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서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개찰구로 빠져나간다.
날씨가 추워져서 개찰구에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들이 많을 때면 금세 역무원이 뛰어 온다.
역 근처의 골목길로 들어가자 여러 가지 시큼한 냄새가 몰려온다.
각각의 음식점에서 풍겨져 오는 냄새는 나를 몹시 괴롭힌다.
길가에 자리를 펴놓고 말리는 무말랭이 한주먹을 주머니에 넣고 모른 척 지나 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말랭이를 하나씩 입에 넣고 즙을 빨아 먹으면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신다.
공짜로 급식을 하는 자원봉사자 들은 점심에만 온다.
결국 아침과 저녁은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곳 점심때가 되어 역전으로 향했다.
역전 한 귀퉁이엔 빅토리아라고 써진 아이스크림 구루마를 새워두고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내가 보인다.
장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형은 나와 같이 어울려 다녔던 사람이다.
같이 구걸도 했고. 노숙자 끼리 으래 있는 자리다툼에 몇 대 맞을라 치면 장형이 으래 뛰어와 해결해 주곤 하였다.
그땐 마치 장형이 내 친형이라도 된 듯 느꼈었는데 어느덧 장형은 조금씩 모은 돈으로 저 아이스크림 구루마를 사가지고 장사를 한다. 잠도 더 이상 노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숙자 쉼터에서 잔다고 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나를 본 장형은 이리오라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나는 손을 휘휘 흔들고 멀어졌다.
때가 지득지득낀 내가 그곳에 간다면 오던 사람들도 도망갈 테니…….
점심때가 되어서 노숙자들은 하나둘 역전으로 모여들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밥을 차릴 준비를 하고 줄을 서라고 말하는데 정작 줄을 서는 사람은 몇 없다.
줄 을선 사람이라곤 김 사장과 어울려다니는 패거리 그리고 어수룩한 신참들뿐이다.
대부분의 노숙자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주위를 배회할 뿐이다.
그들이 밥을 타간후 사람들은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줄의 앞쪽에 껴들었다.
흰 쌀밥과 무짠지 김 그리고 쇠고기 뭇국을 식판에 담아서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앞쪽에는 아까 줄을 서던 신참이 보인다.
나이는 한 40대 정도 곳곳에 검뎅이가 묻어있는 오리털 파카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그래도 찢어지거나 한곳은 없는걸 보아선 노숙을 한지 얼마 안 된 듯하다.
그 신참은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처다 봤다.
내가 시선을 거두자 그 신참은 좀 더 나를 보다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김 사장과 그 패거리가 신참에게 다가 왔다.
김 사장은 신참에게 뭐라 뭐라 말하자 신참은 바보처럼 자리에 일어나 김 사장을 따라갔다.
필시 어디로 대려가 그 신참을 손봐줄려는 것이다.
예전에 나도 김 사장에게 당했었고.
필시 김 사장도 예전엔 그런 일을 당했을 것이다.
밥을 다 먹고 식기를 반납하고 주머니에서 장초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하였지만 부싯돌이 빠져 불꽃이 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가까이 보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군인에게 다가와 불을 청하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역의 직원주차장 쪽에서 김 사장 패거리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김 사장을 따라다니는 사람 중 하나가 오리털파카를 입고 있는 게 보였다.
직원주차장으로 가보니 아까 그 신참이 신음을 내며 쓰러져 있었다.
보통은 몇 대 맞더라도 금세 일어나는데 김 사장이 간지 한참 되었는데도 쓰러져 있는걸 보니 큰일 나겠다 싶어 일으켜 세우니 코가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충 옷으로 훔치고 "괜찮아? 괜찮아?"하고 물으니 으으...하는 소리를 내더니 눈을 떴다.
신참을 대리고 역 화장실로 대려가 피를 닦아주고 밖으로 나갔다.
신참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담배를 피우는지 물어보니 핀다고 해서 주머니를 뒤져보니 담배가 하나도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다가가 담배좀 얻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얼굴을 찡그리며 담배 한 갑을 건네주고 자리를 피했다.
신참에게 담배를 주고 나도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하니 이제야 내가 불이 없는 게 떠올랐다.
그러자 신참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자리에 앉아 한참동안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한 이야기는 대부분 이곳 생태가 어떤지 김 사장은 누구인지 뭐 그런 이야기였고
신참은 내 이야기에 응수하는 것이 대부분 이였다.
그러다가 신참에게 어떻게 하다가 노숙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 이유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 신참을 대리고 내 자리로 향했다.
박스를 꺼내 바닥에 깔아주고 이불대용으로 쓰는 농업필름을 건네주었다.
신참을 그걸 받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내가 누우니 따라 누웠다.
자다가 추워서 눈을 떠보니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신참의 나이가 나보다도 많아 보이기도 하고 남자가 운다는 것이 불성 사납기도 하지만 이 바닥 까지 굴러 왔으니 뭔가 큰 사연이 있을 것이다.
뭔가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고 잠시 생각하였지만.  끄응 소리를 내곤 몸을 돌려 누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눈을 떠보니 역무원이다.
'내가 이 시간 까지 잤나?"란 생각에 눈이 번쩍 떠졌는데 의외로 역무원은 인상을 쓰거나 목소리를 높이거나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신참이 없다. 박스는 가지런히 벽에 기대어 있고 비닐은 접혀있다.
이상한 기분에 역무원을 따라가니 경찰차가 서있다.
경찰은 나를 가리키고 이사람 이냐고 역무원에게 물으니 역무원은 그렇다고 했다.
경찰은 나에게 사진하나 보여줬다.
신참이다. 양복을 입고 있고 단정해 보이는 모습이긴 하지만 신참 이였다.
아냐고 물어보는 경찰의 대답에 안다고 말하니 경찰서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
경찰차 뒷좌석에서 궁금한 마음에 신참이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그 사람 죽었어요. 자살했어요. 플렛홈 의자에 유서를 써놓고 뛰어내렸어요. 유서에 보니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이 있어서……."
경찰은 계속해서 말을 했지만 내 귀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바보 같이.
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여기까지 온 거 그래도 끝까지 살아보지.
그리고 차라리 유서엔 그런 말 따윈 쓰지 말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노숙을 하기 전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어머니...아니 엄마가 정말 보고 싶다.