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아래에서  



내가 하는 말을 당신들이 믿을지 모르겠다. 허나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다. 조금의 과장이나 허언 따위는 없다. 내 말을 믿기 힘들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오직 단 한명만이 진실을 증명해 줄 수 있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다. 믿지도 않을 이야기를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건 내가 범한 잘못을 누군가 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날도 나는 평소처럼 학교 도서관에 공부하러 갔다. 나는 주로 혼자 공부했는데 그건 무척이나 답답하고 지루한 일이다. 여럿이서 하는 것보다 공부 능률은 낫지만 쉽사리 슬럼프가 오곤 한다. 그러다보면 쓸데없는 잡생각도 많아지고 괜한 일에도 호기심을 갖게 된다. 학교 도서관은 지상으로 5층, 지하로 4층, 모두 합쳐 9층이다. 지상 쪽에선 책의 반납과 대여가 이루어졌고 지하에는 열람실이 있어 공부를 할 수 있다. 열람실은 지하 2층까지만 있었고 나는 주로 지하 2층에서 공부를 했다. 1층보다 사람 수가 적어서 좀 더 집중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지하 2층 아래에도 공간이 있었지만 출입금지란 팻말이 놓여있는데다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화장실에 갔다 오다 지하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평소 같았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 날은 어쩐지 눈길이 갔다. 한번쯤 내려가 보는 게 어떨까? 단지 생각으로만 그쳤다면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 편안히 있었을거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려갔다. 도서관은 아무 소리 없이 적막해 내 발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지하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기에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어두워졌다. 한 층을 다 내려와 주위를 살피는데 위에서 비치는 불빛 말고는 아무런 빛이 없었다. 주위를 살펴보아도 깜깜해 뭐가 있는 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난 핸드폰을 꺼내 주위를 비췄는데 언뜻 보기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내심 실망하여 그냥 올라갈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어차피 한층만 더 가면 끝이니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사방은 더 어두워졌다. 핸드폰 불빛이 있기는 했지만 너무나 미약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옆에 손잡이가 있어 난 손잡이를 의지해 내려갔다. 기껏해야 한 층을 더 내려왔을 뿐인데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얼핏 핸드폰 불빛으로 여기저기를 확인해봤는데 벽 밖에 없었다. 난 시간낭비 했다고 생각하고는 올라가려했다. 그런데 너무 어두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올라가는 계단이 아니라 내려가는 계단을 디뎌버렸다. 당연히 아래로 가는 계단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 부주의했던 것이다. 나는 계단에서 굴렀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무의식중에 비명을 질렀고 내 목소리는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비명만 지르지 않았어도 그들은 나의 존재를 몰랐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통증이 가라앉자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4층 아래에 있었다. 4층이 끝이라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여기가 어딜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무슨 연유로 학교에선 지하 4층까지만 있다고 한 걸까? 난 두려웠지만 호기심이 훨씬 컸다. 이 아래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고 학교 측에선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어느정도 낌새를 챈 이상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궁금해 잠을 이루지 못할테지. 나는 핸드폰을 찾았다. 핸드폰 불빛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나을 것이다. 하지만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에서 넘어질 때 어딘가에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일일이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일이 손을 바닥에 대면 손이 더러워지긴 하겠지만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핸드폰은 나오지 않았다. 길을 다시 가려고 하자마자 막힌 셈이었다. 이대로 핸드폰을 버리고 내려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주머니에 라이터가 하나 있긴 했다. 기름이 얼마 없긴 했지만 정 급하면 그런대로 라이트 대신 쓸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핸드폰 빛은 있으나 마나한 상황이었고 배터리가 많지 않아 계속 켜 놓을 수도 없었다.

일단 아래로 내려가 봤다가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난 넘어질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계단 옆 손잡이는 어느새 사라졌는지 잡히지 않았고 감각에 의지해 걷는 수밖에 없었다. 뚜벅 뚜벅 뚜벅. 그나마 있던 불빛마저 사라지자 내 구두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난 자꾸만 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보이는 건 없었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질 않았다. 익숙해지니 내려오기는 쉬웠지만 두려움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갖은 상상이 다 되었으며 나도 모르게 오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이 세층을 더 내려왔다. 아직도 내려갈 계단은 더 있었다. 난 더 내려가야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둬야할지 고민했다. 난 내가 알아서는 안 될 것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순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랐다. 내 손은 바닥을 만진 것 치고는 깨끗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방치된 곳을 만졌다면 먼지가 묻었어야 정상이다. 비록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뭐가 묻은 느낌이 들진 않았다. 누군가가 계단을 왔다갔다 하는게 틀림없었다. 난 다시 바닥을 만져보았다. 먼지는 없는 듯 했다. 이곳은 아까전보다 아래인데도 먼지 하나 없는 것이다. 난 점점 흥분이 됐다. 조금씩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이제 곧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접하게 될 거란 사실이 떠오르자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었다.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 호기심은 이미 주체할 수 없을만큼 커져버렸다. 숨을 크게 들이시니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어디까지 가야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한 거 끝을 봐야 속이 시원할거다.

이제 몇 층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내려가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꽤나 긴장한 나머지 몇까지 셌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방은 지나치리만큼 고요했다. 내 심장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고 작은 소리라도 스쳐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휘이잉. 그때 바람소리 비슷한 소리가 났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바람소리라니? 이 깊은 지하에서 바람이 분단 말인가. 휘이잉. 내 귀를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이 소리는 한번 더 들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몇 번 더 소리가 들리는 가 싶더니 곧 잦아졌다. 어딘가 바람이 통하는 구멍이 있는 게 분명하다. 소리가 들렸다가 없어진 걸로 보아 여닫을 수 있는 무언가일 것이다. 얼핏 듣기에도 소리는 아래서부터 들려오는 듯싶었다. 밑에 누군가가 있다는 심증은 어느새 확증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내려가했다. 그 순간 뒤에 무언가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고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헌데 내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어두워 정확히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뭔가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놀란 나머지 난 고개를 획 돌리고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도 대체 왜 내가 그랬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무작정 올라갔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었다.  나는 경황이 없었고 주위는 어두웠기에 몇 발짝 올라가기도 전에 넘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어둠에 익숙해졌다 해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보려는데 그 전에 그것이 먼저 다가왔다. 그것은 내 다리를 움켜잡았다. 순간 온몸에 한기가 돌았고 머리끝부터 소름이 끼쳤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놈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놈에게 닿은 손끝에서부터 소름이 밀려야 손을 데는 순간 내 스스로 손을 떼고 말았다. 점점 다리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있으면 난 다리부터 밀려온 냉기에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난 죽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라이터. 놈은 얼음장 같이 차가우니 불에 약할 거다. 난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손에 땀이 한가득해 라이터가 쉽게 켜지지 않았지만 마침내 나는 라이터를 켰다. 불이 켜지자마자 놈은 순식간에 내 곁에서 떨어졌다. 놈은 불을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내가 놈의 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놈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건 바람소리뿐이었다.

나는 라이터를 켠 채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불이 워낙 작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놈은 사라진 모양이다. 나는 놈이 혹시라도 다시 올까봐 어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호기심이고 나발이고 문제가 안됐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아까 놈이 만진 오른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차갑고 감각이 없는 게 냉동된 고기 같았다. 아예 신경이 끊긴 걸까? 다행스럽게도 잠시 문제가 생긴 것뿐이었다. 강하게 다리살을 꼬집으니 약하게나마 통증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냉기가 가라앉으면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라이터에 있었다. 다리가 회복될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몇 초만에 올라갈 거리가 아니었다. 라이터가 꺼진다면 언제 다시 놈이 나타날지 몰랐다.

기름은 반 정도 남아 있었다. 계속 라이터를 켜놓는다면 10분도 안되어 꺼질 것이다. 난 라이터의 작은 크기가 원망스러워졌다. 밖에 나가면 큰 라이터를 살 것이다. 그 전에 나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결국 고민 끝에 라이터를 껐다. 기름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놈이 다시 온다고 해도 라이터를 재빨리 켜면 괜찮을 것이다. 사실 그 외에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있던 빛마저 사라지자 두려움이 다시 살아났다. 어둠에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을 하며 아까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워 보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놈의 감촉과 서늘함은 도저히 잊혀 지지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온몸은 벌벌벌 떨고 있었다. 그것은 감각이 없는 오른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다리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두려움이 망상을 부른 걸까? 귓가에 자꾸만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그때마다 난 라이터를 켰지만 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여기에 있다가는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아니 놈은 그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다못한 난 라이터로 내 오른 다리를 지지기 시작했다. 적당히 지지다 떼면 화상을 안 입을지도 몰랐다. 과연 불이 닿자 내 다리는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뜨거움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약하게 꼬집었는데도 통증이 왔다.

불을 이용해 다리도 고치고 놈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니 일석이조였다. 다리는 화끈거리는 부분이 제법 있었지만 그리 심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완전히 멀쩡해진 게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걸을만했다. 기름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게 문제지만 서둘러 올라 가면된다. 나는 아까 전처럼 어둠속을 걸어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난 무사히 올라올 수 있었다. 계단 사이로 빛이 보였는데 빛이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빛은 내게 구원의 손길이었다. 난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지쳐서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난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한동안 앉아서 기운을 회복하고 나서 보니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계단에서 넘어진 것 땜에 팔과 이마에 멍이 들었고 다리는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침 참견하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기에 나는 도움을 요청했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대체 어디서 뭘 했기에 이렇게 됐나요? 몇몇 부위는 불에 덴 것 마냥 화상이 심각합니다.”

“...............”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거짓말을 했다. 싸움을 심하게 했는데 그러다보니 다쳤다고. 고소할지도 모르니 진단서라도 떼어 달라고. 내 경험을 그대로 말한다면 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번거롭고 더 이상 그 일에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에 난 너무 지쳐있었다. 겉보기보다는 화상이 심하지 않아 흉터는 남았지만 곧 회복되었다. 그 사이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은 거짓말처럼 잊혀졌다. 그저 꿈을 꾼 것같이 생각되었고 그때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도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학교 근처에 얼씬도 안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학교에 자연스레 나갔고 도서관도 들락거렸다. 비록 2층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현명한 사람은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는데 난 그리 현명한 사람이 못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서 잃어버린 핸드폰 생각이 자꾸만 났다. 당시의 기억을 그대로 기억했다면 다시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텐데 시간은 기억을 자꾸만 미화하고 포장했다. 날이 갈수록 그곳에서 겪은 일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핸드폰은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핸드폰 가격은 문제가 안 되었지만 그곳에 있는 수많은 전화번호들이 신경 쓰였다. 모든 번호가 날아가다 보니 연락이 와도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때문에 무척이나 불편했다.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곳은 4층과 5층 사이였고 거기라면 갔다 오는데 큰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설사 놈이 나타나도 쉽게 도망칠 수 있는 거리다. 난 놈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내려간다면 아무 위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혼자 다시 내려가려고 하자 어쩐지 두려워져 난 절친한 친구인 재현에게 부탁했다. 핸드폰을 도서관 밑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두워 찾기 힘드니 도와달라는 정도로만 말하니 쉽사리 응낙했다. 나는 집에 있던 손전등과 제법 큰 지포라이터를 챙겼고 재현에게도 손전등과 라이터를 하나씩 건넸다. 모든 준비를 마친 나는 재현과 함께 내려가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후회하게 될 순간의 시작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오니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손전등으로 어둠을 밝히니 내려오기도 훨씬 편했다. 난 재현과 적당히 이야기하며 문제의 4층과 5층 사이에 도착했다. 재현은 층수를 세면서 오지 않았던지 그곳에 대해 별달리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내 핸드폰이 아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손전등을 켜고 샅샅이 뒤져봤는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저번에 착각했나 싶어 5층과 6층 사이도 찾아봤는데 거기에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심 초조해졌다. 놈이 내 핸드폰을 가져가버린 걸까. 그렇다면 더 내려가도 소용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도로 올라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때 재현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야, 뭔가 이상한데?”

“뭐가?”

“내가 알기론 도서관은 지하 4층인가 5층인가 밖에 없거든. 근데 우리 아래 6층이 있잖아.”

“네가 잘못 알았겠지. 네가 도서관에 얼마나 온다고.”

“아냐. 확실해. 내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5층보다 많지는 않았어. 밑에 비밀스런 공간이라도 있는 거 아냐?”

“아니면 네가 숫자를 잘못 셌겠지. 여기 층수도 안 보이잖아. 아무래도 핸드폰은 누가 주워갔나보다. 그냥 올라가자.”

“누굴 바보로 아냐? 내가 내려오면서 분명히 셌다고. 네가 4층과 5층 사이에서 잃어버렸다길래 한층 한층 세면서 내려왔단 말이야.”

“야, 핸드폰 안 찾아도 되니까 빨리 올라가자. 어두운데 있으니 무섭다. 나 무서운 거 질색이야.”

“언제부터 네가 무서운 걸 싫어했다고? 공포 영화라면 제일 먼저 보러가는 주제에. 아무튼 난 혼자라도 내려가 봐야겠다.”

“야, 기다려.”

재현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자서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재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재현은 두층을 더 내려가고서야 멈춰섰다.
“봐봐, 밑에 또 계단이 있잖아. 이거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여긴 아직 안 쓰이는 곳이라서 표시 안했나보지. 여기 있어봐야 별 거 없으니 어서 올라가자.”

“몇 층까지 있을까? 궁금하지 않아? 얼핏 봐도 되게 깊은 거 같애.”

“야 씨 올라가자니깐. 얼른! 너 안 오면 혼자라도 올라간다.”

내려갈수록 예전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었다. 아무리 대비를 하고 왔다지만 놈을 다시 만나는 건 두려웠다. 위에서 생각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밑에서 놈에 대해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난 내가 올라가는 척을 하면은 재현이 나를 따라 올 줄 알고 혼자서라도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재현은 날 못 본척하고 계속해서 내려가는 것 아닌가. 재현의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재현의 태도에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불안하고 음침한 공간에 혼자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재현은 아까보다 더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내려갔지만 쉽사리 따라잡지 못했고 이제는 재현의 발소리만 들려왔다. 발소리는 점점 크고 빨라졌는데 뛰어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대체 재현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뛰어다니는 지 이해가 안 갔다. 아무리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만 언제 놈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보란 듯이 뛰어다니다니. 차라리 내가 진실을 말해줬어야 되는 건가? 아니 그러면 오히려 재현은 놈을 찾기 위해 더 열심히 내려갔을 것이다. 애초에 재현을 데려온 게 실수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재현을 따라잡으려면 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재현의 성격이 급하긴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다닐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재현의 행동에는 뭔가 이유가 있었다. 도망. 다시 들으니 재현의 발소리는 뭔가에 쫒기는 것 같았다. 나와 떨어져 있는 잠깐 사이, 재현은 놈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망치고 있는 거라면 모든 상황이 설명이 됐다. 재현의 발소리마저 급박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내려갔다. 사방이 칠흑 같았지만 손전등으로 일일이 비추며 다닐 시간이 없었다. 난 거의 본능에 맡긴 채 계단을 내려갔고 내내 재현이 걱정되었다. 재현에게 라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재현은 언제 그것을 써야할지 모른다. 아, 진작에 알려줬어야 하는 건데.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재현의 발소리도 끊겼다. 넘어진걸까? 아니면 따라잡힌 걸까?

몇 십분은 더 내려왔건만 재현은 어디에도 없었다. 놈이 재현을 끌고 간 게 틀림없었다. 그 외의 가능성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재현은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죽은 사람을 위해 내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고민했다. 평상시라면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현을 찾으러 갔을 것이다. 재현은 내게 유일하다시피 한 친구이므로. 문제는 내가 너무 두려웠다는 것이다.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이제는 여기가 몇 층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토록 깊숙이 팔 수 있는 기술이 사람들에게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가공할만한 깊이로 미루어볼 때 놈은 한둘이 아니었다. 적어도 수백, 아니 수천은 될 것이다. 그들을 만났을 때 내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내가 우연히 불로 하나를 물리쳤을지 몰라도 그 수가 몇십배가 된다면?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그들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고 나는 살고 싶었다. 재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재현도 이해해 줄 것이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무사히 도서관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나를 비웃고 욕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비겁했지만 살아남았으니까. 나는 평범하고 약해빠진 인간 중 하나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 같이 행동했으리라. 요즘 학교 게시판을 보면 도서관의 비밀에 대해 여러 말이 많은 데 그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다. 허나 누구도 나만큼 깊이 내려가 본이는 없으리라 확신한다. 혹시라도 호기심이 생겨 도서관 아래로 내려가려는 이가 있다면 당장 그만두길 바란다. 내가 범한 잘못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