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마당 - 단편 게시판
글 수 517
토요일이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에 왔는데, 엄마가 거실에 서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또 무슨 사고를 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못 본 척 책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 먹음직스럽게 생긴 딸기 파이가 있었습니다.
“우와! 딸기 파이다!”
한 조각을 집어 드는데, 엄마가 커다랗게 소리쳤습니다.
“얘, 정수야! 먹지 마!”
“배고파요. 이거 먹고도 밥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럼 빵 부분은 빼고 딸기랑 크림만 먹어.”
“왜요?”
엄마는 침울한 얼굴로 속삭였습니다.
“앞집 애들이 죽은 것 같아. 영식이하고 영재하고 영아 말이야.”
“예?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엄마가 파이에 살충제를 넣었는걸! 밀가루인줄 알고 섞었단 말이야! 그것도 모르고 앞집에 갖다 줬어!”
난 깜짝 놀라서 딸기 파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우리 엄마는 빵은 잘 굽지만 거짓말은 전혀 지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일 겁니다.
“앞집 애들이 진짜로 그걸 먹고 죽었어요?”
“그래.”
엄마는 나를 끌고 현관 밖으로 나가, 앞집인 1305호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동그란 우유투입구를 열었습니다.
“한번 봐봐.”
동그란 구멍을 통해 거실 바닥에 포개져 있는 맨발들이 보였습니다. 발바닥에 때가 까만 것이, 앞집 애들 발이 틀림없었습니다.
“파이 갖다 주고 나서 빨래를 하는데, 명희 엄마한테 전화가 왔지 뭐니? 통화를 하다가 퍼뜩 살충제 생각이 나더라. 명희 엄마가 파리를 좀 닮았잖아.”
엄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전화기를 냅다 집어던지고 달려왔는데 이미 이렇게 돼 있었어. 아빠 오면 같이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집어먹다니!”
“영식이넨 아빠 없잖아요. 사이비 종교에 미쳐서 집 나갔다던데......”
“토요일마다 애들 엄마 몰래 찾아와. 벌써 왔다 갔을 시간인데, 오늘은 안 왔나 보다. 다행이지 뭐야? 아니지, 애들이 다 죽어 버렸는데 다행은 무슨......”
엄마는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한 복도에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위층과 아래층에 다 들릴 것 같았습니다. 난 얼른 엄마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쩜 낮잠을 자는 걸지도 몰라요.”
“벌써 한 시간 동안 꼼짝도 안 했는걸. 벨도 30번은 넘게 눌러 봤어.”
“그럴 시간에 구급차부터 불렀어야죠!”
“그럼 잡혀가잖아.”
엄마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반죽 도중에 하필이면 밀가루가 똑 떨어질 게 뭐니? 다 네 외할머니 때문이야. 다른 친정 엄마들은 쌀이며 김치며 갈비까지 보내주는데, 살충제가 웬 말이니? 그것도 밀가루랑 헛갈리게 일회용 봉지에 넣어서......”
“외할머니가 무슨 죄예요? 애초에 왜 찬장에 뒀어요?”
“거기 놔두면 개미라도 쫓을까 했지.”
그러고 보니 작년엔가 어느 식당 주인이 농약과 밀가루를 착각해 많은 사람을 해쳤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람도 다 있다고, 아빠가 일부러 나를 불러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더 심해. 옆집 애들을 전부 죽여 버렸어! 아빠가 이걸 알면 어떻게 될까? 엄만 이혼당할 거야! 아니, 그 전에 경찰이 와서......’
엄마는 계속 흐느꼈습니다.
“이따가 저녁에 영식이 엄마가 오면 난리가 나겠지. 경찰은 파이 접시에서 금방 지문을 찾아낼 거야. 엄만 살인범이야. 사형당하는 거 보러 올 거니? 서울대 못 가면 어떡해? 옆에서 고3 때까지 꽉 잡아 줘야 되는데.”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툭하면 둘째이모네 카멜레온을 깔고 앉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 엄마입니다.
“제가 접시를 도로 가지고 올게요. 경찰이 오기 전에요.”
“어떻게?”
“영식이네가 열쇠 숨기는 곳을 알아요. 앞집 문을 따고 들어가서 얼른 가져올게요.”
나는 신발장을 열고 목장갑을 찾아서 꼈습니다. 엄마는 울면서 나를 끌어안았습니다.
“우리 효자 아들. 엄만 너 때문에 살아.”
“난 엄마 때문에 못 살겠어요.”
“저녁에 치킨 시켜줄게. 내일은 테크노마트 가자.”
그리고 엄마는 나를 놓고 주방으로 달려가 도마 위에 있던 밀방망이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건 필요 없어요. 거추장스럽기만 해요.”
“혹시 모르잖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접시를 가져와야 해.”
엄마는 싫다는 나한테 억지로 방망이를 쥐어 줬습니다. 딸기를 으깰 때 썼는지 온통 불그죽죽한 것이 묻어서 기분 나빴습니다.
우유투입구에 손을 넣어 낡은 어른 운동화를 끌어당기자, 과연 열쇠가 들어 있었습니다. 딴 집들은 전부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꿨는데, 영식이네만 아직 열쇠를 씁니다. 앞집 애들은 현관문을 따고 나서 열쇠를 꼭 운동화에 집어넣습니다. 원래는 목걸이로 만들어서 달고 다녔는데, 하도 자주 잃어버려서 이렇게 바꿨다고 했습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신발을 벗었습니다. 바닥만 쳐다봤지만, 그래도 서로 포개진 아이들의 발은 어쩔 수 없이 눈 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네모난 식탁 위에 우리 집 접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파이는 조금도 건드린 흔적 없이 온전했습니다. 여덟 조각이 완벽한 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바닥에 쓰러진 아이들을 쳐다봤습니다.
영식이와 영재와 영아는 전부 다 머리가 깨져 있었습니다. 바닥에 말라붙은 핏물 위로 파리가 우쭐우쭐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잘못 알았습니다. 영식이네 아빠는 이미 왔다 갔던 겁니다. 아무도 몰래, 아주 조용하게요. 아마 엄마가 명희네 아줌마랑 한참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나는 몸을 돌렸습니다.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땡 울렸습니다.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와서 초인종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댔습니다.
“1305호! 너희들 또 싸웠지?”
경비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왜 울고 그래? 아래층에서 시끄럽다잖아!”
나는 소파 뒤로 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거실 바닥의 시체들을 보고 굳어 버렸습니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이나 커다래진 눈이, 시체와 나와 불그죽죽한 딸기 즙이 잔뜩 묻은 방망이를 번갈아 훑었습니다.
“으악! 이 미친 놈!”
아저씨는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부터 꺼냈습니다. 아저씨 등 너머로 굳게 닫힌 우리 집 현관문이 보였습니다. 아, 엄마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우와! 딸기 파이다!”
한 조각을 집어 드는데, 엄마가 커다랗게 소리쳤습니다.
“얘, 정수야! 먹지 마!”
“배고파요. 이거 먹고도 밥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럼 빵 부분은 빼고 딸기랑 크림만 먹어.”
“왜요?”
엄마는 침울한 얼굴로 속삭였습니다.
“앞집 애들이 죽은 것 같아. 영식이하고 영재하고 영아 말이야.”
“예? 말도 안 돼요.”
“하지만 엄마가 파이에 살충제를 넣었는걸! 밀가루인줄 알고 섞었단 말이야! 그것도 모르고 앞집에 갖다 줬어!”
난 깜짝 놀라서 딸기 파이를 떨어뜨렸습니다. 우리 엄마는 빵은 잘 굽지만 거짓말은 전혀 지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일 겁니다.
“앞집 애들이 진짜로 그걸 먹고 죽었어요?”
“그래.”
엄마는 나를 끌고 현관 밖으로 나가, 앞집인 1305호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동그란 우유투입구를 열었습니다.
“한번 봐봐.”
동그란 구멍을 통해 거실 바닥에 포개져 있는 맨발들이 보였습니다. 발바닥에 때가 까만 것이, 앞집 애들 발이 틀림없었습니다.
“파이 갖다 주고 나서 빨래를 하는데, 명희 엄마한테 전화가 왔지 뭐니? 통화를 하다가 퍼뜩 살충제 생각이 나더라. 명희 엄마가 파리를 좀 닮았잖아.”
엄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전화기를 냅다 집어던지고 달려왔는데 이미 이렇게 돼 있었어. 아빠 오면 같이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집어먹다니!”
“영식이넨 아빠 없잖아요. 사이비 종교에 미쳐서 집 나갔다던데......”
“토요일마다 애들 엄마 몰래 찾아와. 벌써 왔다 갔을 시간인데, 오늘은 안 왔나 보다. 다행이지 뭐야? 아니지, 애들이 다 죽어 버렸는데 다행은 무슨......”
엄마는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한 복도에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위층과 아래층에 다 들릴 것 같았습니다. 난 얼른 엄마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쩜 낮잠을 자는 걸지도 몰라요.”
“벌써 한 시간 동안 꼼짝도 안 했는걸. 벨도 30번은 넘게 눌러 봤어.”
“그럴 시간에 구급차부터 불렀어야죠!”
“그럼 잡혀가잖아.”
엄마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반죽 도중에 하필이면 밀가루가 똑 떨어질 게 뭐니? 다 네 외할머니 때문이야. 다른 친정 엄마들은 쌀이며 김치며 갈비까지 보내주는데, 살충제가 웬 말이니? 그것도 밀가루랑 헛갈리게 일회용 봉지에 넣어서......”
“외할머니가 무슨 죄예요? 애초에 왜 찬장에 뒀어요?”
“거기 놔두면 개미라도 쫓을까 했지.”
그러고 보니 작년엔가 어느 식당 주인이 농약과 밀가루를 착각해 많은 사람을 해쳤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람도 다 있다고, 아빠가 일부러 나를 불러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더 심해. 옆집 애들을 전부 죽여 버렸어! 아빠가 이걸 알면 어떻게 될까? 엄만 이혼당할 거야! 아니, 그 전에 경찰이 와서......’
엄마는 계속 흐느꼈습니다.
“이따가 저녁에 영식이 엄마가 오면 난리가 나겠지. 경찰은 파이 접시에서 금방 지문을 찾아낼 거야. 엄만 살인범이야. 사형당하는 거 보러 올 거니? 서울대 못 가면 어떡해? 옆에서 고3 때까지 꽉 잡아 줘야 되는데.”
콧날이 시큰해졌습니다. 툭하면 둘째이모네 카멜레온을 깔고 앉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 엄마입니다.
“제가 접시를 도로 가지고 올게요. 경찰이 오기 전에요.”
“어떻게?”
“영식이네가 열쇠 숨기는 곳을 알아요. 앞집 문을 따고 들어가서 얼른 가져올게요.”
나는 신발장을 열고 목장갑을 찾아서 꼈습니다. 엄마는 울면서 나를 끌어안았습니다.
“우리 효자 아들. 엄만 너 때문에 살아.”
“난 엄마 때문에 못 살겠어요.”
“저녁에 치킨 시켜줄게. 내일은 테크노마트 가자.”
그리고 엄마는 나를 놓고 주방으로 달려가 도마 위에 있던 밀방망이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건 필요 없어요. 거추장스럽기만 해요.”
“혹시 모르잖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접시를 가져와야 해.”
엄마는 싫다는 나한테 억지로 방망이를 쥐어 줬습니다. 딸기를 으깰 때 썼는지 온통 불그죽죽한 것이 묻어서 기분 나빴습니다.
우유투입구에 손을 넣어 낡은 어른 운동화를 끌어당기자, 과연 열쇠가 들어 있었습니다. 딴 집들은 전부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꿨는데, 영식이네만 아직 열쇠를 씁니다. 앞집 애들은 현관문을 따고 나서 열쇠를 꼭 운동화에 집어넣습니다. 원래는 목걸이로 만들어서 달고 다녔는데, 하도 자주 잃어버려서 이렇게 바꿨다고 했습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신발을 벗었습니다. 바닥만 쳐다봤지만, 그래도 서로 포개진 아이들의 발은 어쩔 수 없이 눈 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습니다.
네모난 식탁 위에 우리 집 접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파이는 조금도 건드린 흔적 없이 온전했습니다. 여덟 조각이 완벽한 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바닥에 쓰러진 아이들을 쳐다봤습니다.
영식이와 영재와 영아는 전부 다 머리가 깨져 있었습니다. 바닥에 말라붙은 핏물 위로 파리가 우쭐우쭐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잘못 알았습니다. 영식이네 아빠는 이미 왔다 갔던 겁니다. 아무도 몰래, 아주 조용하게요. 아마 엄마가 명희네 아줌마랑 한참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을 겁니다.
나는 몸을 돌렸습니다.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땡 울렸습니다.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와서 초인종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댔습니다.
“1305호! 너희들 또 싸웠지?”
경비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왜 울고 그래? 아래층에서 시끄럽다잖아!”
나는 소파 뒤로 숨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경비 아저씨는 거실 바닥의 시체들을 보고 굳어 버렸습니다. 오백 원짜리 동전만큼이나 커다래진 눈이, 시체와 나와 불그죽죽한 딸기 즙이 잔뜩 묻은 방망이를 번갈아 훑었습니다.
“으악! 이 미친 놈!”
아저씨는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부터 꺼냈습니다. 아저씨 등 너머로 굳게 닫힌 우리 집 현관문이 보였습니다. 아, 엄마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