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과 우유, 그리고 위층 여자




나는 자취방에서 홀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무늬가 없는 자취방 천장에서 흐릿한 담배 연기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채 외로이 맴돌고 있었다. 눈으로 담배 연기의 꼬리를 좇으며 나는 며칠 전까지 갇혀 있었던 그곳에 대해 생각했다.
그날 그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자신만이 아는 통로로 그곳을 빠져나갔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 통로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 통로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지,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진실은 천장을 맴도는 담배 연기처럼 흐릿할 뿐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나를 길들이려 했었고, 또 내가 그녀에게 길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때때로 나는 자취방에 돌아오고 나서 천장에서 소음이 들려오는 듯한 환청을 듣곤 했었다. 그러나 위층은 아무도 살지 않은 빈방이었다. 정말로 나는 길들어진 것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이제 나는 다가올 군대에 대해 걱정을 하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갇혀 있던 그곳에서의 생활이 이곳 자취방으로까지 연장되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쭉 단절된 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생각을 방해하는 괴기스러운 소리 하나가 귓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들어왔다. 나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리는 똑같은 톤으로, 똑같은 크기로 잠시 후 다시 들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히 여자의 비명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명이라기보다는 목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내지르는 고함이었다.
그 소름 돋는 소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몹시 두려웠으나 내 마음속에서는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이상스러울 정도로 간절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약간 고민한 끝에,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섬주섬 윗도리를 걸치고 자취방을 나왔다.
자취방 대문 앞에서 남자 두 명이 담배를 태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이상한 소리 못 들으셨나요?”
그러자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가 내 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상한 소리요? 옆집에서 들리는 보일러 소리 말인가요?”
“아뇨. 그것 말고 여자의 비명, 아니 고함과 같은.”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무어라 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는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글쎄요. 못 들었는데요. 보일러 소리를 잘못 들으신 것 아니에요?”
“이상하네······.”
저 사람들이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혼자 환청을 들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취방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소름 돋는 여자의 고함이 어디선가 다시 들려왔다.
문득, 머릿속에 한 여자의 검은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코끼리 상아처럼 누렇게 변색된 벽지 위로 지네 한 마리가 스멀스멀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몸 구석구석에 아주 작은 크기의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찝찝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으면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씻지 못하였다. 목구멍으로 썩은 하수구 냄새가 나는 침이 꿀럭거리고, 얼굴에 곳곳에는 피지 덩어리가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외로움과 권태, 불결함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것들에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익숙해지려면 며칠이 더 걸릴지 몇 달이 더 걸릴지 몇 년이 더 걸릴지, 전연 알 수가 없었다.
쿵-쿵. 천장이 또다시 맥박 치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 온 첫날부터 천장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이마셨다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를 뱉어내는 과정을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여관을 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 존재하는 구조물이라곤 식탁, 침대, 거울, 계단이 전부였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들은 폐쇄된 공간에서 썩어가는 내 뇌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들이었다. 소통과 교감이 절실한 나는 매일 희읍스름한 얼룩이 잔뜩 묻어 있는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에 갇힌 또 다른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안녕.”
이 광적이면서도 자폐적인 대화는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놀이었다. 하지만 거울 속의 놈은 도통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다. 먼저 말을 건네지 못하는가하면 대답을 동시에 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이 놀이는 금방 싫증이 나고 말았다. 나는 거울 속의 나와 대화를 하는 놀이를 관두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천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재료 삼아 야릇한 상상하기에 돌입했다.
위층에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짧은 머리에 동그란 눈, 앙증맞은 코를 지닌 귀여운 여자일까. 약간 로리타적인 몸매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긴 금발 생머리의 늘씬한 미녀는 아닐까.
이런 헛된 망상을 하고 있으니 아랫도리가 피가 쏠리고 빠듯해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아랫도리에 그놈은 천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맞춰 발기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아랫도리에 그놈을 오른손으로 고정한 다음 버릇처럼 수음했다.
수음이 끝나니 나른한 피곤과 함께 잠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쩌면 나는 천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급속도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공기는 회색빛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눅진한 침이 입안에서 끈적거리고 어깨는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뻐근했다. 천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잠에서 깬 것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갔다. 식탁에는 언제나 그렇듯 식빵 하나와 우유 한 컵이 올려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매일 한 끼만을 지급받았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데, 누가 갖다 놓는지 나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전에 자고 일어나면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의도적으로 낮잠을 잔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식사는 오직 하루에 한 끼만 지급될 뿐이었다. 웃긴 것은 이토록 보잘 것 없고 빈곤한 식단에 내가 적응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식빵 위에는 갓 태어난 새의 깃털처럼 먼지가 뽀송뽀송 앉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한 입 베어 물고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텁텁한 입 안으로 차가운 수분이 더 해졌다. 나는 이제 이 초라한 식사에 어느 정도 길들어졌다.
간단한 식사가 끝나고,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계단은 썩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데, 폭이 넓고 밤색 난간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계단의 중간 부분부터는 비정상적인 어둠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괴기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실 살갗 속까지 파고들어오는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몇 번이나 계단을 올라 위층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계단이 품은 비정상적인 어둠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 때문에 그대로 몸을 돌려 침대 쪽으로 줄행랑을 치게 되는 것이었다.
쿵-쿵. 위층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더 빨라졌다. 위층에 여자는 도대체 뭐 하는 여자기에 매일 그 짓을 해대는 것일까. 천장은 빠르게 맥박 치며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종일 집 안에 처박혀 있으니 신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외로움과 무료한 시간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뇌를 사각사각 썰어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소통은 인간에게 비타민보다도 필요한 것임을 나는 이곳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위층의 그녀를, 그리고 그녀와의 소통을.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섹스를 하고, 그리고 엉뚱하게 그녀에게 살해당하는 결말을. 그렇다. 알고 보면 그녀는 사실 지독한 살인마이다. 아름다운 외모 뒤로 잔악한 살인본능을 품은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전설적인 사이코. 녹이 슨 식칼로 내장을 후벼 파고, 그리고 간을 꺼내 우걱우걱 씹어 먹는 아주 무서운 년일 것이다.
이곳에 지내면서 뇌는 이러한 말도 되지 않는 망상을 하는데 아주 효과적으로 훈련되어 있었다. 망상 속에서 위층 여자는 광적인 살인마가 되었다가 청순한 숙녀가 되었다가 요염한 요부가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완벽하게 미쳐버린 지독한 정신병자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건전한 상상을 했었다. 빛이 없는 어두운 구석에 처박혀 눈을 감으면 대가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새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것들은 크고 무거운 날개를 퍼덕이며 감빛으로 물든 수평선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소금기와 거품을 잔뜩 머금은 파도가 철썩이며 굵은 모래알을 지면으로 솎아내고, 하늘에는 담배 연기처럼 뿌연 구름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떠오르면, 촘촘히 박힌 별들이 자기네들끼리 낄낄거리며 속닥거렸다.
그러나 이런 상상들을 나는 이제 할 수 없게 되었다. 내 뇌는 시궁창에 빠진 것처럼 악취가 나고 썩은 것들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은 대체 누구일까. 나를 이곳에 가둔 놈은 어떻게 생겨먹은 개자식일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변태 같은 놈이 틀림없다. 이 집 구석구석 찾을 수 없는 곳에 카메라들을 숨겨놓고 모니터를 응시하면서 수음을 하는 아주 빌어먹을 호모자식일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때때로 자살을 생각했다. 목을 매는 것은 도구가 없어서 불가능하다. 방법은 거울을 깬 다음 그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긋는 것이다. 그러면 동맥이 끊어지고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겠지. 아니, 피는 뜻밖에 침착하게 흘러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곳은 그 피에 잠기게 될 것이고, 그것을 발견한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여 위층에 있는 여자는 구출되겠지.
잠깐. 위층에 여자도 나처럼 갇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바로 나를 가둔 범인인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몰랐다. 예전에 나를 짝사랑했던 여자가 나를 소유하고자 가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짝사랑했던 여자가 있긴 있을까. 글쎄, 내 사랑은 언제나 일방적인 함흥차사였다. 아무리 보내도 절대 되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랑을 받은 적이 있을까. 누군가 나를 떠올리고 애태워 하며 그리워한 적이 과연 있을 것인가. 어쩌면 나는 태어난 뒤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불쌍한 놈인 것은 아닐까. 누가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고 말했는가. 만약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면 그것은 모두 반쪽짜리 사랑일 뿐이었다. 여태껏 이 세상에 동등한 사랑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랭보가 말했듯이 사랑은 재해석되어야 했다.
나는 사실 위층 여자가 나를 가둔 사람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집착하고 나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미친놈이었다. 그렇다. 나는 지독하게 이기적이면서도 완벽하게 돌아버린 아주 미친놈인 것이 분명했다.


잠에서 깨니 머릿속에는 꿈의 파편들이 변기 속에 변 찌꺼기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몸은 따뜻한 곳에 올려놓은 얼음처럼 흐물거리고 눅눅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장에서는 소음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천장은 체크무늬 벽지로 되어 있었다. 그 반듯하고 일정한 배열의 체크무늬를 보고 있으니 내가 그 완전한 테두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나와 식탁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는 역시 식빵 하나와 우유 한 컵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식빵을 집어들었다. 식빵 위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지만,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나는 손으로 곰팡이가 펴있는 부분을 떼어낸 다음 식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이어서 평소처럼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우유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반사적으로 뱉어내었다. 우유가 분명히 상해 있었다. 순간 가슴 끝에서부터 울컥 화가 치솟았다.
“이 개 같은 새끼야! 한 끼 주는 것도 아까워서 이런 쓰레기를 줘!”
나는 유리컵을 거울에 던졌다. 쨍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과 유리컵이 산산조각이 났다.
“카메라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이 새끼야!”
한 번 솟아오른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씩씩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카메라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 귀에 작은 소리 하나가 포착되었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집안에는 순식간에 고요가 찾아왔다.
삐이걱-. 소리가 고요를 깨고 다시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위층으로 가는 계단. 심장이 일순간 멈추었다. 삐이걱-. 이 소리는 확실히 계단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계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은 금방이라도 괴물을 토해낼 듯한 어둠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삐이걱-. 그렇다.
위층에서 누군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까닭 모를 공포에 휩싸여 뒷걸음질을 쳤다. 계단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졌다. 나는 내려오는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와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동시에 느꼈다.
심장이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에 가려진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것은 키가 족히 2미터는 되어 보였고 노란색 계열의 긴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있었다. 2미터의 키는 남자의 것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보이는 긴 머리카락이나 실루엣은 분명히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2미터짜리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그러자 검은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안녕.”
그것은 위층 여자가 나에게 건넨 최초의 말이었다.


우리는 침대 위에 사이좋은 모양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전혀 친밀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외모를 보며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아주 힘든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푸석푸석하지만 가늘고 긴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봐줄 만했다. 그러나 그 밑으로 내려가면 도대체 사물을 볼 수는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드는 좁고 길게 째진 눈이 자리를 잡고 있고, 그리고 그 밑으로는 전봇대를 연상하게 하는 기다란 코와 대패질을 당한 듯한 크고 넓적한 입술, 상어의 이빨처럼 위협적이게 날카로운 누런 이가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몇 살이에요?”
그리고 그녀가 입을 열면 아까 마신 상한 우유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코로 숨을 쉬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스무 살이요.”
“어머, 내가 두 살이 더 많네. 말 놓아도 되지?”
“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할 수가 없었다. 심한 구취는 둘째 치더라도 그녀의 크고 넓적한 입이 나를 꼭 잡아먹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곳에 온 이래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더 이어나가야만 했다.
“저기, 그러니까······. 뭐라고 부르죠?”
“누나라고 불러.”
그녀는 자상하게 대답했다.
“네, 누나. 누나도 혹시 저처럼 하루에 한 끼의 식사만을 지급받나요?”
“아니. 난 두 끼를 지급받아.”
그 말을 듣자 울컥하는 마음이 솟아올랐다. 나는 하루에 한 끼고 그녀는 하루에 두 끼, 이런 불공평한 일이 있다니. 그러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불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한 끼만을 먹어.”
“네? 그렇다면 설마······.”
“그래. 나머지 한 끼는 먹지 않고 매일 아침 너에게 줘.”
나는 곤혹스러워졌다.
“예? 아니, 그러니까, 저. 아니, 누나는······.”
그녀는 나처럼 매일 한 끼만을 먹기 때문인지 지독하게 말라있었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손을 꼼지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내가 원해서 그러는 거니까. 오히려 내가 미안해야지. 오늘 상한 음식을 줬으니까. 미안. 난 음식이 상한지 몰랐어.”
나는 그녀가 나와 같은 불쌍한 신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누나는 우릴 가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요? 누가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는지, 누가 우리에게 음식을 주는지 말에요.”
“응. 알고 있어.”
위층에는 좁은 창문이 하나 있는데 그곳으로 매일 어느 남자가 들어온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녀에게 두 끼 분량의 음식을 주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떠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매일 천장에서 들려오는 그 삐걱거리는 소리는 그 남자와 그녀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주 웃기는 말이지만 나는 순간 그 남자에게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창문으로 그 남자가 들어온다고요? 그럼 누나는 왜 그 창문으로 도망치지 않았나요?”
“창문은 밖에서 잠겨져 있어. 그리고 난 골격이 커서 그 창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창문이 얼마나 작기에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일까. 말로만 들어서는 정확한 감이 오질 않았다.
“누나. 제가 위층에 올라가 봐도 될까요?”
“그러렴.”
나는 그녀와 함께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위층은 이 층이라기보다는 다락방에 가까웠다. 그리고 방 안에는 썩은 걸레 냄새가 진동했는데, 방 안은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돼지우리 같았다.
그녀가 말한 창문은 좌측 벽 밑쪽에 있었는데 과연 그녀가 말한 대로 좁고 가늘었다. 검은 커튼이 밖에서 드리워져 있어서 창문 밖의 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창문이 밖에서 잠겨 있으니 창문을 깨고 도망치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저 창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곳에 와서 마르긴 했지만 근육이 붙어 있는 탓에 창문 사이에 몸이 끼일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서 살을 더 뺀다면 빠져나가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혼자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내 목덜미 뒤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는 것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좁고 긴 눈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래층 천장의 반듯한 체크무늬가 떠올랐다. 체크무늬의 반듯한 테두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때처럼, 나는 그녀의 그 좁고 긴 눈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나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는 자줏빛 침대 시트 위에 나를 눕히고는 내 옷을 천천히 벗기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아래층에 내려와서 그녀와의 섹스를 생각했다. 나는 어째서 그녀와 관계를 맺은 것일까. 만약, 그녀를 이곳이 아니라 밖에서 만났더라도 그녀와 이런 관계가 형성되었을까. 조금 전 나는 그녀의 둔부를 향해 필사적으로 아랫도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정말 처절하게 외로웠던 탓에, 사막 위에 서 있는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그렇게 필사적으로 그녀의 그곳을 향해 아랫도리를 들이밀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문득 담배를 태우고 싶어졌다. 이곳에 온 뒤 최초로 느낀 흡연 욕구였다. 어쩌면 내가 태우고 싶은 것은 담배가 아니라 조금 전에 가졌던 그녀와의 섹스일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나는 지금 현실의 모든 것들 태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외로움도, 그녀도, 그녀와의 관계도, 소통도, 현재의 나도. 나는 자살을 원하고 있었다. 내가 자살을 한다면 이 모든 것들이 담배 연기처럼 덧없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나는 그녀를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을까. 우스운 예지만 나는 그녀가 나에게 라면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허기를 채울 순 있지만 주식은 절대 될 수 없는 라면. 나는 이전에 모든 사람을 인스턴트 음식처럼 대했었다. 당장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사는 인스턴트 음식. 그렇기에 내가 여태껏 진정 사랑다운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몰랐다.
나는 문득 나를 이곳에 가둔 남자도 나와 비슷한 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턴트 음식에 질려 버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통조림처럼, 우리를 이 밀폐된 공간 안에 밀봉해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뼈저린 동질감을 느꼈다.


다음날 위층 여자는 음식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큰 경사라도 난 것처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음식이 늘었어. 오늘부터 딸기잼이 발린 식빵 두 개가 지급돼.”
그러나 나는 그녀처럼 기쁘지 않았다. 우리를 가둔 그 남자에게 길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뿐만 아니라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썩은 걸레로 바닥을 닦은 뒤 찾아오는 찝찝함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곧 그 석연찮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타이밍의 문제였다.
그 많고 많은 날 중에서, 왜 하필이면 오늘부터 음식의 양이 늘어난 것일까. 어제 그녀는 나에게 위층에 있는 창문을 보여줬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오늘, 혹시 내가 그 창문으로 도망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 그녀가 성급하게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닐까. 더 많은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내가 살이 찌고, 그로 말미암아 창문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나를 가둔 것은 정체불명의 그 남자가 아니라 위층 여자, 바로 그녀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난 식빵 하나만 먹을게요. 남은 식빵은 누나가 드세요.”
“왜? 속이 안 좋아?”
“아뇨.”
“그럼?”
“혹시나 살이 쪄서 위층 창문으로 못 빠져나갈까 봐요.”
“뭐?”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누나. 우릴 가둔 그 남자는 보통 언제쯤에 찾아오죠?”
“응? 그건 왜?”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시선이 일순간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대답해 보세요. 그 남자는 매일 언제 찾아오는 거죠?”
“몰라. 확실히 모르겠어. 그러니까······, 올 때마다 달라.”
“혹시, 그런 남자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고요?”
“응?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답하세요. 그 남자는 정확히 언제 찾아오죠?”
“뭐야, 너 왜 그래?”
그녀는 식탁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려는 자세를 취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해 봐요. 혹시 이 모든 게 누나가 꾸민 것 아니에요? 누나는 내가 살이 빠져 창문으로 달아나는 것이 불안해 조치를 취한 것 아니에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동작에서 폭력의 낌새를 강하게 느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식탁을 들어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아주 침착하게 손으로 식탁을 막아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깨진 거울의 파편이 있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도대체 왜 그래? 진정해.”
나는 깨진 유리 조각 하나를 집어들고 위협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마! 사실대로 말해!”
“진정해. 일단 그거 내려놓고 대화로 해결해. 착하지?”
그녀는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지! 이미 다 들통났어. 이제 네 말은 믿지 않아. 솔직히 말해. 너 누구야? 누군데 나를 이곳에 가둔 거야?”
“이러지 마. 이리 와서 얘기하자. 이리와.”
그녀는 창백한 표정을 한 채 내 쪽으로 빠르게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손끝으로 무엇인가 베이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그녀의 팔에는 유리 조각에 베여 깊고 긴 상처가 났다. 그녀의 팔에서 선홍빛 피가 흘러내렸다.
“다가오지 말라니까!”
그녀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유리 조각에 베인 팔을 조용히 내렸다. 그리고는 팔에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말없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은 기분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그녀가 나를 가둔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밀폐된 공간 안에서 미쳐버린 내가 어이없는 공상을 하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내 생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아주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유리 조각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유리 조각을 놓치지 않고자 손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그녀가 돌연 무표정하게 얼굴을 바꾸더니 나를 지나쳐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멍하니 시선을 그녀를 따라 옮겼다. 그녀는 말없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삐걱거림이 들리다가 그녀는 곧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하릴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손에 힘이 풀려 유리 조각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도 다시 내려오지 않았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삼켜버린 어두운 계단 앞에 섰다. 계단의 어둠은 알을 깨고 새가 부화하는 것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어둠이 품고 있던 괴기함이 허무함으로 새로이 탈바꿈하고 있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나는 계단을 천천히 밟고 올라갔다. 알레스카에 홀로 서서 오로라를 올려다보는 것처럼 아주 오묘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위층에 도착한 나는 온몸에 내장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은 깊은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다.
위층에는 공기의 시체만이 쓸쓸히 떠돌고 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