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부옇게 심한 어느 저녁 짬이었다. 무료한 나머지 머리나 다듬자고 생각해, 구겨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고 스팀냄새 선명한 세탁소 옆을 지나 미용실로 들어설 때였다. 아니, 사실은 더 이상 직장에서 머리 때문에 눈총과 핀잔을 듣기 싫어서였으리라. 입을 끊지 않기 위해서라도 머리를 다듬어야 했다.
수명이 다 된 형광등이 플라스틱 간판 안에서 간신히 빛나는 허름한 미용실이었지만 어찌된 까닭인지 근방에는 이 곳 밖에 없었다. 아마 다른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대뜸 발걸음을 옮겼던 것이다.
오래된 샤시문은 기름칠도 되지 않아 좀체 열리지도 않고, 두어 번 시도 한 뒤 욕설이 나올참에 겨우 문을 열고 들어서자 10개나 되는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서오세요- 같은 인사도 건네지 않는다. 한 남자의 머리를 감기는 미용사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앉으라고 말했다. 머리에 스팀케어를 하고 있는 여자가 한명, 고데기를 말은 채 여성잡지를 보고 있는 여자가 한명. 나는 빈 의자에 가서 앉아 으레 했던 것처럼 안경을 거울 앞에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끄트머리만 손질 해주세요. 남자한테 수건을 건넨 미용사가 앞치마에 손을 훔치며 내 등 뒤에 섰다. 눈이 나쁜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짧은 파마머리에 빨갛게 칠한 립스틱이 부담스러운 미용사가 내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남자가 거울 앞에서 서서 머리를 닦느라 물방울이 튀었다. 나는 어쩐지 기분이 상했다. 아마 이런 분위기와 미용사의 불친절함에도 사람들은 묵묵히 감내하며 그러려니 하고 넘겨버리고 만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은 대체로 그러하다.
사각사각.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탓이었는지 귀가 더욱 예민해 진 듯 했다. 미간에 힘을 주고 눈의 초점을 좁히자 언뜻 찡그린 얼굴의 내 모습이 거울에 잡혔다. 마침, 등 뒤에서 들리는 8시 뉴스소리와, 소파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는 두 여자의 대화, 신경병적인 가위질 소리가 내 온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 밤... 미장원에 침입한... 주인인 46살 안모씨와... 흉기에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흉악한 범죄... 아유- 요즘 세상 무서워서 살겠어요? 그러게 우리 아들내미 친구가 경찰서에 다니는데 요즘 강도들은 옛날처럼 그냥 돈 만 뺏고 가는 게 아니라 사람을 찌르고 돈을 뺏는 데요. 무서운 세상이야. 그러게 말이죠.
미용사의 가위질 소리가 잠시 멈췄다. 미용사는 TV에 눈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다시 가위질을 하기를 두어 차례. TV에서는 요즘 부쩍 증가한 흉악 범죄와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 통계자료를 들먹이고 있었다. 미용사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귓가를 따라 머리칼을 사정없이 잘라내고 빗질을 할 때 마다, 자그마한 쇠붙이인 가위가 목 뒤편을 슬쩍 건드릴 때마다, 어쩐지 모골이 송연해 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차가운 느낌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건 마치 긴장의 끈을 간신히 잡고 있던 손아귀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무서움이다. 나를 무섭게 하는 것 또한 이러하다.
머리에 팩을 뒤집어쓰고 스팀케어를 하던 여자가 채널을 돌렸다. 다른 곳의 뉴스에서도 살인 사건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30분쯤 미용실의... 26살 박모씨가... 가위로 손님의 목을 찔러...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정신분석을 의뢰...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피해자 김모양...
미용실 사건얘기는 여전히 두 여자의 화재거리였고 TV를 보느라 자주 멈추는 미용사의 손놀림은 가위질을 재개할 때 마다 낯선 정글을 탐험하는 양 헤메이고 있었다. 아줌마 앞머리도 좀 다듬어 주세요. 예 예. 시퍼런 가윗날이 눈앞을 언뜻언뜻 거리며 지나간다. 사람의 피부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부옇게 흐린 눈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머리카락 하나가 눈썹에 걸렸다. 어머 어머 저 여자 봐요. 어휴 죄 진 게 없다는 듯이 대가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네. 무서워라,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사람을 찔러죽이나. 글쎄.
눈이 간질간질 한 것이 눈을 껌뻑여 봐도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새 눈물이 맺힌다. 어쩐지 화가 치솟아 오른다. 미용사는 계속해서 뉴스로 시선을 돌리느라 멈추곤 했다. 부글거리는 스팀케어기 소리마저 거슬린다. 스팀케어기에 뜨거운 김을 공급하는 주름진 파이프가 사람의 내장처럼 꿀럭거린다. 사람의 배를 가르면 아마 저처럼 김이 무럭무럭 난다고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자 머리가 싸늘해지는 느낌.
아줌마 얼마예요? 6000원. 아마 남자는 가격을 알고 있지만 의례상 물어보는 것일 게다. 나는 그런 가식에 치가 떨린다. 그런 가식에 치가 떨리면서도 가식을 위해 머리를 다듬으러 들어온 나에게 더욱 치가 떨리며, 그런 나에게 가식이라는 굴레를 요구한 직장과 사회에 더욱이 치가 떨리는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은 대체로 이러하다.
셀룰로이드 필름이 군데 군데 벗겨진 샤시문을 열고 나서는 남자가 힐끗 쳐다본다. 나는 결코 남자들이 뒤를 돌아보게 할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아마 그는 내 찡그린 인상이 신경쓰였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관심조차 거부하고 싶다.
...목격자인 30살 김모씨가... 증언한 범인의 모습 덕택에... 검거에...
나는 거울에 비친 부연 내 모습을 쳐다보며 화를 가라앉히려 했다. TV소리, 여자들의 수다, 미용사의 무관심함.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은 대체로 이러하다.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 나는 그들에게서 평소와 다름없는 뜨거운,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가위가 지날 때 마다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이 참으로 비참하고 처연하다. 잘린 머리카락에서 슬픔마저 느껴진다. 그것은 일반적인 슬픔이 아니라,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놀이터의 그네가 혼자서 삐걱이는 모습을 봤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다. 아침과 저녁에 발걸음을 직장으로,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다.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도로가에 물건을 늘어놓은 할머니와 시선을 교환했을 때, 느끼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것을 굳이 칭하자면 괴리감이라고 칭하고 싶었다. 더욱이 나를 화나게 하고 무섭게 하는 것은 그런 괴리감을 느낌으로서, 괴리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과 나사이의 단애를 들여다 보는 것과, 그 깊이가 얼마나 될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화가 난다고 미용사를 무참히...
그 때 귀가 불에 데인 듯이 뜨거워 졌고, 나는 아앗! 하고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새하얀 커트보에 핏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어머나 이를 어쩐데. 미안해서 어쩌나, 휴지가... 휴지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휴지로 내 귀를 닦는 미용사의 손을 뿌리치고, 손을 뻗어 끝이 날카로운 가위를 꼬나 쥐었다. 그리고는 미용사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이를테면, TV에서 떠들었던 것처럼.
참말로, 남의 속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모르겠다. 저녁 뉴스는. 게다가 나를 정말로 화나게 하는 것은 저 무표정한 저녁뉴스의 앵커만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또한 싸늘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