐 이런 미친 사람이 다 있어!”

바 주인은 화가 나서 소리쳤지만 난 기쁜 마음으로 짐에게 그 머리카락을 흔들며 보여주었다.

“짐, 이 거면 DNA 검사 할 수 있지?”
“아우…”

부관은 골머리를 앓는다는 듯 이마에 손을 댄 상태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걸론 안돼요. 모자라다고요.”
“그래?”

그래서 화가 난 바텐더의 머리카락을 한번 더 잡고 뽑아 대자 이번에는 그가 날 세게 밀쳐냈다.

“당신, 이 사람 당장 데리고 나가요. 안 그러면 경찰을 부를테니까!”
“경감님, DNA 검사하려면 표본이 10 개는 되야 하고, 지금 그 건 강제 채취라서 증거물로 사용 못한다고요.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잘 나가다가 꼭 이렇게 사고를 쳐요.”

부관은 날 강제로 끌고 나가려 했고 난 바 주인의 머리카락을 뽑기 위해서 손을 최대한 길게 뻗었다. 그리고 부관의 손을 살짝 벗어나는 순간 그의 머리를 잡았고, 그는 날 향해 침을 탁 하고 뱉었다.

“두번 다시 오지마!”

그가 날 힘주어 미는 통에 결국 부관에게 이끌려 가게를 나가게 되었지만 가게를 나가는 순간 부관과 나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경감님이랑 같이 일하다가는 정말 제명에 못죽을 거예요.”
“큭큭큭… 그래도 이 증거물은 위법 수집 아니겠지?”
“이 건 강재 채취가 아니니까요.”

플라스틱 시험관에 부관은 내 얼굴의 침을 담았고, 그 것을 봉한 채로 지퍼백에 넣었다. 그럼 그 다음은… 그가 말한 땅딸맞은 붉은 머리의 사내를 수배해 봐야겠는데… 너무 단서가 없는 거 아닐까?

“이제 어쩌죠? 전 이제 이 가게 못 올 것같은데.”
“이 나라 미국 아니었어? 자유의 나라. 이따가 밤에 또 오자고.”

하지만 일단은 조사 의뢰 해 놓은 것들의 결과를 알아봐야지. FBI 녀석들이 알아낸 것도 궁금하긴 하니까.

부관은 경찰서를 향해 차를 몰았다



=오클랜드, XX 번지 무료진료소=

클리닉이라고 해서 클린한 느낌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빈민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이고, 그에 맞는 이미지 대로였다. 지저분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몇 안되는 인턴 의대생들과 성자로 받들어질만한 젊고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의사들이 부족한 약품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술을 펼치고 싶어하고 있겠지.

역시나 초라한 진료실에 네 명정도의 의사 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오늘은 공교롭게도 예방접종이 있는 날인지 어린 애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많았다.

“저기 제일 끝에 있는 사람인 모양인데요.”

한참 애들에게 주사를 놓고 있는 의사 선생을 보았다. 흰 가운에 갈색 머리칼, 그리고 의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지저분한 수염을 가진 사내였고, 우리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접수창에서 소개 받은 그 생김새였다.

“제일 지저분한 사람이 마이클 샌튼이란 말이죠. 어쩌죠 바쁜 것같은데.”

데이브는 이렇게 지역 봉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나 역시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럼 어쩔 거예요?”
“직접 묻기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는 건 어때요?”
“탐문 수사라. 그럴 듯 하네요.”

그러면 제일 만만한 사람이…

접수창구의 중년 부인은 바쁜 듯 싶었지만 우리의 질문을 귀찮아 하진 않았다. 아니 귀찮았지만 그 것을 티낼 새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바쁘시면 다른 사람들께 물어볼게요.”
“됐어요. 다른 사람들도 바쁜 건 마찬가지니까요. 우리가 바빠야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애들에게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힐 수 있어요.”
“네… 그럼 실례하지만 몇가지만 간단히 질문 할게요.”
“간단하게요.”
“혹시 닥터 샌튼께선 누이와 친했나요?”
“친하다마다요. 뭐랄까. 두 사람 다 히피 기질이 있어요.”
“히피요?”

진보적인 성향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컨츄리 뮤직을 하는 누나와 무료 의료 봉사를 하는 동생이라면 우드스탁에서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같다.

“알 거 아니에요? 닥터 샌튼은 솔직히 다니던 대학 병원에 붙어있었으면 지금쯤 이런 골목이 아니라 리치몬드 같은 곳에 집을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가난이 가난을 부른다고, 밥을 굶어가면서 학교를 다닌 고학생이 되다보니 이런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거죠.”

정말 성인군자가 따로 없네 그래. 하지만 내눈에는 그 이상의 것이 보인다.

“음… 그 쪽도 마찬가지이신가본데요.”
“에?”
“대학 등록금이 없어서 의사 공부하시다가 그만 두신 거 아니에요?”
“하아… 그건 어찌 알았을까?”
“글세요. 형사의 육감이랄까요?”

그냥 찍어발랐다고 말하면 오히려 화를 부르겠지. 사실 그녀가 정리하는 서류가 어지간히 악필인데다가 내가 모르는 약품들의 이름처럼 보여서 약사 내지는 의사라고 생각했던 차였다. 하지만 약사라면 저 쪽에서 약을 나눠주고 있었을테고, 의사였다면 줄이 이렇게 길어질 때 쯤이면 진료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약사도 의사도 아니지만 공부는 한 사람이다.

“하여튼 아까운 사람이에요. 게다가 불쌍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불쌍하다고요?”
“아내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도 저러고 앉아있다오.”
“무슨 이야기죠 그 건?”

데이브의 감성이 움직이는가보다. 죽을 병이라는 말에 데이브는 살짝 걱정하는 눈빛이 되었다.

“심장병을 앓고 있어요. 심판막증을 앓고 있는데 예후가 좋지 않나봐요. 일주일에 한번씩은 혼수상태에… 하아… 뭐 그런 이야기죠.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증상이 없을 때에는 멀쩡하지만 어느 순간에 쓰러질지 알 수가 없어서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더군요. 이식자 명단에는 올려 놨는데 언제 들어올지…”

장기 이식을 필요로 하는 아내가 있단 말이지… 왜인지 그 것은 살인의 동기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역시… 본인과 대화는 꼭 해봐야겠다.

“여기도 휴식시간은 있겠죠?”
“이제 식사시간이네요. 교대로 식사를 하실 거에요. 제가 말씀을 드려서 닥터 샌튼부터 쉬는 걸로 할테니 직접 물어보세요.”
“협조 감사합니다.”
“다 이 지역사회를 위한 거죠.”

정말이지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의식이 지나칠 정도로 투철해보인다. 일단 그녀의 안내에 따라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데이브와 살짝 정보를 공유하였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일단 아내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에요. 아내가 장기 이식을 필요로 하다는 사실은 매우 큰 동기가 돼요.”
“그 전에 누나를 잃어서 안됐다고 위로하는 게 먼저 아니에요?”
“살해범이라면 눈도 깜짝 안할 걸요.”
“살해범이라고 단정하지 마세요.”
“생각을 해보세요. 심장 이식 대기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명은 될테고, 조건이 맞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수백명의 대기자를 앞에 두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친인척간이라면 최우선이라고요.”
“그 건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장기 기증 서약을 했을 때의 이야기잖아요.”
“했을 거예요. 틀림없이. 그래서 총에 맞은 부위도 죽이려고 했으면서도 가슴 쪽이 아닌 하반신 쪽을 노린…”

이야기를 계속 하려 했는데 데이브가 갑자기 내 입을 막았다. 남자의 손은 너무 커서 그 솥뚜껑같은 손이 입과 함께 코도 막아 버리면 내가 질식사 할 거라는 생각은 못하나보다

“푸하… 손 치워요.”

그가 내 입을 막은 이유는 우리가 요청한 면담에 닥터 샌튼이 응했기 때문이었다. 지저분한 수염에 흰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우리가 앉은 벤치 옆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누나 문제로 오신 거죠?”
“젊은 의사 선생님치고는 훌륭하신 일을 하시는군요.”
“제가 지금 바쁘긴 하지만 지금 당장에라도 누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 많이 혼란스러우신 건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혹시 최근 누나분께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사귀는 남자가 생겼다든지….”
“아니요. 누나는 남자친구 없어요.”

하여튼 저 마음 좋은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물어봐야할 것을 놓치고 있다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정보는 그 쪽보다는

“실례하지만 혹시 누나분께서 장기 기증을 한다는 서약을 하셨습니까?”
“네, 제가 권했더랬습니다. 안 그래도 이 근처에는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렇다고 누나가 그렇게 될 줄은….”
“그런데 말이죠. 닥터 샌튼께서 심장 이식이 필요한 아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떻게 이식 수술은 잘 되셨습니까?”
“네? 무슨 소립니까? 혹시… 무슨 생각하시는지 알겠네요. 하지만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세요. 제가 심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누나를 죽였을 거라 생각하나본데. 범죄로 죽은 시신은 장기기증의 대상이 되지 않아요. 병원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고요.”

우우… 그렇단 말이지. 병원에서 일해보지 못해서 유감이군 그래.

“사실, 누나분께서 임신 중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혹시 아시는 건 없으신가요?”

위험한 타이밍에 데이브는 적절한 질문으로 그의 시선을 내게서 치워주었다

“…… 그랬군요. 사실 최근 누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대리모가 되기로 했다고 그러더군요.”
“누구라고 그러던가요?”
“말해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거라면서 애를 낳은 다음에 가르쳐 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 되어버렸구나 그런데 대리모라고?




=샌프란시스코 경찰 본부=


아침이나 지금이나 분위기가 다를 게 없다. 달라진 거라면 여기 저기에서 이송되어 온 서류 덕분에 일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 뿐이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안은 사람이 많아서 찜통같은 느낌이었고, 불쾌지수가 높아진 나, 티모시 그린 경감은 사무실 안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전화를 받고 있다.

“에… 수고했네 샘. 그래… 조금 충격인 걸.”

받은 전화를 끊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방금 받은 전화는 쇼킹한 전화였다. 태아의 DNA와 피해자의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그 것은 달리 말하자면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거고, 그 경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대리모라는 것이었다.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만나서 수정을 하게 되는데. 피해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난자 대신 다른 사람의 난자를 이용하여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미혼인 것을 봐서는 정자은행에서 기증 받은 정자와 난자를 이용한 것이 아닌 다른 가정을 위해 애를 대신 낳아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어떤 방향으로 수사해야하느냐가 대충 나온다. 대리모 입양 기관에 의뢰하여 아이의 부모를 찾는 게 우선이겠지. 아마 찾지 못하더라도 범위는 상당히 좁아진다. 일단 대리모의 매매는 불법이니 근처의 친분을 이용해서 맺어진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금전적이고 불법적인 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

머리 속으로 생각이 정리가 되어가는 순간 부관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손에 쥐인 서류를 내 책상 위에 얹어 놓았다.

“기다리시던 자료 나왔습니다.”

내가 기다리던 자료? 뭘 말하는 건가? 싶어서 들여다 봤더니 탄조흔 분석이었다.

“탄조흔의 분석 결과 경찰용으로도 쓰이는 스미스 앤 웨슨 357이고, 소유주는 매튜 오일러 군요. 사진은 보시는 바와 같이.”
“빌어먹을 빨간 머리로구만.”
“소환할까요? 아니면 체포할까요?”
“…… 발로 직접 뛰어야지. 체포하기에는 증거 부족이고, 부르면 잠수 탈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이 또 움직여야 겠군 그래. 이 녀석이 난쟁이 똥자루이길 바라는 수 밖에 없겠어. 총 주인이 고스란히 총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체포 할 수 있겠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진 않겠지.

“자, 나가자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추울까 겉에 걸칠만한 코트를 들고 나왔고, 이번에는 부관도 잔말 없이 따라나와 주었다. 이 녀석… 혹시 내가 지금 생각하면서 움직인다는 거 알아챈 거 아니야?

“아 맞아, 오스왈드의 DNA와 태아의 DNA는 비교는 어떻든가?”
“DNA 검사는 오래 걸려요.”

그럼 그 것도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혈액형 검사는 1 분이면 된다고 하더군요. 일치하지 않아요. 오스왈드는 AB 형이고 태아는 O형이에요.”
“그렇군.”

앞으로 도대체 침을 몇 번이나 맞아야한단 소린지… 시작하기도 전에 지겨워지고 있다.




=피어 19, XX 번지, 매튜 오일러의 집=

이번 사건은 어찌된게 베이브릿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다. 시장은 FBI와 공조 수사를 할 것을 요청했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시골 동네 가정 폭력 사이즈다.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범인을 검거하면 되는 것이고, 그 동안 FBI 떨거지 두명을 잘 이용해 먹으면 그만이다. FBI 쪽에서는 자기들 관할도 아닌 일로 인원을 빼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고, 마침 쓸모도 없는 미결과 두명이 이쪽으로 자진해서 붙어주니 그 걸로 지원을 끝낼 생각인 모양이었다.

마약 수사 중에 오염되어 버린 두 동료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현장 요원 데이빗 미첼. 그의 이야기는 이 바닥에서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가 파트너에게 총을 두 번이나 쐈다는 사실은 그의 경력에 치명적이지만 그 한편 그로 인해서 마약 포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로드리게즈를 체포했던 건은 매우 훌륭한 일이었고, 이제 와서는 거의 전설처럼 불려진다. FBI까지 오염시키고 샌프란시스코의 남부를 평정한 갱단을 와해 시켜버린 것이다.

그런 짓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다. 치명적이었던 것은 두 번째 사건이었다. 처음에 그에게 죽은 경관이야 미첼 요원에게 일이 들통나서 그를 죽이려다가 오히려 죽음을 당한 거였지만 두 번째로 그가 죽인 동료는 인질로 잡혀있던 차였다. 이미 한번 한 조직을 와해시키는 것을 본 반페탐은 자기가 포섭했던 FBI 요원을 인질로 삼는 짓을 꺼리지 않았고, 미첼 요원도 그런 인질을 향해 총을 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긴급피난으로 인정받긴 했지만 그는 지금까지 총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장직으로 복귀를 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FBI들에게 신경 쓰는 것은 이쯤 해도 좋을 것같고, 지금은 당장의 사건에 집중해볼까?

선창가의 집이라고 해서 후줄근하고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를 예상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깨끗한 집이었다. 넓진 않지만 정원이 있고, 앞 뜰에 스프링클러 시설이 되어있는 집은 이런 선창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동네는 왜인지 전혀 다른 공간을 이루는 것처럼 딱 이 거리만큼은 오십만달러 이상의 집들로 가득차 있는 느낌이다.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고 하면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거란 생각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북적거리는 길판에 피어있는 한송이 장미꽃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장미는 웬만해선 사지 않는 게 좋다. 인터넷에서 사진에 넘어가 샀다가 주위 소란에 다시 팔려고 하면 죽어도 안 팔리는 꽃이다.

“언제 나도 돈 벌어서 이런 곳에 사나?”

짐은 자기 집이 불만인 모양이다. 하긴 결혼하고 나서도 독신자 아파트에 사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사는 집이 독신자 아파트인 것도 아니다. 리치 몬드에 있는 빅토리아풍 2 층 집이었던 것같은데

“자네 집이 어때서 그런가?”
“제 집이라니요. 부모님 집이고 차고에 얹혀 사는 겁니다.”

이 친구도 한심한 인생이로군. 거기에 딱 직업까지 없으면 바로 오타쿠(Nerd) 소리 들을 것같은데. 다행히도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났다. 아직 30 대 초반에 경위까지 승진했고, 바로 내 옆에서 날 보조하는 것만으로도 이 녀석은 자기 할만큼 하고 있는 거다.

“뭐 아직 결혼 안했다면 서둘러 분가해봐야 세금만 더 나가지.”
“제 생각은 그런데, 사귀는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가봐요. 집없고 부모한테 얹혀 사는 남자 별로긴 하잖아요.”

그 발언에서 주의할 점은 여자‘들’이겠군.

“일단 들어가자고.”

정문 너머 초록 잔디 사이로 하얀 돌길이 나있어서 밟고 지나가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짧은 돌길을 통해 현관문에 다다르자 XX 번지라고 적힌 주소패가 보이고 그 밑에 멜로디 벨이 달려 있었다.

“흠… 강하게 나가야하겠지?”
“강하게 나가시려면 망설이지 말고 벨을 누르셔야죠.”

좋은 지적이다. 막나가는 것과 강하게 나가는 것은 엄연히 틀리다. 막나가는 것은 소피가 하는 짓거리고, 내가 하는 것이 강하게 나가기다.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강하게 나가려는 마음이 완전히 풀어져 버렸다. 이거야 원 이번 사건은 아주 80 년대 노래로 나가기로 했나? 멜로디 벨에서 클로즈 투 유(Close to you) 멜로디가 흘러나오면서 강하게 먹은 내 마음을 살살 녹여버렸다.

“갑자기 웬 천상의 멜로디가 나오고 지랄이야.”

천상의 멜로디라는 나의 표현이 웃겼는지 부관은 풋하고 웃었지만 카펜터즈는 천상의 목소리 맞다. 죽었으니까

벨을 누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문이 열렸다. 난 정말 일요일이 좋다. 집을 찾아가면 사람이 있거든. 평일에는 근무처를 알아보러 가야하거나 또 중간에 어딘가 출장이라도 나갔으면 귀찮아질텐데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늘어져 있는 사람을 상대하면 된다.

“어떻게 오셨죠?”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공교롭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사람이었다. 붉은 머리카락에 5 피트가 간신히 넘을 것같은 작은 키의 남자였다. 그 말인즉 이 사람이 올리비아에게 추근덕거린 남자이자, 그녀의 몸 속에 박혀 있던 총의 주인이란 말이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유력한 용의자.

“미스터  오일러?”
“네, 맞습니다만.”
“수색 영장 입니다.”

그에게 바로 수색 영장을 들이 밀었다. 피해자의 체내에서 발견된 총탄의 탄조흔과 같은 총을 가진 사람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다. 그리고 그 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범인이라고 몰아붙여도 되는 일이다.

“네? 무슨 일이시죠? 오 이런…”

그는 내 뒤에서 부관이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미스터 오일러, 당신 소유로 등록된 총이 있더군요.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제 침대 앞에 수납장 서랍에 있습니다. 총은 좀 치워주시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전 총 가지고 장난 친적 없어요.”
“과연 그럴까요?”

내 뒤의 부관이 총구를 아래로 내린 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영장을 제출했으니 가택 침입은 아니다. 하지만 안에 또 누가 있을까 싶어서 총을 총집에 넣지는 못하고 그가 말한 침대를 찾기 위해서 2 층으로 올라갔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제 총은 왜 찾으시는데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당황한 나머지 이대로 연기를 하는 건가? 자기가 총을 쐈다면 최대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뭔가 조치를 하는 중이었을텐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데다가 문틈으로 보이는 실내는 피자를 시켜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듯 싶다. 아마도 PPV 프로그램을 보려는 거겠지. 그런데 이 시기에 하는 PPV가 뭐가 있지? 수퍼볼 결승은 신년이 되어야 겠고, NBA도 아니고…
이런 귀에 스맥다운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언포기븐이겠구먼.

“올리비아 샌튼… 아시죠?”
“네, 잘 알죠.”
“어떻게 알고 계시죠?”
“…… 뭐 자주 가는 술집의 웨이트리스입니다. 로그 캐빈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정말 잘못 짚은 건가? 그보다 살인사건이 일어난지도 모르는 것같다.

“경감님, 찾았습니다. 총번이 일치합니다.”

부관이 2 층에서 내려온다. 손에는 비닐팩에 들어있는 권총이 한자루… 우리가 찾던 스미스 앤 웨슨 357이다. 게다가 탄환에서 나온 탄조흔과 일치하는 총이라면 아무리 잘 봐줘도 체포감이다.

“손 주시죠.”
“무슨 일이에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이 표정이 연기라면 정말 속아줘도 되는 듯한 리얼함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뒤로 젖혀두고서라도 이 상황에서 그를 체포하지 않으면 그 것이야 말로 직무유기다. 그의 어깨를 거칠게 잡고 벽에 밀쳐서 저항하지 못하게 하고 두 손을 뒤로 빼서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그 순간 벽에 붙어있던 초인종이 눌러져서 천상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미스터 오일러, 당신을 올리비아 샌튼 살해 용의자로 체포한다. 필요하다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고, 당신의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잠깐만요? 뭐… 뭐라고요? 올리비아가… 올리비아가 죽었다고요?”

정말 몰랐다는 듯이 이렇게 소리를 치더니 점점 움직임이 격해지는데 그렇다면 이 쪽도 수갑을 채운 손을 잡아 당겨서 그의 손목에 고통을 줄 수 밖에 없다.

“아야… 수갑이 너무 조입니다. 좀 느슨하게 해줘요. 아니 그보다… 올리비아가 … 세상에… 올리비아가 죽었다고요? 그런데 왜 절… ”
“피해자의 체내에서 나온 탄환의 탄조흔과 이 총의 총기 번호에 등록된 탄조흔이 일치하니까. 일단 서에 가서 이야기 하지.”
“…… 전 아니에요. 제가 왜…”

몸을 뒤 흔들며 저항하는데. 그 때마다 수갑을 잡아당기는 것 외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일단 최대한 노력하여 차 뒷좌석에 실어넣었다.

“후우….”

차문을 닫은 후에 약간 이상한 눈빛으로 부관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저 친구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거 아니야?”
“어쩌면 연기하는 걸지도 모르죠.”
“… 좋아. 일단 연행하자고.”

부관은 앞자리에 앉아서 운전을 하기로 했고, 결국 난 뒷자리에 앉아 그 녀석이 날뛰지 않게 제압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 들어갈 때까지 우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녀석의 수갑에 손가락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