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로 보충 에피소드입니다.

시간상으로 에피스도 3과 4 사이에 놓입니다. 적어도 에피소드 3까지 읽으신 다음 봐주시길 바랍니다.

1

김재건이 어떤 녀석이냐면, 내가 봐도 그 어떤 녀석보다도 특이한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고 얼굴이 고무로 된 양 뻔뻔하기 이를 데 없으며 언제나 자신감 넘치다 못해 거만할 지경인, 그런 녀석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 녀석을 보기만 해도 이마에 ‘I am one.’이라는 글이라도 쓰여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람들에게 호감 주기 좋은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마주 대하고 있자면 피곤하기가 그지없다. 누구라도 옆에 붙여놓으면 그 자리에서 친해질 수 있는 넉살 좋은 녀석인 만큼 단둘이 있으면 쉴 틈을 주지 않고 말을 걸어오는 탓에.

나는 이런 녀석을 방학 내내 상대해야 했다. 재건은 방학과 함께 전학 왔고 우연히 나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 다른 친구는 없었고, 그래서 심심하다며 걸핏하면 쳐들어와 우리 집에 죽치고 앉아있는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녀석이 나타났다. 집이 비어있는 날이 많은 것도 녀석이 마음껏 우리 집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계신다고 거리낄 것 같은 녀석은 아니지만.

재건은 뭔가를 들고 나타났다. 갤러거가 짖는 것을 보니 웬일로 먹을 것을 가져온 모양이다. 나는 아래층으로 뛰어나갔다.

“재훈아, 나의 친구! 언제나 나를 이렇게 환영해 주는 구나!”

나는 비닐봉지를 낚아챘다.

“쳇, 뭐야. 순대잖아. 난 순대 안 좋아하는데.”
“역시 먹을 것 따위보다 내가 더 반가운 거지!”
“순대만 토해내고 가버려.”

갤러거가 날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갤러거에게 밥 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갤러거는 말라뮤트 종이었다. 그 커다란 덩치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게 조금 꼴사나워 보인다. 나는 그릇에 사료를 붓고 그 위에 간 몇 조각을 올려놓았다. 갤러거는 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허겁지겁 먹었다.

“좀 천천히 먹어라.”

재건은 쭈그려 앉아서 철창 밖으로 삐져나온 갤러거의 옆구리를 조물거렸다.

“야. 뭐 먹을 건데 개 만지면 어떡해. 올라가서 손 씻어라.”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집으로 올라갔다.

우리 동네 같은 빽빽한 주택가에서 갤러거 같은 큰 개를 키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말라뮤트는 덩치만큼 활동량도 많다. 하루에 한 번씩은 산책시켜줘야 하며, 그럴 때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을 감당해야 했다. 어쩌다 산책을 거를라치면 녀석은 이웃에서 항의 들어올 정도로 애원한다. 개에게도 언어가 있다. 녀석이 뭔가를 필요로 할 때 내는 소리는 틀림없는 애원이었다. 그 소리는 아무리 애정을 갖고 들어준다고 해도 좋게 듣기 어려운 소리이다. 주택가에서 큰 개를 기른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 눈치 보이는 일이라는 것을, 때로는 녀석이 그것을 알고 이용한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개 팔아요-

멀리서 개장수 소리가 들려온다.

이 동네에는 아직도 개장수가 돌아다닌다. 사랑받지 못하고 개장수에게 잡혀 절명하는 다른 개들에 비하면 갤러거는 분면 행복한 녀석이다.

재건은 갤러거와 실컷 떠들다가 올라왔다. 순대는 다 식어있었다.

“재훈아, 심심해!”

재건은 마루에 드러누워 케이블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심심하면 혼자 심심하지 왜 남의 집까지 와서 심심해하는 거야.”
“같이 심심하면 안 억울할 거 아냐.”
“난 안 심심해.”

나는 성실하게 공부하느라 바빴다. 방학 내로 수1 정석을 다 떼야 한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다.

“공부 따위를 왜 하고 그래. 공부는 하면 지는 거야.”

아직 재건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녀석은 두뇌파인 듯했다. 머리 좋은 것을 믿고 공부 안 하지만 모의고사는 잘 나오는. 열심히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약 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건 녀석이 안 보이는데서 열심히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그렇다면 더욱 얄미운 일. 그것은 그야말로 표리부동한 행동이 아닌가.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공부함으로써 건전하고 바람직한 여름 방학을 보내는 게 어때.”

내가 제안했다.

“아니, 아니. 공부 따위는 준비 안 된 자나 하는 거지.”

나는 여기에 대꾸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하는 게 준비하는 거잖아……. 공부가 준비 안 돼서 공부한다는 게 말이 되냐?”
“넌 도덕 시간에 뭘 배웠냐.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걸 깨달으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했고 왕수인도 인간에게 치양지가 있다고 말했어.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상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알게 됐지.”
“아리스토텔레스랑 주자는 어따 팔아먹었냐.”
“걔넨 틀렸으니까.”

나는 도저히 녀석의 뻔뻔함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퍼뜩 녀석에게 말려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책에 집중했다. 하지만 재건은 계속 떠들었다.

“난 깨달았거든. 모든 지식과 법칙 뒤에는 대우주의 의지가 있다는 걸. 그리고 사람은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대우주의 의지를 체험할 수 있어. 모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거지. 이를테면 시험 문제를 봤을 때 냉철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으면 대우주의 의지가 답을 가르쳐준다는 거지.”

나는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그럼 대우주의 의지가 수학 공식 같은 것도 알려 주냐? 케일리-헤밀턴 정리 같은 것도 문제 보자마자 스스로 유도해 낼 수 있다는 뜻?”
“케일리 헤밀턴? 그게 뭐냐?”

나는 방금 보고 있던 페이지를 펴 보였다.

“이 공식인데 이럴 때 쓰는 거야.”

녀석은 그 공식과 관련된 문제를 꿇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걸, 그 공식을 써야 하냐? 그냥 풀리는데?”

케일리-헤밀턴 공식은 이차정사각행렬에서 특정 수식을 유도할 때 쓰인다. 하지만 녀석은 관련 문제를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 버렸다.

“어때, 이것이 우주적 이성의 힘이다!”

……뭔가 부조리하다. 나는 당장 녀석의 주장을 부정할 수 있는 사례를 찾느라 끙끙거렸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재건은 말했다.

“그러니까 피시방이나 가자.”
“시, 시끄러! 말이 안 된다는 거 알잖아! 가만있어봐. 그러니까 적절한 예가…….”
“소용없다니까. 명탐정 재건님 앞에선.”

나는 머릿속에 든 지식 한 조각을 무턱대고 집어 꺼냈다.

“그럼 대우주의 의지로 조선 후기에 타조법에서 도조법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 설명해 봐라.”

하지만 녀석은 거침없이 말해 버렸다.

“이양법 보급 등으로 생산량이 많아졌으니까 굳이 병작반수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지. 정액제로 일정량 정해두는 게 지주도 편하고 농민으로서도 부담이 덜하거든.”
“너 이 자식 공부했지?”
“하하하, 대우주의 의지라니까.”

정말 오랜만에 사람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노려보지 마. 사실 나도 가끔씩 구멍 난 지식의 고리를 메우기 위해 약간의 공부 정도는 하고 있어.”
“네 스텐스가 바뀌지 않는 한, ‘사실’이라는 단어는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녀석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이 씨, 몰라. 기왕 책 덮은 김에 나가자. 네가 온 이상 공부는 다 틀린 거니까.”
“그래, 그래. 피시방이나 가자.”

친구의 공부를 방해해놓고도 녀석은 속 좋게도 웃는다.

피시방엘 가든 수족관엘 가든 일단은 나가기로 했다. 모처럼 바람이 선선히 부는 공부하기 좋은 날이었건만. 나는 구시렁대면서도 나갈 채비를 마쳤다. 재건은 먼저 뛰쳐나갔다. 나는 전등이나 가스 벨브 등을 점검하고 문을 잠그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재건은 계단 밑에서 갤러거를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녀석은 갤러거를 좋아한다. 그러나 재건의 얼굴은 개를 감상하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재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얼굴에서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달려 내려갔다.

갤러거가 사라져 있었다. 우리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자물쇠는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2

문득 머릿속으로 개 팔아요- 하는 소리가 맴돌았다. 그리고 언젠가 옥상에서 방목하던 개를 개 도둑이 밤새 잡아갔더라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갤러거 같은 큰 개를 잡아갈 수 있을까? 갤러거는 성격이 좋아서 누구하고도 잘 어울린다. 집을 지킨다는 개에 관한 일반적 관념은 갤러거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뒤엉켜 가득 메우고 있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자물쇠가 안 잠겨 있었어. 너네 집 개한테 자물쇠라는 걸 인식할만한 지능이 있었냐?”

재건이 말했다.

“아니.”
“그렇다면 저 자물쇠는 사람이 연 것이겠군.”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갤러거를 찾아야 돼! 부모님 돌아오시기 전에!”
“당연하지. 일단 판단을 해보자.”
“아까 그 개장수! 나가서 찾아보자. 아직 이 동네에 있다면…….”
“최근 몇 분 내로 오토바이 소리나 개 팔아요 소리 들어본 적 있어?”

생각해보니 없었다. 그렇다면 개장수 오토바이는 우리가 당장 좇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천천히 살펴보자. 우선 이 집에는 지금 너 혼자밖에 없지?”
“그래. 세사는 사람도 낮엔 없어.”
“개가 스스로 자물쇠를 열 수도 없지?”
“당연하지.”
“개는 대문 안 마당에, 그리고 자물쇠가 달린 우리 안에 있었지. 외부 사람이 지나가다가 슬쩍 들여다보고 개를 가져가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 것이 가능할까?”
“우연히 지나가는 거라면…… 개가 있는지도 모를걸?”

골목길에서 흘끗 봐서는 갤러거 우리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즉, 이건 자물쇠 관리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노린 계획범죄야. 적어도 한 번의 탐사를 거친 행동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개를 가져가는 목적은? 적어도 이미 길들은 커다란 개를 애완용으로 잡아가거나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겠지? 그렇다면 왜 가져갔을까. 역시 식용으로?”
“야!”

재건은 웃으며 사과했다.

“아, 미안. 그런데 말라뮤트도 먹는다는 소릴 들어봤냐? 그건 치와와를 먹는 것만큼 어색한데. 그래도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봐야지.”
“어쩌면 훈련시키거나 다른 데다 팔 생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 어쨌든 갤러거를 예뻐해서 가져간 건 아닐 거야. 만일 그렇다면, 최근 방문한 외부인 중에 갤러거를 특별히 예뻐하던 사람이 있어?”
“아니, 요새 우리 집에 온 사람은…… 너 말곤 없어.”
“그럼 지금으로써는 그 개장수 말고는 달리 용의자가 없군.”

우리는 탐문으로 개장수의 행방을 좇기로 했다.

재건이 탐문 지침을 알려주었다. 골목골목을 돌며 개장수의 자취를 묻는다.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들은 시간과 방향이라도 알아내라고 했다. 우리는 흩어져서 탐문하기로 했다. 그리고 개장수 행적의 뚜렷한 동선을 찾으면 휴대폰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탐문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장수의 차량이 수레가 달린 스쿠터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정보 역시 탐문에 도움이 됐다. 골목 구석구석을 돈 모양이라 뚜렷한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그래도 한 시간 정도 돌아다니며 시간과 방향을 계산한 결과, 특정 방향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즈음 재건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확은 있었어?
“응. 두 시 쯤 큰 길 쪽으로 나간 것 같아.”
-그래? 이거 잘 됐다. 난 지금 큰 길 건너편에 와 있는데 역시 두 시 쯤 이쪽 구역으로 진입한 게 확인됐어. 그리고 이쪽에선 확성기 틀고 돌아다니지 않은 것 같아. 집이든 어디든 돌아간 거야.
“그럼 놓친 거야?”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개장수가 갈만한 곳은 짐작이 가. 그쪽 구역에서 이쪽으로 오려면 4차선 도로를 건너야 돼. 조사해보니 그러려면 인터체인지로 한참을 돌아와야 하더라고. 그 말은 이쪽 골목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곳으로 가고자한다는 것을 뜻하지. 그게 어디냐면…….

재건은 말을 끊었다. 부스럭거리는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있는 작은 산이야. 거리에 개 사육장이 있다 하더라고.

그렇다면 갤러거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물론 꼭 거기로 갔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래도 조사해볼 필요는 있겠지? 이쪽으로 넘어와라. 차랑 달리 사람은 육교로 건널 수 있으니까.

나는 재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여름이었다. 바람이 불어서 땀은 그리 나지 않았다. 오히려 등줄기를 스치는 미약한 가을의 냄새마저 느껴졌다.

그럴 리 없겠지. 이파리가 시퍼렇게 우거진 한여름이었다. 이 서늘함은 그렇다면 내 마음이 만들어낸 두려움이 아닐까. -갤러거는 지금, 살아있을까.

산으로 들어가려면 산 못지않은 비탈진 주택가 골목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산 입구에 다다랐다. 뒤를 돌아보니 언덕길 동네가 한눈에 내다보였다. 어쩌면 저 집들도 이전에는 산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철조망 사이로 난 나무 계단을 밟고 산을 올랐다.

막상 산에 다다랐지만 우리는 개 사육장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일단 한 줄로 된 길 따라 걸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기로 했다.

개 사육장은 산 중턱에 있는 공터에 있었다. 사육장 근처에 다다르자 개 짖는 소리가 위치를 알려주었다. 개 우리들이 보이는 곳까지 접근하자 개들은 요란하게 짖어댔다. 낯선 냄새를 경계하는 걸까.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외치는 것일까. 나 여기 있다고.

우리는 가파르고 좁은 흙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우리로 다가갔다. 개들은 귀가 터질 정도로 짖어댔다.

“크다.”

재건은 코가 빨려 들어갈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말했다.

“그러다 물린다.”

개는 흥분해서 날뛰고 있었다. 갤러거만큼, 아니, 갤러거보다도 큰 개였다. 처음 보는 종이지만 한 눈에도 식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송아지만 한 개였다.

이 개들은 뭔가가 달랐다. 개에게도 표정이 있다. 갤러거와 비교해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개들에게는 갤러거만큼의 생동감 있는 표정이 없었다. 우리에 갇혀 지내고 언젠가는 도축될 운명이라서 그런 것일까? 동물도 행복을 느낀다. 갤러거와 이 개들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루하루 사육되는 무력감. 그것이 내가 이 개들에게서 읽은 표정이었다.

“주인 오면 어떡하지?”

내가 물었다.

“그냥 지나가다 구경 왔다고 말하면 되지.”

우리는 다른 우리를 죽 둘러보았다. 개들은 전부 같은 종이었다. 즉, 갤러거는 없었다. 실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려는 차, 우리가 서있던 곳에서 좀 더 아래로 내려간 곳에 우리들이 더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위쪽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짖는 개들도 있었지만 얌전히 앉아있거나 꼬리치는 개도 많았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종은 가지각색이었다. 진돗개에서 달마시안, 리트리버, 스피츠까지 다양했다. 이 개들은 식용이 아닌 것일까? 유기견을 보호해주는 것, 아니면 그런 개들을 팔려는 것. 이 개들조차 도축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생각을 뒤로 하고 서둘러 우리를 조사했다.

하지만 역시 갤러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잘못 짚은 건가.”
“역시 용의자를 개장수로 한정짓고 또 사라진 곳을 여기로 잡은 건 너무 근거가 없는 성급한 수였어.”
재건은 중얼거리다가 내게 말했다.
“이제 좀 포괄적으로 찾는 수밖에 없겠어. 동물 보호센터나 보건소에 전화해놓고 전단지를 돌려야지. 전화는 빨리해보는 게 좋겠어. 유기견 보호소 같은 데선 주인이 안 찾아가면 안락사시키거든.”

갤러거가 그런 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인 것이다. 하지만 도난당한 개가 유기견 보호소로 갈 리는 없을 것이다. 재건은 날 안심시키려는 듯 계속 말했다.

“찾을 수 있을 거야. 개 사진은 있지? 전단지에는 이렇게 쓰는 거야. 저희 개는 도난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못 보던 말라뮤트가 이웃이나 친구에게 생기거나 길거리에서 발견되면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말이야. 연락 주기만 해도 사례한다고 써 놓으면 전화가 올 거야. 그러면 제보 들어온 개들을 하나하나 조사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힘이 빠졌다. 머릿속에서 갤러거의 성장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콘크리트 바닥은 땅에 대한 인간의 독점 선언과 마찬가지이다. 그 위에 빌붙어 살아가는 생물은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것이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았고 갤러거가 처음 왔을 때에도 기르는 것을 반대했었다. 기르기로 결정한 뒤에는 녀석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애썼다. 그것이 한 생명을 책임진 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녀석은 분명 행복한 개였다. 하지만 녀석이 나를 떠난다면……. 좋은 주인을 만나서 살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한 생명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한 바퀴 더 돌아보고는 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들어온 산길의 반대쪽에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 길로 스쿠터가 올라오고 있었다. 분명 그 스쿠터였다. 뒤에 개가 들어갈 법한 우리 하나가 실려 있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스쿠터가 다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재건은 갑자기 나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숨어서 스쿠터가 멈추는 것을 지켜보았다. 개장수는 내려서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살금살금 스쿠터로 다가갔다. 스쿠터의 우리에도 갤러거는 없었다.

“우리 완전 잘못 짚은 건가?”

내가 말했다.

“일단 물어보자. 주인한테.”
“뭐라고. 우리 집 개 가져갔냐고 라도 물어볼까?”
“나한테 맡겨.”

재건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자고 했다. 하지만 재건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컨테이너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개장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험상궂은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얼굴이 검고 비쩍 마른 것이 결코 성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건은 거침없이 말했다.

“저 개들 주인이시죠?”
“맞는데. 왜?”
“혹시 개 사주기도 하나요?”
“식용이냐? 애완용은 저길 봐. 꽉 찼어.”
“그래요? 우린 바로 저 아래에 사는데요. 어쩌다 큰 말라뮤트 하나를 떠맡게 됐거든요. 그게 좀 처치 곤란이라…….”

왜 개를 사주는지를 물었는지 궁금했지만 그 자리에서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말라뮤트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야 더 적당하지 않을까?

개장수는 말했다.

“말라뮤트는 고기로도 쓸 수 없어. 다 큰 걸 찾는 사람도 없고.”
“아, 그래요? 그래도 특별히 말라뮤트를 구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사람 기다리느라 개를 더 받아줄 순 없잖아. 딴 데 가 알아봐.”
“말라뮤트가 잘 안 팔리나요?”
“가끔 있기야 하지만 개가 아이스크림처럼 팔리는 것도 아니니까…….”

재건은 물러났다. 나는 컨테이너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서 물었다.

“야. 왜 개 사냐고 물어본 거냐. 저 사람이 갤러거 갖고 있나 알아 봐야지.”

재건은 말했다.

“저 사람은 범인이 아냐.”
“뭐? 어째서?”
“갤러거가 오토바이에 없었잖아. 만일 저 사람이 갤러거를 가지고 갔다면 도중에 어디선가 처리했다는 뜻이지. 그 말은 곧, 갤러거를 가져간 건 목적이 있었다는 뜻이야. 썰매 끌려고 가져간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말라뮤트를 원하는 고객이 있다는 말. 하지만 방금 물음에서 말라뮤트를 판 고객이 없다고 말했어.”

나도 모르게 그렇구나 하는 말을 내뱉었다.

“훔친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말했다고 보기도 어려워. 내가 준 정보대로라면 굳이 거짓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 사람은 철저하게 사실을 숨길 정도로 약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그렇구나. 그럼 갤러거를 어디서 찾아야 되지.”
“아까 말한 대로 전단지 돌려보는 수밖에 없지. 또 집주변 사람들에게 탐문도 하고 해서 어떻게든 정보를 모아야지. 정보만 더 생기면 반드시 찾을 수 있어.”
“대우주의 의지로 말이지?”
“그래. 대우주의 의지로.”

우린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녀석의 허황된 말이라도 왠지 모르게 의지가 됐다. 마치 인로와 있을 때의 기분 같았다. 둘을 빨리 대면시키고 싶어졌다 .탐정이 둘이라면 사건 해결도 두 배로 빨라질까?



3


우리는 조금 지쳐 있었다. 스쿠터를 수소문하느라 돌아다닌 거리를 더하면 상당히 오래 걸은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갈 때에는 버스를 탔다. 다행히도 집 근처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향후 대책과 전단지 문구에 대해 의논했다. 문구는 동정심이 가면서도 과하지 않게 쓰는 것이 중요했다. 집에 가면 내가 바로 문서 작성을 하고 재건은 보건소 등에 연락하기로 했다.

나는 전단지 돌릴 일도 없이 전화만으로 갤러거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아니, 그보다도 가느다란 희망이지만 집에 도착하니 갤러거가 이전처럼 멍청한 얼굴로 배 깔고 엎드려 꼬리 치고 있기를. 늘 곁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허전함을 견딜 수 없었다. 집에 가까이 갈수록, 그 허전함은 점점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만일 내 눈으로 텅 빈 우리를 보게 된다면 슬픔은 걷잡을 수 없어질지도 모른다.

……

간절한 바람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애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갤러거를 봤을 때 나는 물었다.

“너 여기 왜 있니.”

갤러거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혀를 내밀고 배를 깔고 엎드려 꼬리를 치고 있었다. 재건을 쳐다봤지만 녀석이 알 턱이 없었다.

나는 그제야 너무나 갑작스런 일 때문에 혼란에 빠져 마치 접선 된 것처럼 뒤죽박죽이었던 사고 과정을 바람직하게 되돌려 놓았다. 나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나는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모처럼 찾아온 사촌 동생 재호는 형에게 눈길조차 안 준 채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갤러거 데리고 나갔었냐?”

재호는 여전히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응. 좀 놀아줘라. 개가 맨날 마당에 갇혀 있는 게 불쌍하지도 않냐.”
“이럴 수가.”

재건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전제부터 잘못됐다니. 이 집엔 너 혼자가 아니었어!”
“깜빡 잊고 있었는데, 재호는 사촌 동생인데 나랑 같은 학교 다녀서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 한동안 안 와서 깜빡 잊고 있었는데.”

재건은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야 이, 사기꾼아! 이건 불공정하잖아!”
“불공정하다니, 현실에 그런 게 어딨냐.”
“넌 반 다인도 안 읽어봤어? 이건 정보가 공정하지 못하잖아! 아무리 명탐정이라도 이런 반전은 어떻게 때려 맞추란 말이야!”

나도 재호가 있다는 사실을 까먹었는데 어쩌라고! 나는 정상인이라서 갑작스럽게 사건이 닥치면 평소만큼도 생각하지 못한단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대전제가 잘못되었을 것이라고 가정하지 못한 네 실책도 무시 못할 텐데.”
“아니야! 이건 법칙에 위배되는 사건이야. 이런 허탈감이……. 만일 이게 추리소설이었다면 작가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욕을 처먹다가 마침내 자살하든가 미쳐버리든가 하는 결말로 치달을 거야. 그러면 추적 60분 같은데도 나와서 대대적인 추리문학 탄압이 이뤄지겠지. YWCA나 별 희한한 잡 단체에서도 괴롭힐 테고…….”

가지가지 하는군. 현실은 소설이 아니라는 말.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게다가 내 입장, 재호의 존재를 아는 처지에서는 불공정한 게임도 아니었는걸. 그저 오늘 하루 오질 나게 걸어다닌 것이 조금 억울할 뿐이다.

재건은 재호에게 가서 말했다. 역시 재호는 모니터만 쳐다보며 말했다.

“야, 너 우리 학교 다닌다고 했지? 몇 학년이냐?”
“일 학년.”
“너라는 존재는 말야. 나에게 있어서, 이번 사건에서 불공정한 트릭이었단 말이야. 혹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기도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넌 나한테 사과해야 해.”
“뭐야, 그건. 귀찮게 하지 마.”

왠지 둘이 죽이 잘 맞을 것 같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